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맛
안되겠다. 주어진 주제로는 못 쓸 거 같다. 주제를 보고 나흘이 지난 지금까지도 떠오르는 게 없다. 나의 욕망을 마주하기, 타자를 마주하기, 현실을 마주하기, 질투가 나는 사람을 마주하기, 뭔가의 감정을 마주했던 영화, 아니면 그냥 마주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소설 쓰기, 나를 위한 글을 추구할지 독자의 재미를 추구할지 별별 각도에서 다 생각해 봤는데 생각나는 게 없다. 한창 2차 창작할 때는 무슨 상상력이 넘쳐서 매주 5천자 내외의 단편 로맨스를 쏟아냈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이번 주말 양일 모두 약속이 있기 때문에 오늘까지 초안도 못 잡으면 위험할 거 같아서, 그리고 사실 회사 가기 싫어서 반차까지 쓰고 카페에 내리 네 시간을 앉아 고민해 봤는데 여전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쓰고 싶은 걸 쓰기로 했다.
내일부터 열흘간 서울에서 옥토버페스트가 열린다. 뮌헨에서 매년 하는 그 유명한 맥주 축제 맞다. 뮌헨 시에서 허가를 내주면 다른 나라에서도 열 수 있는 모양인지 올해 처음으로 서울에서 뮌헨시 공식 인증을 받은 옥토버페스트가 열린다는데 나는 친구가 먼저 연락을 줘서 냉큼 다음주에 약속을 잡았다. 축제에서 판매하는 맥주 목록에서 밤베르크 훈연 맥주의 존재를 확인한 이후로 마음은 이미 상암동 문화비축기지에 가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유체이탈 상태다. 과연 듀오링고 연속 학습 174일의 레벨 12 독일어는 그곳에서 티끌만한 의미라도 발휘할 것인가? 다 한국어로 써 있을 거 알지만 상상은 해볼 수 있잖아.
술을 좋아하냐는 질문엔 사족을 많이 달아야 한다. 한 테이블 규모를 넘어가는 술자리는 일단 사교성이 부족해서 못 따라간다. 술을 강권하는 자리는 딱 질색이다. 인류가 지난 역사 속에서 술이라는 단어에 쌓아온 이미지와 환상, 강렬한 유혹과 친애의 집약체인 듯한 그 울림을 좋아하는 거지 실제로 술의 맛을 좋아하냐면 애매하다. 그렇지만 술 좋아한다는 뱃지를 달고 있음으로서 사람들이 나를 더 편하게 대하고 가까이 해준다면 기꺼이 달고 있을 만큼은 좋아한다. 친화력은 바닥을 치는데 외로움은 타는 내향인에게 이만한 매직 아이템이 없다. 하물며 이 환상적인 가을 날씨에 천막 아래서 마시는 맥주? 멋들어지게 옥토버페스트와 밤베르크의 이름까지 곁들여서? 가야지 꼭 가야지.
밤베르크 하면 아직도 떠오른다. 작년 이맘때쯤 큰맘 먹고 홀로 갔던 유럽여행에서 가장 고되고 외로웠던 사흘차, 가져온 옷 중에 제일 두꺼운 걸 입고 목도리를 둘둘 둘러도 막아지지 않던 추위, 종일 내린 비와 우중충한 하늘, 잔뜩 기대했는데 보수 중이어서 입장할 수 없었던 관광지, 활기보다 고즈넉한 침묵이 아름다운 뉘른베르크와 밤베르크는 그즈음 내 안에서 뼛속까지 스민 우울의 도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특히 비를 피해 예정보다 일찍 들어간 슐렌케를라 양조장에서는 거의 넋이 나간 상태였다. 춥고 다리 아픈데 앉을 곳은 없지, 맥주잔 계속 들고 있느라 팔 저리지, 테이크아웃으로 받으신 분은 실내에서 드시면 안 된다고 직원한테 면박도 듣지, 자꾸만 나를 스쳐지나는 복작복작한 인파를 피해 구석데기에 찌그러져 흡사 한증막에 가까운 습기 속에서 한 모금씩 축였던 맥주의 훈연향이 지금도 선명하다. 그때 읽었던 전자책도. 그것이 고생의 맛이라면 서울에서도 그 기억 속 맛이 날지는 모를 일이다.
