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2분기 책 결산 (1)
대화극
<마차살>을 보다 더 이해하고 싶어 이것저것 읽어나간 결과 정작 <마차살>이 900화를 향해가는 지금은 덕질의 뿌리였던 웹소설보다 연계 독서로 잡은 책들에 더 마음이 가있다. 칼 슈미트도 그중 하나다. 지인의 추천을 받고 빌렸던 <정치적 낭만주의>를 도서관에 조용히 반납한 이후 (칼 슈미트는 자신이 보는 세상, 자신이 가진 지식을 독자도 으레 알 거라는 전제 하에 글을 쓴다. 그래서 친구는 <정치적 낭만주의>를 프레데릭 바이저의 <이성의 운명>과 함께 읽어야 한다고 했고 내가 조언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 보다 얇은 책을 찾던 차에 <대화극>을 덜컥 산 것이다.
책의 내용은 다소 기이하다. 1부는 어떻게 넘긴다 쳐도 실제로 세 인물의 대화가 진행되는 2부는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인간들의 역사는 땅과 바다의 대결로 요약할 수 있는데(?) 대체로 땅은 질서를, 바다는 혼돈을 상징해 왔으며 성서에도 그렇게 나와 있고(??) 근대 문명에서 이런저런 문제가 많이 생긴 건 그걸 주도했던 게 해양을 토대로 발전한 영국이라서(???) 그렇다는 주장을 대체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감도 안 온다. 그러나 칼 슈미트의 책에서 얻는 재미는 텍스트 자체의 설득력보다는 어쩌다 이런 희한한 주장을 하게 되었는지 맥락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데 있다. 그는 나치가 유럽 사회의 답이 될 수 있다 믿고 힘을 보탰던 사상가고 여전히 정치철학과 법학에서 그 이름이 유효하게 언급되는 사람이니까. 나치를 천하의 나쁜놈이라고 비난하긴 쉽지만 왜 그런 광기에 수많은 사람이 휩쓸렸는지, 우리는 어떻게 해야 그 광기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을지는 과거를 제대로 알아야 대비 가능한 부분일 테니까.
책이 그 자신의 내용만으로는 전혀 완성되지 않고 책 바깥의 맥락을 곁들여야 독해가 가능한, 어쩌면 정치 선전 팜플렛으로 부르는 게 더 적절해 보이는 이런 책을 처음 접해봐서 신기했다. 그리고 표지 뒷면에 프린트된 옮긴이 해제의 문장 하나가 은은하게 웃음을 주었다. 혹시 이것은 '상처받은 양심의 표현'일까? 전체 맥락을 보면 그 문장은 슈미트를 옹호하려는 게 아니었고 실제로 칼 슈미트가 말년에 반성했다는 증거는 별로 없지만 그 문장을 뒷면에 프린트한 편집부의 마음은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팔아야죠…
아래는 친구가 카톡으로 아주 친절하게 요약해준 <대화극>의 내용.
칼 슈미트의 대화극 앞부분에서 제가 느끼기엔 핵심적인 대목은 이것이에요
고중세 기독교의 교부들에게서 권력은 선한 것이었는데, 근대 역사가 야콥 부르크하르트에게서 권력은 악한 것이 된다
이 사이에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가?
