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삐. 띠-리-리. 당신은 언제 잠이 들었냐는듯 잠에서 깨어납니다. 소리를 듣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소리의 첫 음이 울림과 동시에 당신은 이미 일어나 있습니다. 당신은 휴대폰을 들어 정확한 시간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침대 바로 옆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보건대 지금이 아직 한밤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마치 5분도 채 안 되는 선잠을 잔 것 같기도 하고, 동시에 오늘이 며칠이었고 무슨 요일이었는지 완전히 잊을 만큼 깊은 잠에 빠졌다가 뺨을 한 대 맞고 억지로 끄집어내진 것 같기도 합니다.

당신은 창문을 향해 몸을 돌린 채 자고 있었습니다. 옆으로 돌아누워 자는 건 당신이 오랫동안 고치지 못한 습관입니다. 큼지막한 크기의 통유리 창문에는 두꺼운 암막 커튼이 꼼꼼하게 쳐져 있고 커튼과 커튼 사이로는 아주 약간의 빛만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커튼이 없었다면 바깥 풍경과 창문에 비치는 방 전체의 옅은 그림자를 볼 수 있었겠지만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창문을 향해 누워 있는 한 당신은 집안의 상황을 전혀 파악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침착하게 생각합니다. 잘못 들었을 수도 있고, 내가 착각했을 수도 있고, 만에 하나 정말로 위험한 상황이라면 이렇게 누워있어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당신은 빨리 일어나야 한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나 몸이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시선. 당신은 말없는 시선을 느낍니다. 여전히 당신은 창문을 향해 누워 있고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소리의 주인은 어느새 지척에 다가와 있습니다. 침대 바로 앞에, 언제든지 손만 휘두르면 당신에게 닿을 곳에. 당신은 인기척을 느꼈다고 확신합니다. 그곳에 누군가가 서있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침착하게 생각합니다. 당신 역시 젊었을 적에는 술을 진탕 먹고 엉뚱한 층, 엉뚱한 호수의 집을 찾아가 왜 도어락 비밀번호가 맞질 않냐며 여러 번 두드린 경험이 있고 새벽 세 시에 도어락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건 당신이 사는 건물에서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닙니다. 당신은 이해하고, 반추하고, 마침내 결론을 내립니다. 착각일 가능성이 가장 높고, 문이 제대로 닫겨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그 다음으로 높고, 그냥 술에 취해서 여기가 제 집이 아닌 줄도 모르고 들어온 취객일뿐 구체적인 악의가 있지 않을 가능성이 그 다음으로 높습니다.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선 역시 지금이라도 움직여야 한다고 당신은 다짐합니다. 그러나 몸은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시선의 주인이 그 무엇도 하지 않은채 그저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당신의 귀에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시도때도 없이 울리던 낡은 보일러 소리, 새벽녘에도 가끔 들려오던 길거리 소음, 침대에서 여름용 요와 이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당신 자신의 숨소리도, 침을 삼키는 소리도, 무엇 하나 들리지 않은채 세상이 멈췄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곳에 있는 건 여전히 창문을 향해 누워 있는 당신과 그런 당신을 바라보는 침대 곁의 누군가뿐입니다. 당신은 부엌의 식칼이 어디 있었는지, 그보다 가까운 문구용 칼은 어디 있었는지 차례차례 떠올려 보지만 정말로 그런 게 필요한 상황이라면 아마 거기까지 도달하기는 불가능하리라는 사실도 예감합니다.

당신은 이 상황이 무척이나 끔찍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동시에 어딘가 기시감이 듭니다. 이 일의 전말을 당신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과거에 몇번이고 겪었던 일을 매번 처음처럼 기억하는 것 같기도 하고, 미래에 언젠가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일을 지금 겪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당신은 이것이 맞서야 할 순간인지 체념해야 할 순간인지 알 수 없습니다. 어떠한 소리도 없이 시간이 멈춘 곳에서 당신은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침대에 달라붙어 있는 피부 하나하나를 억지로 뜯어낸다는 마음으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움직입니다. 긴장으로 뻣뻣해진 근육을 티끌만큼이나마 가누려고 애쓰며 조금씩, 그리고 당신을 내려다보는 말없는 인영의 크기를 어림짐작하며 또 조금씩, 당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하지 못할 일을 두 손에 꼽아가며 조금씩.

그리고 당신은 마침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