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유투브 영상으로 따라가는 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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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1 1929년에 개봉한 6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 The Skeleton Dance. Silly Symphonies가 디즈니에서 1929-1939 동안 이어진 단편 시리즈인데 그 중 첫 작품.

2020-09-11 1928년에 개봉한 증기선 윌리. 미국 최초의 토키(유성) 애니메이션이고 위와 동일하게 어브 아이웍스 감독의 작품. 미키 마우스가 굉장히 예전부터 쓰인 캐릭터인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1920년대 작품에 나오는 걸 보니까 좀.. 노인 공경 해드려야 할 거 같음

2020-09-11 1930년에 개봉한 마사오카 겐조 감독의 첫 작품 난파선 이야기 제1편 - 원숭이 섬. 책에 나온 삽화가 아니었으면 이 영상이 이 작품 맞는지 못 알아볼 뻔했다. 전체 영상은 찾기가 힘드네..

2020-09-11 1931년에 개봉한 무라타 야스지 감독의 하늘의 모모타로. 원래 모모타로는 일본 설화에 등장하는 순박한 영웅이었지만 여기선 전투기를 타고 남극까지 가서 펭귄들을 괴롭히는 독수리를 물리치고 일장기 걸고 돌아온다. 여기서부터 내셔널리즘의 색채가 짙어지기 시작.

2020-09-11 1932년에 개봉한 가토 데이조 감독의 대행운 하늘의 1엔 택시. 인간이 진보를 거듭해 하늘로 올라가 생활하고 지상에는 동물만이 사는 1980년(!) 미래의 일본 도시를 그린 SF 작품.

2020-09-11 위 작품은 아마도 프리츠 랑 감독의 메트로폴리스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책은) 추정한다. 요 영화는 전체 영상이 유투브에 있는데 러닝타임이 2시간 반인거 보고 좀 놀랐다 100년전 기술력으로도 2시간 반짜리 영화를 만들 수 있었꾸나…

2020-09-11 기쁜 마음으로 근대화를 흡수하는 작품도 잔뜩 나오는 한편 의도적으로 시류를 모른 척하는 작품도 좀 있었는데, 1933년에 개봉한 오이시 이쿠오 감독의 여우와 너구리의 대결도 그 중 하나. 세상의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낙오자적인 너구리를 낙천적으로 그려냈다.

2020-09-11 당시 사회적 현실을 한층 더 직접적으로 드러낸 작품이 무라타 야스지 감독의 선술집의 하룻밤(1936). 고등 교육까지 마쳤지만 1930년대의 대공황에서 좌절감에 빠져 살아가는 대졸 실업자 청년이 꿈속에서 일확천금을 얻는 이야기.

2020-09-11 1939년 영화법이 제정되면서 본격적인 국책 애니메이션들이 제작되는데, 그 중에서도 모모타로의 바다독수리는 해군성이 진주만 공격의 성공을 선전하기 위해 기획, 후원한 작품. 지금 기준으로는 중편이지만(37분) 당시엔 처음으로 이 정도 분량에 도전한 것이어서 일본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불리기도 한다. ‘바다독수리’라는 말은 실제로 당시 일본 해군이 항공 부대를 미화하여 붙여진 호칭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진정한 본좌는 이 다음 작품인데…

2020-09-11 잠깐 눈을 돌려, 일본이 전쟁선전용 국뽕을 만들 때 미국은 뭘하고 있었는가 하면 블러셔 바른 언니가 꾀꼬리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백설공주가 1937년에 나왔음.

2020-09-11 그리고 판타지아가 1940년에 나왔습니다. 요건 나중에 판타지아 2000 이라는 후속작도 나왔죠. 전 대학교 1학년 때 애니메이션 동아리 모임에서 처음 봤는데 그냥 홀렸던 거 같아요..

2020-09-11 『모모타로의 바다독수리』를 완성하고 자신감에 가득 차있었던 세오 미츠요 감독은 위의 두 디즈니 작품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야심차게 두번째 작품을 내놓는데, 그게 바로 파시스트 애니메이션의 정점을 찍은 모모타로 바다의 신병입니다. 무려 74분짜리 대작!

2020-09-11 이 작품은 모모타로가 지휘하는 낙하산 부대의 훈련이 주가 되는 전반부, 그리고 이들이 남아시아로 진출하여 현지인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고 그들의 ‘자발적인’ 협력을 얻어 연합군과의 전투에 승리하는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간에 군가 비슷한 노래도 나오는데 진짜 가관임 ㅋㅋㅋ

2020-09-11 이 작품이 내포한 파시즘 미학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오늘날 평화주의자로 알려진 데즈카 오사무 조차도 이 영화를 1945년 극장에서 보고 ‘감격한 나머지 울어 버렸다. 드디어 일본에서도 이런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인가!’ 같은 감상을 남겼다고.

