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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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6 세상에세상ㅇ에세상에 햄릿 또 해요??!?! 필석 배우님 햄릿 또 해??!!?! 미쳣다 도파민 풀 충전

배삼식 선생님 각색의 그 햄릿이 맞잖아!!!!!! 오마이갓 나이거또보러가야해

2024-05-22 [세로라이브] 배우 강필석, 김지현 - 그게 나의 전부란 걸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저는 강필석 배우님이 너무 좋아요⋯

근데 사실 이거 보러 들어간 거였음 “너무 싫어 셰익스피어”

2024-06-15 나 정말 너무 떨려 이 햄릿을 또 볼 생각에

오로지 강필석 배우님의 햄릿과 박정자 배우님의 배우1 역을 믿고 왔음 나머진 잘 모름 더구나 오필리어 역은 처음 뵙는 분이네요 각본은 22년과 같을 텐데 두근두근

후기: 오필리어 역 하신 분의 연기가 좀 더 무르익은 뒤에 다시 볼 수 있을까.. 처음에 레어티스 배웅하는 씬에서 너무 말괄량이 톤이라 나중에 독백할 때 톤이랑 따로 놀고 2막에서 미친 연기할 때도 너무 정직하게 나 미쳤어요 나 울어요 라서 어딘가 따로 논다는 느낌

물론 햄릿이 총을 쏘고 폴로니어스는 휴대전화를 쓰고 저 멀리서 자동차 경적 소리가 울리는 극이긴 하지만 그래도 대사에는 ‘덴마크의 왕자 햄릿’이 남아 있는데 오필리어의 연기는 어딘가 시대성이 남아 있는 느낌적 느낌.. 레미제라블에 데려다 놓고 노래 시켜야 할 거 같은 필링

저는 정동환 배우님의 폴로니우스가 좀 더 좋았습니다 대사를 리드미컬하게 하셔서 듣는 재미가 있어요. 폴로니우스 대사 원래도 재밌고 극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들이 많지만 고걸 좀 더 재밌게 즐기고 싶단 말야

22년에 햄릿 처음 보고 눈이 번쩍 뜨여서 이게 뭐야 햄릿 이런 내용이었나?? 하고 그 길로 중고서점 달려가 햄릿 완역본을 샀는데 내가 오늘 본 극과 톤이 너무 달랐을 때의 충격이 생각나네요 전 그날 배삼식 각본가 님의 희곡집 출판된 걸 다 샀습니다 지금도 저희 집엔 그분 존이 있는데

내가 좋아한 게 셰익스피어의 햄릿 원전이 아니라 어느 각본가가 각색한 버전인 걸 배웠을 때처럼 오늘도 내가 이 극의 정확히 어느 부분을 좋아하는 건지 조금 알 수 있었음 22년.. 그립네요

2024-06-15 배우 개별 인사는 기다리지 말까.. 점점 더해오는 부담

후기

  • 사인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공연 잘 봤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좋았습니다
  • 하지만 22년 공연 보고 좋아서 다시 왔다고 했을 때 지난 번이 좋았는지 이번이 좋았는지 같은 건 안 물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 너무 무섭습니다 ㅠㅠ

왜 그런 어려운 질문 하세요.. 했더니 지난 번이 좋았구나? 하셔서 더 쫄음 처음 봤을 때 강렬함을 이길 수 있는 게 어딨다고.. 전 잘 훈련된 관객이 아닌데.. 이런 행사 처음 왔다고도 했자나요..

가만 생각해보니 이 질문이 힘들었던 건 ‘아니에요 오늘이 훨씬 좋았어요!!’ 라고 말하지 못할 걸 스스로 알았기 때문이군 그래요 전 2022년이 그리웠습니다..

2024-06-18 지금 진짜로 각본집을 위해 햄릿을 여섯 번 볼 것인가 고민 쎄게 하는 중

보통 이렇게 이벤트 상품으로 나오는 각본집 진짜 영원히 비매품인가요? 정말 이렇게 구매하는 수밖에 없나요?

