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generator uri="https://jekyllrb.com/" version="4.4.1">Jekyll</generator><link href="https://linearlog.com/feed.xml"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link href="https://linearlog.com/" rel="alternate" type="text/html" /><updated>2026-06-28T02:18:06+00:00</updated><id>https://linearlog.com/feed.xml</id><title type="html">Linear’s Blog</title><subtitle>일기, 독서 기록, 이것저것의 아카이빙</subtitle><author><name>Linear</name></author><entry><title type="html">책과 불</title><link href="https://linearlog.com/essay/2026/06/27/%EC%B1%85%EA%B3%BC-%EB%B6%88/"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책과 불" /><published>2026-06-27T00:00:00+00:00</published><updated>2026-06-27T00:00:00+00:00</updated><id>https://linearlog.com/essay/2026/06/27/%EC%B1%85%EA%B3%BC-%EB%B6%88</id><content type="html" xml:base="https://linearlog.com/essay/2026/06/27/%EC%B1%85%EA%B3%BC-%EB%B6%88/"><![CDATA[<p>&lt;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gt;를 며칠 전에 다 읽었다. 지난주부터 내 머릿속에는 &lt;레 미제라블&gt; 뮤지컬의 바리케이드 씬이 24시간 상영 중이다. Barricade! 그리고 가끔 디즈니 애니메이션 &lt;노틀담의 꼽추&gt;의 에스메랄다가 땅을 거닐며 노래를 부른다. God Help the Outcasts. 비록 &lt;노틀담의 꼽추&gt;는 19세기가 아니라 15세기 배경이고 원작 소설인 &lt;파리의 노트르담&gt;과는 줄거리도 상당히 다르지만, 아무튼 작가가 빅토르 위고니까.</p>

<p>누가 취미를 물으면 제일 먼저 독서라고 말하긴 해도 그만큼 책을 많이 읽느냐 하면 잘 모르겠다. 나도 웹툰과 유튜브 숏츠에 시간을 써버릴 때가 있고 어제만 해도 웹툰 보다가 새벽 네 시에 잤다. 책을 붙들고만 있을 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할 때도 많고 연말에 올해 독서 기록을 탑처럼 쌓아 SNS에 올리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들은 혹시 책을 씹어먹었나 싶다. 다들 어떻게 그렇게 많이 읽을까. 입안에 맴도는 말은 많지만 내뱉으면 결국 핑계뿐이다. 좋아하는 유튜버가 ‘ㅇㅇ님은 어떻게 그렇게 책을 많이 읽으시나요’ 하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떠올린다던 답이 있다. ‘일단 책부터 펴라고 500번 말했다.’ 최근에 친해진, 프랑스어와 독일어와 라틴어와 콥트어를 할 줄 안다는 지인에게 어쩌다 그런 공부를 하게 되었냐고 물었을 때 들은 답도 있다. ‘읽고 싶은 책이 그 언어로밖에 안 쓰여 있으면 언어 공부를 하게 돼요.’ 우문현답도 정도가 있지.</p>

<p>온실 속의 독자로 자라 한국어로 된 책밖에 읽지 않는 내가 책이 잘 안 읽힌다고 말하면 좀 이상하지만 요근래 몇 달은 읽은 권수 대비 한순간이라도 집중과 몰입의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던 책이 손에 꼽았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lt;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gt;였다. 책이 기똥차게 잘 쓰였냐고? 어⋯. 이 주제에 관심 없는 사람을 입담으로 휘어잡을 만한 책은 아니다. 그런 걸 원한다면 분야는 다르지만 &lt;스티븐 프라이의 그리스 신화&gt;를 넘어서는 책을 본 적이 없다. 그럼 좀 인자하고 존경할 만한 어르신의 역사 강의 같느냐, 그건 강유원 교수님이 더 전문이다. &lt;역사 고전 강의&gt;와 &lt;책과 세계&gt;는 여전히 그 빛이 바래지 않았다. 사실 이번에 읽은 책은 1980년에 처음 출간된 걸 2011년에 개정한 게 마지막이라 낡은 문장도 왕왕 있었다. 예를 들면 ‘처녀연설’ 같은 표현. 와, 너무 오랜만이라 솔직히 좀 웃었다.</p>

<p>이 책이 재밌었던 건 그저 내가 이 주제에 관심이 있고, 관심 있는 사람이 읽기엔 충분히 직관적이고 자세하고 군더더기 없이 뜨겁게 쓰여서였다. 뜨겁다는 표현이 이 이상 어울릴 수 없다. 저자가 유신 체제에 항의하다가 교수직에서 해임되어 혁명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는 배경을 몰라도, 이 책이 1980년대 대학가의 필독 도서였다는 사실을 몰라도, 그저 어느 시대의 역사를 읽는 것만으로 마음에 불이 붙는 경험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현실의 나는 에어컨 바람이 내리쬐는 초여름의 카페에 앉아 빨대 꽂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쫙쫙 땡기고 있는데 책을 읽는 눈은 19세기의 타오르는 불을 들여다보느라 마음이 가없이 뜨거워 일순 여기가 어디인가 하는 착각이 들 때, 그 유리감이야말로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다. 지나간 시대의 고군분투는 언제나 내 두 발을 지리멸렬한 현실에서 잠깐 띄워준다. 소설 중에선 조선희의 &lt;세 여자&gt;가 그랬고 올해 읽은 또다른 책 중에는 &lt;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gt;이 그랬다. &lt;세 여자&gt;는 아무 생각없이 1권만 샀다가 그날 저녁에 다 읽고 밤을 지새워 다음날 교보문고 문 열자마자 2권을 샀었지.</p>

<p>여기까지 얘기하면 ‘그래, 역시 좌파 혁명 서사가 재밌어’ 하고 반응해주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가. 사실 그 분류법은 잘 모르겠다. 왜냐면 &lt;레 미제라블&gt; 뮤지컬에서 멋지게 펄럭이는 삼색기와 달리 프랑스 혁명의 끝은 결국 파리 코뮌이고 &lt;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gt;의 멤버들은 상당수가 아직 국제 수배 중인 테러리스트니까. 소위 ‘혁명’의 찬란한 순간은 찰나에 불과하고 나머진 전부 그에 따른 후폭풍이니, 프랑스 삼색기의 의미가 과연 자유와 평등과 박애인지 혁명과 전쟁과 쿠데타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좌파’ 파트도 애매하긴 마찬가지다. 역사책을 제외하면 내가 이번 분기에 제일 재밌게 읽은 저자는 칼 슈미트였다. 프랑스 혁명사도 좋아하지만 독재와 전체주의를 정당화했던 나치 법학자의 에세이도 재밌어한다면 그건 좌일까 우일까. 그냥 아무거나 다 좋아하는 사람 아닐까. 아무튼 내 마음에 흥미의 불을 당겨주는 책이 좋다. 책을 읽고 무슨 성찰을 해서 가치관을 다져서 이전보다 더 나은 내가 되겠다는 성장의 관점은 애진작에 내다버렸고, 같은 세대의 한 줌 독서인들 사이에서라도 소외감 느끼지 않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 시류를 쫓아가려던 의지도 많이 잃었다. 아 미안합니다. 먼저 출발하세요. 여성 서사와 여성적 읽기 버스 출발하시구요. 자기 이론과 디아스포라 버스도 출발하시구요. 한국 현대 소설 버스 아직 출발 안 하셨어요? 가세요 가세요. 저는 그냥 저 뒤에 오시는 4050 아저씨들이랑 걸어갈게요. 알라딘 구매 통계 보니까 역사책은 그분들이 제일 많이 사시더라구요.</p>

<p>취향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서야 책장을 정리했다. 이제 내 책장을 보면 나조차 숨이 막힌다. 잘만 휘두르면 칼보다 살상력이 높을 듯한 벽돌이 하나둘셋넷다섯⋯. 언제 다 읽지? 언제가 되어야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세상을 더 이상 쫓지 않고 종일 책만 읽으며 살 수 있지?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의 꿈은 셜록 홈즈 소설에 자주 나오는 할아버지처럼 사는 것인데, 그러니까 매주 일요일 같은 시각 같은 클럽에서 신문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동년배 친구들과 포커를 치며 궁시렁대는 칸트 같은 삶을 살다가 동네에서 이상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홈즈에게 흠, 안 그래도 A씨가 좀 이상한 말을 하더군, 같은 증언을 해 줄 수 있는 동네 토박이 할아버지가 간절하게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그 꿈을 이룰 수 있는지 도통 모르겠다. &lt;강철왕국 프로이센&gt;, &lt;독일 교양 이데올로기와 비전&gt;, &lt;지배에서 통치로 - 근대적 통치성의 탄생&gt;, 이렇게 제목만 읊어도 울림이 아름다운 책들이 이미 책장에 있는데 말이다. 물론 하나같이 세상살이에 도움이 되긴커녕 같이 읽어줄 독서 모임조차 못 만들 거 같지만.</p>

<p>하지만 아직은 프랑스 혁명이다. 아직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지 이제 나흘쯤 지났는데도 아직 불길이 꺼지지 않았다. 로베스피에르와 자코뱅과 거기서 파생된 수많은 픽션 캐릭터가 내 안에 살아 숨쉬고, 알라딘 장바구니에서는 &lt;테르미도르&gt; 1~5권 전권 세트가 살아 숨쉰다. 안 되겠어. 빨리 다음 책 읽으러 가야 돼⋯.</p>]]></content><author><name>Linear</name></author><category term="essay" /><summary type="html"><![CDATA[&lt;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gt;를 며칠 전에 다 읽었다. 지난주부터 내 머릿속에는 &lt;레 미제라블&gt; 뮤지컬의 바리케이드 씬이 24시간 상영 중이다. Barricade! 그리고 가끔 디즈니 애니메이션 &lt;노틀담의 꼽추&gt;의 에스메랄다가 땅을 거닐며 노래를 부른다. God Help the Outcasts. 비록 &lt;노틀담의 꼽추&gt;는 19세기가 아니라 15세기 배경이고 원작 소설인 &lt;파리의 노트르담&gt;과는 줄거리도 상당히 다르지만, 아무튼 작가가 빅토르 위고니까.]]></summary></entry><entry><title type="html">시선</title><link href="https://linearlog.com/essay/2026/06/17/%EC%8B%9C%EC%84%A0/"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시선" /><published>2026-06-17T00:00:00+00:00</published><updated>2026-06-17T00:00:00+00:00</updated><id>https://linearlog.com/essay/2026/06/17/%EC%8B%9C%EC%84%A0</id><content type="html" xml:base="https://linearlog.com/essay/2026/06/17/%EC%8B%9C%EC%84%A0/"><![CDATA[<p>삐삐삐. 띠-리-리. 당신은 언제 잠이 들었냐는듯 잠에서 깨어납니다. 소리를 듣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소리의 첫 음이 울림과 동시에 당신은 이미 일어나 있습니다. 당신은 휴대폰을 들어 정확한 시간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침대 바로 옆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보건대 지금이 아직 한밤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마치 5분도 채 안 되는 선잠을 잔 것 같기도 하고, 동시에 오늘이 며칠이었고 무슨 요일이었는지 완전히 잊을 만큼 깊은 잠에 빠졌다가 뺨을 한 대 맞고 억지로 끄집어내진 것 같기도 합니다.</p>

<p>당신은 창문을 향해 몸을 돌린 채 자고 있었습니다. 옆으로 돌아누워 자는 건 당신이 오랫동안 고치지 못한 습관입니다. 큼지막한 크기의 통유리 창문에는 두꺼운 암막 커튼이 꼼꼼하게 쳐져 있고 커튼과 커튼 사이로는 아주 약간의 빛만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커튼이 없었다면 바깥 풍경과 창문에 비치는 방 전체의 옅은 그림자를 볼 수 있었겠지만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창문을 향해 누워 있는 한 당신은 집안의 상황을 전혀 파악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침착하게 생각합니다. 잘못 들었을 수도 있고, 내가 착각했을 수도 있고, 만에 하나 정말로 위험한 상황이라면 이렇게 누워있어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당신은 빨리 일어나야 한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나 몸이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p>

<p>시선. 당신은 말없는 시선을 느낍니다. 여전히 당신은 창문을 향해 누워 있고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소리의 주인은 어느새 지척에 다가와 있습니다. 침대 바로 앞에, 언제든지 손만 휘두르면 당신에게 닿을 곳에. 당신은 인기척을 느꼈다고 확신합니다. 그곳에 누군가가 서있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침착하게 생각합니다. 당신 역시 젊었을 적에는 술을 진탕 먹고 엉뚱한 층, 엉뚱한 호수의 집을 찾아가 왜 도어락 비밀번호가 맞질 않냐며 여러 번 두드린 경험이 있고 새벽 세 시에 도어락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건 당신이 사는 건물에서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닙니다. 당신은 이해하고, 반추하고, 마침내 결론을 내립니다. 착각일 가능성이 가장 높고, 문이 제대로 닫겨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그 다음으로 높고, 그냥 술에 취해서 여기가 제 집이 아닌 줄도 모르고 들어온 취객일뿐 구체적인 악의가 있지 않을 가능성이 그 다음으로 높습니다.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선 역시 지금이라도 움직여야 한다고 당신은 다짐합니다. 그러나 몸은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p>

<p>당신은 시선의 주인이 그 무엇도 하지 않은채 그저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당신의 귀에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시도때도 없이 울리던 낡은 보일러 소리, 새벽녘에도 가끔 들려오던 길거리 소음, 침대에서 여름용 요와 이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당신 자신의 숨소리도, 침을 삼키는 소리도, 무엇 하나 들리지 않은채 세상이 멈췄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곳에 있는 건 여전히 창문을 향해 누워 있는 당신과 그런 당신을 바라보는 침대 곁의 누군가뿐입니다. 당신은 부엌의 식칼이 어디 있었는지, 그보다 가까운 문구용 칼은 어디 있었는지 차례차례 떠올려 보지만 정말로 그런 게 필요한 상황이라면 아마 거기까지 도달하기는 불가능하리라는 사실도 예감합니다.</p>

<p>당신은 이 상황이 무척이나 끔찍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동시에 어딘가 기시감이 듭니다. 이 일의 전말을 당신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과거에 몇번이고 겪었던 일을 매번 처음처럼 기억하는 것 같기도 하고, 미래에 언젠가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일을 지금 겪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당신은 이것이 맞서야 할 순간인지 체념해야 할 순간인지 알 수 없습니다. 어떠한 소리도 없이 시간이 멈춘 곳에서 당신은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침대에 달라붙어 있는 피부 하나하나를 억지로 뜯어낸다는 마음으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움직입니다. 긴장으로 뻣뻣해진 근육을 티끌만큼이나마 가누려고 애쓰며 조금씩, 그리고 당신을 내려다보는 말없는 인영의 크기를 어림짐작하며 또 조금씩, 당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하지 못할 일을 두 손에 꼽아가며 조금씩.</p>