2020-09-11 물론 이런 프로파간다 애니메이션이 일본에서만 만들어진 것은 전혀 아니다. 당장 디즈니에서도 전쟁의 승리를 위해 전략적 공습의 온당성을 홍보하는 장편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Victory through Air Power를 만들었었고…

2020-09-11 여담이지만 디즈니 전시회에 가면 철저하게 팔릴 만한 것 위주로 큐레이션 된 게 눈에 보여서 좀 허탈하다 ㅎㅎㅎ 한때 프로파간다 애니메이션도 만들곤 했단 걸 직접 말해주는 건 기대도 안하니 옛날 작품들, 지금은 메이저가 아닌 작품들도 언급 좀 해주면 좋겠다. 포카혼타스 라던가..

2020-09-11 (추가) 1940년대라고 전부 프로파간다 선전용 애니메이션이었던 건 아니고 전쟁과 상관이 없는 작품들도 간혹 만들어졌는데, 그 중 마사오카 겐조 감독의 거미와 튤립(1943)은 음악과의 조합이 굉장히 감각적이고 멋지다 ㅎㅎ

2020-09-11 (추가) 책에 나오진 않았지만 유투브 알고리즘이 추천해준 Dizzy Dishes(1930). 파라마운트에서 배급을 맡은 이 작품은 Betty Boop 캐릭터의 첫 시작이기도 하네요.

Betty Boop 시리즈 중 1934년에 나온 Poor Cinderella는 파라마운트 최초의 컬러 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디즈니 최초의 컬러 무비는 백설공주였는데, 단편과 장편이라는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디즈니가 세계 최초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조금 의외.

세계 최초의 컬러 애니메이션은 백설공주보다 10년 앞서 1926년에 제작된 The Adventures of Prince Achmed로 알려져 있는데, 이 작품을 만든 건 로테 라이니거 라는 독일 여성이다! 실루엣 애니메이션의 선구자이자 다면촬영기법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이라고.

2020-09-12 재밌는 프로파간다 애니메이션을 또 발견했다. 1934년에 공개된 장난감 상자 시리즈 3편인데, 장난감들이 평화롭게 살던 섬에 미키 마우스가(!) 쳐들어오고 이를 모모타로가 물리친단 줄거리.

2020-09-12 미키 마우스가 무려 뱀들과 함께 장난감을 공격하는 악역으로 등장하며, 모모타로가 미키 마우스를 물리쳤을 때 캐릭터들이 미키 마우스를 깔보며 비웃는 부분도 압권인데, 가장 웃긴 건 누가 봐도 미키마우스인 저 악역을 끝까지 ‘쥐’라고만 설명하는 일본어 위키피디아다 ㅋㅋㅋㅋ

2020-09-12 다시 원래 내용으로 돌아와, WW2가 끝났어도 제국 시대와 마찬가지로 검열은 여전히 이루어졌다. 달라진 건 검열의 주체가 이제 일본이 아니라 미국이란 점이었다. 그래서 검열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별 이야기 없이 음악과 시만을 다룬 낭만주의적 애니메이션이 나오기 시작했고

2020-09-12 그 중 하나가 마사오카 겐조 감독의 벚꽃(1946)

2020-09-12

한편 마루야마 쇼지가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퍼시 B. 셸리의 『Ode to the West Wind』 중 마지막 구절인 ‘겨울이 오면 그 뒤의 봄이 멀리 있으랴?’를 소재로 하야시카 후미오의 곡을 받아 만든 푸조 나무 이야기(1947)는 한층 정치적인 함의를 띠고 있었다.

2020-09-12 당시 미국은 영화를 검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미국+민주주의를 예찬하는 작품의 제작을 장려했고, 그 결과로 마법의 펜(1946) 같은 작품이 등장한다. 전쟁 고아 일본인 소년이 서양인 소녀 모습의 인형을 구해주고 그 보답으로 마법의 펜을 받아 마을을 재건하는 이야기 ㅎ

2020-09-12 그렇지만 역시 전후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경향성은 ‘버려진 아이’ 서사일 듯하다. 어떤 사정으로 인해 부모로부터 버려지거나 헤어진 후 혹독한 현실을 살아가며 어딘가에 있을 부모(또는 가족)을 찾아 힘든 여정을 헤쳐나가는.. 뭐 그런 서사 구조를 일컫는 건데

2020-09-12 『마법의 펜』을 비롯해 마사오카 겐조의 버려진 고양이 도라부터 본격적으로 이런 서사가 반복되며, 이는 후에 『우주소년 아톰』을 거쳐 1970년대의 『세계 명작 극장』 시리즈에서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된다.

