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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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디즈니에서 지켜온 굳건하고 동화 같은 법칙들을 차근차근 부숴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가령, 겨울왕국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과 어떻게 결혼을 한다는 거냐”는 엘사의 충격적인 대사가 등장했었다. 상식적으로 보면 아주 당연한 말이지만 여태 디즈니에서 처음 만난 상대와 결말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케이스는 포카혼타스밖에 없었다. 또 이전의 작품들에선 선한 얼굴과 악한 얼굴이 분명히 나누어져 있어서 한번 선한 인상으로 나왔으면 반전 없이 “착한 캐릭터”였는데, 이 클리셰도 겨울왕국에서 처음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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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에선 그러한 보수적인 세계관에서 한층 더 벗어난 모습을 보여 준다. 분명 어린이와 가족이 다함께 보는 애니메이션인데, 영화 초반부터 가족애를 아주 숨막히는 모습으로 그려낸다. 그동안의 디즈니 캐릭터들이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후 따뜻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그리고 개인의 의지나 꿈을 철저히 무시하는 집으로부터 주인공이 도망쳐 나오는 장면까지 보고 나면 디즈니의 방향성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디즈니는 이제 ‘착한 어린이’에 대한 만들어진 이미지를 버리고 어린이 역시 한 명의 인간으로 다루겠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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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사후 세계에서 만나게 된 조상들은 모두 “우리의 결정은 그 당시에 옳았어. 넌 얼른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 해!” 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조상들의 결정은 옳지 않았다. 그들은 정보가 부족했으며, 또 가족에 대한 믿음도 완벽하진 못했다. 결국 그들의 잘못된 판단이 어떤 가슴아픈 결과를 불러왔는지 눈으로 확인한 조상들은 주인공의 꿈을 막지 말자고 결심한다. 그리고 비로소 가족들의 믿음과 신뢰를 얻게 된 주인공 미구엘은 할머니의 호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담 코코에게 마지막 노래를 들려줄 수 있게 된다. 가족간의 사랑은 중요하다. 하지만 신뢰 없는 사랑은 집착과 강요로밖에 이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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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은 참 디즈니 스타일이면서도 현실적이다. 자신의 조상이 음악하다가 인생 말아먹은 게 아니라 유명 뮤지션의 허울에 가려져있던 진정한 뮤지션이라는 걸 깨닫자마자 몇 대에 걸쳐서 해오던 신발 사업을 싹 접고 ‘뮤지션의 자손’으로서 살기 시작한다. 만약 주인공의 조상이 ‘진정한 뮤지션’ 이라는 인정을 받지 못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주인공은 여전히 집의 압박을 받으며 살고 있었을 게 아닌가. 결국, 주인공의 가족은 변화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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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을 본 아이들에게는 “가족의 결정이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니다”는 가능성을 줬고 어른들에게는 “혹시 당신도 잘못된 판단으로 아이에게 강요를 하고 있지는 않나요?” 하는 의문을 던져줬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뜻 깊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