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불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를 며칠 전에 다 읽었다. 지난주부터 내 머릿속에는 <레 미제라블> 뮤지컬의 바리케이드 씬이 24시간 상영 중이다. Barricade! 그리고 가끔 디즈니 애니메이션 <노틀담의 꼽추>의 에스메랄다가 땅을 거닐며 노래를 부른다. God Help the Outcasts. 비록 <노틀담의 꼽추>는 19세기가 아니라 15세기 배경이고 원작 소설인 <파리의 노트르담>과는 줄거리도 상당히 다르지만, 아무튼 작가가 빅토르 위고니까.
누가 취미를 물으면 제일 먼저 독서라고 말하긴 해도 그만큼 책을 많이 읽느냐 하면 잘 모르겠다. 나도 웹툰과 유튜브 숏츠에 시간을 써버릴 때가 있고 어제만 해도 웹툰 보다가 새벽 네 시에 잤다. 책을 붙들고만 있을 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할 때도 많고 연말에 올해 독서 기록을 탑처럼 쌓아 SNS에 올리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들은 혹시 책을 씹어먹었나 싶다. 다들 어떻게 그렇게 많이 읽을까. 입안에 맴도는 말은 많지만 내뱉으면 결국 핑계뿐이다. 좋아하는 유튜버가 ‘ㅇㅇ님은 어떻게 그렇게 책을 많이 읽으시나요’ 하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떠올린다던 답이 있다. ‘일단 책부터 펴라고 500번 말했다.’ 최근에 친해진, 프랑스어와 독일어와 라틴어와 콥트어를 할 줄 안다는 지인에게 어쩌다 그런 공부를 하게 되었냐고 물었을 때 들은 답도 있다. ‘읽고 싶은 책이 그 언어로밖에 안 쓰여 있으면 언어 공부를 하게 돼요.’ 우문현답도 정도가 있지.
온실 속의 독자로 자라 한국어로 된 책밖에 읽지 않는 내가 책이 잘 안 읽힌다고 말하면 좀 이상하지만 요근래 몇 달은 읽은 권수 대비 한순간이라도 집중과 몰입의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던 책이 손에 꼽았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였다. 책이 기똥차게 잘 쓰였냐고? 어⋯. 이 주제에 관심 없는 사람을 입담으로 휘어잡을 만한 책은 아니다. 그런 걸 원한다면 분야는 다르지만 <스티븐 프라이의 그리스 신화>를 넘어서는 책을 본 적이 없다. 그럼 좀 인자하고 존경할 만한 어르신의 역사 강의 같느냐, 그건 강유원 교수님이 더 전문이다. <역사 고전 강의>와 <책과 세계>는 여전히 그 빛이 바래지 않았다. 사실 이번에 읽은 책은 1980년에 처음 출간된 걸 2011년에 개정한 게 마지막이라 낡은 문장도 왕왕 있었다. 예를 들면 ‘처녀연설’ 같은 표현. 와, 너무 오랜만이라 솔직히 좀 웃었다.
이 책이 재밌었던 건 그저 내가 이 주제에 관심이 있고, 관심 있는 사람이 읽기엔 충분히 직관적이고 자세하고 군더더기 없이 뜨겁게 쓰여서였다. 뜨겁다는 표현이 이 이상 어울릴 수 없다. 저자가 유신 체제에 항의하다가 교수직에서 해임되어 혁명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는 배경을 몰라도, 이 책이 1980년대 대학가의 필독 도서였다는 사실을 몰라도, 그저 어느 시대의 역사를 읽는 것만으로 마음에 불이 붙는 경험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현실의 나는 에어컨 바람이 내리쬐는 초여름의 카페에 앉아 빨대 꽂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쫙쫙 땡기고 있는데 책을 읽는 눈은 19세기의 타오르는 불을 들여다보느라 마음이 가없이 뜨거워 일순 여기가 어디인가 하는 착각이 들 때, 그 유리감이야말로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다. 지나간 시대의 고군분투는 언제나 내 두 발을 지리멸렬한 현실에서 잠깐 띄워준다. 소설 중에선 조선희의 <세 여자>가 그랬고 올해 읽은 또다른 책 중에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 그랬다. <세 여자>는 아무 생각없이 1권만 샀다가 그날 저녁에 다 읽고 밤을 지새워 다음날 교보문고 문 열자마자 2권을 샀었지.