2024-06-25 햄릿 두번째 관람: 아직 마음을 결정하진 않았지만 느낌상 진짜로 여섯번 보고 각본집 받게 될 거 같아 오늘은 최애 배우 분이 아닌 다른 분이 주연을 맡으신 회차로 왔습니다

선왕을 본 거 같다는 대화를 나눌 때 ‘죽은 사람을 봤다니 분명 헛것일 텐데 본 거 같단 말을 굳이 하는 게 맞나’ 하는 의심.. 이 있어야 할 거 같은데 대사 치는 템포가 너무 빨라서 죽은 왕의 아들과 그 친우보다는 범죄자 쫓는 경찰들 같다는 느낌을 쪼매 받음

그러고 보니 문득 그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거 세 시간 짜리고 배우들에게 째깍째깍 타이머가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대사 템포는 어떻게 조절하실까.. 심지어 대사량이 방대한 극이란 말이죠 이 극을 너무 많이 봐서인지는 몰라도 대사가 랩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하긴 시간이 쫓아오고 있긴 하죠

그렇지만 죽은 선왕의 유령이 등장해서 햄릿한테 할말 전해주고 너무 힘있게 뒤돌아 저벅저벅 걸어나갈 땐 약간 당황했음 어 굉장히 산 사람 같으세요

이번 회차의 햄릿-오필리어는 22년 극과 아예 캐해가 달라진 거 같음 22년 극에서 오필리어는 햄릿이 진실을 안 이후로 영원히 믿을 수 없게 된 하지만 진정으로 사랑했던 어떤 순수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는데 오늘 극은 말그대로 사랑했다 헤어진 남녀임 둘이 좀 로맨틱혀

아 그리고 김성녀 배우님 거트루드 기립박수 쳐드려야 됨 최-고

2024-06-25 각본집을 원하시면 여섯 번 보세요! 가 아니라 이야 이걸 여섯 번을 보셨어요??? 님도 참 징하다 이거 뭐 어케 각본집이라도 드리겠습니다 <- 인 거 같아 진이 다 빠진다

2024-07-02

유령의 세계와 햄릿의 정신과 오필리아의 언어에까지도 - 두 연인 사이의 속 깊은 대화와 결정적으로는 아마도 바로 이 편지를 통해 - 전염된 “의심”은 이 미완성의 시구에 르네상스의 시대정신을 아로새겨 놓고 있다. “별이 불타지 않는다 의심을 해도/ 태양이 움직이지 않는다 의심을 해도”라는 구절은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가 성취한 천체물리학적 발견들을 연애시의 영역으로 도입하는 가운데, 한편으로는 이 과학적 진리들을 부인하고 억압하는 당대의 종교권력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교황청에 의한 지동설의 공식적 이단 선언이 1615년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1601년의 이 구절은 가히 예언적이다.

도서전에서 사온 ‘행간의 햄릿’ 읽고 있는데 진짜 너무너무 재밌다. 이런 책이 아니면 ‘별이 불타지 않는다 의심을 해도 / 태양이 움직이지 않는다 의심을 해도’ 같은 상당히 구려뵈는 연애편지 멘트가 사실은 지동설을 억압하던 당대 종교권력과 이어진다는 걸 어떻게 알겠어요

2024-07-02

수많은 호사가적, 전문가적 견해 가운데 햄릿의 책이 몽테뉴의 ‘수상록’이라는 학자들의 추측이 있어왔다. 어떤 이는 ‘햄릿’과 ‘수상록’에는 자그마치 51개의 유사한 구절이 있음을 적시하며 몽테뉴야말로 셰익스피어의 ‘햄릿’ 창작에 결정적인 철학적 영향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반론도 만만찮다. 두 작품 사이의 유사성은 시대적 동질성 때문이지 일방적 차용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특히 ‘수상록’의 원본은 1580년경 출간되었지만 영역본은 ‘햄릿’ 초연 이후인 1603년에야 영국 독자들에게 소개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폴로니어스가 왕자님 속마음을 알아보겠다고 염탐하러 왔을 때 햄릿이 읽고 있던 책은 아마도 몽테뉴의 수상록일 거라니 어떻게 알아 이런 걸 난 그 책에 모델이 있을 거라고 생각도 안했어