이때 슈미트에게 전자는 가톨릭, 후자는 개신교와 그 필연적 종착점인 니체가 염두되는 것 같아요
전자에게 세계는 전면적으로 긍정 가능한 것이에요
세상은 착하고, 세상 속의 인간들도 결국 착하고, 신적이고, 신성하고, 당연히 세계 속의 권력도 결국에는 착하고 신성한 것이니까 좋은 것이에요
후자에게 이제 세상 속에는 신이 없어요
세상은 좃같은 곳이고, 모두 인간투성이이고, 인간도 모조리 좃같고, 뭐 제대로 흘러갈 거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고, 그러니까 권력도 개좃같은 것이 된다
권력이 자연 혹은 세계로부터 유래하는 것이었거나 혹은 신에게서 유래하는 것이라고 여겨졌던 시절엔 인간을 압도하는 거대한 것으로부터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압도할 권력이 생겨난다고 여겼던 거겠죠
근데 이제는 그러한 근거도 없이, 순전히 인간으로부터 다른 인간을 압도할 근거가 생겨난다고 보이는데, 그렇다면 신 없이 인간이 극도로 불안정하게 보인다면, 세상은 정말 위태로워 보인다는거죠
그래서 신 있는 인간의 세계관을 믿어보려고 노력하지만, 우울증 걸린 니체마냥 자기가 믿는걸 확신하진 못하고, 걍 방에 틀어박혀서 현자 코스프레나 하겠다는 글이엇어요
대화극 뒷부분 요약
일단 형식상으로는 대화극이기 때문에
늙고 수상한 신화학 헛소리꾼 vs 유물론 과학우월주의자 vs 미국인 비즈니스맨 모험가
세 부류가 대화를 나누지만
슈미트는 첫 번째 사람에게 공감하고 나머지 둘은 걍 하나마나한 소리만 하기 때문에 헛소리꾼만 요약하자면
이 세상 인간들의 역사는 땅과 바다의 대립으로 요약할 수 있어요
동양과 서양의 전쟁, 땅과 바다의 대결, 흙과 물의 대립, 등등
누가 봐도 이 수상쩍은 대립구도는 슈미트피셜 성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태초에 하느님이 땅과 바다를 가르셨고
예수가 물 위를 걸어서 바다를 제압했으며
요한계시록으로 가면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라고 한다는 거죠
땅은 질서이고 인간의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반면
바다는 혼돈과 모험, 비일상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역사가 땅과 바다의 대립이라는건
질서와 혼돈의 대결이기도 한거죠
그런데 슈미트피셜 산업혁명으로 시작되는 근대자연과학기술문명은 뭔가 좃됫어요
왜냐면 그건 영국 해양정복자들이 만들어낸건데
따라서 근대문명의 자연과학기술 발전은 전부 바다와 혼돈의 산물이고 개쓰레기에요 우어??
하지만 슈미트 피셜 우리는 땅에 살아야 근본이에요 인간은 땅을 벗어나면 안 돼요
근대 OUT 근대는 쓰레기다
슬슬 이게 뭔소린가 싶지만
그리고 또 중요한게 나오는데
영원한건 절대있어
영원한건 절대없어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성립하는 역사의 교훈이에요
슈미트피셜 역사적으로 일어난 모든 것은 다시는 똑같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자꾸 바다로 재미 좀 보다가 (근대문명의 발전) 좃망한 (세계대전) 루트를 대충 하늘이나 우주로 고쳐서 리메이크해서 잘될거라고 망상하지 말고
걍 땅이나 제대로 챙기자고 말해요
MAKE 대지 GREAT AGAIN
이게 내용 전부에요
내 영혼의 델리카트슨
남한테 선물하기 좋은 책. 책 좋아한다는 사람한테 이 책을 선물해서 불호평을 들을 일은 없을 거 같다.
그러나 뒷표지에 뉴욕 타임스 추천사가 실려 있는 책이 내 좁은 취향에 들어맞을 확률이 지극히 낮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갖고 싶어하는 취향’과 ‘진짜 내 취향’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면 이렇게 헛발질을 하는구나 싶다.
작가는 잘못이 없고 오월의봄의 안목은 훌륭했으나 나는 이런 책을 그만 사야 한다.
한국어의 투쟁
한국어교원에 대한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됐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보다 리포트에 가까웠다.
휩쓸린 것들만 남는다
모녀 갈등 현재진행형인 딸들이 읽으면 눈물을 흘릴 것이다. 마찬가지로 딸내미 때문에 속에서 천불이 나는 어머니가 읽어도 눈물을 흘릴 것이다. 정말 섬세하고, 잘 살렸다. 그러나 그 시기를 이미 지나보낸 사람이라면 소구력이 크지 않을듯. 아무튼 독일이나 한국이나 엄마와 딸내미 관계는 비슷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소유하기, 소유되기
작가는 잘못이 없고 열린책들의 안목은 훌륭했으나 나는 이런 책을 그만 사야 한다. 잠깐이나마 흥미에 눈이 뜨였던 부분은 180페이지의 마지막 문장인데 (이 논리에 따르자면, 많은 여자가 무보수로 하는 일을 돈 받고 한다는 점에서 매춘이 일상적인 섹스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정도면 홍차에 독을 탄 수준이 아닌가 싶다. 백인 중산층 엘리트 여성이 적절히 갖춰진 문체로 자본주의와 소유에 대해 얘기하는 근사한 벨벳 코팅 책에서 매춘 vs 섹스라니 타겟 독자층에 대한 참혹한 배신이 아닌가. 물론 나는 그 문장이 있어서 완전히 흥미를 잃지 않고 계속 읽어나갈 수 있었지만.