<p>그리고 당신은 마침내⋯.</p>]]></content><author><name>Linear</name></author><category term="essay" /><summary type="html"><![CDATA[삐삐삐. 띠-리-리. 당신은 언제 잠이 들었냐는듯 잠에서 깨어납니다. 소리를 듣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소리의 첫 음이 울림과 동시에 당신은 이미 일어나 있습니다. 당신은 휴대폰을 들어 정확한 시간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침대 바로 옆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보건대 지금이 아직 한밤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마치 5분도 채 안 되는 선잠을 잔 것 같기도 하고, 동시에 오늘이 며칠이었고 무슨 요일이었는지 완전히 잊을 만큼 깊은 잠에 빠졌다가 뺨을 한 대 맞고 억지로 끄집어내진 것 같기도 합니다.]]></summary></entry><entry><title type="html">구술생애사</title><link href="https://linearlog.com/essay/2026/06/10/%EA%B5%AC%EC%88%A0%EC%83%9D%EC%95%A0%EC%82%AC/"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구술생애사" /><published>2026-06-10T00:00:00+00:00</published><updated>2026-06-10T00:00:00+00:00</updated><id>https://linearlog.com/essay/2026/06/10/%EA%B5%AC%EC%88%A0%EC%83%9D%EC%95%A0%EC%82%AC</id><content type="html" xml:base="https://linearlog.com/essay/2026/06/10/%EA%B5%AC%EC%88%A0%EC%83%9D%EC%95%A0%EC%82%AC/"><![CDATA[<p>여기 사람이냐고? 뭐, 그렇다고 봐야지. 고향을 열여섯에 떠났는데 그 이후로 살아본 곳 중엔 여기 제일 오래 살았으니까. 아주 뿌리를 내렸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근데 뿌리를 내렸니 뭐니 하는 게 애초에 허상이지 싶어. 코로나 때 물거품 되긴 했지만 디지털 노마드의 시대였잖아. 다 잠깐 거쳐가는 도시고 잠시 거쳐가는 삶인 거지. 사는 땅, 사는 집, 그런 데 의미 두는 건 부동산 시세 확인할 때뿐인 사람이 한 트럭이야. 지방 살았던 사람들이나 그런 노스탤지어를 쫓을걸.</p>

<p>처음 이 동네에 온 게 8년 전인가. 이사를 하도 많이 다녀서 가물가물한데, 그땐 짐이 많지 않아서 이사업체 없이 아버지 차에 대충 얹어서 왔을 거야. 자식놈 영 못미덥다고 아버지가 많이 도와주셨지. 침대만 용달 트럭을 불렀던가? 그리고 동네 짜장면 집에서 짜장면을 먹었지. 그때 짜장면 먹은 집은 진즉에 망했어. 이 동네는 가게들이 빨리 바뀌거든. 그래도 나쁘진 않았어. 커피 한 잔을 팔천원에 파는 근사한 카페도 즐비했고, 단지 옆에 12차선 고속도로가 인접해서 창문을 1mm라도 열었다간 여는 만큼 고속도로 소음과 하나되는 방이었지만 나는 그 정신나간 소음을 사랑했거든. 새벽 세 시 네 시에도 꽝꽝 달리는 트럭 소리가 불면증 환자에겐 거의 선물이었지. 침대에 가만히 누워 그 빌어먹을 놈의 잠을 기다리며 이름모를 트럭 기사의 밤을 상상하는 일은 퍽 즐거웠어. 물론 내가 아는 트럭 기사의 삶은 순 매드맥스와 유로트럭뿐이지만.</p>

<p>부엌이 손바닥만해서 밥은 대체로 나가서 사먹었어. 식당 추천이라도 해줄 수 있음 좋을 텐데 정감 가는 식당이 많은 동네는 아냐. 그나마 가던 곳들은 이미 다 망했고. 아, 라면집은 아직 있나? 콘크리트 바닥이 꼭 니코틴 중독자 폐처럼 끈적거리는 술집 골목에 있던 거 말야. 옛날엔 많이들 줄 서서 먹었지. 근데 난 거기 라면은 영 취향이 아니더라고. 고깃기름이 둥둥 떠다니다 못해 내가 이 라면 속 돼지비계가 될 것 같은 맛인데 그걸 왜 먹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니까. 이 동네를 상징하는 맛이었던 거 같긴 해. 기름지고 끈적끈적하고. 아직도 생각나는 게, 옛날에 그 라면집 옆옆 건물쯤에 타코집이 있었거든? 몇 번을 가도 사람이 나 말고 한둘밖에 없는 게 곧 망할 거 같긴 했지만 난 좋아했었어. 근데 하루는 주말 아침에 거기 혼자 방문해서 창가자리에 앉아 타코를 먹는데, 창밖으로 뭐가 되게 아름답게 휘날리는 거야. 낙엽더미인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건 가을 회오리바람을 타고 길바닥에서 훨훨 날아오른 란-제-리 셔-츠-룸 찌라시였어. 란-제-리 셔-츠-룸. 그런 진기한 풍경을 나만 봤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지. 난 그날 이후로 그 술집 골목에 들어갈 때마다 꼭 바닥에 널브러진 찌라시 문구를 하나씩 읽어봐. 뭐가 있을지 모르잖아?</p>

<p>그밖엔 음, 어렵네, 상담센터가 괜찮아. 코로나 때 상담을 오래 다녔거든. 코로나 때문에 다닌 건 아니고 이래저래 일이 좀 있어서. 원장실에 처음 들어갔을 때 원형 테이블 한가운데에 곽티슈가 놓인 걸 보고 끔찍할 정도로 진부하다고 생각했는데 매번 그 진부함에 신세를 지고 나왔지. 진짜 진부한 건 나였던 거야. 원장님은 좋은 분이었어. 비록 눈에 아주 잘 보이는 벽면에 구리빛 십자가가 걸려 있어서 그것만큼은 끝까지 긴장을 놓지 못했지만 말야! 상담센터 바로 앞에 저렴한 회전초밥집이 있어서 끝나면 꼭 거기서 밥을 먹었는데 나중엔 사장님이 콜라 서비스도 주시고 그랬어.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매번 벌개진 눈으로 초밥을 먹고 가니 기억하실만도 해. 종업원 아주머니도 잘해주셨지. 거긴 아직도 있냐고? 망했지 뭘 물어.</p>

<p>많은 게 없어졌어. 일 때문에 잠깐 떠나 있다가 작년에 돌아왔는데, 그 잠깐 사이에 진짜 다 없어졌다니까? 동네 사람이면 누구나 알던, 어디서도 안 파는 진한 초콜릿을 내주던 터줏대감 카페도 사라졌고, 뜨끈한 상하이 요리를 종류별로 팔아서 뭘 시켜도 맛있던 식당도 사라졌어. 난 누가 이곳에 놀러올 때면 꼭 거기를 추천했는데 말야. 태어나서 처음으로 몽블랑을 먹어보고 기쁨을 느꼈던 디저트 가게도 사라졌지. 이제 더는 맛볼 수 없게 된 음식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사장님들은 지금쯤 뭘하고 계실까. 그런 상상 해본 적 없어? 시내버스를 타고 차창 밖을 내다보면 길에 사람들이 돌아다니잖아. 저 사람들은 다 어딜 가고 있을까? 저 사람의 경로는 내가 다니는 경로와 전혀 다를 거 아냐. 동네라고 인식하는 범위도, 평소에 자주 가는 식당도, 매일 대화를 나누는 상대도, 길을 걷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머릿속을 채우는 시답잖은 잡념도, 하여간 모든 게 나와 다르겠지. 어쩌면 20년 이상 이곳에 살았을 수도 있고, 이사 온지 한 달도 안 됐을 수도 있어. 여전히 근사하고 멋진 게 많은 이 동네를 사랑할 수도 있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진절머리를 낼 수도 있겠지. 궁금하잖아. 저런 사람들 하나하나가 모여 이 동네가 되는 걸텐데 정작 서로에 대해 아는 건 없으니까.</p>

<p>동네에 대해 말해보라고 하면 이런 얘기밖에 안 나오지 않나? 그래도 내 고향에 비하면 재밌는 얘기 많이 한 거야. 난 누가 고향에 대해 물으면 철 지난 독재자 동상이 공원에 서 있고 지역 내의 모든 초등학교가 그 동상 보러 현장학습 가는 곳이라고 말하거든. 작은 도시라 달리 갈곳이 없기는 해. 그래도 똑같이 진부할 거라면 사람이라도 북적대는 게 낫잖아. 그리고 이제는 뭐랄까, 마냥 관찰자로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입장이 아니다 싶을 때도 있어. 누군가는 나를 보며 이 끈적끈적한 동네에 몇 년씩 녹아드는 끈적끈적한 인간이라고 생각할 거 아냐. 틀린 말도 아니고! 그런 것까지 다 포함해서 얘기하는 거지, 끈적끈적한 동네라는 말은.</p>

<p>어때, 이만하면 얘기가 다 됐을까?</p>]]></content><author><name>Linear</name></author><category term="essay" /><summary type="html"><![CDATA[여기 사람이냐고? 뭐, 그렇다고 봐야지. 고향을 열여섯에 떠났는데 그 이후로 살아본 곳 중엔 여기 제일 오래 살았으니까. 아주 뿌리를 내렸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근데 뿌리를 내렸니 뭐니 하는 게 애초에 허상이지 싶어. 코로나 때 물거품 되긴 했지만 디지털 노마드의 시대였잖아. 다 잠깐 거쳐가는 도시고 잠시 거쳐가는 삶인 거지. 사는 땅, 사는 집, 그런 데 의미 두는 건 부동산 시세 확인할 때뿐인 사람이 한 트럭이야. 지방 살았던 사람들이나 그런 노스탤지어를 쫓을걸.]]></summary></entry><entry><title type="html">도돌이표</title><link href="https://linearlog.com/essay/2026/06/07/%EB%8F%84%EB%8F%8C%EC%9D%B4%ED%91%9C/"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도돌이표" /><published>2026-06-07T00:00:00+00:00</published><updated>2026-06-07T00:00:00+00:00</updated><id>https://linearlog.com/essay/2026/06/07/%EB%8F%84%EB%8F%8C%EC%9D%B4%ED%91%9C</id><content type="html" xml:base="https://linearlog.com/essay/2026/06/07/%EB%8F%84%EB%8F%8C%EC%9D%B4%ED%91%9C/"><![CDATA[<p>출근 준비가 한창일 땐 아무리 찾아도 머리끈이 보이지 않는다. 매일 머리를 묶고 나가는데, 어제만 해도 책상 위에 잔뜩 쌓여있던 고무줄 머리끈은 다 어디로 갔냐며 공연히 화를 내다 보면 내가 머리끈 때문에 화를 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갈 때즈음 어디서 하나가 불쑥 튀어나온다. 나는 아무데도 간 적이 없고 네가 멍청할 뿐이라는듯. 요즘은 매일매일이 그렇다.</p>

<p>7년간 다닌 회사를 떠난지 반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종종 삐걱거린다. 사내 시스템에 접속하면서 나도 모르게 이전 회사 사번을 쳐넣고 있거나, 전 회사 사람들과 함께하는 술자리에서 집에 온 듯한 편안함을 느낄 때가 그렇다. 사실 이직한 회사에서 첫 회식을 한 날엔 집에 돌아와 조금 울었다. 회식에선 아무 일도 없었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친절했다. 다만 7년치 발판을 떼고 남은 내가 생각보다 빈약했다. 나는 그게 단순히 적응의 문제라고, 시간이 지나면 모두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또 잘 모르겠다. 그저 20대가 지나갔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 20대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설명할 재주는 없지만.</p>

<p>나를 붙들어줄 새 기둥을 찾아 돌아다니면서도 마음에 정처가 없다. 7년치 발판을 버리고 나올 때 분명 목표한 바가 있었고 각오도 다졌을 텐데, 생생한 두려움 앞에서 기억은 고무줄 머리끈처럼 휘발된다. 나는 잊고 떠올리고 다시 잊는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어느 날엔 지금부터라도 투자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에 다시 휩쓸리고 어느 날엔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따위의 키워드를 손에 쥔 채 방황하다가 어느 날엔 밀물처럼 들이닥치는 불안에 입을 다문다. 표면적으로는 새 회사 새 업무라는 변화, 30대의 나이, AI의 발전, AI가 내 직업을 앗아가면 난 뭘 먹고 사나 하는 걱정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실 진짜 근저에 깔려 있는 건 혼자되는 두려움이다. 회사에 고용된 월급쟁이가 아니면, 그래서 강제로라도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환경이 아니면 내가 과연 사회에 연결되어 있기는 할까? 매일 출근해서 하루 8시간씩 일하는 지금도 이토록 뿌리내릴 방법을 모르겠는데?</p>

<p>절실히 깨닫건데 나는 그 유리감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며칠 전 이전 직장 동료들과 술을 마시며 그런 생각을 했다. 누가 나를 필요로 하고, 네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그런 효능감을 충족시킬 수만 있다면 나는 극우도 될 수 있을 거 같다고. 나와의 스킨십을 부담스럽지 않게 여겨주는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다면 가치관 따위는 술 한 잔에 바닥에 처박을 수 있을 거 같다. 그러니까 책 열심히 읽고 쌓은 생각이 별로 소용이 없다. 그 무엇도 나를 외로움에 강한 인간으로 만들어주진 못했다. 그런 와중에 친구들을 만나면 그들은 또 나를 휘저어 놓는다. 좋든 싫든. 때로는 내 모순에 내가 한숨이 나온다. 우직하게 제 갈길 가는 친구들이 부럽고, 나도 노선을 확실히 하고 싶고, 나를 좋게 봐주는 친구들의 기대에 부응도 하고 싶은데, 그래서 다짐을 잊는 일이 없게끔 손 닿는 모든 자리에 마음을 새겨 뒀는데 왜 아침이 되면 전부 사라지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걸까?</p>

