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4.

동네 책방에서 했던 『마의 산』 같이 읽기 모임이 끝났다. 드디어 이 두껍고 안 읽히는 책으로부터 하산!
세템브리니와 나프타 둘 다 뒷통수에 후라이팬 깡깡 두들겨 기절시키고 싶었다. 메모해 가며 읽다가 머리에서 스팀 올라오는 줄. 그런데 책 다 읽고 모인 자리에서 어떤 분이 ‘토마스 만의 다른 소설은 좋아하지만 이건 못 쓴 편이라고 생각한다 이 논쟁을 이렇게 길게 할 필요가 있느냐?’ 라는 발언을 해서 굉장히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밖으로 뱉진 못했다.
장광설이 나한텐 재미가 없었다 ← 그럴 수 있지
재미가 없었으므로 못 쓴 것이다 ← 네?
소설 읽으면서 뭔 공부까지 해야 하냐 이것보다 쉽게 설명할 수 있잖냐 ← 예??

그리고 토마스 만이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 시절에 동성애자로 살려면 얼마나 힘들었겠냐’ 부터 시작하셔서 나는 갑자기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그거 참 굉장히 현대적이고 시혜적인 시선이군요……. 토마스 만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자기가 21세기 동아시아에서 좌파퀴어사회적소수자로 캐해가 되고 있다는 걸 알면…….

토마스 만 작품을 계속 독파하고 있다는 분과 더 얘기해 보고 싶었는데. SNS나 블로그 하시는지 물어볼 걸……

1017.

영화 『디거』 2회차 관람을 마쳤다. 하필 『마의 산』을 읽고 있던 시기에 영화를 봤기 때문에 나한텐 둘이 연결된 것처럼 보였다. 『마의 산』은 약간 탈출구가 없는 소설이다. 아주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고 모두가 각자의 성찰을 하는데 그 중 어느 것도 긍정되지 않고 전쟁이 터지며 소설이 끝난다. 그러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고 땅에 발디딘 현실로 돌아가 삶에 충실하라는 뜻인가? 싶을 수 있는데 그렇게 현실에 충실했던 인물도 작품 내에 확고한 비중으로 등장한다. 근데 병들어 죽는다. 온갖 가치관, 토론, 싸움, 대화가 산 위에서 뱅글뱅글 맴돌다 돌연 전쟁터에서 서술 중단. 즉 소설은 끝났지만 독자는 1400페이지를 읽고도 어떠한 결론, 서사적인 엔딩, 마무리됐다는 느낌을 거의 받지 못하고 책을 덮는데 나는 이게 굉장히 해방적으로 느껴졌단 말이지………. 왜냐면

친구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온 건데 디스토피아는 어딘가 이상한 지점이 있다. 유토피아를 만들어 놓으면 사람은 그걸 견디지 못하고 결국 산산조각날 거라는 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 "공산주의는 인간 본성을 고려하지 않아 실패했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이런 논리가 상투적으로 퍼진 데에는 분명 시작점이 있을 것이다. 그게 뭘까?
친구 사실 공산주의고 전체주의고 그딴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고 관용적 어구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게 문제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서사가 인간을 지배하거나.
나 맞다. 인간은 이야기에 지배당한다. 글쓰기 모임을 할 때마다 서사 구조라는 것이 정말 강박적이고 거기서 벗어나는 글쓰기는 어렵다는 걸 느낀다. 에세이를 쓰면 어떤 일화를 소개하고 거기서 생긴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적절히 타협해서 결론을 쓰는 기승전결 패턴이 정해져 있지 않나? 쓸 때마다 끔찍하다고 생각하지만 난 세르반테스가 아니니까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다.
나 소설을 써도 마찬가지다. 독자를 흡인할 인트로, 리얼리즘을 살린 풍경 묘사, 등장인물 소개로 이어지는 카메라 숏과 대사와 시간의 흐름이 필요하겠지. 이런 소설은 5천자 분량의 5자만 써도 지겹다. 그런데도 벗어날 수가 없다니 이야기의 지배력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언젠가 이런 대화를 했었기 때문이다.

“결론”이 나와야 한다는 패턴 참으로 지겨울 때가 있다. 그 결론에 반박할 말도 이미 다 준비되어 있고 뭘 갖고 나와도 딴지 걸 수 있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놀란이 오딧세이를 만들어? 그럼 일단 백남이 꺼드럭대는 영화라고 해. 뭘 갖고 나와도 이 말은 통해. 프리렌이 일본에서 히트를 쳐? 그럼 이런 안온한 배경의 만화가 성공하는 요즘 사회에 대해서 비평하는 말 해. 무조건 알티 타. 체감상 트위터에서 이짓거리를 한 세기동안 하고 있는 거 같은데 아 씨발 너무 지겨워……. 그럼에도 계속 탄생하는 이 ‘서사’, 뭔가에 결론을 짓고 마침표 땅땅 찍으려는 손짓이 모두에게서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보고 배운 게 이거라 여기서 영영 벗어날 수 없고 모두 같은 회오리 속에 있고 그러던 어느날 전쟁이 돌연 저벅저벅. 나는 이 구조가 내가 이해한 현실과 닮아 있다고 느꼈다.

『디거』도 비슷한 느낌이다. 이 영화가 끝났을 때 관객은 갈곳이 없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분명했으면 관객은 그 메시지에 내가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를 결정함으로써 마음 둘 곳을 정할 수 있다. 한데 이게 그런 영화가 아니다. 크레이프 케익처럼 촘촘하게 쌓여있는 사람들의 층위를 보여줄 뿐, 이 영화를 보는 관객도 그런 층위에 불과하다고 엔딩 크레딧에서 아주 못질을 해버릴 뿐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에 돌려줄 한 문장짜리 결론이 없다. 그냥⋯ 아주 많은 의견, 싸움, 토론이 있고 그것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고 우리는 십년 전에도 지금도 줄곧 그 싸움판에 있었고 앞으로도 여기에 있을 것이며 이런 세상을 계속 살아야 해. 여기에 진정한 결론 마침내 단 하나의 마침표 같은 건 찍을 수 없어. 이제 그만 그 사실을 인정해.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되냐고? 그니까 제발 그런 질문을 그만 하라고!!!!