맛있다는 개념은 사실 무척 연극적이지 않을까? 하고 불현듯 음모론적 주장을 해 본다. 그도 그럴 게 가을 날씨에 맥주가 맛있다는 건 그냥 술쟁이들이 하는 소리다. 비 오면 비가 와서 막걸리를 마시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사케를 마실 사람들이다. 그리고 밤베르크 훈연 맥주에 내가 기대하는 건 맛보다는 추억 회상용 매개다. 부여된 이미지, 사회적 각본 없이 순수한 맛이라는 게 존재하는지 나는 언제나 회의적이다. 주변에 이런 흰소리를 자주 설파하고 다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사람들이 커피를 마실 때 하는 말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는 신맛을 좋아해요, 저는 더 길게 우린 걸 좋아해요, 산미가 어떻고 바디감이 어떻고, 정말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그냥 그런 용어들을 줄줄이 꿰고 있고 내 취향은 이거라고 말할 줄 알아야 요즘 사람 대접 받는 거 같아서 아무 단어나 주워섬길 뿐 뭐가 어쨌다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이게 트루먼 쇼가 아닐 리 없어. 차와 술도 마찬가지다. 첫맛이 어떻고 끝맛이 어떻고, 똑같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을 뿐더러 평생을 이 무딘 감각과 함께해 온 입장에선 아예 발 담근 세계관이 다르다고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은 정말 그런 맛을 인지하는 거야? 나만 모른다고?
음식을 입에 넣을 때 내가 가장 먼저 찾는 건 미뢰의 감각이 아니라 환상이다. 내게 있어 맛은 거의 실체 없는 허상에 지나지 않고 환상이 훨씬 ‘진짜’에 가깝다. 유럽에서 먹어 본 어떤 치즈도 황홀하게 맛있지 않았지만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 나오는 염소 젖으로 만든 치즈는 여전히 궁금하다. <화산귀환>에서 청명이 백자배 청자배를 뒤로 하고 지붕 위에서 홀로 마시는 독주, <문과라도 안 죄송한 이세계로 감>에서 프란과 클레이오가 기울이던 미지근한 병맥주는 몇 번을 상상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작품에 몰입한 독자의 너스레가 아니라 정말로, 환상만이 유일하게 진실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처음 한 건 코로나 시기에 진행한 온라인 TRPG에서였다. 때는 2020년 크리스마스. 방에서 아무리 캐롤을 들어도 연말 기분이 나지 않고 밖에 나가고 싶어 거의 죽어가던 즈음 우연히 TRPG를 시작했다. TRPG는 간단히 설명하자면 여럿이서 하는 스토리 만들기 게임인데, 종류가 다양하지만 대체로 각자 캐릭터를 하나씩 맡아 롤플레잉을 하면서 자기가 할 대사와 행동을 정하고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방식이 많다. 내가 했던 게임은 그중에서도 중세 기반 판타지 배경의 <제13시대>였다.
게임의 스토리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눈보라가 몰아치는 설산을 힘겹게 올라 중턱에 있는 작은 여관에 잠시 신세를 지며 서로 통성명하는 것이 캐릭터들이 만나는 첫 장면이었고, 그날의 설산과 펍에서 기울인 뜨끈한 술을 지금까지 잊을 수 없을 뿐이다. 판타지에선 클리셰나 다름없는 장면이지만 독자의 시선에서 얻는 몰입과 스토리 진행에 주도권을 가진 플레이어로써 얻는 몰입은 결이 완전히 달랐다. 게다가 당시 게임 마스터는 게임에 무척 엄격한 사람이었다. 각 장소에 맞게 미리 준비해둔 BGM과 웬만한 소설 못지않은 서술, 공들인 연출, 가벼운 즐거움보다는 완성도 있는 플레이를 추구하던 그는 플레이어에게도 똑같은 참여도를 요구했다. 그날의 인연으로 장장 일 년간 함께 TRPG를 하며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그는 내가 만들어간 캐릭터에 연속 아홉 번 퇴짜를 놓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완성한 환상의 맛은 진짜 기가 막히긴 했다. 가본 적 없는 설산, 마셔본 적 없는 술, 그러나 그것만큼 내게 진실한 그리움을 주는 맛이 여전히 없을 만큼.
이걸 맛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이쪽이 진짜라는 걸 알 텐데⋯. 입밖으로 내지 않을 뿐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강배전과 중배전과 중강배전의 가격을 각각 다르게 받는 카페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