100세까지의 독서술
책의 재미와 무관하게 가끔 집에 토템처럼 두고 싶은 책이 있다. 칠순을 넘은 노년의 저자가 ‘앞으로 정말 몇 권이나 더 읽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그 침착함이 그냥 좋았다.
마스터플롯
내가 이런 종류의 비평서를 안 좋아했던 적이 없어서 망설임 없이 구매했는데 읽으면서 약간 충격을 받았다. 나 정말 최신 컨텐츠 안 봤구나.. 비평의 대상이 되는 컨텐츠를 알아야 비평서를 재밌게 읽을 텐데 <오징어게임>, <귀멸의 칼날>, <킹덤>, <체인소맨>, 각종 리얼리티와 서바이벌 프로그램, 무엇 하나 제대로 본 게 없어서 주의 깊게 읽을 수 있는 장이 많지 않았다. 책을 관통하는 ‘마스터플롯’ 키워드에 대해서도 끝까지 큰 흥미를 갖지 못해서 찜찜한 기분으로 책을 내려놓았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읽기
최근 햄릿과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샀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읽기>의 경우 모든 챕터가 골고루 재밌진 않았지만 (특히 거트루드를 파고드는 프로이트적 분석은 흐린 눈으로 보게 된다. 이런 책에서 다루지 않을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싫은 것도 사실..) 6장. 햄릿과 영웅은 꽤 재밌게 읽었다. 르네상스 시대란 무엇이었나? 그건 사실 고전 세계와 기독교 사이 충돌의 시대였고 햄릿 역시 그 두 세계관 사이에서, 고전 세계에 대한 로망도 있고 걸맞는 자질도 있었지만 동시에 기독교적 가치관에 뿌리깊게 사로잡혀 있던 인물이라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대표적으로 극 후반부의 펜싱 씬을 보면 햄릿에게 ‘복수극의 주인공’, ‘고전적 영웅’의 면모가 결코 없지 않은데 결국 그는 복수를 결단하는 데 내내 실패하고 하염없이 영혼의 문제를 고민하니까.
햄릿과 고전적 영웅을 다양한 방법으로 구분지을 수 있지만, 기본적인 출발점은 햄릿의 우주와 아킬레스의 우주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스 영웅인 아킬레스는 한정된 공간 개념의 우주에 살고 있다. 그는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죽음이란 기껏해야 유혈이 없는 장소로서 노예로 살더라도 이 세상의 삶이 더 낫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전사로서 그의 한결같은 결심은 자신은 죽을 것이라는 의식과 연관되어 있다. 그는 자신이 젊어서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명예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확실히 그에게 불멸의 의미란 그의 이름이 명예롭게 유지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현대 기독교 세계에 살고 있는 햄릿은 자신의 영혼이 불멸이라 믿고 있다.
햄릿이냐 헤쿠바냐
이번 분기에 읽은 또다른 칼 슈미트. 헤쿠바는 <햄릿>에 등장하는 극중극의 인물이다. 평소 유랑 극단을 좋아했던 덴마크 왕자 햄릿이 왕궁에 초청된 배우들의 공연을 감상하다가 ‘저기서 헤쿠바를 연기하는 저 배우는, 이 연극이 허구인 걸 알면서도 가상의 인물에 몰입해 저렇게나 눈물을 흘리는데 나는 왜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타락이라는 끔찍한 현실을 마주하고도 행동하지 못하는가?’ 고뇌하며 절규하는 독백이 유명하다. For Hecuba! What’s Hecuba to him, or he to Hecuba. <햄릿>에서 이 극중극은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에 극을 본 사람이라면 트로이의 왕비, 프리아모스 왕의 죽음에 절규하는 아내 헤쿠바를 잊을 수는 없다. 이렇게 비평에 끌려나오는 일은 드문 거 같지만.
