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p, 사랑이 뼛속까지 흔들리는 경험인 까닭은 충격을 동반해 우리를 깊이 각인된 개인주의 바깥으로 끌어내주기 때문이다.

⇒ 우리에게 사랑이 필요한 까닭으로 들리기도 하고, 이게 곧 사랑의 정의로 들리기도 한다.

84p,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잃어버린 사랑을 내사 혹은 내면화해 상대를 환상 속에서 곁에 두기 때문이다. (…) 우울증 환자는 더는 소중한 사람을 애무할 수 없더라도 여전히 마음 깊이, 뼛속 깊이 잃어버린 사랑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 어이거 언젠가의 제 얘기

149p. 반려자보다도 내 몸의 뻣뻣한한 구석구석을 더 면밀히 아는 사람이 마사지사였다는 사실은 현대적 삶의 기이한 ‘비인격적 친밀감’을 드러낸다. 친숙한 손들이 일순간에 사라지면 지속적인 우울이 찾아오기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영혼을 내맡겼던 목사가 갑자기 부재하면 버림받았다는 강렬한 감각이 심화될 수 있다. 요가 강사, 단골 성당 신부가 언제까지고 가까이에 있어주리라고 믿을 때 그러하다.

⇒ 동네 단골 카페가 폐업했을 때, 상담 선생님이 자리에 없을 때, 사실 이 모든 관계는 언제든 증발할 수 있는 것이었고 내가 상대에게 가진 친밀감은 일방적이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목사의 부재가 이와 같은 카테고리라면 종교 신자들의 공동체가 왜 그리 끈끈한지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이 우울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걸까?

154p. 학계는 대개의 경우 헌신이라는 다소 프로테스탄트적인 윤리, 특히 ‘학문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라는 이름 하에 수행되는 무보수 노동에 오랫동안 의존해왔다.

⇒ 옛날엔 내가 학계에 동경을 품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 지나 보니 내가 동경하는 건 프로테스탄트적 윤리로 돌아가는 사회였다. 근검절약.. 헌신.. 윤리적 공동체..

173p, 우리가 친밀한 관계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 중 하나는 우리를 유일무이한 존재로 느끼게 한다는 사실이다. (…) 다시 말해 우리는 타인과 사랑에 빠지거나, 혹은 단순히 존경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이나 우리 자신의 특정한 버전에 매료된다.

⇒ A와 얘기할 땐 나-A버전이 되고 B와 얘기할 땐 나-B버전이 되는데 B와 이별하면 그건 곧 나-B와의 이별이기도 하므로. A를 좋아하는 것과 A를 대면할 때 생겨나는 나-A버전을 좋아하는 것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179p, 가까운 이들과의 싸움, 갈등 그리고 좌절은 그저 진솔한 대인관계의 연결망으로부터 형성되는 질감, 역사, 궁극적으로는 보상의 일부다. 상대가 너무 자신감이 없고 부탁하는 게 많다는 이유로, 또는 그저 따분하다는 이유로 그 관계로부터 자신을 없애버리는 일은 우정, 가족, 연애 관계를 근본적으로 또 상호적으로 개조하려는 책임의 포기다.

⇒ 매순간 관계의 지속 여부를 계산해가며 +-를 하는 건 너무 팍팍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정확히 무엇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지 핀포인트 조준하고 말하는 책이 아니라 ‘요 언저리에 대해 말하는 책이 많지 않길래 내가 한번 포문을 열어보고 싶다’고 시작하는 책이라 쬐금 산발적이라는 느낌은 들지만 가볍게 읽기에 좋았다.

근데 고스팅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굳이 필요했나 하는 생각은 든다. 아무래도 저자는 블블을 몰랐던듯. 역자 후기에선 코리안 트위터 독서 향유층의 향기가 물씬 나던데..

내게는 꽤 오랫동안, 물리적 현실 속에서 만나는 누군가가 아니라 온라인상에서 서로 섬세하게 제련된 문장을 쓰는, 준-작가 같은 이들과 교류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어떤 책을 읽었는지 기록하고, 인상 깊은 문장을 매혹적인 사진과 더불어 업로드하는 이들이 가족보다, 학우들보다, 일터의 동료들보다 훨씬 더 가까운 사이로 느껴졌다. 나는 “기계 속의 유령”(26쪽)들을 기꺼이 오랫동안 사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