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화의 놀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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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드로 「운명론자 자크」
- 미장아빔(Mise-en-abîme 또는 Mise en abyme) : 작품 속에 또 다른 동일한(또는 유사한) 작품이 삽입되는 구조. 액자 구조, 극중극
- 모두언 : 말이나 글의 맨 처음 시작하는 부분에 하는 말. 디드로의 액자 구조에서 모두언은 발생하지 않음. ‘나도 모르는 사이 그들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군요’. 이는 다시쓰기 연습의 대상이 된다. ‘그녀는 자리에 앉았고 드디어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라고 서술하고 실제론 그녀의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는 전개
스턴 「트리스트럼 샌디」
- 시작의 되풀이, 모두언에서 멈추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성찰이 생긴다.
- 완전히 자의적으로 만들거나 / 진지하게 설명하고 정당화 / 가짜 예고
‘논지’에서 벗어나는 텍스트에 대해 우리는 부정적이다.
- 논지라는 개념을 소설에 적용하는 게 타당한가? 서술 장르는 보통 ‘줄거리’로 표현.
- 그러나 소설이 진지한 장르의 반열에 오르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메커니즘/규칙/담론에 기대 줄거리를 논지로 만든 거였음
- 소설 비판자에게 소설은 경박함/파격의 장르인데 여기선 규칙과 목적의 장르로 정의함(스퀴데림) 현대 비평에서는 이런 논지 개념 안씀
제목은 어느 정도의 신뢰성을 가져야 하는가?
- 몽테뉴의 「에세이」, ‘나 자신을 발견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는 자화상의 벡터를 믿으면 개인적인 구절이 이 글의 핵심, 비개인적인 제목의 장을 중심으로 보면 개인적인 구절은 일종의 혼잣말. 그러나 「에세이」라는 책 제목을 규준 삼으면 여담성이 에세이의 존재 자체가 된다. but 에세이는 본래의 논지를 붕괴시킨 뒤에도 그 논지의 영향력과 잔류자기에서 벗어나지 못함.
주제의 진행을 일시적으로 중단시키는 ‘휴지’
- 이 책은 휴지를 서술 활동의 급진적 변화로 간주할 것을 제안한다.
- 단절로서의 소설. 소설 텍스트는 그 끈과 전개에 있어 계속해서 끊어지고 단절된다. 이야기는 어긋난 단층, 교차, 갈마들기, 플래시백, 앞지르기를 통해 살아간다.
- 삽화의 효과, 삽화는 휴지를 새겨놓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휴지와 여담이라는 사건을 삭제한다.
- 「파르시몽, 또는 새로운 소설적 광기들」 속 ‘타르미안의 이야기’, 전개 도중에 끝나버림.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못한 주인공이 환상을 펼칠 일종의 밑그림으로 삼아 자기 이야기로 만들고 스스로 ‘픽션의 픽션’의 인물이 되어볼 수 있다.
- 최후의 승리라는 연속성. 우리는 때로 불연속성을 겪었다는 사실조차 잊는다.
‘마지막 말’의 권위를 인정할 수 없다 → 극적 효율성을 위해 일탈을 단념할 것인가, 조롱으로 결말을 방해할 것인가
결론: 하나의 텍스트는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에서 끝나는가? 글쓰기와 독서와 비평을 무대화함으로써 여담 현상은 이야기 영역과 텍스트 영역을 가르는 공간 전체를 이용하고 포괄한다. 이야기 영역에서는 모든 것이 스토리와 서술 논리에 따라 배치되며 텍스트의 영역에서는 서술 행위를 트집잡는 자기반영성의 복잡한 놀이가 펼쳐진다. 여기서 이 놀이는 이 다양한 요소들을 텍스트 내부의 다양한 단계에서 재현함으로써 텍스트라는 형상을 가능한 모든 상태로 압축해서 생산해내는 것이다.
인용
- 「마리안느의 생애」. 매 순간 이야기를 멈추고 아주 사소한 상황에 대해 아무런 필연성 없이 도덕적 고찰을 전개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렇게 매 순간 성찰을 행하는 것은 서술의 본질에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
- 서두르고 화나게 하고 토론하고 엄청나게 대답하게 말하고
- 주제를 설명하는 것과 청중을 깨우치는 것은 동일한 행위이다
- 224p. 비평과 텍스트의 관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어서 텍스트는 단순히 독서의 대상이라는 자기 조건에 반항하여 투쟁의 장이 될 수 있다.
감상
- 4장까지 읽고 중단, 5장까지 갈 의미를 찾지 못함. 여담에 대한 책이니만큼 중간에 점프해서 결론만 읽는 행위에 죄책감도 느끼지 않음 ^^
- 농놀 시절의 감각이 잠깐 생각남. 그냥 독자로서 작법서를 읽는 경험과 내가 소설을 써보고 있는 상황에서 작법서를 읽는 경험이 다르듯, 오롯이 독자이기만 했던 시절에 소설을 보던 눈과 내가 개발새발이어도 완결까지 써본 이야기가 있는 시점에 소설을 보는 눈이 다르다고 느낌. ‘이쯤에 풍경 묘사가 나오고’ ‘이쯤에 분위기 잡는 대사가 나오고’ ‘이쯤에 긴장 풀어주는 씬이 나오고’ ‘이쯤에 돌발상황이 나오고’ 그런 패턴을, 의식하지 못했을 뿐 이미 감각으로는 알고 있다는 인지와 동시에 그 정형화된 패턴이 지루하고 답답하다는 느낌과, TRPG였으면 필요하지 않았을 이음매, 휴지가 여기선 필요하다는⋯ 정해진 시스템이 갑갑하고, 그 바깥을 상상하는 작가를 많이 알게 된 건 좋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읽어볼 거 같느냐? 책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이라 읽을 게 너무 많아요
- 책만 정형화되어 있느냐? 책을 독해하는 방법도 정형화되어 있음. 연속성을 깨뜨리는 책, 딴소리가 많은 책을 우리는 ‘잘 안 읽히는 책’이라고 부름. 잘 안 읽힌다는 말이 나오면 어쩐지 그 책에 대해 할 말은 이제 끝났다는 느낌. 평가 끝! 독자가 텍스트에 대해 무엇을 말해야 덜 진부할까.
- 이다음엔 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 아 좀 쉽게 읽히는 개재밌는 책 읽고 싶어요⋯. 정형화된 소설도 싫지만 사실 제일 싫은 건 기껏 새로운 책을 꺼내놓고도 새롭고 흥미로운 부분을 찾아내는 게 아니라 ‘거봐 결국 뻔해’라고밖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