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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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6

‘여행지에서의 글쓰기란 디즈니랜드에서 독서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교보 sam 무제한 6개월 (반값!) 결제하고 그간 관심 있었던 책 하나를 다운 받았는데 첫 페이지부터 갑자기 빵 터짐

‘혼자서 아무도 읽지 않을 글을 쓰는 것은 괜찮지만 발표하고 출간하는 일련의 활동을 하지 못하겠다’에서 관통상 치명상 입음 어억

그냥 간단히 정리하면 문학이고 뭐고 아이스크림이나 먹죠 뭐 같은 건데 사실 나는 문학에 미쳐 있는 사람들이나 그런 소리를 한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무얼 쓸지 결정하는 일은 쓰기의 준비 단계가 아니라 무언가를 쓰는 과정 중에야 결정된다. 요컨대, 뭐라도 덕지덕지 엉망진창 마구잡이로 써 봐야지만 그게 진짜 쓸 만한지 아닌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쓰지 않고서는 결과를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몰라. 절대 모르지. 알았다면 아는 것부터 미리미리 썼을 텐데.

아버지는 나의 첫 책이 출간된 걸 축하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고생했다. 그럼 이제 일을 해야지.” “아빠, 이게 제가 한 일의 결과잖아요.” “그치. 근데 내 말은 직업을 구하라는 거야.” “소설가가 제 직업이잖아요.”

2024-04-07

소설을 쓰는 일은 맞거나 틀리거나 하지 않는다. 옳거나 그르거나, 이기거나 지거나 하지 않는다. 뭔가 의미 있는 형태를 만들어 옆 사람과 나눌 수 있는 조용한 작업. 나는 이런 일에 나 자신을 종사시키고 싶었다. 어떤 새롭고 재미있어 보이는 일에 빠졌어도 반평생을 지속적으로 좋아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싶고 더 알고 싶고. 더 가닿고 싶은 유일한 것이 소설을 읽고 쓰는 일이 되었다. 점점 더 그렇게 되었고 지금보다 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소설을 잘 쓰는 일, 좋은 소설을 쓰는 일, 이제 그런 욕망에서도 나는 멀어졌다. 같은 일을 매일 반복할 뿐이다. 생각하고 듣고 보고 읽고 쓰는 일. 다만 내가 쓰는 글이 아무에게도 가닿지 못한다면, 하는 불안만은 여전히 버릴 수 없다. 그래서 작가의 말을 쓸 떄 나는 이제 진심을 다해서 쓰게 되지 않았을까.

왜 그냥 적당히 좋아하고 생각없이 즐기는 게 잘 안 되고 이런 의미 찾기를 하고 마는 걸까요 결국 내 결정은 내가 내릴 수밖에 없는데도

나는 어째서 시작하지 못하는가. 실패하기 싫어서겠지. 알고 있다. 재료는 재료뿐이란 걸. 불과 물에 닿은 재료의 맛은 변할 수밖에 없다는 걸. 단 1분, 단 1그램의 차이로 맛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절대 내가 상상한 그 요리를 똑같이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차차 깨닫게 된다. 나의 상상이 얼마나 빈틈이 많고 빈약하고 흐리멍덩했는지.

ㅜㅜㅜㅜ 아야 아파요

웃을 수 있다면 좋겠다. 마음을 설명하려고 애쓰는 삶을 충분히 살아서 더는 그럴 필요 없는 사람이길. 그럼에도 여전히, 나에겐 소설이 필요합니다, 라고 분명히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오늘도 나는 이렇게.

세상에 소설을 쓰는 사람이 이렇게 많고 소설 외에 재밌는 건 더 많은데 누군가는 시간 들여 내 가 쓴 걸 읽어준다는 게 갑자기 좀 신기하고 기이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이게 무슨 일이래 증말

몇 달 전 한 친구가 제 MBTI를 물어보기에, 농담 삼아 내 MBTI는 ADHD인 모양이라고 대답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4-04-07

책을 보기는 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글쓰기에 관해 쓴 책들을 보면서 내가 나에게 허가한 병가를 보내고 있다.

스스로에게 허가한 병가가 끝나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