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시작했던 아카이빙이 드디어 끝이 났다. 농놀 카테고리에 대한 마음을 정하면서 속도가 붙은 것도 있고 작년 말 이후로는 트위터에 회의가 커져서 전만큼 트윗을 많이 쓰지 않았던 덕분에 예상보다 조금 더 빨리 마무리가 됐다. 이제 나의 5년치 트윗은 모두 개인 블로그의 아카이빙 페이지에, 내가 언제든지 숨기거나 삭제할 수 있는 공간에 있다. 5년간 써 온 트위터 계정은 아카이빙이 끝나자마자 비활성화했다. 그래야겠다고 정해놓고 시작한 건 아니었는데 작년 말의 아카이빙을 거치며 자연스레 마음이 굳어졌다. 그래도 아예 그만두긴 힘들 거 같아서 조금 더 단촐하게 쓸 새 계정을 팠고, 지금까진 이 변화에 만족하는 중이다. 프로필 사진과 닉네임을 바꾸고 팔로잉/팔로워를 정리했을 뿐인데 이렇게나 새 사람이 된 기분이 든다니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 한편 커리어 쪽에서는 이직 면접이 진행 중이다. 이직 생각은 작년부터 하고 있었다. 여기서 이직 생각이란 말그대로 단상(斷想)의 의미로 이직을 해야겠다는 확고한 의지나 확신이 아니다. 그건 지금 회사에서 일한 7년 넘는 시간동안 한번도 단단하게 굳어진 적이 없다. 끓어오른 적은 있어도 100도씨에 도달한 적이 없다. 내가 나를 아는데 나는 회사 내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겨서 도저히 저 인간이랑은 일을 못하겠다 싶을 때나 망설임 없이 이직하지, 이 회사에 비전이 없다거나 성장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이직을 결심하진 않기 때문이다. 지금 같이 일하는 팀원들에게 나는 조금도 불만이 없다. 배울 게 많은 동료들이고, 오래 봐 왔어서 편하고, 개발팀치고 여성 비율도 높은 편이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부분이다.

내가 이직에 대한 얘기를 꺼내면 SNS를 많이 하는 친구들은 대개 ‘그래, 이직하고 싶을 만하지’ 같은 반응을 한다. 거기서 얼마만큼의 숨은 뜻을 읽어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여성혐오를 하는 회사. 불매운동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회사. 그런 이미지일까? 하지만 아마 7년간 이곳에 몸담았던 내가 바라보는 회사와 그 친구들이 바라보는 회사는 영원히 같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좁혀지지 않는 어떤 간극이 있을 것이다. 작년 말엔 실시간 트렌드에서 회사 이름이 사라지지 않는 트위터 타임라인을 내리다 지쳐 나가 떨어지기도 여러 번이었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소비자보다 공급자에 가까운 입장이므로 마음 편하게 욕할 수도 없었고, 애초에 그럴 마음도 들지 않았다. 트위터에 쏟아졌던 수많은 비판과 조롱은 우리 회사 임원들에겐 아마 닿지 않았다. 대신 나에게 닿았다. 플랫폼이란 게 대체 뭘까, 하는 고민은 실은 거기서 출발하기도 했다.

차라리 SNS에서 사람들이 말하던 것처럼 특정 회사의 잘못된 판단, 특정 임원의 책임이라면 편했을 것이다. 그럼 이 회사를 떠나 저 회사로 옮기고 나면 더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내가 오랜 시간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대기업에 ‘윤리’를 기대하는 게 문장 자체로 어느 정도 모순이라는 것이다. 나는 기업이 스스로 윤리적인 주체로 성장할 가능성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이다. 간혹 선한 기업으로 알려지는 곳도 창업주 개인의 신념을 회사의 의사결정에 반영시킨 경우가 대다수지 (그래서 때론 이게 더 적신호로 보이기도 한다. 창업주가 선한 사람일 뿐 시스템은 왕정제라면, 다음 왕이 즉위할 땐 어떻게 되는 것인가?) 기업 문화 전반이 바뀐 곳은 들어본 적이 없다. 어떻게 해야 그런 변화를 만들 수 있을지도 머리 터지게 고민해 봤지만 모르겠다. 내가 아는 기업에 더 깊은 책임을 강제하는 방법은 딱 하나뿐인데, 윤리에 법의 포장지를 둘러 규제를 만든 다음 규제를 지키지 않으면 돈을 못 벌게 하면 된다. 이게 지금으로선 가장 현실적이고 효율이 좋은 길이다. 하지만 결국은 윤리적 고민을 외주화하는 것이므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고, 역시 답은 모르겠다.

그러니 이직을 한다고 마음이 더 가벼워지진 않을 것이다. 어쨌건 대기업을 다니며 높은 연봉과 복지를 누리는 사람으로서, 또 그런 대기업의 플랫폼을 사용하고 이점을 누리는 사용자로서, 나아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이러나저러나 벗어날 수 없는 책임이다. 최근 친구들과 이런 얘기를 조금 터놓고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나온 결론도 비슷했다. 이 사회에서 씹새끼로 살지 않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금이나마 덜 씹새끼로 살지 않기 위해 노력할 뿐이지. 덜 씹새끼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당신에게 박수를. 그런 의미에서 트위터 아카이빙도 이직도 결국 내 안에선 뿌리가 같은 고민이다. 덜 씹새끼가 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첫 번째 일은, 아주 크나큰 씹새끼에게 그간 의존하고 있었던 부분들을 조금씩 떨쳐내는 것이다. 나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플랫폼을 사용함으로서 자본과 기업의 영속, 착취에 기여하는 행위들. 넘쳐나는 사진과 동영상. 주소창에 자동완성되는 chatgpt.com 과, 가까워지긴 쉬워도 멀어지긴 참 어려운 수많은 편의들. 그리고 내가 그 씹새끼 자본주의에게 받는 월급.

올해 초에, 2030년이 되기 전까지 삶의 다른 방식을 찾아야겠다는 이야기를 친구와 우스갯소리처럼 했었다. 이제 그 생각은 점점 나의 5개년 목표가 되어가고 있다.

p.s.

  • 새 계정을 만들면서 나름대로 생각한 목표들이 있다. 1. 책 내용은 더 이상 사진으로 찍어 올리지 않기. 사진과 동영상은 반드시 그 포맷이어야 하는 컨텐츠에서만 사용하기. 2. SNS에 뭔가를 올릴 땐 백업본에 대해 고민하기. 적어도 어느 한 시기의 내 삶이 통째로 특정 플랫폼에만 남아 있어 종속을 끊을 수 없는 상황은 피하기. 3. SNS를 활발하게 해야만 세상의 재미를 다 따라갈 수 있는 거라면, 그냥 좀 재미없게 사는 것도 옵션으로 고려하기.
  • 나와 함께 씹새끼론을 펼쳐준 친구들은 동네 TRPG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거진 일년 만에 만나는 거였는데, 내가 회사 얘기를 꺼내자마자 ‘안그래도 작년에 트위터 보면서 네 걱정을 했다’고 말해준 것에 잠깐 눈물이 찔끔했다는 사실은 비밀이다⋯ 근데 충분히 징징거렸기 때문에 이미 알아챘을지도.
  • 사실 면접은 아직 최종까지 가지도 않았고 현재진행형이다. 근데 벌써 이런 글을 써 버렸으니 불합격하면 이제 이 글은 갈 곳이 없다. 이직을 하든 하지 않든 그 자체가 아주 큰 변화는 아니라고 스스로 충분히 다독였는데도, 역시 불합격보단 합격이 2만8천배쯤 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