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미나,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미괴오똑』 다 읽었다. 그간 의학에서 남성의 신체를 표준으로 삼고 여성의 신체를 탐구해 왔기 때문에, 그리고 의료 산업의 발전 방향에 제약회사의 이권이 같이 엮여있기 때문에, 현대 의학은 여성의 우울증을 설명하기에 많은 한계를 안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우울증을 일으키는 요인에 분명히 사회적 영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병리적 문제로만 여기는 분위기 때문에, 더더욱 이 고통을 말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도.
우울증은 아녔지만 병명 진단을 받아봤던 사람으로서 그치그치 하게 되는 지점이 있었다. 병명을 얻은 것만으로도 편안해지는 부분이 분명 있다. 내가 징징대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인정받을만큼’ 힘들다는 증명도 할 수 있고, 내가 뭘 못 해냈을 때 병 때문에 그렇다는 생각도 가끔은 도움이 됐다.
그치만 그게 질환이라면, 그게 치유됐을 때의 나는 어떤 사람일까 상상하면 도무지 그려지는 그림이 없다. 상담을 완전히 종료하면 나는 노래방 게임방 그 어느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파워 외향인이 되는 걸까? 이상하다 그건 그냥 내가 아닌 거 같은데… ㅋㅋ
상담도 마찬가지. 가기 전엔 모든 상담이 오은영쌤의 금쪽이 치료처럼 되는줄 알았다. 그치만 내담자가 되어보면, 내가 뭘 느끼고 뭐가 힘든지 설명하기란 꽤 어렵다. 내가 한 말의 50%는 전달이 됐을까? 상담은 과정 전체가 내 말에 의존한다. 어쩌면 내가 말을 잘 못해서 치료가 잘못 됐을수도…?
의사도 내 증상을 전부 이해해서 그 진단명을 준 게 아니고, 그러니 진단명은 내 힘듦 전체를 설명하지 못한다. 힘들다는 얘기를 하기가 어려워서 ‘나 뭐뭐 진단받았어’ 라고 돌려 얘기하면 주위에선 부담스러워하고, 나는 나대로 온전히 설명이 안돼서 답답할 뿐.
힘들다 얘기하는 것도, 구체적으로 뭐가 힘든지 언어화하는 것도 전부 연습이 필요한 영역이라 그 괴리를 해결하기에 현대 의학 외적인 것이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의존해야지. 샤머니즘이든 페미니즘적 연대든 가까운 관계의 돌봄이든.
이제 다른 책 읽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