담화의 놀이들

메모. 내가 재밌어할 내용이라고 확신하고 샀으나 막상 펼치지는 못하다가 올여름에 각 잡고 돌파했다. 주된 논지와 상관없는 텍스트, ‘여담’이라는 개념이 수사학과 소설에서 어떻게 다루어져 왔는지 다룬다. 제임스 우드의 『소설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옆에 꽂아두면 위치가 맞을듯.

글자도 빽빽하고 모든 챕터가 일정한 재미를 보장하진 않지만 내용 전반은 흥미로웠다. 2차 창작과 TRPG가 생각나는 부분도 많았다. 읽고 나면 디드로와 세르반테스에 대한 이해가 조금 높아진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돈키호테』를 읽을 엄두가 나느냐? 아 그건 또 다른 문제긴 해⋯.

손을 찬양하다

우분투북스에서 정기구독 도서로 보내주셨다. 낡은 집을 뚝딱뚝딱 고쳐 살아가는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 스페인판 ‘리틀 포레스트’. 간만에 산뜻하고 가벼운 이야기를 읽었다.

텃밭을 그만두게 된 건 마음이 아파서였다. 모든 소소한 일과 그 기쁨이 매일매일 그곳에 있는데 나는 매일매일 계속해서 그곳에 있을 수가 없으니까. (94p)

림보에서의 축지법

메모. 다 읽고 작가의 트위터를 팔로우했다. 다음엔 어떤 텍스트를 쓰실지 궁금하다.

고스팅

메모. 같은 주제로 더 심화된 책을 쓰신다면 도서관에서 빌려볼 의향이 있음.

피뢰침과 스며듦

메모. 아직은 저자의 사회학 연구보다는 그 연구를 대하는 태도에 더 관심이 간다. 그렇지만 저자 덕분에 다케우치 요시미의 이름을 알게 되어 군산북페어에서 다케우치 요시미의 진을 구매하기도 했다. 어쨌건 윤여일이라는 이름을 계속 쫓아갈 것 같다는 결론.

디자인 정치학

사슴님이 하시는 studio qzk 에서 구매. 모든 디자인 작업은 정치적이라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주장을 다양한 레퍼런스로 증명한다. 덕분에 재밌는 디자인 작업물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한동안 얀 후크의 뉴 마사이족 프로젝트 링크를 자주 들여다봤다.

천사들의 엄격함

메모. 이게 얼마만에 읽은 양자역학인지. 이과 나온 게 무색하게 학창시절에 배운 게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서 진땀 흘렸다. 하지만 덕분에 칸트와 보르헤스로 가는 길 하나를 뚫었다.

가급적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돈 이야기

책 제목에 빵 터져서 바로 구매했다. 너무 나를 위한 책이야. 난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게 아니고 대단한 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최대한 평화롭게 도서관과 서점만 드나들면서 적당히 먹고 살고 싶을 뿐인데. 이 책은 도쿄에서 주 2회 아르바이트만 하며 나머지 시간은 밥 해먹고 책 읽고 ‘은거 생활’을 하고 있는 저자의 에세이집이다. 이미 일본에서 비슷한 주제로 책 여러 권을 내셨고 한국에는 그중 두 권이 번역·출판되었는데 현재까지 절판되지 않은 건 이거 한 권뿐이다.

반나절 안에 다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책인데 제목 때문인지 내용 때문인지 이 책을 쥐고 있으면 어쩐지 내 마음도 가벼워지는 느낌이라 앞으로도 계속 갖고 있을듯.

내가 옳다는 것은 얼핏 쾌적해 보이지만 사실은 끝없는 고통의 시작일 뿐입니다.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고 행복한 생활에서 멀어질 뿐입니다. (…) 내가 은거한다는 사실은 나만 알고 있어도 충분합니다. 그 이상 옳을 필요가 없습니다.

  • 매월 지출을 일정하게 만들기. 매달 지출 파악하기.
  • 최저생활비 확인하기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하는 긴장감

같은 돈이라면 한 명이라도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게

  • 대가를 제대로 지불하기
  • 가급적 오프라인으로 사기
  • 납득할 수 없는 것에 돈 쓰지 않기
  • 공공복지서비스는 감사한 마음으로 이용하기

은거 생활 전까지는 그저 1엔이라도 싸게 살 수 있으면 됐다 싶었는데, 지금은 할인 매장에서 파격 세일하는 쌀보다 나와 최대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생산자가 자연 재배한 국산 현미를 사려고 합니다. (⋯)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를 상품을 1엔이라도 싸게 사는 것보다 생산자에게 제대로 공정한 대가를 지불하고 상품을 받는 게 지금은 더 중요합니다.

돈을 어떻게 인격화하나 싶겠지만, ‘목숨이 없는 물건을 인격화’하는 게 딱히 유별난 일은 아닌 듯합니다. 예를 들어 비 오는 날 어머니가 아이에게 ‘자전거가 감기 걸리니까 집 안으로 들여주자’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죠. (..) 돈도 예외 없이 인격화했을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변화는 역시나 ‘돈에 대한 감사함과 애착이 싹튼다’는 점이었습니다.

내가 돈을 건넨 사람이 돈을 어떻게 다루는 사람인지, 잘 알아보고 갔으면 좋겠다

제가 돈이었다면 연수입이 아무리 많더라도 그런 불편한 마음으로 쓰일 바에야 수입이 적어도 상관없으니 행복하게 쓸 줄 아는 사람의 손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상냥한 지옥

우분투북스에서 정기구독 도서로 보내주셨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역사와 개인, 감각과 언어의 교차’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데, 나는 이 부제로 사회학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아니면 저자가 지금 문화인류학자로서 연구를 하고 있으니까 그 연구 내용을 대중서로 내줘도 좋겠다. 오토에스노그래피 내에서도 소위 감각적인 글을 내가 잘 읽을 줄 모르는 거 같다. 시무룩..