<p>올해 안에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결국 난 뭘 하고 싶었는지. 반년째 그 고민이다. 아직도.</p>]]></content><author><name>Linear</name></author><category term="essay" /><summary type="html"><![CDATA[출근 준비가 한창일 땐 아무리 찾아도 머리끈이 보이지 않는다. 매일 머리를 묶고 나가는데, 어제만 해도 책상 위에 잔뜩 쌓여있던 고무줄 머리끈은 다 어디로 갔냐며 공연히 화를 내다 보면 내가 머리끈 때문에 화를 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갈 때즈음 어디서 하나가 불쑥 튀어나온다. 나는 아무데도 간 적이 없고 네가 멍청할 뿐이라는듯. 요즘은 매일매일이 그렇다.]]></summary></entry><entry><title type="html">2026 1분기 책 결산</title><link href="https://linearlog.com/review/2026/03/30/%EC%B1%85-%EA%B2%B0%EC%82%B0/"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2026 1분기 책 결산" /><published>2026-03-30T00:00:00+00:00</published><updated>2026-03-30T00:00:00+00:00</updated><id>https://linearlog.com/review/2026/03/30/%EC%B1%85-%EA%B2%B0%EC%82%B0</id><content type="html" xml:base="https://linearlog.com/review/2026/03/30/%EC%B1%85-%EA%B2%B0%EC%82%B0/"><![CDATA[<h3 id="투명한-장벽-플랫폼을-배반하기">투명한 장벽, 플랫폼을 배반하기</h3>

<p>어떻게 하면 인터넷 플랫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이 주제에 대한 한국어 책을, 그것도 실천에 대한 책은 만나기가 참 어려운데 가뭄의 비처럼 이 책을 알게 돼서 재밌게 읽었다. 아래는 책을 읽으면서 혼자 썼던 메모.</p>

<ul>
  <li>코딩이라는 작업 자체가 일종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띤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모든 코드 조각을 하나의 목적으로 통제하고 지휘한다는 점에서.</li>
  <li>프로그래머와 코더를 구분짓는 것은 다분히 엘리트주의적이다. 사람들은 정말로 그 둘이 구분된다고 믿는 걸까?</li>
  <li>인터랙션 디자인이라는 통제된 설정 → 이걸 부정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놀랐다. 책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네이티브 앱 개발자여서 인터랙션 디자인을 너무 숨쉬듯이 당연한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그러게, 사용자를 위한 편의라고는 하지만 이거 굉장한 통제구나. 나는 그간 인터랙션 디자인을 철저하게 맞추는 걸 나의 직무 능력으로 평가받아 왔는데.</li>
  <li>나만의 소셜 네트워크 운영. 유저들에게 맞춤형 온보딩을 제공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와 저는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결국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도 익명 대중 SNS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구나. 소규모 커뮤니티를 잘 굴리는 방법론을 동일하게 소셜 플랫폼에 적용하면 된다는 게 신기했다. 근데 그렇다면 나는 적합한 사람이 아닐 수 있는데..</li>
  <li>162페이지의 규모 확장에 대하여 파트가 진짜 웃겼다. 아.. 개발자는 그런 거 물어봐야 된다고 교육받은 사람이라구요. 어쩔 수가 없어.</li>
  <li>내가 SNS 를 만들 수 있다면 어떤 기능이 들어가길 바라는지. 어떤 구조이길 바라는지.</li>
</ul>

<h3 id="복안인">복안인</h3>

<p>1월에 읽은 소설. 와요와요 섬이라는 가상의 원시 문명이 등장하고, 그 섬에서 나고자란 한 소년이 바다를 표류한 끝에 현대 문명의 대만에서 어느 여성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원시 문명과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매우 서정적이라 좋았는데 책의 약 8할 지점에서 생각지 못한 드리프트가 등장한다. 전체 감상을 해칠 정도는 아니나 서정적인 문장과 별개로 작가가 세워둔 목표는 따로 있었구나 싶었다. 작가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향을 받았다는 정보를 얻고서야 얼추 이해가 됐고, 여성을 묘사하는 방식이 상투적이라 실망했다는 평도 있던데 나는 딱히 그렇게 느껴지진 않았다. 현대 배경의 마술적 리얼리즘 소설을 처음 펼치는 사람이라면 우선 하루키 대신 『복안인』을 추천한다는 말이 내가 가장 동의할 수 있는 감상평이었다. 긴 글 중에선 <a href="https://blog.naver.com/dawning_glow/223820239301">이 블로그</a>가 가장 도움이 됐다.</p>

<p>여담이지만 저 정도의 감상평을 쓰려면 얼마나 관록이 쌓여야 하는 걸까 내심 궁금해서 블로그 글을 이것저것 열어봤는데 앤 카슨의 『녹스』가 한국어로 출간될 때 희랍어와 라틴어 문구를 감수하셨다는 걸 보고 마음을 내려놓았다. 일반인이 아니시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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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처음에는 신기한 채집품을 향한 호기심에 의지해 쇠잔해지는 마음을 붙잡았다. 하지만 오래도록 홀로인 사람은 시간과 시간 사이의 틈이 해구만큼이나 넓고 깊어서 사람의 마음만으로는 뛰어넘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 순간 유일하게 틈을 채울 수 있는 건 추억이다. 아트리에는 해파리가 될 순 없다는 의지로 피폐해진 몸을 지탱하며 살아남기 위해 구차하게 추억에 매달렸다. 섬을 떠나기 전날 밤의 추억으로 욕망을 풀고, 아버지와 노인들의 말을 돌이켜 바다를 이해했으며, 섬사람들의 노랫소리를 기억해 사랑을 이해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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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앨리스는 집 안에 앉아 잿빛 안개가 자욱한 바다를 바라보며 마치 살아있는 다른 생명체의 몸 안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집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의 인생에서 지난 몇 년만큼 아름다운 시간은 없었다. 작은 요철조차 없는 매끈한 유리구슬처럼, 누런 잎 하나 없는 먼나무처럼 완벽했다. 어쩌면 너무 완벽하다는 사실이 그것이 존재해선 안 되는 유일한 이유가 됐는지도 모른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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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부락 노인들이 현지 조사차 온 이들에게 기꺼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외로움에 겨워 추억에 파묻혀 살기 때문이지 거창한 문화 전승 따위가 아님을 하파이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열린 수도꼭지처럼 마르지 않고 이야기를 내어놓는 것은 전부 외로움 때문이었다. 하파이는 가끔 만약 자신이 논문을 쓴다면 외로움이 문화의 뿌리라는 결론을 내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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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다허는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 연약하고 위태로운 기억이 깨지거나, 제 비루한 기억력에 왜곡될까 두려워 감히 회상하지도 못할 만큼. 사무치게 그립지만 그 시절을 회상하다가 그 이후 기억까지 딸려 나올까 겁이 나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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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3 id="수도원의-비망록">수도원의 비망록</h3>

<p>『히카르두 헤이스가 죽은 해』를 재밌게 읽은 이후로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을 몇 권 더 사뒀는데 그 중 하나. 한국에 번역된 건 2008년이지만 실제로 쓰인 건 1982년이라 주제 사라마구의 초기작에 속한다. 1800년대에 세워진 마프라의 수도원, 그 과정에 얽힌 여러 개인의 삶과 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가 핵심인데 재밌게 읽은 것과 별개로 왜 이 책이 ‘주제 사라마구를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린 작품’인지 직관적으로 이해되지는 않았다. 당시 포르투갈 왕가와 종교에 대한 풍자가 제법 신랄하긴 하다. 수도원의 설립 과정을 아주 자세하고 길게 묘사하고 있어 읽고 있으면 꼭 인부들의 지루한 노역을 내가 직접 겪어내고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린 작품’에 이르려면 징검다리가 하나 더 있어야 할 거 같은데, 그걸 알려면 주제 사라마구를 연구한 논문을 읽어봐야 하는 걸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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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왕이 묻기를, 주교가 지금 나에게 한 말이 사실이냐? 내가 마프라에 수도원을 세워주겠다고 약속하면 내 뒤를 이을 후계자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냐? 하자, 수사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폐하. 그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수도원은 반드시 프란시스쿠 수도회의 종단에서 운영해야만 합니다. 그대는 어떻게 해서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느냐? 제가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는 저 자신도 설명할 수가 없지만, 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저는 다만 하느님의 진리를 전하는 도구일 따름입니다. 폐하께서는 오직 믿음으로 응답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수도원을 세우라. 그리하면 너는 곧 후손을 얻으리라. 만약 폐하께서 거절하신다면 앞으로 어떻게 하실지는 하느님께서 결정하실 것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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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날이 저물고 있다. 하늘에는 너무 희미해서 거의 보이지도 않는 빛이 바로 달이 뜨려는 첫 징후가 보인다. 내일이면 블리문다는 자신의 눈을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눈먼 자를 위한 날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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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지금 오는 거야? 그의 매형과 조카는 일찍 집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운이 좋았다. 골수까지 파고드는 추위에 떨고 있을 때는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손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 앞으로 손을 내밀고 발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 딱딱한 발바닥을 뜨거운 깜부기불에 올려서 그을리자, 뼈 속까지 스며있던 한기가 햇빛이 이슬 녹듯이 천천히 사라졌다. 만약 침대에 여자까지 누워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게다가 그 여자가 당신을 사랑하는 여인이라면 우리가 이제 블리문다를 보는 것처럼 그 여자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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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은둔자가 동굴 입구로 나왔을 때, 왕비는 세 걸음을 앞으로 나서며 물었네. 한 여자가 왕비이고, 한 남자가 왕일 때, 그들이 왕비나 왕처럼 생각하지 않고 한 여자와 한 남자처럼 생각하고 느끼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이 왕비가 은둔자에게 한 질문이었네. 은둔자는 묻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지. 한 사람이 은둔자라면, 그가 은둔자처럼 생각하지 않고 평범한 사람처럼 느끼고 생각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만 합니까? 왕비는 잠시 생각한 후, 말했네. 왕비는 왕비이기를 그만두고, 왕은 왕이기를 그만두어야 하겠지. 은둔자도 동굴을 포기해야만 하겠지. 바로 그것이 그들이 해야 할 일이야. 하지만 다른 질문을 하나 더 해야겠다. 어떤 여자와 남자가 왕비도 은둔자도 아닌 그저 평범한 여자이고 남자인가? 그들이 은둔자도 아니고 왕비도 아닌 단지 남자와 여자라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연 어떻게 해야 지금의 모습대로 있지 않을 수 있는가? 은둔자가 대답했네. 누구도 지금 이 순간처럼 있지 않으면서 있을 수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하는 것이라곤 지금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에 대한 거부감 뿐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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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황소를 모는 목동은 어떻게 하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마누엘 밀류가 대답했다. 몰라. 발타자르가 작은 돌 하나를 모닥불 속에 던져 넣으며 말했다. 날 수 있으면 그렇게 될지도 모르지.</p>
</blockquote>

<h3 id="바틀비-혹은-우연성에-관하여">바틀비 혹은 우연성에 관하여</h3>

<p>조르조 아감벤을 처음 읽어봤다. 가볍고 얇아서 아감벤 입문용으로 괜찮길 기대하며 구매했는데 마치 시리즈물에서 7권과 8권 사이에 부록으로 껴있는 7.5권을 읽은 느낌이었다. 책의 난이도가 높진 않으나 근본적으로 아감벤이 왜 이토록 바틀비에 천착하는지를 이 책만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철학자들은 필경사 바틀비를 참 좋아하는 거 같다. 아니면 필경사 바틀비가 철학자들로 하여금 자기 사상을 펼쳐보일 훌륭한 캔버스가 되어 주거나. 그게 내가 책을 읽고 내릴 수 있었던 유일한 결론.</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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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우리의 윤리적 전통은 잠재성 (능력) 문제를 자주 의지와 필연성의 용어로 환원해 회피하려고 노력해왔다. 이러한 전통의 지배적 테마는 무엇을 <strong>할 수 있는가</strong>가 아니라 무엇을 <strong>원하는가</strong> 혹은 무엇을 <strong>해야 하는가</strong>이다.</p>
</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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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바틀비가 제 집으로 삼는 금욕적인 낙원에서는 모든 이유ratio에서 완전히 해방된 오히려 더piuttosto만 있다. 그것은 선호와 잠재성 같은 것으로서 더는 무에 대한 존재의 우위를 보증하는데 쓰이지 않고 존재와 무의 무차별 속에서 이유 없이 존재한다.</p>
</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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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그러나 아감벤은 이해하지 않음을 단순한 의지적 선택, 즉 저가 원한다면 (의지)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능력) 하지 않을 수 있음 (비능력)의 틀로 보는 게 아니다. 그렇게 본다면 능력은 의지에 종속되며 비 잠재성은 다시금 주체적 결단의 문제로 환원되어버릴 것이다.</p>
</blockquote>

<h3 id="급진적으로-존재하기">급진적으로 존재하기</h3>

<p>제목에서 충분히 책의 결을 짐작할 수 있는, 소외된 사람들의 급진적 선언문. 요즘 이런 책을 잘 읽지 않는데 이 책은 서점에서 우연히 펼쳐보고 책 디자인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좋아서 충동적으로 구매했다. 책의 첫 장을 여는 글이 피터 싱어 비판인 것도 한몫했다. 내가 몰랐던 사유를 전해주는 책이 아니더라도 기운 북돋아주는 토템 용으로 이런 책 한 권 구비해 두는 거 나쁘지 않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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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테크놀로지는 우리를 젠더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다. 하지만 대신, 장애를 가진 여성을 지워버리는 효과가 있었다. 지금도 페미니스트들과 대화할 때 많은 경우, 그들의 신체와 체현 개념에서는 장애가 고려 사항이 아니라고 느낀다.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해러웨이의 선언문은 사이보그를 메타포로, 일방적으로 정의하고 주장한다. (우리는 모두 사이보그다.) 해러웨이에게 사이보그는 픽션의 문제, 생사를 둘러싼 분투, 현대적 전쟁의 난잡성, 하나의 지도, 응축된 이미지, 젠더 없는 크리처다. 선언문은 사이보그 개념이 전제하는 장애인이라는 참조점을 지워버리면서 사이보그 정체성을 사용한다. 살아가기 위해 테크놀로지와 결합하는 장애인들이 사이보그다. 우리의 삶은 메타포가 아니다.</p>
</blockquote>