2024-07-02

‘행운의 여신’은 또한 셰익스피어 당대, 특히 ‘햄릿’이 초연된 1600년대 초를 전후한 런던 연극계의 맥락에서 부가적인 의미를 획득한다. 당시 대중극장들은 템즈강 남단과 런던 시 북부 외곽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었는데, 강남을 대표하던 극장이 셰익스피어가 속한 극단의 글로브극장이었고 강북을 대표하던 극장이 바로 “행운의 여신”이라는 이름을 가진 포춘극장이었다. 연극전쟁으로 불릴 정도로 격렬했던 두 극단의 경쟁은 종종 작가와 신작 대본을 선점하려는 쟁탈전의 양상을 띠었고, 때로는 상대방 극단의 구성원을 매수하거나 첩자를 통해 ‘영업 비밀’을 빼돌리는 일종의 산업 첩보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대사에서 행운의 여신 운운할 때 단어 그대로의 의미만 있는 게 아니라 1600년대 초 셰익스피어가 있던 극단과 경쟁 관계였던 ‘포춘극장’을 뜻하는 맥락이 있단 걸 어떻게 알아??? 이거이거 당대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잼얘잖아

2024-07-02

“나는 비겁한가?” 독백의 이 대목이 살아 있는 연극적 순간이 된 공연사의 기록이 있다. 이른바 질풍노도의 시대라고 불렸던 1960년대, 기존 체제에 대한 전면적 저항이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동유럽과 서유럽은 물론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던 1964년의 런던에서 신생 극단인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가 올린 ‘햄릿’은 햄릿 역에 관록 있는 유명 배우를 캐스팅하던 오랜 관행을 깨고 연기학교를 막 졸업한 24세의 무명 배우를 캐스팅했다. 탁월한 발성과 출중한 연기력의 ‘미남 스타’가 아니라 ‘못생긴 애송이 배우’의 햄릿이라는 파격은 당시 기성세대의 정치경제적 권력과 사회문화적 권위를 부인하던 청년세대의 기대에 부응하는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유약한 지식인 청년의 초상을 햄릿을 통해 제시하려는 연출진의 의도였다. 비쩍 마른 체구와 구부정한 자세의 이 젊은 햄릿이 2막 2장의 이 독백에 이르기까지 시종 불분명한 발성과 볼품없는 연기를 선보이자 기성세대 관객과 청년세대 관객 모두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이 배우가 “나는 비겁한가?”라는 대사를 던졌을 때, 사고가 일어났다. 3층 발코니의 한 관객, 그러니까 가장 값싼 좌석에 앉은 젊은 관객이 냅다 고함을 친 것이다. “그래, 비겁하다! 이 썩어빠진 바보 같은 놈아!”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관객들이 뒤를 돌아보며 웅성거리는데, 그 순간 햄릿 역의 배우가 무대 끄트머리까지 달려 나오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격렬한 목소리로 되받아쳤다. “누가 나를 악당이라 부르는가?” 순간 객석에는 전율이 흘렀고, 이어지는 햄릿의 독백은 그야말로 좌중을 압도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힘과 속도를 얻은 배우의 연기는 이후의 햄릿을 ‘행동하는 청년 지성’으로 완전히 변용시켰다.

와…….. 나 이거 너무 궁금해 연기학교를 막 졸업한 24세 무명 배우가 관객에게 되받아치는 ‘누가 나를 악당이라 부르는가?’

2024-07-02 저 솔직히 극 보면서는 극중극으로 클로디어스의 죄책감을 유도하겠다는 계획이 정말 단순해 보였거든요 근데 실제로 당대에 남편을 청부살인한(!) 여인이 연극에 나온 남편 독살 장면을 보고 죄를 털어놓은(!) 사건이 있었대⋯ 햄릿 상당히 좋은 계획을 세웠구나

2024-07-17 셰익스피어 당대에는 무대 의상을 따로 만들지 않고 몰락한 귀족 가문 및 수도원에서 시장으로 나온 중고-진품 옷을 썼대요. 그래서 극중극 ‘곤자고의 살인’에서 왕과 왕비 역 배우는 각각 클로디어스, 거트루드와 같은 옷을 입고 있었을 거라고.

2024-07-17

‘쥐덫’이라는 제목이 ‘비유적 tropically’이라는 말 자체에 함정이 있다. 그 말은 - 햄릿의 전형적 언어유희로서 - 발음하기에 따라 ‘함정을 파놓은 trapically’이라는 뜻으로 들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숨은 의미까지 포함하자면 ‘비유적 표현이죠’라는 중의적이고 압축적인 대사는 ‘비유적 표현이죠, 덫을 쳐놓았으니까.’ 또는 ‘비유적 표현이죠, 결국 덫에 걸릴 테니까.’라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클로디어스는 이 숨은 의미를 감지했을까? 아니, 그보다 대체 햄릿은 왜 자신의 의중이 뻔히 드러날 수도 있는, 앞선 무언극보다 훨씬 더 ‘위험한 장난’을 치고 있을까?

