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의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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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7 추락의 해부 드디어 봤음

내가 쓰는 소설을 가장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람은 친구도 직장 동료도 아니라 내 인생에 너무 깊게 엮인 나머지 그 소설에도 본의 아니게 엮여 있는 사람들이라는 교훈을 얻음 그리고 어지간해선 자전적인 소설은 쓰지 말자는 다짐도 소설 분석하는 방송을 다니엘이 보고 있는 장면 정말 뜨악했다

내 경험을 다듬고 포장해서 내놨더니 그걸 또 누가 다듬고 포장해서 분석하는 모습을 실제 내 삶에 속한 사람이 빤히 보는 거 너무 힝구임 주인공 이제 새 소설 쓸 수 있을지 잘 모르겠음

진실은 점점 멀어져만 간다. 일단 일 년이나 지난 시점에 떠올리는 옛 기억은 진짜 뇌에 남은 기억이라기보단 일 년간 곱씹고 다져온 이미지에 가깝겠지. 다니엘의 말마따나 상처는 이미 받았음 이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결론을 낼 수밖에 없다 하나를 골라야만 나아갈 수 있다면 골라야지! 의지로!

청각장애가 있는 다니엘의 시점에서 묘사할 때 현재 말하는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비추지 않고 그 사람이 있는 쪽으로 카메라를 돌리기만 하는 게 인상적이었음

변호사 아저씨 섹시하죠. 저도 술 퍼 마시는 장면 보면서 초조했습니다. 아니 설마 여기서 사랑과 전쟁 바이브를? 갑자기 그런 스텝을 밟아버리면 안 될 텐데? 결국 (그 장면에선) 아니긴 했지만 둘 사이에 넘치는 텐션을 보며 생각함 정말 진실은 알 수 없고 주인공은 복잡한 사람이라고⋯

이런 영화들의 카테고리 명을 정하지 못하고 결국 ‘라쇼몽 같은 거’라고 부르게 되는데 ㅋㅋ ‘라스트 듀얼’이나 ‘괴물’보다는 이 영화의 방식이 더 좋았네요

2024-02-28 추락의 해부 주인공 대사가 자꾸 생각남 영화 볼 때는 약간 설득됐었거든요 오 그치⋯ 검사가 너무하네⋯ 근데 주인공의 직업이 작가고 심지어 자전 소설을 쓰고 그걸로 성공한 사람이라는 걸 생각하니 그조차 굉장히 잘 설계된 서사의 한 장면 잘 짜여진 ‘대사’ 같아 ㅋㅋ

솔직하게 말해보라는 말을 들으면 고민하게 되지. 어떤 단어 어떤 표현을 골라야 지금 내 심경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나. 근데 거기서 골라지는 언어는 사실 나를 방어하는 유려한 무기란 말야. 말을 다루는 데 특화된 작가라면 더더욱 그 무기를 잘 다루겠지 누구나 설득될 수밖에 없게끔

내가 말싸움으로 저 자식을 이겨먹겠다! 진실을 왜곡하겠다! 하는 노골적인 의도가 없더라도, 사람은 무의식적으로라도 그렇게 행하는 거 같음 나를 설명한다는 건 나를 남들에게 납득시키려는 시도지 글을 쓰는 것도 남들에게 내 이야기를 듣게 하기 위함이고

부부가 신랄하게 말싸움을 하고 있고, 사소한 건수가 아니라 두 사람 관계의 근본적인 면으로 싸우는 중이고 (적어도 그렇게 보이고) 물건을 집어 던지고 서로를 때릴 정도로 그 싸움이 격한데도 그걸 끝까지 녹음한 게 다시 생각해도 흥미로워⋯ 그쵸 원래 현실과 서사 사이엔 경계선이 모호하지

지저분한 감정 서사 전부 빼고 오로지 진실만을 가리자! 라고 법정에선 계속 얘기하지만 사실 그런 건 없고 그나마 진실이라고 할 만한 건 서사 속에 숨 참고 다이브 했을 때나 겨우겨우 보이는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