그런 영화라고 느꼈습니다.

1018.

나 동인 창작에서 "원작에 충실해야 한다"는 원칙은 어딘가 이상하다. 원작의 바깥을 상상하고 싶었기 때문에 동인 창작을 했을 텐데 내 눈에 역겨워보이는 창작물에 대해선 모두가 갑자기 원작 충실의 원칙을 들고 온다. 이게 왜 공격의 언어로 쓰이는가?
나 『마차살』이나 『마의 산』에 대한 반응도 마찬가지다. 내게는 어려웠고 내 취향이 아니었다는 말은 할 수 있다. 해석하는 주체 = 나 가 발언의 기본으로 박혀 있으면 괜찮다. 그런데 이런 건 나와선 안 된다거나 이렇게 쓰여선 안 된다는 말, 즉 작가에게 문제를 전가하는 말이 나오면 이상하게 느껴진다. 다들 뭔 소리를 하는 거지?
친구 독자가 텍스트를 못 읽으면 그건 기본적으로 독자 잘못이다. 여기에 대해 흔히 나오는 반박이 상업성, 즉 웹소설은 상업적이니까 그에 맞는 문법을 추구해야 한다는 건데 상업성을 추구하면 소설을 쓸 게 아니라 주식을 해야 한다. 웹소설은 자아실현이 아닌가?
친구 『마차살』은 번역도 없이 독일어 라틴어가 죄다 섞여 나오는 웹소설이지만 모르는 부분은 대충 건너뛰어가며 읽을 수 있었다면 그건 결국 잘 읽힌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반발심은 궁극적으로 작가와 독자의 우위 관계에서 생기는 게 아닐까? 옛날엔 쓰는 사람보다 읽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젠 역전돼서 쓰는 사람이 읽어달라고 빌어야 하니까.

독자의 꺼드럭에 대해 생각하는 새벽⋯.

1028.

『손민수 피아노 리사이틀: 바흐 평균율 1권 음반발매기념』에 다녀온 후기를 두서없이 쓴다. 일단 바흐에 대해 내가 아는 거 : 교회음악 했던 바로크 시대 아저씨. 그중에 클라비어 평균율 곡집 : 아는 거 아무것도 없고 이번에 나온 앨범으로 처음 들어봤다. 그래서 공연 가기 전에 앨범 예습도 많이 해 보고 갔다. 그런데 반전 : 리사이틀 연주가 앨범이랑 다름. 교수님 이런 파트가 어딨었어요 싶은 격정적인 구간이 왕창 등장. 이상하다 이건 바흐인데⋯ 바흐가 격정적일 수도 있단 말인가.

이렇게 박살나는 나의 일차원적인 선입견 : 바흐는 차분하고 경건하다. 그런데 동시에 드는 의문 : 경건한 것은 격정적인 것과 동시에 갈 수 없던가? 나의 얄팍한 클래식 언어 사전에서 임윤찬은 격정적이고 휘몰아치는 불 같은 연주를 하고 손민수는 뿌리 단단하게 내린 고목 같은 연주를 하는데 손민수에게도 격정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면 이 격정과 저 격정은 무엇이 다른가. 젠장 언어 부족.

공연으로 들어보니 평균율은 정말 이상한 시리즈였다. 이게 대체 뭐여? 악곡이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로 dnd 성향 테스트 3x3 테이블 만들어 놓고 혼돈선을 고른 거 같이 느껴졌다. “음으로 시작해서 음으로 끝나면 다 곡이다.” 특히 1부 마지막 곡이었던 BWV 857가 진짜 혼란스러웠다. 처음 시작할 때의 아주 섬세한 슬픔과 우울, 중간에 이게뭐예요 싶은 구간, 그리고 맨 마지막에 아무 예고없이 대뜸 짠~~ 하고 끝내버리는 게 원래도 다소 어리둥절한 곡인데 오늘 리사이틀에선 거의⋯⋯ 교수님 뭐 화나는 일 있으셨나요? 얼마 전에 임윤찬 군 연주 일정으로 말이 많던데 기획사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셨나요?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슬픔 → 극도의 슬픔 / 우울 → 극도의 우울 / 짠 → 너무 평화로운 짠이 됐다 ㅋㅋㅋㅋ 약간 사람 놀리는 거 같기도.

비유가 좀 뜬금없는데 “로맨스의 문법은 제인 오스틴 대에서 다 정해졌고 현대에는 그걸 변형,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는 말이 문득 생각났다. 건반악기의 문법은 평균율 대에서 다 정해졌고 후대에는 그걸 변형, 반복만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평균율을 곡 단위로 뜯어볼 줄 아냐구요? 아뇨 전혀 몰라요. 근데 그냥 건반악기가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의 모든 희노애락 두시간짜리 축약본을 들은 거 같았음. 여기서 더 섬세하게 가지를 뻗어나갈 순 있어도 이걸 벗어나는 건반악기곡은 존재할 수 없을 거 같아. 제가 받은 느낌이 그랬습니다. 그렇다면 저 무대 위에서 피아니스트가 보여주는 건 자기가 이해하는 “세계”의 두 시간짜리 축약본이 아닌가. 그런 걸 연주로 보여줄 수 있다고 “믿는” 시점에서 연주자의 경건함이 필요하달지.

교수님 사인회는 왜 안하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