끊임없이 터지는 말장난과 언어유희에 정신을 못 차림

2024-07-17

원수의 영혼을 기필코 지옥에 보내겠다는 조카가 신의 절대적 심판권을 대리하려는 교만의 악을 범한다면, “진심이 담기지 않은 말은 하늘에 가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숙부는 신의 무한한 긍휼을 평가절하하는, 즉 신의 절대적 사면권을 부인하는 교만의 죄를 범한다. 기독교의 신이 구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참회의 행위가 아니라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 그 자체다. 자신의 죄와 욕망을 내려놓아야만 용서받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죄인이 자신의 죄를 알고 괴로워하는 마음만으로도 무자격, 무조건의 용서가 허락된다. 오히려 회개를 통해 죄를 씻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오만이다. 인간은 원죄의 존재, 생득적 결핍과 생존적 욕망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클로디어스가 “형의 피가 말라붙어 두껍게 굳어버린 이 손을 눈처럼 하얗게 씻겨줄 비”를 찾는 것은 순백의 영혼을 되찾고픈 갈망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순백의 영혼은 없다. 햄릿의 말대로 타고나기를 “우린 모두 지독한 악당”이요 오점으로 얼룩진 상처투성이의 영혼들이기 때문이다. 신은 그 영혼들의 아픔에 공감한다. 어떤 자격이 아니라 그 아픔만으로 신의 긍휼이 주어진다. 클로디어스의 교만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기도가 용서를 받을 만큼 진실되지 못하다는 자격지심에서 온다. 인간의 윤리적 양심을 신의 긍휼보다 앞세우는 것이다.

햄릿이 숙부를 그냥 죽이지 않고 그의 양심까지 심판하려는 게 신의 역할을 넘보는 교만이라면 클로디어스가 ‘나는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으니 내 말은 하늘에 닿지 않을 것이다’ 생각하는 건 신의 절대적 용서를 부정하는 교만.

2024-07-17

애초에 거트루드는 생각했을 것이다. 내심 항변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남편 사이의 차이라고? 아니, 다르지 않아. 누구든 내가 의지하고 함께 살아갈 반려자인 거지. 어느 한 편을 택해야 한다면, 아버지 같은 지아비로서 나를 금지옥엽 애지중지하며 가부장적 보호자의 역할을 해주던 - 상대적으로 큰 연령차의 - 선왕보다 나를 공적으로도 동등한 “동반자”로 존중해주고 자신의 “생명과 영혼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사랑해주는 그 동생을 택할 수밖에. 그런 내 “감각”이 마비되거나 발작을 일으켰고, 내 “감정”이 잘못된 길로 빠져들었다고? 아니, 내 감각은 그 어느 때보다 생생히 살아 있고 새 남편을 향한 내 감정은 진심이야. 재혼의 선택이 아니라 사랑이 아니라 욕정 탓이라고? 아니, 그것은 사랑과 욕정보다 더 강하고 더 근원적인 삶의 의지였고 갈망이었어. 남편의 죽음은 세상의 종말이 아니야. 세상은 미망인에게 죽은 남편을 영원히 추모하며 살아가라고, 순장이라도 되라고 하겠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아. “눈을 마냥 내리깔고 흙 속에 묻힌 [죽은 남편]을 찾는 일은 이제 그만둘 때야.” 내 삶은 끝나지 않았어. 아니, 비로소 새롭게 시작할 때야.’

아 진짜 최고야 그치 거트루드가 대체 뭘 잘못했나요??? 욕정에 눈이 멀어 남편의 동생과 붙어먹었다니 그건 철저히 아들 관점의 서술이지 않습니까?? 햄릿의 촌철살인으로 거트루드의 죄악감이 드러난 게 아니라 아들의 폭력성을 본 어머니가 ‘세상에 얘가 이렇게나 미쳤다니’ 안타까워하는 것일뿐.

