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다 안 봤다. 1기는 다 봤고 2기는 첫 화만 봤다.

  • 보기 힘든 애니였다. 내 마음 속에서 절대 아무도 건드리지 말았으면 하는 부분들이 건드려지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고어물이 낫지 이렇게 극도로 안타까운 상황들이라니 나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매 화에서 그런 안타까움을 느꼈지만, 애니를 그만 볼까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던 장면은 1기에서 를르슈가 셜리의 기억을 지운 후에 분수대 앞에서 고백하는 장면과 유페미아의 대학살 장면이었다.

  • 온건 vs 급진은 영원히 싸울 수 밖에 없는 주제다. 하지만 스자크는 정말 위선적이다. 물론 를르슈도 절대 선을 대표하진 않는다. 일본 독립을 외치지만 일본인을 위해서 싸우는 것도 아니고, 나나리를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정작 나나리가 뭘 원하는 지는 보려고 하지 않는다. 나나리는 자기 오빠랑 둘이 같이 사는 거에 만족하고 더 바라지 않는데 그저 자기 분과 복수심을 이기지 못해 혼자 헛짓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자크가 더 답이 없는 캐릭터다. 스자크가 잘 할 줄 아는 건 유페미아 같은 (절대 이 세상에 존재할 리가 없는)군주를 지키는 것 뿐이다. “이렇게 급진적으로 나가는 건 의미가 없어요!”라고 외치지만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생각도 해 본 적 없다. 더군다나 를르슈는 자기 속마음이야 어땠든 일본인들에게 제로로 불리는 아군이지만 스자크는 양쪽 누구에게도 아군이 아니다. 진짜로 “일본을 위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안돼요!”라고 생각하는 거라면 그걸 뒷받침해주는 행동을 단 하나라도 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

  • 결국 이건 등장인물들 전부의 삶을 망가뜨리는 이야기다. 에반게리온이 훨씬 성적이고 잔인한 장면들이 많았지만 나는 코드기어스가 더 잔인하다고 느꼈다. 희망을 얻는 사람이 없는 애니다. 를르슈의 인생도 무너졌고 스자크의 인생도 무너졌고 유페미아의 인생도 무너졌다. 셜리의 인생도 만만찮게 처절했다.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오빠가 온 세계를 들쑤시며 헛짓거리 하다가 삶이 무너졌는데 나나리에게는 그걸 말릴 기회조차 없었다.

  • 꽤나 세계관에 감정이입해서 봤는데도 를르슈의 대사에 움찔할 때가 있었다. “흑의 기사단”이라는 네이밍 센스라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