<h3 id="낯선-사람과-부근을-만들기">낯선 사람과 부근을 만들기</h3>

<p>우분투북스에서 정기구독으로 보내주신 책. 마침 알라딘 추천 탭에도 한번 떴던 책이라 후루룩 읽었다. 막상 읽어보니 기대와는 조금 결이 달라서 (내가 기대한 것 : 실제로 낯선 사람과 소규모 커뮤니티를 만들 때 쓸 수 있는 이론과 실천 사이 지침서) 책의 포지션이 다소 애매하다고 느껴졌다. 이런 내용을 한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종합선물세트처럼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인데 나한텐 잘 맞지 않았다. 그래도 좋은 책이었지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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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우리가 현대 교육을 통해 익혀온 사고 습관은 비非안생적이다. 그것은 사고 대상을 객체화(물화)하고, 일정한 거리를 둔 추상적 연역 방식으로 사고하도록 요구하며, ‘투명한’ 사고를 지향한다. 아렌트가 말했듯, 순수한 사유는 종종 현실로부터의 도피이며 결국 모든 것을 명확히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편집증적 이데올로기로 귀결되곤 한다. 안생적 사유 방식을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첫걸음은 사고를 하나의 실천 과정으로 다루는 일일 것이다. 즉 사고가 관찰, 기억, 신체적 감각, 표현, 대화와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다.</p>
</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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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생활이 곧 창작이다”. 우리 창작자들은 자신을 다른 사람 생활의 창작 속 자원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생활 속으로 자연스레 스며들 수 있죠. 그러고 나서 생활을 사고하되, 생활을 사고 대상으로만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사고가 생활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생활이 사고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고를 거치지 않은 생활은 살 만한 가치가 없고, 사고에 지나치게 몰두한 생활은 생활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변증법적 관계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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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앞서 생활이 창작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저는 젊은이들이 사고를 포기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더 나은 사고방식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창작은 사실 매우 흥미로운 사고방식입니다. 그것은 열린 상태로, 호기심을 통해 의식적으로 생활을 맛보는 것이지, 단순히 먹고 마시는 식의 대충 사는 생활이 아닙니다. 생활을 하나의 창작으로 삼으면 먹고 마시는 것에도 의미가 생깁니다.</p>
</blockquote>

<h3 id="메모의-순간">메모의 순간</h3>

<p>이 책에 대한 감상은 이미 단문으로 쓴 적이 있어서 갈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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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하지만 그럼에도 쓰는 과정에서의 원초적인 즐거움이라는 것은 존재한다. 물론 여기서의 즐거움이란 유쾌, 쾌적, 위안이 된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머릿속에 뿌옇게 떠다니는 다양한 상념을 종이로 옮기는 순간, 자신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어떤 희미한 생각이 종이 위에 붙들리는 순간의 쾌감은 가장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괴로움 속에서도 무언가를 계속 쓰도록 만드는 원동력이다. 비록 그 쾌감이 일순에 불과할지라도 그것은 그 순간에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쾌감은 스스로를 위한 글쓰기(일기, 메모)에도 존재하지만, 서간문 등 타인을 의식한 채로 쓰는 순간에도 존재한다.<br />
스스로를 위한 글쓰기와 특정한 독자를 향한 글쓰기 사이에 아주 커다란 본질적인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본질적인 골짜기는 즐거움이 없는 글쓰기와 즐거움이 있는 글쓰기 사이에 존재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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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지나치게 시의적인 글은 ‘책’에 담을 수 없다.<br />
인용이 너무 길고 거기에 의존적이다.<br />
‘남의 글’들이 너무 많다⋯⋯.<br />
물론 자비출판으로 억지로 책 비슷하게 만들어볼 수도 있겠지만, 책이라는 형식에 끼워 맞추려다보면 원래 뉴스레터의 생동감과 글의 매력은 모두 빛이 바래고 말 것이다. 글의 시의성 및 인용문을 꼼꼼하게 옮겨 적은 필사, 피드백, 각주, 하이퍼링크까지도 포함해 나의 메모다. 그것들이 빠지면 집에서 어느 공간을 들어내는 꼴이다.</p>
</blockquote>

<h3 id="영혼의-집">영혼의 집</h3>

<p>동네에 있는 책방에서 독서모임으로 읽은 칠레 문학. (동네 서점 번창 기원!) 어쩌다 보니 마술적 리얼리즘 소설을 1분기에만 세 권이나 읽었다. 단언컨대 1분기에 읽은 책 중 가장 술술 읽혔고, 1/2권으로 분권이 되어 있긴 하나 분량도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p>

<p>그리고 모임을 다녀와서 확실하게 깨달은 한 가지. 나는 더 이상 ‘여성 서사’나 ‘여성들의 연대’ 같은 키워드에 일말의 흥미도 느끼지 못하게 된 거 같다. 오히려 재밌게 읽은 책도 그런 문구로 소개되면 급격하게 지루해진다. 감상을 발화할 수 있는 방식이 제한되는 거 같고.. 혼자만의 독서에 너무 갇히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독서 모임을 열심히 다녔는데 여전히 잘 모르겠다. 우짜고 싶은 건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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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유일한 읽을거리였던 로맨스 소설의 영향으로, 로사는 에스테반을 밑창이 두툼한 장화를 신고 사막의 바람으로 피부가 검게 그을린 채, 해적들이 숨겨놓은 보물과 스페인 금화와 잉카의 보석을 찾아 땅을 파헤치는 모습으로 그려보는 걸 좋아했다. 니베아가 광산의 보물은 바윗돌 속에 있다고 아무리 설명해 줘도 소용없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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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부인들은 의자가 둥글게 배치된 응접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여자들은 마음 놓고 울 수 있었으며, 남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자신의 묵은 슬픔까지도 덜어낼 수 있었다.</p>
</blockquote>

<h3 id="다음-책">다음 책</h3>

<p>최근에 칼 슈미트의 『대화극』이라는 책을 샀다. (마차살 드리븐 독서다.) 아직 읽어보기 전이라 내용은 모르는데, 책 예쁘네~ 하고 휘휘 보다가 문득 이런 걸 번역하는 사람은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궁금해서 역자를 알라딘에 검색해 봤다. 독어독문학과로 학사 석사 박사까지 따고 지금은 문학평론가/번역가로 활동한다는 정보가 나왔다. 그렇구나. 그리고 이분이 2014년에 직접 쓴 책이 검색 결과에 나오길래 호기심으로 도서관에서 빌렸다. 이후에 알게 된 건데 현재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계신다고.</p>

<p>프롤로그에서 저자는 ‘보는 것’, ‘보게 하는 것’, ‘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보는 것’은 말 그대로 우리가 하염없이 보는 것, 우리에게 재미와 도파민을 선사하는 것들이다. 드라마, 야구, 올림픽 중계, 뉴스, 유튜브와 OTT, 매일매일 먹어치우는데 도무지 줄어들지 않는 컨텐츠. 반면 ‘보게 하는 것’은 우리가 문학을 읽었던 시간이다. 무엇을 보게 하느냐? ‘보는 것’의 헛됨을 보게 한다. 유튜브 숏츠는 다 보고 나면 얼마나 공허하던가. 머리를 전기 자극으로 쉴새없이 지졌을 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문학 사랑이 그다지 깊지 않은 미숙하고 어린 자식이라 문학의 깊은 뜻을 자주 까먹는다. 마지막으로 ‘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은, 문학의 유언이다. 관짝에 누워 있는 문학이 우리에게 유언을 남겼다. 엇을 보지 않을 수 없는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사람은 살면서 평생 무언가를 보는데, 그렇게 ‘보는 것’과 ‘보는 행위’ 그 자체를 ‘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 재미에 대한 완고한 저항, 재미 없는 고통을 우리는 문학으로부터 물려받았다.</p>

<p>내용을 요약하기 어려워서 그냥 프롤로그 네 페이지 정도의 내용을 한 문단으로 써 봤고.. 알라딘에서 책 정보를 찾아보면서도 아리송했는데 다 읽고 나니 책소개를 왜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써놨는지 알 거 같다. 에세이로 홍보하자니 문장 생김새가 너무나 문예비평의 그것이고, 비평서 a.k.a 대중 학술서로 홍보하자니 그 정도로 뚜렷한 한 줄기의 주제가 있진 않고 또 단상을 늘어놓는 방식은 꽤나 에세이 같다.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하지만 관짝에 누워 있는 문학의 장례식장에 추모객으로 오고 싶은 사람이라면 재밌게 읽을 책 같고, 나는 일단 재밌게 읽었다. 솔직히 바울의 문헌학 파트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를 못했지만 간신히 이해할 수 있었던 문장만 추리더라도 나에겐 좋은 책이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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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념의 약속을 지켜내는 것이다. 꽃을 던질 힘조차 없는 문학의 조문객들은 신문 독자들의 막강한 망각의 힘에 맞설 수 없다. 우리, ‘진실을 말하는 거짓말쟁이’들은 따라서 강렬하게 침잠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자유의 가능성이다. 이 가능성은 우리가 우리 자신이 ‘보는 행위’ 자체 속으로 깊이 침잠하는 순간에만 존립한다. (25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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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경험적 자기를 포기함으로써 현실을 멈춘다는 것. 살아 있는 것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이 세속의 땅이 실로 죽음보다 더 끔찍한 곳이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이것이 역설적으로 수용소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기이하게도 절망이 곧 희망이 된 것이다. 절망과 희망이 같은 옷을 입은 한 몸이 되는 순간, 오로지 이곳에서만 ‘비인칭의 목소리’는 출현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전세계가 아우슈비츠로 바뀌어야 문학이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은 오히려 아우슈비츠의 잠재적 현존을 두려워하면서도, 아니 그 두려움 때문에 경쟁적으로 군비를 증강하고 더욱더 파괴적인 대량 살상 무기 개발에 힘을 쏟는 인류의 이른바 ‘진보’야말로 최악의 아우슈비츠보다 더 나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뜻이다. (42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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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삶이 죽음보다 더 어두운 것이라는 역설을 인식한 자는 현실 속을 살아가는 경험적 자기를 포기할 수 있다. 그리고 경험적 자기를 포기한 자는 현실을 멈춰 세울 수 있다. 현실을 멈춘다는 것. 이것은 최악의 질병인 ‘조급함’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현실을 멈춘다는 것, 이것은 매 순간이 그 말의 가장 본래적인 의미에서 ‘끝’이며, 따라서 미래는 없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러한 태도는 반성 없는 허무주의나 교만한 냉소주의와는 전혀 반대라는 사실이다. 벤야민이 ‘세계정치로서의 허무주의’라 부른 이것은 어두운 삶을 그 자체로 사랑할 것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가장 깊은 현실주의와 한 몸을 이룬 역설적인 허무주의이다. 그리고 우리가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할 것도 바로 이와 같은 허무주의가 아닌 허무주의이다. (54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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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자본주의는 추측컨대 죄를 씻지 않고 오히려 죄를 지우는 제의의 첫 케이스이다. 이 점에서 이 종교 체제는 엄청난 운동의 추락 과정 속에 있다. 죄를 씻을 줄 모르는 엄청난 죄의식은 제의를 찾아 그 제의 속에서 그 죄를 씻기보다 오히려 죄를 보편화하려고 하며, 의식(意識)에 그 죄를 두들겨 박고 결국에는 무엇보다 신 자신을 이 죄 속에 끌어들임으로써 신 자신도 속죄에 관심을 갖도록 만든다. (62p. 발터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폭력 비판을 위하여, 초현실주의 외』 재인용)</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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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파국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임파감에 대한 입장을 분류해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세계의 끝을 생각하는 자들을 크게 다섯 개의 집합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첫번째, 광신주의자. 광신주의자는 이렇게 말한다. “세계가 끝장날 것이 이렇게 분명한데, 도대체 인간들은 무슨 짓거리들을 하고 있는 거야?! 빨리 종말에 대비해야 해!” 두번째, 냉소주의자. “세계가 끝나건 말건 무슨 상관이람. 어차피 모든 시대마다 다 종말에 대한 두려움은 존재했어. 우리라고 뭐가 다르겠어.” 세번째, 극단주의자. “세계의 악과 싸우고 더러운 쓰레기들을 치워야만 우리가 안전할 수 있어. 그러니 우리는 뭉쳐야 해.” 네번째, 근본주의자. “신의 뜻에 따라 우리는 성스러운 전쟁을 치른다. 이렇게 싸우는 것은 저 높은 세계에서 크고 화려하게 보상을 받기 위함이다. 그러니 몸과 목숨을 온전히 바쳐야 한다.” 이 네 가지 입장과 구분되는 다섯번째 입장, 철저주의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인간적인 과오는 조급함. 방법론적인 것의 때 이른 중단. 가상적인 일에 가상적인 울타리를 치는 것이다.” 철저주의자는 ‘목이 잘린 후의 1초’에 다다를 때까지 결코 최종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아직 목소리가 살아 있다면, 그가 해야 하는 일은 조급함과 싸우는 일이다. (129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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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누군가는 ‘자폐적인’ 이념의 시대는 가고 ‘소통적인’ 실용의 시대가 왔다고 지저귄다. 그러나 이념의 시대는 가고 실용의 시대가 왔다는 이 말만큼 공허한 말, 이 지저귐만큼 공허한 지저귐은 없다. 이제 이념 논쟁을 끝내라는 말은 이제 인간이기를 포기하라는 말과도 같기 때문이며,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근본적으로 이념이라는 (과거의) 사실은 현재에도 변함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념을 포기하라는 또 다른 이념을 강요하면서 신자유주의의 공식적인 상속자로, 어떤 ‘시대의식’의 총아이자 대표자로, 그렇게 스스로를 자리매김한다. 그러나 이렇듯 ‘이념의 시대가 갔다’는 ‘시대의식’을 주장하는 것 역시 그 자체로 이미 이념적인 것이 아닌가? (130p. 최정우의 『사유의 악보』 재인용)</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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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정당성을 독점하는 정장의 사람들이 가장 중요시(혹은 문제시)하는 것은 무엇일까?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책’이다. 어째서일까? 책이 논리와 문법과 폭력을 전용할 수 있는 권리/권력의 원천이라는 것이 그들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의지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믿음 또한 거의 언제나 응답받는다. 그리고 이 성공은 다시 그들의 믿음의 연료가 된다. 즉 그들은 책을 열심히 읽고 책에서 말하는 대로 세상의 모든 ‘허튼소리’들을 착실히 제압함으로써 거대한 정당성의 제국을 완성시켜 나간다. 모두가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저 제국의 상징은 ‘법정’이다. 정당성이 인용/기각되는 장소가 법정이라는 사실은 그들에게 권리/권력을 부여하는 책이 법칙들로 채워져 있음을 뜻한다. 요컨대 법칙의 책들이 모든 것의 정당성 여부를 판결하는 것이다. (194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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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장난을 규정하고 규제하는 것은 법정의 판결이며, 말장난을 배제하고 배척하는 것은 교과서의 문법이 하는 것이다. 하므로 참되고 성실한 저 목소리를 최대한 경청할 필요가 있다. 결코 가벼운 웃음 속에 이 시를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진지한 오독, 결정적인 오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오독만이 흔들리는 파도 위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게 해준다. 아니, 파도에 맞춰 춤추듯 걸을 수 있게 해준다. 육지와 달리 바다 위의 길들은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때문에 우리에게는 기발하고 성실한 ‘허튼소리’가 더 많이 필요하다. (201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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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모든 것이 ‘법정화’된 세계를 향해 마치 돈키호테처럼 무모하게 돌진했던 카프카에 대해서, 그를 사랑한 방랑자 - 타는 해를 꺼뜨린 게오르크에 대해 이야기해준 바로 그 사람 - 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구원되기 위해서는 짐승들 속에 누워 있어야만 한다. 똑바로 서있다는 것(직립)은 동물 위에 군림하는 인간의 권력이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명백한 권력의 자세로 인하여 인간은 노출되고 눈에 띄며, 공격당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권력은 동시에 죄이며, 또 우리는 짐승들과 함께 땅 위에 누워 있어야만 불안을 일으키는 인간의 권력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는 별들을 바라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205p. 엘리아스 카네티의 『말의 양심』 재인용)</p>
</blockquote>