2020-09-12 천황이 아버지고 백성은 그 아이라는 발상을 종교적인 차원까지 밀어붙였다가 패전했으니 일본 국민은 비정한 현실 속에 ‘버려진 아이’가 될 수 밖에 없었고.. 심지어 아버지적 존재를 스스로 전복시킨 게 아니라 아버지적 존재를 날조했다가 실패한 결과로 등장한 아이여서 무력하기까지 했다.

2020-09-12 그리고 요즈음부터 컬러 애니메이션에 대한 갖가지 시도가 등장하는데 그 중 하나가 오후지 노부로의 실루엣 애니메이션 고래(1952). 후에 이분의 공적을 기려 해마다 우수 애니메이션 영화에 주어지는 ‘오후지상’이 생겼는데, 작년엔 『리즈와 파랑새』가 수상했었네요.

2020-09-12 일본의 최초 컬러 장편 애니메이션 백사전(1958). 전근대 중국을 향한 근대 일본의 환상, 오리엔탈리즘이 풍부하게 실현된 작품.

2020-09-12 시네마스코프 포맷을 채용한 일본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소년 사루토비 사스케(1959).

2020-09-12 디즈니는 그보다 4년 전에 Lady and the Tramp를 시네마스코프 포맷으로 내놓았었고, 『소년 사루토비 사스케』와 같은 해에 개봉된 『Sleeping Beauty』는 70mm 포맷이었다.

2020-09-12 이 즈음부터 텔레비전의 보급으로 인해 영화 시장이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 Toot, Whistle, Plunk and Boom(1953)은 디즈니의 마지막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가 되었고, 단편 부문의 인력은 해고되거나 TV 시리즈 제작 현장으로 옮겨졌다.

2020-09-12 『백사전』, 『소년 사루토비 사스케』, 『서유기』, 『안주와 즈시오마루』 이렇게 네 작품은 도에이동화에서 만들어졌으며 아시아의 전통적 서사를 풀 애니메이션의 장편으로 제작하는 고전주의 노선이라 볼 수 있다. (지금의 도에이애니메이션이 아닌 도에이 본사에 해당)

2020-09-12 그 중 네번째 작품인 안주와 즈시오마루(1961)은 ‘버려진 아이’ 서사를 장편으로 만둔 최초의 본격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2020-09-12 사실 이때부터 애니메이션 업계의 노동착취는 심각한 수준이어서 1인당 잔업이 월 평균 88시간에 이르렀다고. 덕분에 스튜디오의 거의 전원이 모여 노조를 결성하였으나 강제 해산 후 징계를 거쳐 65년부터는 정규직 채용을 중단, ‘싫으면 그만두라’ 식의 작품별/기간별 계약직 고용으로 전환되었다.

2020-09-12 이 시기부터 도에이동화는 아시아 고전주의 노선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서구적인 세계, 미래의 환상, 부모에게 전혀 집착하지 않는 고아 주인공을 그려내며 아시아의 신체와 역사를 배제하기 시작한다. 걸리버의 우주여행(1965)

2020-09-12 결국 1972년엔 적자를 잔뜩 내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규모를 줄이기 위해 명예 퇴직 권고, 일방적 해고 통지, 사업장 폐쇄 의 수순이 이어졌다. 1초에 24장이던 풀 애니메이션은 12장 이하의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으로 대체되었고 날림 작업의 장려와 함께 본격적인 하청 체제가 시작되었다.

2020-09-12 한편, 디즈니나 도에이와 같은 대형 스튜디오와 별개로 독자적인 실험을 추구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한 예로 노먼 맥래런은 애니메이션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고, 만화 영화 이외의 어떤 것일 가능성을 시사했으며

2020-09-12 1941년 파업 사태 이후 디즈니를 떠난 존 허블리, 스티븐 보서스토우, 잭 슈워츠, 데이브 힐버먼 등이 모여 설립한 UPA는 Gerald Mcboing Boing 같은 작품으로 전후 애니메이션의 뉴 웨이브를 선도하기도 했다.

2020-09-12 일본에서는 산토리 위스키의 TV 광고 애니메이션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야나가하라 료헤이가 구리 요지, 마나베 히로시와 함께 결성한 ‘애니메이션3인회’가 독립 애니메이션의 토대를 닦았다. 참조

2020-09-12 (추가) 지금까지도 광고 애니메이션의 대명사로서 인기를 누리는 토리스 아저씨의 시작.

2020-09-13 (추가) 유투브 알고리즘이 또 재밌는 애니메이션을 하나 알려줬다. 1942년에 개봉한 Ducktators는 제목에서 드러나다시피 WW2의 독재자들, 히틀러와 무솔리니 그리고 도조 히데키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다. 워너 브라더스가 1930-69 동안 만들었던 루니튠즈 시리즈 중 하나.

