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년이 주어지면 뭘 하고 싶냐고?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일단 어글리어스 재구독하고 집밥 해먹는 삶으로 돌아갈 거다. 듀오링고로만 이어가는 독일어 공부를 확실히 붙잡아 자격증도 따고 싶다. 밀린 책도 읽어야지. 평일 수영을 가고 싶다. 남들 다 출근하는 시간대에 즐기는 수영 얼마나 평화로울까? 평일에 도서관에서 하는 시민 강좌, 사놓고 미처 하지 못한 각종 게임, 옛날 영화 도장깨기도 재밌겠고, 방통대 학위를 하나 더 따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얘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평소에도 그럭저럭 할 수 있는 것들로 들리는데 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길래 그걸 안식년까지 써가며 하고 싶은 거냐는 말을 들었다. 그런가? 그러게.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고 같이 사는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내 퇴근 후 시간은 다 누가 잡아먹길래 하루를 알차게 보낸 기억이 없는지. 요즘 집에만 돌아오면 에너지가 바닥나있다. 말할 힘도 읽을 힘도 없어서 쥐고 흔들면 동전 몇 개 없는 저금통처럼 뎅그렁뎅그렁 소리가 날 것만 같다. 지긋지긋한 AI, 덩달아 증발해 버린 자아효능감, 오랫동안 누려온 친밀함의 빈 자리, 그러나 세다 보면 밤하늘의 별이나 다름없는 이런 단상들은 쫓는 일조차 지난하다. 들고 있던 팔만 저리다.

몇 년 전 상담센터에 처음 갔을 때 어쩐 일로 오셨냐는 질문에 나는 출근길 버스에서 하차벨을 누를 힘이 없어서 왔다고 했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차벨을 누르고 카드를 태깅하고 계단에 하나하나 발을 디뎌 내리는, 일련의 과정이 누가 쭉 잡아 늘려놓은 것처럼 아주 길게 느껴져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부터 숨이 차고 물이 차오르는 기분이라고. 신상의 변화라곤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랬다. 그 뒤로 풀 배터리 검사도 받고 상담도 받고 진단명도 받고 했는데, 현대 의학의 권위가 보증하는 ‘당신은 휴식이 필요합니다’ 뱃지가 무척 달콤했던 것에 비해 상담이 끝났을 때 내가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진 않았다. 나는 여전히 나였고 물은 여전히 차오르는데 그저 덜 놀라게 됐을 뿐이었다. 그래 올 때 됐으니 오겠지. 갈 때 되면 가겠지. 옛날엔 내가 왜 지쳤는지 스스로 이해하기 위해 A4 네 장 분량의 자아성찰 일기를 쓰다 더욱 끔찍해진 기분으로 잠들었다면 지금은 그냥 유튜브 보다가 잔다. 납득해야 한다는 강박을 포기하니까 편해졌다.

안식년도 마찬가지다. 아마 내가 가질 안식년의 가장 큰 행복은 위에 서술한 활동들보다 사회에 연결되어 있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에서 올 것이다. AI 얘기 더 안 들어도 돼. ‘AI를 맹신하진 않지만 또 시대에 아예 뒤쳐진 사람처럼 눈 감고 있진 않고 따라갈 건 적당히 따라가는 IT 분야 개발자’로 나를 조각하지 않아도 돼. 반도체 하이닉스 엔비디아 테슬라 얘기도 더 안 들어도 돼. 내가 왜 이렇게 못 견뎌 하는지, 왜 이리 사회를 따라가는 게 힘든지, 숨이 차는지 설명할 언어를 찾지 않아도 돼. 남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아도 돼. 가랑이 찢어지는 뱁새의 고통은 이제 지긋지긋해. 나는 은둔이 하고 싶어!

그렇게 생각하고 내가 쓴 안식년 버킷리스트를 다시 보니, 사람을 만날 만한 활동이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