<h3 id="제국의-음모">제국의 음모</h3>

<p>『대화극』을 사면서 문학과지성사의 채석장 시리즈 전권을 한번 훑어봤는데 그중 신기한 이름이 눈에 띄었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나한테 영화평론가로 각인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제국의 음모』라니, 당연히 스타워즈 얘기일줄 알았다. 그런데 책 소개에 프랑스 제2제국 이야기라고 써 있어서 두 눈을 의심했다. 영화평론가가 그런 책을 왜 써..? 알고 보니 이분이 한국에선 영화평론가로 알려졌지만 문학 교수이기도 해서, 원래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고 프랑스 유학도 다녀왔고 프랑스 철학 사상도 일본에 많이 전파하셨다고.</p>

<p>이 책은 주제가 정말 특이하다. 먼저 프랑스 제2제국이란? 나폴레옹 3세가 세워서 20년 정도 유지된 전제정 국가다. 나폴레옹 3세는 원래 공화정 체제에서 대통령으로 있다가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어라? 기시감이 느껴지는 전개) 황제가 된 케이스인데 이 사람에게 드 모르니라는 이복형이 있다. 드 모르니는 나폴레옹 1세의 핏줄이긴 하나 사생아여서 가문 바깥에서 키워졌고 보나파트르 가문이 숙청 당할 때도 비껴나간 덕에 사교계에서 잘 나가는 멋쟁이 귀족1로 남았는데, 이복동생인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에 꽤 중요한 역할을 해서 공신으로 잘 먹고 잘 살았다. 이 사건을 다루는 가장 유명한 책으로는 카를 마르크스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 있다. 읽어봤다는 건 아니지만.</p>

<p>그럼 『제국의 음모』가 프랑스 제2제국의 쿠데타를 다루는 역사책이냐? 아니다. 이 책은 이복형 드 모르니가 쓴 두 개의 글을 함께 읽어본다. 첫 번째 글은 쿠데타를 시민들에게 알리는 목적으로 작성된 포고문, 두 번째 글은 멋쟁이 귀족 드 모르니가 취미 삼아 가명으로 썼던 오페레타 『슈플뢰리 씨, 오늘 밤 집에 있습니다』의 극본이다. 이쯤 되면 도대체 그걸 왜 읽어봐야 되는데??? 하는 의문이 드는데 안타깝게도 이 의문은 책의 본문을 다 읽은 후에도 완전히 해소되진 않는다. 저자가 들고 온 두 개의 텍스트를 같이 읽는 것보다 맨 뒤에 있는 역자 후기를 읽는 쪽이 이 책의 전체를 조망하는데 더 도움이 된다. 하스미 시게히코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범용한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1100페이지짜리 책이 있고, 이 책은 말하자면 『범용한 예술가의 초상』의 스핀오프 격이다. 역자의 친절 가이드에 따르면,</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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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프랑스 대혁명은 빅토르 위고가 상징하는 ‘지의 민주화’ 시대였다. 이 시기에는 특권 계층의 지식인들이 계몽사상가로 활동하며 지식을 보급 및 확산시켰다. 이는 푸코식으로 말하자면 고전주의적 담론에서 ‘대변가적 예언자’가 여전히 기능하던 시대와 맞닿아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은 이러한 특권적 담론을 소멸시키기는커녕, 오히려 효과적으로 재편성했다. 빅토르 위고를 비롯한 낭만주의적 영웅들은 “그러한 제도화된 이야기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최후의, 다소 우스꽝스러운 배우들이었다.”</p>
</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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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그에 반해, 루이 나폴레옹이 나폴레옹 3세로 즉위한 제2제정기는 ‘지의 민주화’가 더욱 확산된 시기로, 막심 뒤 캉을 비롯한 ‘범용한 예술가’들이 활약한 시대였다. 이들은 대변자적 예언자의 역할이 희미해진 시대 속에서 “낭만주의적 영웅들을 선망하고 질투하며” “모방과 반복의 담론”을 형성했다. 결국 이들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모방의 욕망에 의해 ‘예술가’가 된 아마추어 집단에 불과했다. 따라서 “모든 예술가들은 결국 (그 정의에서부터) 범용한 무리일 수밖에 없다.”</p>
</blockquote>

<p>라는데, 이걸 읽고 나니 오.. 하고 이해가 되는 면이 있었다. 그래서 다 읽고 중고로 팔았다.</p>

<h4 id="현재진행형인-책">현재진행형인 책</h4>
<ul>
  <li>김지음, 커먼즈은행 빈고 『자본의 바깥』</li>
  <li>칼 슈미트 『대화극』</li>
  <li>박유하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li>
</ul>]]></content><author><name>Linear</name></author><category term="review" /><category term="책" /><summary type="html"><![CDATA[투명한 장벽, 플랫폼을 배반하기]]></summary></entry><entry><title type="html">2월의 마음</title><link href="https://linearlog.com/essay/2026/03/02/summary/"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2월의 마음" /><published>2026-03-02T00:00:00+00:00</published><updated>2026-03-02T00:00:00+00:00</updated><id>https://linearlog.com/essay/2026/03/02/summary</id><content type="html" xml:base="https://linearlog.com/essay/2026/03/02/summary/"><![CDATA[<h3 id="목표했던-것">목표했던 것</h3>
<p>일본어 공부</p>
<ul>
  <li>주 3회 진행</li>
  <li>단어장 따로 정리하기</li>
</ul>

<p>블로그에 기능 추가. 시간이 난다면.</p>
<ul>
  <li>단문 메모장</li>
  <li>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추천하는 페이지</li>
</ul>

<p>독서</p>
<ul>
  <li>‘수도원의 비망록’ 끝내기</li>
  <li>‘급진적으로 존재하기’ 끝내기</li>
  <li>참여 예정인 독서모임 잘하기</li>
  <li>그 외에 두 권 이상 읽기</li>
</ul>

<h3 id="결과">결과</h3>
<ul>
  <li>놀랍게도 일본어 공부를 1회도 하지 않았다.</li>
  <li>목표로 따로 쓰진 않았지만 운동을 한 번은 할 줄 알았는데 달리기도 전혀 하지 않았다.</li>
  <li>블로그에 기능 추가는 했다. <a href="/micros">단문 메모</a>와 <a href="/canvas">좋아하는 거 모아두기 페이지</a>. <a href="/messages">방명록</a>도 만들었다. 그러나 보람찬 시간이었느냐? 별로 그렇진 않았다. 그냥 만들 수 있었을 뿐이고, 엄청 필요했던 기능도 아니었고, 애초에 나는 코딩하는 게 직업인데 겨우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서도 뭔가를 쉽게 만들 수 있더라’에 의미 부여를 할 수는 없다는 원래도 알고 있던 결론을 재확인하고 끝났다.</li>
  <li>‘수도원의 비망록’, ‘급진적으로 존재하기’, 독서모임용 책인 ‘영혼의 집’, 그리고 ‘낯선 사람과 부근을 만들기’와 ‘메모의 순간’을 완독했다. 독서 목표는 채웠다. 그러나 그게 의미가 있었나? 독서는 지금 나한테 도피로 작용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부쩍 한다. 10년 전에도 나는 독서를 했고 지금도 나는 독서를 하는데,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독서가 나를 인간적으로 확장시켜 주었나 하면 나는 아닌 거 같다. 제자리 뺑뺑이를 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10년 전에도 이 생각을 했던 거 같다.</li>
  <li>‘창작하는 아침’을 반년 넘게 참여했는데 이번 달 참여율이 가장 저조했다. 아침에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일시적 무기력도 아니고 우울도 아니고.. 그냥 회사 다녀오고 책 좀 읽고 멍 때리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잘 간다는 걸 한 달 내내 확인했다. 어쩌면 지난 회사에서 겪었던 각종 사건 사고들이 적어도 나에게 분노라는 동력을 줬던 게 아닐까 뒤늦게 생각했다.</li>
  <li>지금 회사는 기혼 유자녀 비율이 높다. 나에게도 ‘나중에 결혼하고 애기 낳으시면~’ 하는 말을 당연하게 한다. 사실 이런 분위기를 너무 오랜만에 겪어본다. 전 팀은 미혼 여성 비율이 높아서 이런 멘트 나올 때 같이 싸워줄 사람이 많았다(ㅋㅋ) 근데 결혼과 출산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를 보며 이제는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수용을 하게 된다. 여기가 평균 사회라고 생각하면 더없이 차분해진다. 어쨌든 나는 이 사회에서 잘 지내는 법을 알아야 한다. 아예 박차고 나갈 게 아니라면. 트위터로 접하는 사회는 처음부터 내 현실 사회와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았고.</li>
  <li>부쩍 외로움에 시달렸다. 회사에서 일론머스크 트럼프 코스피 비트코인 엔비디아 AI 흑백요리사2 각종연프 보험 주식 절세 부동산 얘기를 들으면, 분명 그중엔 세상 살며 필요한 얘기도 있고 경제/금융에 대한 나의 거부반응이 필요 이상으로 과하다는 걸 알면서도 정말정말 외로워졌다. 집에 돌아와 나도내가이런책왜샀는지모르겠어 싶은 책들을 붙들고 ㅜㅜㅜㅜ 하다 유튜브 보면서 뇌를 씻어내다 잠드는 것 외엔 달랠 방법이 없다. 결이 맞는 사람과의 대화를 가뭄의 단비처럼 받아먹고 있다. 분명히 뭔가의 변화를 꾀하고 싶은데 막상 밖에 나가면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머릿속만 복잡하다.</li>
  <li>이런 얘기를 자주 나누던 친구 한 명은 지금 워홀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이직 한번으로도 이렇게 살이 떨렸는데 나라를 바꿀 결심은 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 뭐가 됐건 굳은 결심이 선 사람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li>
</ul>]]></content><author><name>Linear</name></author><category term="essay" /><category term="회고" /><summary type="html"><![CDATA[목표했던 것 일본어 공부 주 3회 진행 단어장 따로 정리하기]]></summary></entry><entry><title type="html">디스이즈텍스트 : 논픽션 북페어</title><link href="https://linearlog.com/review/2026/02/01/thisistext/"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디스이즈텍스트 : 논픽션 북페어" /><published>2026-02-01T00:00:00+00:00</published><updated>2026-02-01T00:00:00+00:00</updated><id>https://linearlog.com/review/2026/02/01/thisistext</id><content type="html" xml:base="https://linearlog.com/review/2026/02/01/thisistext/"><![CDATA[<p><img src="/thumbnails/260201/1.jpg" width="400" /></p>

<p>1월의 목표였던 ‘한 달간 트위터 로그아웃’을 1월 31일에 끝냈다. 2월 1일에 로그인하나 1월 31일에 로그인하나 별 차이는 없을 거 같아서 31일에 트위터를 접속했고, 가장 먼저 필로스 편집부 계정을 확인했다. 분명 <a href="https://x.com/philos_arte/status/1948274885333336477">작년 하반기에 나올 거라고 했던</a> 마틴 가드너의 책이 아직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날 때마다 알라딘에서 한 번씩 검색해서 아직 출간되지 않았음을 확인했지만 혹시 편집부 계정에 따로 공지가 올라왔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편집부 계정에서 내가 알게 된 건 기다리던 책 소식이 아니라 <a href="https://thisistext.kr/">디스이즈텍스트 : 논픽션 북페어</a>라는 행사의 존재였다. 이번 주말에 해당 행사가 있어서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p>

<p>논픽션⋯ 북페어? 눈 돌아가게 만드는 단어들의 조합에 바로 입장권 판매 페이지에 접속했다. 토/일 양일간 진행되는데 입장을 아무때나 할 수는 없고 하루에 다섯 타임으로 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리고 한 타임에 입장 가능한 사람 수는 사전 예약자 50명과 현장 입장자 10명뿐. 공간이 작은 편이라 통제가 안 될까봐 일부러 이런저런 제약을 두신 거 같았다. 그런데 정말 다행히도 내가 확인했을 때 일요일에 딱 한 타임, 정확히 한 장의 표가 남아 있었다. 행사가 인기 없어서 남아 있던 표일리는 없고 누군가의 불가피한 취소표로 보였다. 두 장 이상 남아 있었으면 둘 다 내가 지르고 동행을 구했을 텐데, 어쩔 수 없이 혼자 다녀오게 됐다.</p>

