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돌이표
출근 준비가 한창일 땐 아무리 찾아도 머리끈이 보이지 않는다. 매일 머리를 묶고 나가는데, 어제만 해도 책상 위에 잔뜩 쌓여있던 고무줄 머리끈은 다 어디로 갔냐며 공연히 화를 내다 보면 내가 머리끈 때문에 화를 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갈 때즈음 어디서 하나가 불쑥 튀어나온다. 나는 아무데도 간 적이 없고 네가 멍청할 뿐이라는듯. 요즘은 매일매일이 그렇다. 7년간 다닌 회사를 떠난지 반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종종 삐걱거린다. 사내 시스템에 접속하면서 나도 모르게 이전 회사 사번을 쳐넣고 있거나, 전 회사 사람들과 함께하는 술자리에서 집에 온 듯한 편안함을 느낄 때가 그렇다. 사실 이직한 회사에서 첫 회식을 한 날엔 집에 돌아와 조금 울었다. 회식에선 아무 일도 없었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친절했다. 다만 7년치 발판을 떼고 남은 내가 생각보다 빈약했다. 나는 그게 단순히 적응의 문제라고, 시간이 지나면 모두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또 잘 모르겠다. 그저 20대가 지나갔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 20대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설명할 재주는 없지만. 나를 붙들어줄 새 기둥을 찾아 돌아다니면서도 마음에 정처가 없다. 7년치 발판을 버리고 나올 때 분명 목표한 바가 있었고 각오도 다졌을 텐데, 생생한 두려움 앞에서 기억은 고무줄 머리끈처럼 휘발된다. 나는 잊고 떠올리고 다시 잊는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어느 날엔 지금부터라도 투자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에 다시 휩쓸리고 어느 날엔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따위의 키워드를 손에 쥔 채 방황하다가 어느 날엔 밀물처럼 들이닥치는 불안에 입을 다문다. 표면적으로는 새 회사 새 업무라는 변화, 30대의 나이, AI의 발전, AI가 내 직업을 앗아가면 난 뭘 먹고 사나 하는 걱정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실 진짜 근저에 깔려 있는 건 혼자되는 두려움이다. 회사에 고용된 월급쟁이가 아니면, 그래서 강제로라도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환경이 아니면 내가 과연 사회에 연결되어 있기는 할까? 매일 출근해서 하루 8시간씩 일하는 지금도 이토록 뿌리내릴 방법을 모르겠는데? 절실히 깨닫건데 나는 그 유리감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며칠 전 이전 직장 동료들과 술을 마시며 그런 생각을 했다. 누가 나를 필요로 하고, 네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그런 효능감을 충족시킬 수만 있다면 나는 극우도 될 수 있을 거 같다고. 나와의 스킨십을 부담스럽지 않게 여겨주는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다면 가치관 따위는 술 한 잔에 바닥에 처박을 수 있을 거 같다. 그러니까 책 열심히 읽고 쌓은 생각이 별로 소용이 없다. 그 무엇도 나를 외로움에 강한 인간으로 만들어주진 못했다. 그런 와중에 친구들을 만나면 그들은 또 나를 휘저어 놓는다. 좋든 싫든. 때로는 내 모순에 내가 한숨이 나온다. 우직하게 제 갈길 가는 친구들이 부럽고, 나도 노선을 확실히 하고 싶고, 나를 좋게 봐주는 친구들의 기대에 부응도 하고 싶은데, 그래서 다짐을 잊는 일이 없게끔 손 닿는 모든 자리에 마음을 새겨 뒀는데 왜 아침이 되면 전부 사라지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걸까? 올해 안에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결국 난 뭘 하고 싶었는지. 반년째 그 고민이다. 아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