2024-07-29

그뿐이 아니다. 정치적 구더기들의 “연회/회합”이라는 말은 “먹는 일에 관해서라면 구더기가 황제”라는 구절로 이어지면서 특정한 동시대적 의미로 확장된다. 문맥상 “음식”이라는 뜻이지만 ‘다이어트’의 또 다른 의미는 앞선 “연회/회합”과 동일한 다중 집회라는 뜻이다. 그것이 “구더기/벌레” 및 “황제”라는 말과 결합되면서 구문상의 의미와는 또 다른 뜻을 형성함으로써 종교개혁의 중대적 역사적 사건을 - 당대 관객들에게 - 환기시킨다. 바로 마르틴 루터가 주창한 새로운 신학의 이단 여부를 판명하기 위해 1521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5세가 소집한 청문회 이름이 독일 도시 보름스에서 개최된 ‘보름스 의회/집회 Diet of Worms’였던 것이다.

밀렸던 타래 백업: ‘구더기’ 비유가 꽤 자주 나와서 이걸 왜 이렇게 좋아하나 했는데, 종교 개혁 시기에 마르틴 루터가 내세운 새로운 신학의 이단 여부를 판명하고자 했던 청문회 이름이 Diet of Worms 였다네요. 이런 말장난을 당대 관객이 알아들었는지 어떤지를 떠나 그냥 너무 신기하다.

2024-07-29 주제에 걸맞는 말장난, 당대의 사회비판과 그 시대 관객들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유머 코드를 다 챙기면서 본인의 연극론도 얘기하고 줄거리만 놓고도 몇 백년을 얘기할 수 있는 작품을⋯ 어떻게 써요? 정말 알 수가 없다 이러니까 햄릿 하나 해석하는데 800p 나 쓰죠⋯

2024-07-29 클로디어스가 햄릿을 영국으로 추방 보내는 장면이 당대 영국 관객들에겐 ‘에? 우리나라?’로 읽히지 않았을까 했는데, 지금처럼 나라의 역사가 모두에게 알려진 시대가 아니었고 + 출판 문화의 발전으로 한창 역사서, 야사, 민족 설화 등이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관객들은 두근거렸을 거라고.

2024-07-29

다시 말해 셰익스피어는 오필라이의 광기를 임상학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대신 “미친 척”이라도 하겠다던 - 그러다가 일시적으로 제정신을 잃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던 - 햄릿의 경우를 환기시키면서, 오필리아가 미친 건지 미친 척하는 건지를 모호하게 제시한다. 그 둘 사이의 임의적 경계선을 의도적으로 흐려놓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광기 자체보다 사회적 이탈 또는 일탈 행위인 광기를 통해 드러나는 사회적 규범과 심리적 억압의 정체를 전경화하고자 한다. 물론 외양은 내면의 지표이기도 하다. 이 장면에 등장하는 오필리아의 모습이 연출가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는 까닭이다. 오랜 공연사에서 그 모습은 크게 두 형태로 나뉘어왔다. 한마디로, 미쳐도 곱게 미친 오필리아와, 이와는 대조적으로 끔찍한 모습의 ‘더럽게’ 미친 오필리아들이 무대에 서왔다. 물론 ‘곱게 미친’ 전자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무대를 장악해왔다.

그러게. 오필리어는 왜 미쳐도 곱게 미치거나 or 더럽게 미치거나 외관으로 말을 하게 될까요. 이번 극에서도 왜 오필리어가 미친 걸 굳이 눈물 번진 화장으로 연출해야 하냐고 싫어하는 분들이 있었던 거 같은데. 증오로 가득 차 제대로 광기 어린 오필리어도 짜릿할 법 하잖아.