2020-09-14 다시 도에이동화로 돌아가서, TV 애니메이션의 수요가 폭발하던 이 시기에 같이 발전한 게 바로 복사 기술. 그 전엔 애니메이터의 그림을 셀룰로이드 페이퍼로 옮기는 ‘트레이서’라는 직업군이 있었는데 복사기가 등장하며 약 30명 분의 작업을 기계 하나가 해내기 시작한다.

2020-09-14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복사기를 가장 먼저 도입한 게 도에이동화 였다. 그들의 첫 TV 시리즈 늑대소년 켄(1963)에서 시험 단계의 모델이었던 제록스를 사용.

2020-09-14 이 제록스는 디즈니의 오랜 친구였던 어브 아이웍스가 연구 및 개발을 주도했으며, 전면적으로 쓰인 건 1961년에 제작된 장편 애니메이션 101마리 달마시안에서 였다.

2020-09-14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법에 대해 여러가지 시도들이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했다. 1967년에 만들어진 일본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로 말해지는, 야마다 마나부와 츠키오 요시오의 푸가의 기법은 후지츠의 FACOM270-20과 캘컴프의 플로터를 사용한 작품.

2020-09-14 극장 영화의 유일한 장점이었던 ‘컬러’가 TV 애니메이션에도 적용되기 시작하며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컬러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로서 데즈카 오사무의 정글 대제가 1965년에 등장.

2020-09-14 한편 1960년대에는 전통적인 형식과 매체에 기반을 둔 인형 애니메이션 영화도 꽃을 피워 갔다. 일본의 전통적 고전 예술과 인형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가와모토 기하치로의 가지 꺾기(1968)

2020-09-14 또다른 인형 애니메이션, 오카모토 다다나리의 신비한 약(1965)

2020-09-14 1970년대에 들어서면 TV 시리즈가 그야말로 범람하기 시작한다.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가 전혀 만들어지지 않은 건 아니지만 대부분이 인기 TV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는 극장용 편집이었고, 나머지는 이른바 ‘세계 명작’ 노선을 잇는 서구 동화 원작의 작품들이었다.

2020-09-14 세계 명작 노선의 초기 작품인 꼬마 레미와 명견 카피(1970). 이 후 1975년부터는 닛폰애니메이션 에서 ‘세계 명작 극장’이라는 비슷한 타이틀을 갖고 『플랜더스의 개』를 비롯한 작품들을 만들어 냈다.

2020-09-14 애초에 ‘명작’을 대체 누가 무슨 기준으로 선정한 건가 싶지만.. 이 ‘세계 명작’의 환상은 세계를 서구로, 서구를 세계로 이해하는 서구 중심적 사고의 산물이었기에 여기에 따른 내셔널리즘적 반작용도 이 시기에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2020-09-14 흔히 그렇듯 그 방향은 셀프 오리엔탈리즘으로 귀결되었다. 1975년에 방영을 시작하여 무려 1995년까지 시리즈가 계속된 만화 일본 옛날 이야기가 특히 인기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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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세계 명작’과 ‘일본의 옛날 이야기’ 라는 구도는 세계를 서구로 정의하고 일본을 그 세계와 분리된 별도의 지리적 존재로 배치하는 데 기여하였다. 동시에 서구와 일본 사이에 펼쳐 있는 아시아라는 부담스러운 실재도 간단히 삭제될 수 있었다.

2020-09-14 이런 구도를 답습한 시리즈가 여럿 있는데 그 중 만화 : 세계 옛날 이야기는 1976년에 시작되어 1979년까지 계속 만들어졌다.

2020-09-14 유행과는 별개로 도전적인 시도를 하는 곳들도 있었지만 언제나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우주소년 아톰』을 제작했던 무시프로덕션은 장편 애니메이션 슬픔의 벨라돈나(1973)의 흥행 실패로 개봉한 그 해에 도산했으며

2020-09-14 이를 본 많은 제작사들이 TV 시리즈로 향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80년대에 큰 인기를 끌게 되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시 이타오도 이 시기엔 TV 시리즈에 몸담고 있었는데, 이 두 사람이 만든 작품이 바로 훗날 ‘세계 명작 극장’의 기원이 되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

2020-09-14 그리고 『알프스 소녀 하이디』와 동시간대에 방영한 것이 마츠모토 레이지 원작/감독인 우주전함 야마토(1974). 방영 당시엔 저조한 시청률로 도중하차를 했는데 재방송을 통해 많은 팬들을 만들어내며 70년대 후반 애니메이션 붐의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다.

2020-09-14 그리고 이 애니메이션 붐을 이어받는 게 바로 1979년 토미노 요시유키의 TV시리즈 기동전사 건담. 오타쿠라 불릴 수 있는 애니메이션 팬층도 이 무렵에 등장했으며 1978년엔 ‘아니메이쥬’ 같은 애니메이션 전문 잡지가 창간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