<p>그 결과 이번에 구매한 책들.</p>

<p><img src="/thumbnails/260201/2.jpg" width="400" /></p>

<ol>
  <li>김지은, 빈고 - 자본의 바깥 (힐데와소피)
    <ul>
      <li>자본주의를 문제적으로 바라보는 책이 요즘 부쩍 늘었다고 느끼는데, 아무래도 문제의식을 심어주는 데에서 끝나는 책이 많고 실천에 대한 책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고 느끼던 차 요 책을 보고 바로 샀다. <a href="https://bingobank.org/">빈고</a>가 무엇인가 하니 2010년부터 지금까지 운영되어 온 해방촌의 공동체 은행이라고. 근데 나는 공동체 은행이라는 단어를 이번에 처음 들어봤다. 그게 뭔지 궁금해서 일단 구매.</li>
    </ul>
  </li>
  <li>마쓰시타 류이치 - 동아시아 반일 무장전선 (힐데와소피)
    <ul>
      <li>나는 왜 일본의 60-70년대 투쟁 역사가 이렇게 재밌을까? <a href="/review/2019/02/27/나의-1960년대">야마모토 요시타카 - 나의 1960년대</a> 이후로 이제 이런 책은 아무도 안 내주는 줄 알았잖아..</li>
    </ul>
  </li>
  <li>김지원 - 메모의 순간 (오월의봄)
    <ul>
      <li>이건 사실 알라딘 추천 탭에서 여러 번 봤던 책인데, 제목만 보고 <a href="https://www.aladin.co.kr/shop/common/wseriesitem.aspx?SRID=619860">아무튼 시리즈</a> 정도의 가벼움을 예상해서 패스했다가 오늘 실물 책을 보고 오? 싶어서 샀다. 재밌을 거 같다.</li>
    </ul>
  </li>
  <li>문규민 - 신유물론 입문 : 새로운 물질성과 횡단성 (두번째테제)
    <ul>
      <li>이 책은 사실.. 얼마 전 친구와의 카톡에서 ‘진짜 유물론적 현대인 같다’는 말을 들은 게 생각나서 집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보낸 톡 내용을 다시 읽어보니 왜 유물론적이라고 했는지는 이해가 됐지만 어쨌든 철학 공부를 찐하게 한 친구와 달리 유물론을 사전 정의로만 알고 있는 나로선 그 말이 바로바로 와닿지 않아서, 나도 친구 말을 같은 타이밍에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 고민을 해소하기에 적합한 책인가? 그건 읽어보면 알겠지. 영 딴 얘기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다행히 알라딘 리뷰를 찾아보니 난이도는 정확히 내가 원하던 수준 같고, 책 편집도 내 기준엔 예쁜 편이다.</li>
      <li>여담이지만 두번째테제 부스 매대에서 ‘망고와 수류탄’을 발견하자마자 저 이 책 너무 좋아한다는 주접을 참을 수 없었다. 그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나 말고도 많겠지만 말이다.</li>
    </ul>
  </li>
  <li>이창용 - 한국어의 투쟁 (빨간소금)
    <ul>
      <li>이주 노동자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을 하는 저자의 노동 실태 고발 및 투쟁기. <code class="language-plaintext highlighter-rouge">한국 사회는 한국 밖의 손님들에게는 온갖 아양을 떨며 ‘한국어’라는 상품을 팔지만, 한국 사회의 일원이 되어 한국어를 배우는 이주민들은 식당에서 무전취식하는 이들처럼 대한다.</code> 라는 추천사 첫 문장을 보고 오케이! 하고 집었다.</li>
      <li>여담이지만 이 출판사의 신간 ‘포퓰리즘 이성’이 최근 알라딘 추천 탭에 자주 떠서 그 얘기를 부스에 계신 분들께 했더니 ‘그게 추천에 뜬다고요??’ 하고 혼란스러워 하셨다. 슥슥 펼쳐보니 ‘포퓰리즘 이성’도 재밌어 보여서 간 김에 한 권 사려고 했는데 ‘이 책을 사고 싶어하는 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해서 오늘은 견본만 챙겨왔어요..’ 하는 멘트를 듣고 파하하 웃었다. 왜요.. 논픽션 북페어인데 이런 책 사고 싶어하는 사람 올 수도 있지..</li>
    </ul>
  </li>
</ol>

<p>그리고 행사에 대한 전반적인 감상</p>
<ul>
  <li>행사 운영이 정말 깔끔했다. 서울국제도서전의 인구 밀도에 지쳐버린 사람에게 최고의 밸런스.</li>
  <li>굿즈 없는 행사인 것도 좋았다. 예쁜 굿즈를 판매하는 게 마케팅에 큰 이익을 준다는 걸 알지만 사실 사진 한 장 찍고 나면 다시 쓸 일은 잘 없는 물건들이고, 그간 도서전이 책의 본질로 다시 돌아가길 바랐던 사람도 많았던지라 좋은 결정이라고 생각했다.</li>
  <li>입장권 가격이 만 원이었는데 입장권을 받으면 책 한 권 구매할 때 사용할 수 있는 5천원 할인 쿠폰이 두 장 붙어 있었다. 즉 책을 두 권 이상 구매하는 사람에게 이 행사는 무료인 셈.</li>
</ul>

<p>결론 : 매년 열렸으면 좋겠다.</p>]]></content><author><name>Linear</name></author><category term="review" /><category term="책" /><summary type="html"><![CDATA[]]></summary></entry><entry><title type="html">1월의 마음</title><link href="https://linearlog.com/essay/2026/01/29/summary/"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1월의 마음" /><published>2026-01-29T00:00:00+00:00</published><updated>2026-01-29T00:00:00+00:00</updated><id>https://linearlog.com/essay/2026/01/29/summary</id><content type="html" xml:base="https://linearlog.com/essay/2026/01/29/summary/"><![CDATA[<h3 id="시기별-구분">시기별 구분</h3>
<ul>
  <li>초기 (1일 ~ 10일) : 유럽 여행기 마무리하느라 바빴음</li>
  <li>중기 (11일 ~ 24일) : 여행기 끝내고 1월의 다른 목표들을 시작함. 달리기, 일본어 공부..</li>
  <li>후기 (25일 ~ 31일) : 돌연 갈곳을 잃음</li>
</ul>

<h3 id="회사-적응기">회사 적응기</h3>
<ul>
  <li>이직하니까 어떠냐, 잘 적응하고 있는 거 같냐, 마음에 드냐 등등의 질문을 받는데 사실 그때마다 ‘저도 제가 뭘 원해서 이직을 한 건지 아직 확실하지 않아서 시간이 지나봐야 알 거 같은데요’ 하는 답변밖에 떠오르지 않음</li>
  <li>원하는 게 있어서 온 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는 게 뚜렷해져서 온 것
    <ul>
      <li>한 회사 한 팀에 너무 오래 있었고, 하는 일이 고착화됐고</li>
      <li>그 안에서 분위기 전환을 꾀하기엔 한계까지 온 거 같았고</li>
      <li>지금 연차, 지금 시장 상황엔 이직 기회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어서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할 거 같았고</li>
      <li>실상 나는 전혀 나아가고 있지 않은데 회사의 이름값 때문에 ‘우리 뭔가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더 이상 취해 있고 싶지 않았고</li>
      <li>가마솥 안의 개구리 신세를 이제는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li>
    </ul>
  </li>
  <li>그리고 두 달 정도 지내본 현재
    <ul>
      <li>익숙한 시스템과 익숙한 사람들을 떠난다는 게 얼마나 큰일인지 뒤늦게 실감</li>
      <li>이직 타이밍과 맞물려 귀신같이 몰아치는 AI 열풍</li>
      <li>주어진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무슨 일을 할지 직접 생각해야 하는 팀 + 지난 10년간 주어진 일을 해보기만 했고 이 회사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빨리 적응해서 안정감을 찾고 싶은 나 → 대화가 자꾸 공회전이 돔</li>
      <li>얼굴 보고 일할 일이 많지 않았던 전 회사에선 항상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매일매일 출근하는 새 회사에선 하루에 열 마디는 하나 싶은 사회성 모지리가 됨</li>
    </ul>
  </li>
</ul>

<h3 id="1월-25일">1월 25일</h3>
<ul>
  <li>그래도 꽤 성실하게 이것저것 하며 지내다가 갑자기 무기력 맨홀에 빠짐</li>
  <li>전조 증상도 없었음 그냥 갑자기 길 가다 맨홀에 빠진 사람</li>
  <li>PMS 때 하루종일 침대에 있는 건 왕왕 있는 일이었지만 그때도 보통 간식 정돈 먹었는데 이날은 24시간동안 단 한번도 침대에서 나오지 않고 웹툰 보고 잠만 잠. 세상에 다음날 샤워하는데 뱃살이 빠져 있더라</li>
  <li>지금도 영문을 잘 모르겠고 이날 이후로 루틴 회복이 잘 안 됨..</li>
</ul>

<h3 id="트위터-로그아웃">트위터 로그아웃</h3>
<ul>
  <li>생각보다 할만했음. 왜냐하면
    <ul>
      <li>요근래 어떤 트친과 매일 카톡을 주고받기 시작했고</li>
      <li>창침 일지 웹사이트가 있었기 때문. 그렇다 나는 트위터를 그만둔 거지 SNS를 그만둔 건 아니었다</li>
    </ul>
  </li>
  <li>트위터에 가졌던 주요 불만
    <ul>
      <li>내 일상과 내면을 침범해서 내가 원하지 않았던 걸 보여주고 욕망하지 않았던 걸 욕망하게 한다</li>
      <li>무의미하게 시간을 썼을 뿐인데 마치 생산적인 일을 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li>
    </ul>
  </li>
  <li>그리고 로그아웃해 본 결과
    <ul>
      <li>침범과 욕망의 문제는 트위터를 끄면 즉시 해결된다</li>
      <li>그러나 시간을 무의미하게 쓰는 일은 트위터를 끄고 다른 무언가를 시작해야 해결된다. 안 그러면 기존 생활의 구성 요소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뿐임</li>
      <li>실제 체감 : 원래는 세상 유행을 트위터에서 절반 회사에서 절반 들었는데 이제 오롯이 회사에서 유행을 전해듣게 됨.. 그냥 취득하는 정보의 편향이 생기고 끝난 느낌</li>
    </ul>
  </li>
  <li>트위터를 완전히 그만두자! 고 했을 때 걸리는 지점들
    <ul>
      <li>그럼 난 마차살 얘기 어디서 듣나</li>
      <li>SNS를 그만둘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일상에서 자기 삶의 결정적인 가치관과 관심사가 모두 충족되는 사람. 그러나 자기와 전혀 다른 사람들과 매일을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에겐 도피처가 필요하다. SNS를 그만두고 ‘건강한’ 일상을 누릴 기회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져 있지 않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선 훨씬 더 근본적인 레이어에서 삶의 기초 공사가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 무슨 뜻이냐? 저에겐 평생 SNS를 그만두지 못할 친구가 많이 있고 어쩌면 저도 남말할 처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li>
      <li>물론 ‘그 친구들에게 내가 정말로 소중했다면 내 블로그를 따라왔지 않을까? 내 소식을 구태여 찾아보지 않는다는 건 애초에 친구 관계가 거기까지란 뜻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면 → 나란 사람 그 정도로 매혹적이진 않았다는 결론이 나옴</li>
      <li>하지만 SNS를 그만두는 게 곧 나 자신의 사회적 고립을 자처하는 일이 되면 안 됨</li>
    </ul>
  </li>
  <li>결론
    <ul>
      <li>내가 트위터를 그만뒀을 때도 나와 놀아줄 친구를 확보해야 한다</li>
      <li>여기서 놀아준다는 건 그냥 카톡만 주고받는 정도가 아니라 ‘저 다음 달에 ㅇㅇ님 계신 지역에 놀러가는데 같이 밥 한 번 먹을래요?’를 제시할 수 있는 정도여야 한다</li>
      <li>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서 문 뚜드리는 경험이 필요하다</li>
      <li>직접 사람을 모아보는 경험도 필요하다. 헤쳐모여!</li>
      <li>근데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으므로 일단 다음 달에 있을 독서 모임을 잘해보자</li>
    </ul>
  </li>
</ul>

<p>마무리는 최근에 빠져 있는 <a href="https://youtu.be/T19IrfO3-LQ?si=pz1EBjr2voFPDN_g">Sons Of Kemet (ft. Joshua Idehen) - My Queen Is Ada Eastman</a>.</p>]]></content><author><name>Linear</name></author><category term="essay" /><category term="회고" /><summary type="html"><![CDATA[시기별 구분 초기 (1일 ~ 10일) : 유럽 여행기 마무리하느라 바빴음 중기 (11일 ~ 24일) : 여행기 끝내고 1월의 다른 목표들을 시작함. 달리기, 일본어 공부.. 후기 (25일 ~ 31일) : 돌연 갈곳을 잃음]]></summary></entry><entry><title type="html">독서 메모 앱 만들기 (1)</title><link href="https://linearlog.com/try/2026/01/17/memo-app/"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독서 메모 앱 만들기 (1)" /><published>2026-01-17T00:00:00+00:00</published><updated>2026-01-17T00:00:00+00:00</updated><id>https://linearlog.com/try/2026/01/17/memo-app</id><content type="html" xml:base="https://linearlog.com/try/2026/01/17/memo-app/"><![CDATA[<h3 id="어쩌다-이런-짓을">어쩌다 이런 짓을?</h3>
<ul>
  <li>시중에 나와 있는 독서 메모 앱 중에 마음에 드는 게 없음</li>
  <li>마침 Flutter 에 익숙해지기 위한 연습도 필요</li>
  <li>실제로 마켓 배포까지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음 이제 겨우 첫날일 뿐이라</li>
</ul>

<h3 id="만들고-싶은-기능">만들고 싶은 기능</h3>
<ul>
  <li>홈 화면
    <ul>
      <li>그동안 메모한 책 목록이 가장 간단한 리스트 형태로 보임</li>
      <li>현재 읽고 있는 목록과 완독한 목록을 섹션 나눠서 표시</li>
      <li>읽고 있는 목록은 가나다순으로, 완독한 목록은 완독 날짜 + 가나다순으로 정렬</li>
    </ul>
  </li>
  <li>책 화면
    <ul>
      <li>메모 목록이 보임. 목록을 어떻게 표시할지는 고민 필요</li>
      <li>읽기 시작한 날짜와 완독한 날짜를 설정할 수 있음</li>
    </ul>
  </li>
  <li>책의 메모 화면
    <ul>
      <li>인용과 메모를 동시에 남길 수 있음</li>
      <li>인용 없이 메모만 남기거나 메모 없이 인용만 남기는 것도 가능</li>
      <li>인용은 숫자를 같이 남길 수 있음 (페이지, 화)</li>
      <li>인용과 메모는 둘 다 나중에도 수정 가능해야 함</li>
      <li>인용은 사진 형태일 수 있음</li>
      <li>마크다운 문법을 서포트할 수 있으면 좋음</li>
    </ul>
  </li>
  <li>모든 메모를 markdown 형태로 export 해서 다운받는 게 가능해야 함</li>
  <li>아이폰 사진 앱의 extension 으로 새 메모 만들기 또는 기존 메모에 사진 추가하기가 가능해야 함</li>
  <li>핸드폰 바탕화면에 위젯을 띄워놓을 수 있어야 함</li>
  <li>기기 간 동기화</li>
  <li>폰트 설정</li>
  <li>검색</li>
</ul>