2024-07-13 햄릿 세 번째 보러 옴

  1. 영원히 어느 배우의 연기에는 익숙해지지 못할 것 같음. 이건 부모와 자식의 갈등을 다루는 극이기도 한데 (프랑스로 떠난 레어티스는 자유를 찾아 꼰대 아버지를 떠나간 건데 파리에 가서도 부친의 감시에서 자유롭지 않고 오필리어는 그마저도 못하고 꼭두각시 노릇을 함) 오빠를 마중하는 그녀 너무 해맑고 오빠랑 한없이 즐거워 보여서⋯ 오빠가 사실 자기만 냅두고 자유 찾아 간다는 걸 눈치채는 영민함과 매치가 잘 안 돼요. 캐해가 안 맞는 거 같습니다.
  2. 처음 두 번 볼 땐 그런 안내가 없었는데 오늘은 극 무척 기니까 화장실 미리 다녀오라는 안내를 하더라구요. 누가 이거 시간 너무 길다고 클레임이라도 넣었나.. 난 배우 분들 체력만 허락해 준다면 템포 좀 더 느리게 해서 네 시간 정도로 보고 싶은데. 지금도 톤이 빠르게 느껴진단 말예요.
  3. 극중극 배우 분들이 헤큐바 연기할 때 로덴스턴과 길덴크란츠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거 이번에 처음 앎
  4. 햄릿과 거트루드 대화 씬이 이 극 전체에서 가장 격정적이고 가장 섹슈얼하다
  5. 셰익스피어 시대에 BL 이 메이저였다면 호레이쇼 햄릿 제법 유행했을 거란 생각을 지울 수 없음
  6. 원전 햄릿은 분명히 여성혐오적인 대사가 있고 이 극은 그런 대사를 많이 남겨둔 편이지만 (그걸 전부 제거하는 게 꼭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하지 않음) 오필리어가 ‘여기서 난 무얼 하고 있지’ 하고 자신의 역할을 돌아보는 독백이 추가된 게 좋아요. 이게 각색의 힘 아닐까요 잘은 모르지만
2024-07-14 집에 있던 배삼식 쌤의 희곡집을 펼쳐 봤다. ‘3월의 눈’, ‘먼 데서 오는 여자’, ‘열하일기 만보’는 다른 책에서도 읽었지만 ‘거트루드’는 여기에만 실려 있기 때문에. 그동안은 이게 햄릿 감상에 플러스가 될지 마이너스가 될지 몰라서 나중에 봐야지~ 하고 있었는데 오늘 호기심을 못 참음

2024-07-14

H: 좋아요. 이왕 이렇게 된 거 까놓고 얘기를 해 보죠. 이유를 알고 싶으시다구요?

G: 그래.

H: 우리가 마담을 납득시키면 다시 게임을 시작하는 겁니까?

G: 그래.

H: 좋아요. 말씀드리죠. 그건⋯⋯ 이 모든 일이 마담한테서 시작되었기 떄문입니다.

G: 이 모든 일이 나한테서 시작되었다고?

H: 당신이 없었다면 살인도 없었을 테니까. 마담이야말로 최초의 살인, 즉 저자가 아버님을 살해하게 만든 원인이니까요.

등장인물 소개에서 G가 맨 위로 올라오고 C와 H가 그 주변인물로 소개되는 것부터 두근거리는데 ‘난 수백 년 수천 년간 너희 억지에 휩쓸려 독을 마셨다. 내가 왜 이 잔을 마셔야 하는지 나를 설득해!’ 하자 H가 뱉는 멘트가 아주 예술임 어디서 이런 노골적인 하남자가

2024-07-14

G: 너희들, 지금껏 날 식물이나 광물처럼 다루지 않았어? 좋아, 그럼 사람 얘기를 해 볼까? 한 남자가 한 여자를 겁탈했다. 왜? 그러고 싶어서. 왜 그러고 싶었느냐? 그 여자가 너무 이뻐서. 꼴리게 만든 그 여자가 책임을 져야 해. 이제 사람들은 그 여자를 욕해. 몸을 버린 더러운 여자라고. 그 부끄러움도 그 여자 몫이야. 왜? 이쁜 게 탈이니까. 그런 식으로 사내들은 여자들을 겁탈해 온 거야. 책임도 안 지면서.

H: 그건 궤변입니다!

G: 이게 방금 네가 한 얘기야. 뭐? 존재에 따르는 책임? 그렇게 따지자면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 행복하고, 기쁘고, 환한 것들, 쓸만한 것들은 죄다 죄인이야. 왜? 그것들은 니들이 그걸 갖고 싶게 만드니까. 어떻게든 망가뜨려 버려야 해.

원전에서 견디기 어려운 여성혐오적 면을 꼽자면 저는 대사보다는 주인공의 고뇌에 여성 인물들이 모두 계기나 대상으로만 쓰이고 그 여성들 역시 자신과 동일하게 고뇌할 가능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이 대사가 통렬했음 한번은 혼날 필요가 있어 이 자식

2024-07-14

G: 어서요. 정말 미안해요. 손님 앞에서 험한 꼴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사내들을 둘러보며) 이상하군, 이상한 일이야. 왜 그렇게들 식은땀을 흘리면서 벌벌 떠는 거야? 쥐새끼처럼 바닥을 기면서? 다들 죽지 못해 안달을 하지 않았어? (노리쇠를 당긴다.)