예술과 정치

최근에 동네 서점 독서모임으로 『마의 산』을 읽고 있어서 도움이 될까 싶어 도서관에서 빌려 봤는데 토마스 만이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됐다. 제정신이라고 기대하고 빌린 건 아닌데 생각 이상으로 제정신이 아니셔서 좀 당황스러웠네. 아래 메모는 어디까지나 책의 내용을 기억하기 위함이지 제가 해당 주장에 동의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전쟁 중의 생각 (1914)

‘문명과 군국주의의 투쟁’이라는 표현

  1. 민주주의와 군국주의는 서로를 배제하는 개념이 아니다
  2.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영국의 군대의 함대도 군국주의 아님?
  3. 프랑스는 아직도 1789년 대혁명의 낭만에 심취해 있던데 급진주의는 결국 무정부주의로 변모한다는 선례에 불과하지 않나
  4. 독일인은 문명보다 문화라는 표현을, 정치지향적 사회보다 도덕 지향적 사회를 추구해 왔다. 우리가 왜 ‘반혁명’적이냐! 너희의 ‘시민사회’의 부패, 문명이라는 평화주의적 이상이야말로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너희가 전쟁의 신성한 공포를 알아?

사람들은 평화시엔 평화의 아름다움을 종종 잊기도 한다. 사람들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권한을 쥐고 있는 장엄한 전쟁이 인간의 예절과 문화를 되돌려 줄지도 모르지 않는가?

사람들이 놀라워하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우리의 적 쪽에서 볼 때 전쟁이란 독일을 강제로 문명화시키는 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독일에 키르기스족, 일본인, 구르카족, 호텐토트족을 풀어놓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모욕은 유례가 없이 터무니없는 것이다.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민족을 그처럼 모르고 있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한 우리에 대해 처벌하고 복수해야 한다. 뭐니 뭐니 해도 독일의 승리가 확고부동한 까닭은 무엇인가? 무지와 오류에 역사가 승리의 관을 씌워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독일의 ‘군국주의’, 윤리적인 보수주의, 군인적인 도덕성은 마성적이고 영웅적인 요소이다. 이것들은 프랑스적인 문민정신을 인간의 품위를 지켜주는 최종적인 이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세계평화 (1917)

  • 인간의 문제는 정치적으로가 아니라 영혼적·도덕적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
  • 박애주의자보다 자그마한 선의가 더 낫다
  • 미래의 유럽은 지금 우리가 벌이는 세계관 논쟁을 부끄럽게 여기겠지. 정치적인 분위기보다 인간성과 교양을 중요시하겠지
  •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것. 향락욕과 졸부 근성을 버리고 기품 있는 예의와 예술의 시대로. “멋진 영국인, 세련된 프랑스인, 인간적인 러시아인과 학식 있는 독일인이.”

비정치적 인간의 고찰 - 아이러니와 급진주의

  • 예술, 문학은 순수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도덕이 예술적으로 되었다.
  • 그러나 우리는 예술의 도덕주의를 너무 도덕적으로 받아들여선 안 됨

바쿠스의 신녀

명동에서 아주 야한 일본 희곡 낭독 공연을 하고 있다는 입소문으로 알게 된 책. 도대체 무슨 내용이어야 그런 감상이 나오는지 너무 궁금해서 정식 번역·출간일을 오매불망 기다렸고 얇은 만큼 반나절만에 완독했다. 감상을 짧게 쓰자면 1. 이 정도 수위 있는 내용을 이 책으로 처음 접한 건 아니지만 ISBN 있는 책 중엔 떠오르는 게 없다. 만약 이 책으로 독서 모임을 한다면 시스젠더 헤테로 남성은 초대하기 난감할지도 모르겠다. 2. 그리고 이 책의 수위는 사실 줄거리보다 대사의 단어 사용에 있다. 여러모로 지하철에선 읽을 수 없다. 지하철에서 보면 아마 폰트 크기 최대로 해서 야설 읽는 할아버지와 별로 구분이 가지 않을 것이다. 3. 이 책 읽은 뒤로 지금 우유를 못 먹고 있다. 동물을 해치지 않는 방향이 좋다는 큰 그림만 있지 뚜렷하게 비건을 지향하진 않는데 이 책 읽고 난 뒤로 우유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다. 동물보호적 측면이 아니라 지극히 성적인 측면에서..

도도가 낙하한다

『바쿠스의 신녀』를 사며 같이 구매한 희곡. 동료들과 개그 공연을 하며 근근히 먹고 살던 주인공이 사실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추락하는 이야기인데 기대에 비해선 삼삼했다. 조현병을 앓는 인물이 극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은 물론 긍정적이나 주인공의 ‘낙하’와 그를 ‘외면’해선 안 된다는 극의 결론, 이를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와 ‘나다움을 추구할수록 사회적 비정상인이 되는 절망적 현실’로 읽는 해석을 보고 나니 오히려 식었달까. 조현병 환자인 주인공은 당연히 기이하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는데 그런 주인공을 정상인 조연들 사이에 끼워넣어 정상인 독자에게 독해의 대상으로 던져주는 것이 그리 마음 편하게 느껴지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