헤쿠바를 두고 책이 하는 주장은 실로 단순하다. 저자는 햄릿과 헤쿠바를 ‘당대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인물’과 ‘순수한 픽션 속 인물’로 대치시킨 다음 전자의 손을 들어준다. 즉 위대한 작품은 모름지기 순수한 상상력만으로는 만들 수 없고 반드시 시대적 현실을 반영해야 하는데 <햄릿>은 이렇게 저렇게 분석해 본 결과 그 규칙을 잘 따른 위대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 관점을 어떻게 바라볼지는 둘째치고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는 전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말년의 칼 슈미트가 <햄릿> 비평을 왜 쓰는가? 아무리 봐도 하고 싶은 말이 따로 있어 보이는 이런 함정 같은 문장(`결코 자의적으로 변경될 수 없고 주관적 창조력까지 초월하는 유일무이한 역사적 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은 왜 등장하는가?햄릿>
결국 맥락을 파고 들면 <대화극>과 별로 다르지 않은 책이다. ‘유일무이한 역사’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고, 자기 이론의 완성과 메시지 전달을 위해 책을 다분히 도구로 사용하는 것도. 그런 점이 오히려 재밌었다. 103p에 나오는 기술의 진보에 기반하여 삶의 모든 영역에서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소비문화를 촉진해 지상낙원을 구축하려는 현대적 세속사회는 슈미트뿐만 아니라 나도 비판하고 싶다. 근데 이 문장을 쓰는 칼 슈미트의 요점은 “종교!! 종교를 기억해라 이 같잖은 현대인들아!!” 같아서 해설 읽는 내내 웃음을 참을 수 없었을 뿐.
만약 이 세상에 어떤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게 있다면
→ 햄릿의 가치도 역사적이거나 잉글랜드적인 게 아니라면
→ 영국적인 것이 유럽적인 것이고 세계적인 것이고 보편적인 것이라면
→ 이 세계엔 보편만이 존재하고 개별의 가치가 실종된다면
→ 그렇다면 이 세계는 그저 기계로 이루어져 돌아가는 따분한 법칙적인 것, 모든 인간은 결정론의 노예, 그러므로 인간들의 자유의지가 충돌하며 빚어지는 우연적인 행위의 궤적, 진정한 역사는 없을 것
→ 가톨릭은 개별자를 제거함으로써 보편종교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모든 역사의 개별적 순간이 그 자체로 고유함에도 불구하고 사실 모두 신이라는 real 보편이 현존한다는 종교
→ 사실 어떤 보편적인 가치가 있다는 건 유일하고 절대적인 선택지가 있다는 거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과 더불어 이번 분기의 가장 뜨거운 책. 얼마나 뜨거운지는 이미 다른 글에서 썼다. 가장 가슴이 뛰는 건 역시 로베스피에르와 자코뱅파의 시대지만 의외로 나폴레옹이 통치하는 파트가 꽤 재밌었다. 적어도 그 시기엔 필요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후대의 역사 덕후들에게 왜 사랑받는지 알겠는 느낌.
모든 혁명에서 혁명이 일단 성공하면 정치적 변혁으로 만족하는 보수파와 그 정치적 변혁을 사회적 혁명의 첫걸음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과격파의 대립과 충돌이 일어난다. 프랑스 혁명도 마찬가지였다. (105p)
나폴레옹은 종교 자체에 아무 관심도 흥미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대중에게는 종교가 필요하고 또 종교 없이는 사회질서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에게 교회는 대중을 지도하는 훌륭한 도구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사회란 재산의 불평등 없이 성립될 수 없고, 재산의 불평등은 종교 없이 성립될 수 없다.” (221p)
나폴레옹의 역사적 필연성은 부르주아 혁명으로서의 프랑스 혁명의 종결과 완성에 있었다. 브뤼메르 쿠데타 직후 “혁명은 그 당초의 원칙에 고정된다. 혁명은 끝났다”라고 선언한 총재정부의 선언은 그 쿠데타의 성격을 정확히 표현하였다. 이 선언을 나폴레옹은 다른 말로 표현하였다. “우리는 혁명에 관한 낭만을 끝냈다. 이제 우리는 혁명의 역사를 시작해야 한다. 혁명 원칙을 적용하는 데에 현실적이고 가능한 것만을 보아야지 사변적이고 가설적인 것을 보아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통치가 아니라 철학이다.”