H: 잠깐, 잠깐! 좋아요, 어머니⋯⋯.

G: 어머니, 어머니, 하지 마. 하던 대로 그냥 마담이라고 불러.

H: 하지만 어머니, 아니, 마담, 이런 식으로는 아닙니다.

G: 어차피 죽는 건 마찬가지 아냐?

H: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한 거죠!

G: 어떻게 죽느냐, 그건 이제 내가 결정해.

솔직히 산탄총 들고 총질하는 G 우리 모두가 보고 싶어했던 거 아닐까요? ‘아깐 다들 죽지 못해 안달이더니 왜 이젠 또 살려 달래?’ ㅠㅠ ㅋㅋㅋ 확실히 원전도 우습게 보려면 좀 우스운 내용이긴 합니다. 최대한 이입해서 보긴 하는데 조금만 멀리 떨어져 봐도 이 자식들 참 혓바닥이 길다 싶음

2024-07-14

C: 확실히 핏줄은 못 속여. 네 아버지도 반대파 녀석들을 손봐 줄 때면 늘 그렇게 말했었지. “이건 신의 명령이야.” 그러면서 그놈들 배때기에다 사시미 칼을 찔러 넣곤 했어.

사실 네⋯ 13세기 덴마크의 왕자가 근친혼과 살인에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좀 기이한 일이죠. 우습게 보려면 진짜 한없이 우습게 생각할 수 있음. 하물며 이 ‘거트루드’의 H는 정말 자기 귀를 자기 손으로 막고 난 안 들린다고 말하는 하남자라서 ㅋㅋ ㅠㅠ

2024-07-14 이 극이 정말 흥미로워지는 건 7장부터인데, 그 전까진 (드디어) 극의 전개에 발언권을 갖게 된 G와 한없이 하남자가 된 H의 코미디였다면 7장에서 갑자기 P와 O가 등장합니다. 근데 원전에 따르면 이 둘은 여기서 등장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여기서부터 극이 급물살을 타는 데다,

원전에서 주인공은 두 여성(O와 G)에게 정말 대놓고 폭력적인데, 이 자식 정작 지 원수한텐 손도 못 대면서 여자들한테 **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폭력적인데, 이 극에선 그 구도가 한번 뒤집힌다. G가 H에게 비수를 꽂고 H는 더 듣기 싫다며 절규하는 씬이 있음 이야아 신난다아아

근데 이게 8장에서 어떻게 전개되냐면⋯ 그건 말을 잇지 못하겠음

2024-07-25 햄릿 네 번째

오늘 관객 분들 호응이 좋네 배우 분들도 희극적 긴장 해소용 멘트에 좀 더 진심이 되신 게 느껴져요

2024-08-13 원래는 7시 회의 끝나면 바로 짐 싸서 빵 하나만 사먹고 7시반 연극을 볼랬는데 회의는 늦게 끝났고 이슈도 들어왔고 난 지금에야 표를 받았다 지연입장 가능하시다는데 그냥 거절했다 배가 너무 고프다

2024-08-13 연극이고 나발이고 카페 와서 디카페인 아아 쫙 빨면서 달다구리 보충 중 현생의 메워지지 않는 늪을 자극적인 음식으로 메우고 싶은 이 마음

2024-08-31 드디어 각본집을 받았다 아이고 힘드러

2024-08-31 너무 힘든 연극이다 이걸 열두번 열세번씩 보는 분들 대단하다 3개월동안 요일 징검다리만 해가며 연기한 배우 분들이 제일 대단하다 이거 세시간동안 비참해하고 절망하고 무너지는 내용이잖아요 저는 오늘 보면서 한가지 생각밖에 안 들었음 ‘이거 3개월동안 연기하다간 성격 버리겠다’

그래도 제가 본 회차 중에 오늘이 가장 ‘수도원으로 가’ 장면의 감정선이 좋았음 처음으로 두 주인공이 연결됐다고 느꼈네

새하얀 옷을 입은 순백의 오필은 처음부터 저의 캐해와 잘 맞지 않았기에 막공에서 어떤 모습일지가 내심 궁금했는데 오늘 보면서 든 생각은⋯ 이 역할을 무려 3개월동안, 심지어 원캐스트로 맡았으니 더더욱 이 순백만이 남았겠다 애매모호따리감정들은 있었어도 진작 떨어져 나갔겠군

생각해보면 “대사는 모두 끝났다 모든 것이 지나갔다 남은 것은 침묵뿐” 하고 세 시간짜리 극을 끝냈는데 낼모레 그 극이 또 올라가고 주인공들이 또 살아나고 또 절망하고 또 죽고 내일모레 또 살아나고 <- 이거 너무 회귀자의 악몽 아닌가⋯⋯⋯.