<h3 id="오늘-만든-부분-ios">오늘 만든 부분 (iOS)</h3>
<ul class="carousel-200">
	<li><img src="/thumbnails/260117/ios-1.png" /></li>
	<li><img src="/thumbnails/260117/ios-2.png" /></li>
	<li><img src="/thumbnails/260117/ios-3.png" /></li>
	<li><img src="/thumbnails/260117/ios-4.png" /></li>
	<li><img src="/thumbnails/260117/ios-5.png" /></li>
</ul>

<h3 id="오늘-만든-부분-macos">오늘 만든 부분 (macOS)</h3>
<ul class="carousel-400">
  <li><img src="/thumbnails/260117/mac-1.png" /></li>
  <li><img src="/thumbnails/260117/mac-2.png" /></li>
  <li><img src="/thumbnails/260117/mac-3.png" /></li>
  <li><img src="/thumbnails/260117/mac-4.png" /></li>
</ul>

<h3 id="다음에-만들-부분">다음에 만들 부분</h3>
<h4 id="기능">기능</h4>
<ul>
  <li>메모 편집하기</li>
  <li>로딩 중일 때/문제 발생했을 때 화면</li>
  <li>인증서 연결해서 아이폰 실 기기에서 빌드</li>
  <li>마크다운 내보내기</li>
</ul>

<h4 id="고민-필요">고민 필요</h4>
<ul>
  <li>전반적인 리디자인</li>
  <li>기기 간 동기화</li>
</ul>]]></content><author><name>Linear</name></author><category term="try" /><summary type="html"><![CDATA[어쩌다 이런 짓을? 시중에 나와 있는 독서 메모 앱 중에 마음에 드는 게 없음 마침 Flutter 에 익숙해지기 위한 연습도 필요 실제로 마켓 배포까지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음 이제 겨우 첫날일 뿐이라]]></summary></entry><entry><title type="html">하반기의 메모</title><link href="https://linearlog.com/essay/2025/12/31/memo/"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하반기의 메모" /><published>2025-12-31T00:00:00+00:00</published><updated>2025-12-31T00:00:00+00:00</updated><id>https://linearlog.com/essay/2025/12/31/memo</id><content type="html" xml:base="https://linearlog.com/essay/2025/12/31/memo/"><![CDATA[<p>Diana Zulli, “Capitalizing on the look; insights into the glance, attention economy, and Instgram”
Critical Studies in Media Communication 35(2) 2018 p. 137-150</p>
<blockquote>
  <p>플랫폼은 콘텐츠에 대한 주의나 응시가 아니라, 주의분산과 훑어보기를 유도해 사용자가 플랫폼에 더 오래 머무르도록 만들고, 이는 사용자의 버릇으로 체화된다.</p>
</blockquote>

<p>Whitney Phillips, “It wans’t just the trolls: Early Internet Culture, Fun, and the Fires of Exclusionary Laungter.” Social Media + Society 5 (no.3) 2019, p.3</p>
<blockquote>
  <p>우리 중 너무 많은 이가 정말 재밌다고 생각한 것이 실은 함정이었다. 우리 중 너무도 많은 이가 정말로 재밌다고 생각한 것이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p>
</blockquote>

<p>0719
독서모임의 난로는 너무 빨리 꺼져 버린다. 오래 지속되는 난로⋯ 그리고 난로가 꺼지면 기꺼이 다시 금지의 영역을 탐구해줄 사람들. 그냥도 모으기가 힘든데 나는 바라기만 할뿐 행동하지 않으니 더 모이지 않는다. 둘을 별개의 세계로, 나를 어느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건너가는 사람으로서 인식하는 일. 그리고 내가 그 두 세계를 직접 잇겠다고 생각하는 일.</p>

<p>0804
나드님 추추님과 같이 밥 먹은 날.</p>

<p>0811
6개 법인 파업했던 날. 시위 같이 다녀왔음.</p>

<p>0812
디앤디 장기 세션 첫 날.</p>

<p>0813
면접 끝! 면접관으로 만난 분들이 나이스했음. 
에픽하이가 타진요 언급하는 숏츠. 사람들은 댓글로 ‘그때 정말 심각했어요 미친 사람들⋯’ 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사람들이 그것을 스스로와는 무관하게 발생했던 일처럼 말하는 것에서 어떤 위험을 감지한다.</p>

<p>0814
『다클리』를 읽고 있음. 원했던 내용이 아니지만 책은 재밌음. 결혼을 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죽는다는 건 확실하므로 장례식을 미리 계획해 보는 이야기가 조금 재밌었다.</p>

<p>0815
간만에 런데이!</p>

<p>0817
『강철왕국 프로이센』 읽기 시작. 리사르커피 디저트가 맛있음. 못이랑 밥 먹음. 확실히 이제 일이 지겹다는 얘기, 집 구하는 얘기를 하다가 돌아왔다. 칙피스 맛있었음.</p>

<p>0818
한 달만에 수영. 한 달만에 하니까 힘드실 거예요~ 라는데 사실 나를 힘들게 하는 건 수영 선생님이 아닌가 생각했음. 범프 17년 만의 내한 소식을 알게 됨.</p>

<p>0819
디앤디 세션 2주차. 클레릭으로 전투할 때는 힐링 워드나 블레스가 좀 더 유용하다. 가이던스는 전투 중에선 쓸 수 없음. 인성 검사 제출 완료.</p>

<p>0820
인성면접 완. 기술면접보다 더 진빠진다. 네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라는 요구가 빡세게 느껴졌던듯. 차라리 내가 업무로서 뭘 해왔는지 설명하는 게 훨씬 편하고 익숙하지⋯. 남들이 너를 어떤 사람으로 설명하는지 들은 바가 있느냐 ← 이것도 참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고. 그리고 이직 사유나 리더십 관련해선 말을 잘해야 했던 거 같아요? 아 이걸 기술 면접보다 더 준비했어야 했나?</p>

<p>0821
홈 컴포넌트 QA 이슈 열심히 도와드렸다..</p>

<p>0822
오늘도..</p>

<p>0823
네이버 광고팀 썰. 피라미드구조, 시스템이 문제라는 말. 금수저 아이돌에게 열광하는 사람들. 명문대 학생이 에타에 쓴 부적절한 글을 조롱하고 비난하길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명문대생이 그에 부합하는 직장이나 이후 커리어를 갖지 못하면 그것 역시 놀릴 대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p>

<p>0825
접영 발차기 처음 배움. 감격.</p>

<p>0826
레퍼리 체크 시작. 개열받음..</p>

<p>로오히 진서 엔딩</p>
<ol>
  <li>로드의 이 ‘나만 희생하면 모두를 살릴 수 있어’ 정신은 이미 노하엘에서 얘기 다 끝난 거 아니었습니까? 이걸 왜 또?</li>
  <li>스토리에 녹아들지 못하는 뺑이치는 전투가 너무 많음.</li>
  <li>난 오로지 라르곤 죽고 그를 애도하는 씬을 보기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묘사와 서술 이게 최선인가요.</li>
</ol>

<p>전반적으로 ‘마도대전’이라는 거대한 테마를 게임이 다 감당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진서까지 엔딩을 다 보고 나니 이제 12영웅에 대한 환상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라르곤과 온달과 크메르사트는 그저 남은 동료들의 각성제로 쓰였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음⋯. 마지막 챕터 마지막 전투까지 가는 과정이 너무 지난해서 그런가, 1대 12의 보스전이 장엄하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정해진 횟수를 채우기 위한 ‘뺑이’에 가깝고 이 뺑이를 탈출케 해주는 게 떠난 동료들이 남긴 각성 효과라는 사실이 너무 짠했다. (스킬 효과 너무 길어서 제대로 읽지도 않았다.) 발뭉 마지막에 엄청난 활약을 하는데 솔직히 발터 처음 실장했을 때 발뭉 그 정도 임팩트 없었기 때문에(..) 이 너프 어떻게 된 것인가 싶기도 했고 악몽 시나리오를 밀었어야만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 나와서 그것도 좀 아쉬웠다. 아니 밀 수 있는 난이도를 만들어줘야지⋯.</p>

<p>0831
휴가 막날인데 바다라도 원없이 보고 가야지 싶어서 전망대에 갔는데 어떤 아주머니 두 분이 내 티셔츠를 보고 말을 거셨다. ‘웃으면 북이 와요’가 무슨 뜻이에요? 아 이게 책⋯ 말장난이에요. 열심히 설명하고 ‘아유 요즘 젊은 사람들은 멋져 혼자 여행도 오고’ 소리도 듣고 스몰톡 잘 했다. 물론 마지막은 전도 엔딩이었고 (교회였는지 아예 사이비인지조차 모르겠는데 팜플렛 모양새가 범상치 않았다) 죄송하지만 그건 관심 없다고 말씀드렸다. 그래도 얘기 나눠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고, 그건 저도 마찬가지라는 말을 내심 하고 싶었음. 혼자 땀 뻘뻘 흘리며 5분동안 바다 보는 것보다는 5분동안의 시답잖은 토크가 좀 더 기분정리에 도움이 됐던듯. 물론 아주머니는 목표를 이루지 못하셨는데 이런 말 죄송하지만요.</p>

<p>0901
접영 발차기 열심히 했음. 9월은 창침 안함. 블챌 시작.</p>

<p>0902
오늘의 디앤디. 젊은 시절 잘못된 결정을 했고 그걸 오래오래 후회하며 산 촌장 NPC의 회한이 좀 취향이었다. 내 캐가 약간 순진한 클레릭이라 그런 촌장님을 보면서 ‘우리한테 따뜻한 밥도 주셨고 지금은 반성하고 계신데 뭐가 문제야!’ 하고 과거사를 따지지도 않고 덮었는데, 나중에 사건 보고하는 자리에서 일이 꼬여서 촌장님이 귀족 기만한 죄 + 살인 방조한 죄로 처벌 받는데 일조해 버렸다. 적어도 감옥행이고 사형까지 갈 수 있대서 내 캐릭터 지금 솜 씻은 너구리됨⋯. 이렇게 될 거면 고해성사라도 받았어야 했는데! 촌장님은 우리에게 따뜻한 밥을 줬는데!
반성할 기회도 한 번 못 주고 NPC를 감옥으로 보내버린 것 같아 지금 캐릭터적으로 굉장히 슬프다. 게다가 촌장님이 과거에 엮여 있었던 곳이 영생과 불멸을 목표로 하는 사이비 교단이라는 걸 뒤늦게 알아서 두 배로 슬픔 ㅠㅠ 고해성사 받았어야 했는데!</p>

<p>0903
자유형 팔 연결 동작 시작. 으쌰으쌰.</p>

<p>0904
무화과 샀다~</p>

<p>0905
어제 회식에서 듣고 너무 웃겼던 말 : 근데 저는 일제강점기에 떨어지면 친일 정말 잘할 거 같은데⋯ 진짜 잘할 거 같은데⋯ 우리 회사에 그런 사람 많은데⋯
근데 나도 그게 진실이라고 생각해 여기 앉은 너 나 우리가 현대 소시민 아이히만이지</p>

<p>0907
엄마 생신이라서 주말에 구미 다녀왔음. 엄마아빠가 서로 연결되는 대화 하는 거 사흘동안 한번도 못 본 듯.</p>

<p>0908
면접관이 된다는 건 왜 이렇게 염치가 없을까? 내가 아무리 ‘그냥 같이 일할 사람 뽑는 거예요~ 저는 채점하는 선생님이 아닙니다~’ 스탠스를 세우려고 해도 면접 끝나고 역질문 시간 가질 때 ‘성장에 대한 조언을 주실 수 있을까요’ 멘트 들으면 순간 말문이 막힌단 말이지.</p>

<p>학벌이든 직장이든</p>
<ul>
  <li>그런 타이틀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기 : easy</li>
  <li>동시에 그런 타이틀에 대한 사람들의 환상 덕분에 내가 여기 있음을 인정하기 : medium</li>
  <li>그런 사람들에게 ‘니들은 잘못됐어!!’를 하지 않고 내가 줄 수 있는 답을 주기 : hard</li>
</ul>

<p>체감은 이런듯.</p>

<p>0909
단호박 손질해서 호박밥 했다. 쌈싸먹었다. 오퍼레터 왔다. 또 진땀 열심히 흘렸다.</p>

<p>사실 지금 웹소고 나발이고 매일매일 베개 때리고 싶은 심정이에요 이직을 코앞에 두고 저는 너무너무느무느무 떨립니다 아이게맞아?근데이미돌이킬수없어 아니근데이게맞냐고</p>

<p>지금 팀에서만 7년을 있었고 내가 쌓은 신뢰 자본.. 일을 쉽게쉽게 굴러가게 하던 모든 것들이 여기 이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에 기반하고 있는데 이 바깥을 상상해야 한다니 솔직히 이 타이틀을 달고 있지 않은 내가 나조차 어색하다구요 심지어 이직처가 지금보다 더 나을 거란 확신이 있는 것도 아님
폭포 아래서 심신수양이라도 하고픈 심정 이 선택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뭘 좀 아는 사람들은 아마 그 선택 틀렸다고 말할 것입니다.. 솔직히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7년 경력이 얼마나 따수운 이불인데요.. 저는 평화를 버리고 무엇을 얻고자 하는 걸까요?</p>

<p>0910
학폭 전력이 있는 학생을 대입에서 모두 거르겠다는 정책 발표 기사를 보고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p>
<ol>
  <li>학폭 전력과 대학 진학이 무슨 상관인가? 하는 의문</li>
  <li>결국은 학생을 갱생시키는 일보다 징벌하는데 초점을 두지 않았나 하는 의심</li>
  <li>대학은 굉장히 사업가적으로 리스크를 잘라냈을 뿐인데 학폭에 엄정 대응했다고 칭찬받는 게 이상하다는 감상</li>
</ol>

<p>이 남는듯.</p>

<p>0912
소셜 미디어 사용 시간 줄이려고 무슨 확장 프로그램 깔아보고 스크린 타임 걸어보고 디스플레이 흑백으로 바꿔보고 해서 효과본 것보다 현생에 신경 쓸 게 많아지는 게 그저 직빵인듯.</p>