『1813년의 신병 이야기』(1864)라는 작품에서 주인공 조세프의 시계방 주인 굴덴은 나폴레옹의 귀경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보고 온 사람이 말하는데, 황제께서는 분명히 파리로 돌아오셨대. 군인들은 그러기를 바라고 있지. 재산에 위협을 받은 농민도 그렇고, 황제가 그 섬에서 반성하여 전쟁 같은 생각은 버리고 조약을 맺어주면 좋은데. 더구나 누구에게나 자유와 재산을 보장해 주는 좋은 헌법을 만들어주면 좋은데. 부르주아들도 나쁠 것 없지.’
코뮌 의원 동지들, 모두들 토론은 하나 아무도 따르지 않는 지휘의 책임을 나는 계속하여 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 코뮌은 토론은 하나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는다. ⋯⋯ 중앙위원회는 토론은 하나 행동할 능력이 없다. 이렇게 지체하고 있는 사이에 적은 무모하고 맹렬한 공격으로 이시 요새를 포위하고 있다. (423p)
세상의 끝
언젠가 가봐야지 벼르고 있던 해방촌의 서점 <풀무질>에 다녀왔다. 서점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생태문명, 동물해방 등의 키워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호흡이 편안해질 듯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이 책을 샀다. 비닐 포장이 되어 있어서 내부는 펼쳐보지 못했지만 포르투갈 군의관이 등장하는 전쟁소설이라는 설명만으로 충분히 구미가 당겼고 읽어보니 생각보다 취향에 잘 맞았다. 이번 분기에 읽은 소설 중에선 가장 마음 가는 문장이 많았다. 한창 외로움을 갈무리하지 못하던 시기라 나 대신 쓸쓸해하고 외로워하고 질척거려줄, 자기 연민 가득한 소설을 찾고 있었는데 (이토록 불순한 동기의 독서 이대로 괜찮은가) 거기에 아주 쏙 부합하는 책이었다. 오랫동안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던 저자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가 자신이 여태 쓴 책 중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이라고 말했던데 무슨 의미인지 알 거 같다. 셀 수 없는 아프리카의 밤은 어떤 것일까. 그걸 알 일은 없어야겠지만.
당신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난 적이 없었을까, 가까이 있다는 느낌, 오랫동안 미루어두긴 했지만 여러 해 동안 갈구했던 욕망, 당신의 절망인 동시에 희망이었던 프로젝트를 어느 한순간 성취할 거라는 그런 느낌은 가져본 적이 없었을까,.. (31p)
날 무시하지 마, 포도주 기운이 올라오면 조금 뒤에 나랑 결혼해달라고 너에게 청혼할 거야. 습관이야. 아주 외롭거나 술을 지나치게 마시면 꽉 닫힌 장롱 안에서 퍼지는 곰팡이처럼 내 안에서 결혼 프로젝트라는 작은 밀랍 부케가 갑작스레 커지기 시작해. (35p)
내 영혼을 지키는 자석 팔찌처럼 부르주아의 악몽에서 내 자신을 지키고자 침대 위에 걸어놓은 혁명 시대의 카를로스 가르델 같은 사진 속 체 게바라를 실망시키며 내가 속한 계급과 계속 공유하는 두 가지 감정이 있어, (43p)
너무나 멀고 너무나 작고 너무나 가까이 할 수 없는 별들만 보여, 불쑥 아침이 되어 날이 밝아지면 별들은 금방 사라져,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오직 오줌 누는 소리만 들리는 한밤에 깨어나서 침묵과 고요함만 존재하는 아프리카의 밤이, 셀 수 없는 아프리카의 밤이 어떤지 당신은 모를 거야, 안 그래?
라스트 울프
영문학도 아닌데 왜 <마지막 늑대>가 아니라 <라스트 울프>로 번역된 걸까? 저자가 작년에 노벨문학상을 탔다는 설명을 보고 샀는데 소설로서의 재미보다는 이게 최신 문학의 유행인가 톺아보는 분석의 재미가 더 컸다. 인간이 그간 저질러온 폭력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깊이가 너무 깊은 나머지 눈을 돌리지 못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