막공 무대인사 보면서 와!! 이걸 끝까지 해낸 님들 짱!!! 이걸 기어이 여섯 번이나 보고 대본집 타가는 나도 짱!!! 이 생각밖에 안 들었고 저는 앞으로 일주일은 썸씽 로튼을 무한반복재생하려고 합니다 너무싫어셰익스피어그래말했다왜너무싫어셰익스피어

2024-09-01 아 그리고 또 기억에 남은 것 : 대사 씹는 모습을 두 번이나 목격함 정말로 체력적 한계지요 이제는. 그러나 결론 : 어쩌구저쩌구셰익스피어셰익스패버려!!

2024-10-03 ‘햄릿 스쿨: 드라마트루기 노트’ 다 읽었다. 손진책 연출/배삼식 각본의 햄릿을 도합 7번 본 사람으로서 안 살 수 없었고, 드라마트루기도 사전적인 의미만 알고 있었지 실제로 연극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아예 몰랐는데 요 책 읽어보면서 감이 약간 잡혀서 그것도 재밌었음.

읽으면서 가장 속 시원했던 파트는 역시 의도를 명확히 알 수 없었던 연출에 대한 해설인데, 극중극 배우들이 (자기들이 등장하지 않는 장면인데도) 무대 주변에 계속 자리하며 관찰자로 나오는 게 24년에 추가된 연출이란 말이죠. 왜 이렇게 하는지 궁금했는데 드디어 의미를 알게 됨.

24년 햄릿에서 극중극 배우들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전부 사령이고 극중극 배우들은 연극 ‘햄릿’을 무대 위로 불러오는 일종의 영매 같은 존재라는 걸 알고 보면⋯ 이 연극을 열고 닫는 극중극 배우들의 대사가 다시 읽힘.

현대인 입장에선 사실 유령이나 악마나 아무튼 ‘괴기스러운 존재’로 비슷비슷하게 느껴지는데 당시의 종교적 배경에서는 선왕 햄릿을 유령으로 인정하느냐 마느냐가 목숨과 엮이는 아주 첨예한 문제라는 것이⋯ 다른 책에서도 나왔던 얘기지만 다시 읽어도 재밌구요.

그렇지만 다 읽고 난 지금 이 책의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을 고르라면 “생각보다 캐해가 잘 안 맞다” 같음⋯ 뭐랄까 이건 원전 ‘햄릿’을 해석하는 학술서가 아니라 주어진 각본 캐스팅 일정 안에서 극을 완성시켜야 하는 실무자의 업무 노트라서? 오히려 어떨 땐 납작하게 눌러야 극을 굴리기 쉬워서?

가령 책에서는 폴로니어스가 오필리어를 정말 진심으로 사랑하는 다정한 아버지이며 레어티스에게도 윤리학 개론에 가까운 조언을 해준다고 설명하는데⋯ 저는 폴로니어스를 억압적인 아버지라고 봤고 특히 레어티스에게 하는 조언은 진짜 하나마나한 잔소리로 생각했기 때문에 ㅋㅋㅋ

그 외에도 수녀원으로 가! 장면에서 두 햄릿의 연기가 달라서 맞추기 힘들다고 말하는 루나 배우한테 ‘아.. 지금은 그런 얘기 하기엔 늦었는데요..’ 하고 넘어갔다는 얘기도 그렇고 ‘배우들은 별 걸 다 걱정해야 하는가보다’ 도 그렇고 아저씨 말이 너무 심하시네요 싶은 파트가 몇 있는데⋯

현장은 어쩔 수 없는 거겠지.. 멀리서 순수예술을 꿈꾸는 관객과 실제로 극을 굴려야 하는 입장은 많이 다르니께.. 하다가도 아니근데이건아니지 어쩐지24년오필리어캐해가나랑안맞더라니 하고 자꾸 책 덮고 혼자 화내다가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는 이야기

하 이제 정말 당분간은 햄릿 얘기 그만할 것입니다⋯ 이젠 정말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