여기까지 얘기하면 ‘그래, 역시 좌파 혁명 서사가 재밌어’ 하고 반응해주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가. 사실 그 분류법은 잘 모르겠다. 왜냐면 <레 미제라블> 뮤지컬에서 멋지게 펄럭이는 삼색기와 달리 프랑스 혁명의 끝은 결국 파리 코뮌이고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멤버들은 상당수가 아직 국제 수배 중인 테러리스트니까. 소위 ‘혁명’의 찬란한 순간은 찰나에 불과하고 나머진 전부 그에 따른 후폭풍이니, 프랑스 삼색기의 의미가 과연 자유와 평등과 박애인지 혁명과 전쟁과 쿠데타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좌파’ 파트도 애매하긴 마찬가지다. 역사책을 제외하면 내가 이번 분기에 제일 재밌게 읽은 저자는 칼 슈미트였다. 프랑스 혁명사도 좋아하지만 독재와 전체주의를 정당화했던 나치 법학자의 에세이도 재밌어한다면 그건 좌일까 우일까. 그냥 아무거나 다 좋아하는 사람 아닐까. 아무튼 내 마음에 흥미의 불을 당겨주는 책이 좋다. 책을 읽고 무슨 성찰을 해서 가치관을 다져서 이전보다 더 나은 내가 되겠다는 성장의 관점은 애진작에 내다버렸고, 같은 세대의 한 줌 독서인들 사이에서라도 소외감 느끼지 않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 시류를 쫓아가려던 의지도 많이 잃었다. 아 미안합니다. 먼저 출발하세요. 여성 서사와 여성적 읽기 버스 출발하시구요. 자기 이론과 디아스포라 버스도 출발하시구요. 한국 현대 소설 버스 아직 출발 안 하셨어요? 가세요 가세요. 저는 그냥 저 뒤에 오시는 4050 아저씨들이랑 걸어갈게요. 알라딘 구매 통계 보니까 역사책은 그분들이 제일 많이 사시더라구요.
취향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서야 책장을 정리했다. 이제 내 책장을 보면 나조차 숨이 막힌다. 잘만 휘두르면 칼보다 살상력이 높을 듯한 벽돌이 하나둘셋넷다섯⋯. 언제 다 읽지? 언제가 되어야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세상을 더 이상 쫓지 않고 종일 책만 읽으며 살 수 있지?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의 꿈은 셜록 홈즈 소설에 자주 나오는 할아버지처럼 사는 것인데, 그러니까 매주 일요일 같은 시각 같은 클럽에서 신문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동년배 친구들과 포커를 치며 궁시렁대는 칸트 같은 삶을 살다가 동네에서 이상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홈즈에게 흠, 안 그래도 A씨가 좀 이상한 말을 하더군, 같은 증언을 해 줄 수 있는 동네 토박이 할아버지가 간절하게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그 꿈을 이룰 수 있는지 도통 모르겠다. <강철왕국 프로이센>, <독일 교양 이데올로기와 비전>, <지배에서 통치로 - 근대적 통치성의 탄생>, 이렇게 제목만 읊어도 울림이 아름다운 책들이 이미 책장에 있는데 말이다. 물론 하나같이 세상살이에 도움이 되긴커녕 같이 읽어줄 독서 모임조차 못 만들 거 같지만.
하지만 아직은 프랑스 혁명이다. 아직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지 이제 나흘쯤 지났는데도 아직 불길이 꺼지지 않았다. 로베스피에르와 자코뱅과 거기서 파생된 수많은 픽션 캐릭터가 내 안에 살아 숨쉬고, 알라딘 장바구니에서는 <테르미도르> 1~5권 전권 세트가 살아 숨쉰다. 안 되겠어. 빨리 다음 책 읽으러 가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