<p>0914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24시간 내내 기독교와 영지주의 얘기를 하시는 트친이 있는데 비록 내 지식이 일천해서 하시는 말씀의 95%는 이해를 못하지만 그저 그분의 독서량을 보며 아 SNS 세상 겉면에 드러나는 ‘책 많이 읽는 사람’은 전부 허상이고 님이 찐이네요 라는 생각은 함</p>

<p>0922
회식 후기 : 7년간 일한 팀에서 송별회 회식을 해도 회식은 그냥 회식이다.
근데 생각해보면 다른 분들 송별회 할 때도 똑같았던 거 같아 누구누구 송별회라고 해도 사실 그 사람이 주인공은 아님 어쨌건 그는 떠나갈 사람이고 중요한 건 남은 사람들이기에.
뭐가 섭섭했다던가 그런 건 아님 그냥 7년이란 숫자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아주 압도적인 무게는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새삼스레 들어서..</p>

<p>0924
오늘의 디앤디. ‘용병 생활을 하다 귀족의 눈에 들어 먼저 도시로 떠났는데 이상하게 나는 데리러 오지 않는’ 언니가 있다는 설정을 만들어 놨었는데 DM이 오늘 그 언니 사실 기계 신앙 믿는 미친 사이비한테 잡혀서 전신이 기계로 교체됐고 이전과 동일 인물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스토리를 줘버림. 지금 플레이어의 내적 타격이 너무 큼 취향 저격의 스토리였으나 타격이 큼⋯⋯.</p>

<p>0929
카카오톡 숏츠 도입 관련해서 새 기사 뜬 거 보고 회사 사람들이랑 깔깔 웃음.
롤백 안한다며! 안한다며!!
하지만 썰을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남 얘기 같지 않았기 때문에 적당히 웃고 침묵했다..</p>

<p>1006
동생이 이번 연휴 내내 아빠한테 운전연수 받고 있는데 동생 인내심 게이지 슬슬 차는 게 눈에 보인다</p>

<p>1013
정말 진지하게 가정방문하는 의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강을 소중히 하지 않은 걸 깊이 반성합니다.. 목이 너무 아픕니다.. 씻고 얼른 병원 다녀와야 하는데 갈 길이 구만리 같습니다.. 흑흑 나가는 김에 상비약 세트도 사와야지</p>

<p>1014
얼마 전의 독서에서 영혼이 지상을 떠돌다 매번 다른 형상 속으로 들어간다는 문장을 보고 나도 모르게 정답! 그공사! 를 외침 (오르페우스교 이야기)</p>

<p>1018
Gianmarco Soresi 스탠드업 코미디 틀어놓고 점심 먹는데 “And even though I don’t believe in any of it, I have to admit that it seems like the key to maintaining friendships is hating gay people.” 에서 웃음을 참을 수 없었음</p>

<p>1019
시간은 여러 개다 시간에는 원본이 없고 모든 물체는 주변의 시간을 더디게 만든다 물체가 클수록 더 더디게 만든다 → 팟캐스트에서 이 내용 듣고 그렇구나 차살 화자는 거대한 행성이구나 생각함</p>

<p>항공사에서 여행 떠날 준비가 됐냐고 메일 왔어 너무 무서워</p>

<p>1020
밥 먹고 집에 왔다 새 책도 왔다 새 책이란 말이 머쓱하다 이 책은 2003년에 나왔다 알라딘 장바구니에 2년동안 잠들어 있었다 왜냐면 난 이 책의 전자책이 언젠가 나오길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자책은 소식이 없고 전자책 나오는 것보다 이 책 절판되는 게 더 빠를 거 같아서 냅다 샀다
배송된 책 상태를 보아하니 창고에 오래 머물렀다 커버 모서리가 이렇게 더러운 건 처음 본다 세상에 때가 탔다 책배도 먼지가 좀 붙었다 하지만 나머진 멀쩡하니까~ 여행 다녀와서 읽어야지!</p>

<p>1025
얼마 전에 ‘웹소 주인공은 왜 맨날 옳은가’ 얘기 나왔던 게 생각나네 과연 지금 『고마워 다행이야』가 재연재하면 연이는 이전보다 독자들에게 더 수용될 것인가</p>

<p>1030
이 사람의 관점에 전부 동의한다는 것은 아니나 사회적으로 저지가 필요한 수준의 발언을 하고 있다 보이진 않고 난 이 사람이 하는 말을 계속 들어보고 싶다 ← 가 차살의 화자와 차살 트친들을 보며 느끼는 가장 적확한 감상인듯.
처음 읽을 땐 이해보다 존중이 앞선다는 문장 보면서 그치그치맞지그럼그럼 했는데 2회독 3회독을 하면서 사실 나도 화자를 잘 이해할 수 없고 그를 존중하기 위해선 나도 노력이 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는</p>

<p>1106
아직 전산상으로는 퇴사 상태가 아니고 휴가 상태여서 밥 먹으러 커피 먹으러 회사를 자주 나오는데 오늘은 팀 커피타임에 독일 과자 들고 놀러갔더니 팀장님이 이상하다 심정적으로 이미 보내준 사람이 자꾸 회사를 나와~ 하셨다</p>

<p>1109
죽다 살았다 어제 먹은 저녁이 뭐가 잘못됐는지 새벽에 식은땀을 비처럼 흘리며 일어나서 소화제 먹고 잠깐 자다 다시 화장실 갔다가 아주 지옥을 겪어야 했다 눈 떠보니 지금이다 이야⋯</p>

<p>1112
오늘도 티알피지가 너무 재밌었어 그리고 모두가 와 재미따 만 하는 게 아니라 자기는 이런저런 점이 좀 더 개선되면 좋을 거 같다고 의견을 내서 좋았어 나는 사실 아무 생각 없었는데 생각을 해보게 됐어</p>

<p>1114
범프 아저씨들 너무 감질맛나요..</p>

<p>1119
아 난 우리 엄마가 너무 웃기다고 생각해.. 새 회사 출근한지 3일 지났는데 이전 회사에 비해 더 성장하기 좋은 곳 같냐고 물어보심 그걸 제가 어찌 알겠나이까</p>

<p>1120
새 회사 팀원들과 치맥하고 집에 돌아와선 전 회사 팀원들이 써준 마지막 인삿말들을 다시 읽으며 힝구의 마음을 다잡는 중..
하여간 마지막까지도 같이 일하는 동료들만큼은 참 괜찮은 회사였고 그래서 정말 마지막까지 망설였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만 괜찮으면 된 거 아니냐? 그게 얼마나 큰 복인데? 나머진 걍 생각을 관두면 되는 부분인데?) 그럼에도 결정을 하고 말았네</p>

<p>1122
월간 자영업자 팟캐스트의 『로마의 휴일』 편만 네 번쯤 듣고 정작 『로마의 휴일』 영화는 오늘 처음 봤다. 오드리 햅번은 아름답단 말론 부족하고 그냥 매 순간이 yes your highness 공주님을 뵈옵습니다 였고 그레고리 펙은 정말 잘생겼더라 아 아저씨 마지막에 걸어나오는데 끝까지 잘생겼네
공주가 다시 뛰쳐나오길 바랐다는 사람들이 왜 있는지 알 거 같아 그레고리 펙이 걸어나오는 그 장면의 뒷배경이 너무 여운을 진하게 남겨서 하다못해 공주님이 거기 서 있기라도 했으면 좋겠음</p>

<p>1123
뉴 회사 출근하고 맞이한 첫 주말 설거지하고 빨래 돌리고 화장실 청소하고 어글리어스 배송 온 걸로 밥 해먹고 그 외엔 아무것도 안하며 보내는 중</p>

<p>『절창』을 다 읽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리디광공st 문오언 일러스트와 플랫폼 한정 19금 미공개 외전이 있어야 할 거 같은 이야기였다 셰익스피어를 좋아하는 뒷세계 남자 그는 사람을 뚜까패고 여주를 탐하지만 육체적으론 강압적이지 않지 ← 여기서 이미 정답! 포스타입! 외쳐야 할 거 같았음</p>

<p>트친 추천 책이 집에 도착했는데 책배 상태를 보고 슬퍼졌다 그치만 이미 온라인 서점에선 절판된 책이 교보문고 광화문 점에 딱 한 권의 재고가 남아 있어 산 것이기 때문에 컴플레인의 선택지도 없어서 대충 장 담근다 생각하고 벽돌책 탑 중간에 끼워둠⋯</p>

<p>1201
젠킨스 파일 처음 손대봄. PR도 올림. 창침 다시 시작. 회사에서 선물로 슈톨렌 받음. 처음으로 출퇴근 정산서 올려봄</p>

<p>1202
업무도서 드디어 도착</p>

<p>1203
일본어 교실 후기 : JLPT 1급은 전생에 딴 게 틀림없음</p>

<p>1205
‘눈 녹듯 사라졌다’는 관용 어구에 대해 문득 생각하다.
눈 잘 안 녹던데…</p>

<p>1206
노슬립모어 불호 후기</p>
<ol>
  <li>전부 영어로 진행할 줄 몰랐다. 기본적으로 무언극이지만 아주 잠깐씩 나오는 대사와 소품이 전부 영어였고</li>
  <li>정보를 미리 알아보고 가지 않으면 1회 관람으론 절대 다 이해할 수 없는 공연으로 느껴졌다. 그건 저에게 있어 치명적인 미스였던듯..</li>
</ol>

<p>‘N차 관람하면 더 재밌어지는 컨텐츠’ 약간 흥행의 룰이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한번 구매하면 계속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과 달리 올 때마다 돈을 내야 하는 공연에서 이렇게까지 N차 관람을 전제하고 가는 것이 공연의 퀄리티를 떠나 삔또가 상함.
참여형 공연 처음이었는데 잘 모루겠습니다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이 뭐가 뭔지 전혀 모르겠는 상황 속에서 배우가 제발 나를 간택해 ‘난 안에서 이런 일이 있었지!’ 얘기할 수 있을 이벤트가 일어나길 바라는 별로 보기 좋지 않은 군중이 된 기분.
그러니까 근본적인 문제는 참여형 공연에서 제가 기대한 게 GM이 10명쯤 있는 초대형 티알피지였다는 거예요 근데 실제론 배우들은 정해진 루트대로 줄거리대로 움직이고 나는 어떻게든 그 안에 틈 비집고 들어가려고 용을 써야 하더라고 아니 이런 거라면 저는 앉아서 보고 싶습니다!</p>

<p>1210
책방 사장님이 보내준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타지에서 집을 구하는 부부가 등장하는 디아스포라 소설인데 읽는 내내 트친의 <a href="https://www.postype.com/@religionandplato/post/20245994">포타글</a>이 생각났다 그래서 직접 잘라옴</p>

<blockquote>
  <p>그런데 인간은 왜 자신을 이 세상에 속해있지 않은 것으로 만들고 싶어할까? 왜 인간은 세상 바깥으로, 심지어 그 바깥에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뛰쳐나가고 싶어할까? 간단하다. 삶이 너무 버겁기 때문이다. ‘이방인 정서’는 정상성에서 이탈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운데, 심지어 그 누구보다도 충실하게 정상성에 복무하는 이들조차 스스로가 이방인이라는 감각에 빈번하게 휩싸인다. 이방인 정서는 문학사에서 가장 보편적인 심상 중 하나이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로마제국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인데, 그는 자신의 철학적 일기에서 지속적으로 스스로가 이 세계의 일부임을 세뇌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그 세뇌만큼이나 많은 문장들에서 황제는 고통을 호소하고, 무대 밖으로 뛰쳐나가기를 바란다. 결국 「법률」의 문장은 여기까지 변형될 수 있다. “이 딱한 사람아! 당신도 고통의 일부분입니다.” 그 누구도 고통을 겪지 않는 방도는 없다. 그리고 예외는 없다.</p>
</blockquote>

<p>‘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름 지어질 수 없는’ 등의 감성은 전혀 현대 고유의 것이 아니며 역사 안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그 감성을 느끼는 것이 당신뿐이라고 착각하지 마세요 ← 이런 느낌을 트친 글에서 자주 받았었는데 너무 그게 생각나는 소설이었어</p>

<p>1212
요즘의 밥친구 : 유트루 브이로그. 
남의 집 밥 먹고 애 델고 돌아다니는 게 왜케 슴슴하게 보기 좋나 몰라요 근데 언냐 블글라는 넘 달드라.. 언니가 하도 맛있게 먹길래 궁금해서 시켜봤는데 마이 달드라..</p>

<p>1228
아침부터 두부를 신나게 구워 먹었다. 옛날 짜파게티 광고의 추억을 살려 오늘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라고 해보고 싶어서 점심 패스하고 저녁에 짜파게티 끓여먹었다.</p>

<p>1230
고상지 씨 연말 콘서트를 봤다.
언니 나는 언니가 정말 웃긴 사람이라고 생각해.. 어떤 코미디도 언니가 하는 공연 멘트 같은 웃음을 주지 않아..</p>

<p>의외로 오늘 공연에서 인상적이었던 곡 : Fuga for the three. 집 가는 길에 <a href="https://youtu.be/qHECi3Rn6-M?si=KGU_TU-QodgscylW">음원</a> 다시 들어봤는데 3집 전반적으로 짱이긴 하지만 역시 오늘 라이브의 그 맛은 아니다. 처음 들어본 곡 중에 다시 듣고 싶은 건 Taquito Militar. 애플 뮤직과 유튜브 전역을 뒤져도 어제 라이브 같은 연주를 못 찾고 있다. 일단 <a href="https://youtu.be/vyk92EHo40s?si=RTyA4BymM4U5S03L">오케스트라 버전</a>과 <a href="https://youtu.be/14xPB173DH4?si=EEdiwyNXQdyGzXKN">코마츠 료타 버전</a>을 번갈아 들으며 마음을 달래는 중. 아 감질맛나요 셋리스트 얼른 올려주세요 트위터 그만두면 이제 셋리스트는 어디서 구하나? 우리 모두 새 시대를 맞아 RSS 피드 기능을 의무화하자..</p>]]></content><author><name>Linear</name></author><category term="essay" /><summary type="html"><![CDATA[Diana Zulli, “Capitalizing on the look; insights into the glance, attention economy, and Instgram” Critical Studies in Media Communication 35(2) 2018 p. 137-150 플랫폼은 콘텐츠에 대한 주의나 응시가 아니라, 주의분산과 훑어보기를 유도해 사용자가 플랫폼에 더 오래 머무르도록 만들고, 이는 사용자의 버릇으로 체화된다.]]></summary></entry></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