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페스x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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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9 오늘의 책 『알페스x퀴어』 이 책을 살 때는 제가 2차를 쓰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난 이게 내가 알페스라는 장르를 알게 되는 입문서일줄 알았지 아 물론 지금도 알페스는 잘 모릅니다마는

일본의 BL 연구자 미조구치 아키코는 “‘진짜 게이 섹스’를 누가 알고 있는가”에 대해 말하면서, “애초부터 성애는 판타지이므로 과장된 판타지가 어떤 표상을 통해 실제 판타지를 구축해 나가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섹스는 판타지이고, 판타지와 표상, 현실의 경계는 모호하며 분명 불가해한 부분이 있다. 진짜 퀴어의 섹스는 누가 알고 있는가? 퀴어 ‘당사자’는 그것을 알고 있는가? 우리는 어떠한 섹스를 ‘진짜 퀴어들의 섹스’로 규정하고 인식하는가? 그것을 규정하고 인식하는 권한은 누구에게 주어져 있는가?

그러게요 사실 퀴어 섹스가 어떤 건지 누가 알겠음 ‘이건 진짜가 아니다’는 말을 대체 누가 할 수 있을지

그래서 어떤 이들은 분노하기도 했다. “네가 퀴어라고 해서 다른 퀴어들의 이야기를 멋대로 해도 된다는 거냐? 너는 ㅇㅇ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퀴어면서.” 그리고 어떤 이들은 이것을 결국 “퀴어를 대상화, 페티시화하는 것”에 불과하다고도 했다.

‘네가 퀴어라고 해서 다른 퀴어들의 이야기를 멋대로 해도 된다는 거냐’ <- 이런 자기검열 장난 아니죠 그래서 합작 모집할 때도 트젠은 예시로 넣지 못했어 다 포용하고 싶다고 어설픈 욕심 부리느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만 건드리는 게 맞을 거 같아.. 근데 어느 게 더 비겁한 태도인진 아직도 잘

“피해자가 있기 때문이죠”라는 답은 완전하지 않다. ‘피해자’란 대체 무엇인가? 피해자로 정체화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며, 그러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당사작’가 언짢은 모든 행위 일체는 ‘가해’이며 ‘혐오’가 되는가? 우리가 겪는 주변화, 배제, 종속의 상처를 모두 ‘피해’라고 볼 수 있는가? 사실 인간의 실존 자체도 모두 억압당한 경험으로 구성되며, 모든 것이 ‘피해’ 아닌가? 결국 ‘피해자성’을 강조한 정체성 정치는 어떤 결과를 낳는가?

맞아 이거 너무 가불기야 뭔 말만 하려면 이거 당사자성 발화다 (그러니까 첫 줄만 읽고 냅다 싸불 멕이지 말고 좀 들어봐라) 나 피해자 경험 있다 (그러니까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들어봐라!) 해야 한다고 도대체 평생 한번도 ‘가해’하지 않고 산 사람이 세상에 있긴 한지

수많은 사건들이 퀴어 커뮤니티를 치고 지나가지만 많은 경우 당사자들이 커뮤니티에서 사라지고 그냥 허무하게 끝이 나서 결과가 사라진다. 역사가 축적되지 못해서 모든 것이 흐르지 못하고 자주 끊어진다. 많은 프로젝트가 엎어지고, 엎어진 이유는 과거에 비슷한 프로젝트가 엎어졌던 이유와 비슷하지만 서로를 가르쳐주지는 못한다. 우리에게는 연속성이 없고 과거도 미래도 없다. 모두가 떠들고 싶어 하지만 이질적이고 조각난 현재가 와글댈 뿐이다. 공간적 광란은 트위터 퀴어 계정들, ‘탑엘’ 어플과 같은 인터넷 속 퀴어 공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모순되는 부분 없게/일관성 있게/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행위 자체가 누군가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지 않나 싶죠 그 일관성이라는 단어조차 실은 역사적으로 다수를 차지한 사람들에 의해 정의된 것이고.. 어떤 우주에선 매일매일 엉망진창 퀴어하게 사는 게 ‘일관적’인 걸 수도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