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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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독립영화관 채널에서 광복절 특집으로 편성했던 다큐멘터리 영화. 이 영화를 보는 게 수신료의 가치라는 말을 듣고 호기심에 일정을 기억해뒀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이걸 광복절 특집으로 편성한 KBS의 기개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광복절은 속되게 말해 모든 시민들이 잠시 애국보수가 되는 날이다. 국가 정체성, 국가의 이름 아래 하나된 우리, 지금의 이 나라를 있게 한 애국열사들과 위인의 이름이 중요하지 새로이 개편된 질서에서 외면당하고 추방당한 사람들의 이름은, 적어도 국가 기념일에는 잘 거론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귀 기울이는 일은 우리에게 일체감과 고양감이 아닌 죄책감과 복잡함을 안겨준다. 하지만 그 복잡함이 우리를 비로소 사람답게 만든다.
이 영화를 보고 고마쓰가와 사건을 처음 알게 됐다. 『되살아나는 목소리』의 감독인 박수남 씨가 당시 감옥에 있던 이진우와 주고받았던 서간을 묶은 책 『죄와 죽음과 사랑(罪と死と愛と)』이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던데, 어떤 내용인지 너무 궁금해서 찾아본 결과 한국에선 국립중앙도서관에 가는 것밖엔 읽을 방법이 없는 듯하다. 시무룩…
태풍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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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태풍클럽』을 보고 대단히 충격받은 이후 소마이 신지의 영화를 하나는 더 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마침 이번에 기획전을 하길래 『이사』를 봤다. 전반적인 인상은 『태풍클럽』이 좀 더 강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끌고 나가는 주인공 배우의 연기력이 정말 대단하다. 정확히 어느 지점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레옹』의 나탈리 포트만이 내내 겹쳐 보였다.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그렇지만 여전히 보호자가 필요한, 그 경계 어드메에 우뚝 서서 갑자기 스크린을 향해 기이한 매력을 발산하는 어린이 배우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다.
스탑 메이킹 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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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킹 헤즈의 콘서트 영화. 덕분에 한동안 『스탑 메이킹 센스』 OST 앨범을 통째로 반복재생하며 지냈다.
영화를 보면서 아마 이 장면을 가장 오래 기억할 거 같다고 생각했던 곡은 모순적이게도 This Must Be The Place 였다. 콘서트에 등장한 수많은 명곡 중 유일하게 러브송, 그 유일한 러브송이라는 설명을 먼저 봤다면 편견에 휩쓸리기 싫어서라도 이 곡을 도리어 멀리했을 텐데, 영화에서 보컬 아저씨가 램프를 껴안는 장면이 첫눈에 너무 따뜻하게 남았기 때문에 이젠 돌이킬 방법이 없게 됐다.
韓国の京浜東北線でソウルを目指す!/ 한국의 ‘케이힌토호쿠선’으로 서울에 가보자!
(이건 영화는 아니지만, 러닝 타임만 봐선 영화나 다름없고, 끼워넣을 카테고리가 딱히 없어서 약간의 뱀발로.)
덕 중의 덕은 철덕, 철도 덕후라는 말이 있다. 교통에 관련된 걸 덕질하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보통내기가 아니다. 나도 대중교통 타는 걸 즐기고, 기차 여행에 품는 낭만도 있고, 오래된 기차역의 역사나 노선도에 숨겨진 뒷얘기 같은 걸 들으면 그럭저럭 재밌어하지만 그것을 덕질의 영역으로 느껴본 적은 (아직은) 없다. 하지만 세상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첫 해외여행인데 관광 코스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오로지 기차를 타는 걸 목표로, 도쿄에서 서울까지 ‘가급적이면 기차로, 모든 역에 정차하는 것을 목표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있었다.
영상을 보고 있자면 여러가지 감상이 든다. 일차적으로는 같이 기차 여행을 다니는 거 같아 기분이 들뜨고, 한국인인 나도 가본 적 없는 역에 정차하는 외국인을 보며 신기한 마음이 들고, 동시에 나는 같은 기차를 수십 번씩 타면서도 한번도 주의깊게 들여다본 적 없는 부분들이 이 사람의 눈을 통해서 보면 모두 흥미로운 컨텐츠가 된다는 게 신선하고, 그와중에 외국인의 눈으로 보는 한국이 조금 웃기다. 앞머리에 구루프를 말고 있는 여성 승객을 여러 명 목격한 뒤 ‘그건 집에서 다 마치고 나오는 물건 아니었나요..? 겉모습에 신경을 쓰는 건지 안 쓰는 건지 약간 헷갈린다’고 말하는 것도 웃기고 모든 열차가 통과만 할 뿐 정차는 하지 않는 아포역 같은 곳을 보며 ‘이게 뭐야?’ 하는 리액션을 하시는 것도 재밌었다. 감상글을 쓰면서 다시 틀어봤는데 두 번 봐도 재밌는 걸 보고 채널 구독까지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