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없는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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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5 원본 없는 판타지

이 책을 가장 원대한 야심 중 하나는 남자와 여자, 이성애자와 비-이성애자, 시스젠더와 트랜스젠더의 위치를 그저 기계적으로 뒤바꾸는 것을 페미니즘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유일한 방법론으로 간주하는 게으르고 편협한 사고를 단호히 물리치는 것이다.

서문부터 두근두근 😳

근대적 여성 교육기관 및 기숙학교의 등장과 함께 두드러지게 목격되기 시작한 ‘여학생들 사이의 로맨틱한 사랑’이라는 전 세계적인 문화 현상

아니 1920년대 생각보다 대단했잖아 😳🧐

이십을 넘어 이성의 필요를 느끼고 남자와의 결혼생활을 실천하여도 조금도 부자연하지 않은 나이에 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동성연애에 빠져 있다는 것부터가 극히 부자연한 생활일뿐 아니라 확실히 둘 중의 누구든지 하나는 변질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연인 사이에 발생한 살인 사건을 다루면서 두 여성의 연애 관계를 보는게 아니라 ‘교육 다 받고 나이 다 먹은 여성이 종족 번영에 힘쓰지 않다니 큰 문제다!’로 나아가는 거 정말 신박하다. 우생학 하면 보통 나치가 연상돼서 1930년대 조선과의 접점은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여러모로 신기해.

내선일체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됐던 에스닉 크로스드레싱. 식민자가 피식민자를 보며 ‘우리의 다른 점은 입고 있는 옷뿐’이라고 말하며 평화와 우정을 말하는 게 너무너무 불쾌하다. 식민자가 피식민자의 옷을 입는 것과 그 반대가 동일선상일리가 없는데..

자꾸 디즈니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가 생각난다. 지금 다시 보면 피식민자이자 실존인물인 포카혼타스와 식민자 입장의 가상인물 존 스미스의 로맨스가 얼마나 유해하게 읽힐지.. 2편에서 코르셋 꽉 조이고 드레스 입고 등장하는 포카혼타스는 또 어떻게 보일지. 언제 정주행 한번 해봐야지.

2020-08-26 식민자와 피식민자는 각자 자신의 배역을 연기한다. 식민자가 피식민자의 옷을 입는 건 오고가는 정을 연출함으로서 지위를 공고히 하려는 것이고, 피식민자가 식민자의 옷을 입는 건 식민자의 위치로 오르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 사두고 아직 펼쳐보지 못한 ‘자아 연출의 사회학’ 책이 생각나는걸 🧐

여성국극 이야기로 넘어왔다! 요새 네이버웹툰 ‘정년이’ 진짜 재밌게 보고 있어서 이 챕터가 더 반갑게 느껴진다. 근데 여성국극을 코스튬 플레이에 비교했다니.. 새로운 시도를 ‘무지한 대중의 저속한 취미’라고 비웃는 전통제일주의자는 어디에나 있구나. 웹소설 폄하하는 문단문학 피플이 생각나네.

2020-08-30 워커힐의 디바 챕터. 내가 아는 시스터즈는 버블시스터즈 뿐이라 ‘보컬 트리오 김시스터즈’ 포스터가 마냥 신기하기만 한데 방금 김시스터즈 노래 들어보니까 굉장히 멋지다. 이게 바로 60년대 걸그룹..!

왜 챕터 제목이 워커힐의 디바일까 의아했는데 ‘대중문화와 유흥업, 성매매 현장이 하나로 겹쳐지던 대표적인 공간’으로 시작했었다니 좀 충격이다. 요즘도 성매매 못 놓는 인간들이 저만큼씩 있는 걸 보면 또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앞으론 그랜드 워커힐 서울을 전처럼 동경하지 못할 거 같아..

60년대에 가수 활동을 했던 퀴어를 언급하면서 (이것도 신기하지만) 당시 유흥업소에 시스젠더 여성만 있었던 건 아니라고 확장시키는 게 되게 인상깊다. ‘비규범적 성애•성별 실천 당사자들’ 역시 이원젠더 구조의 성차별을 겪는다는 게..

이 기사에서 남장여자는 성별규범을 넘어서는 위험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기존 ‘남성의 역할’을 여성이지만 남성의 모습으로 수행했다는 점에서 성별규범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안전한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다 이제 어떤 역할도 ‘남성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며 ‘바지를 입고 넥타이를 매는’ 새로운 젊은 여성들이 나타나자, 경향신문 기자는 재빨리 이를 “멋지고 못된 소년풍”의 패션으로 명명하되, “철저히 남자로 변신”하는 것과는 구별한다.

그렇다면 1980년대에 이선희와 이상은은 성별규범을 ‘어기고도’ 스타가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톰보이들은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존재’인 소년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남성’이 아니라 ‘소년’, 바로 그 소년을 닮을 소녀를 허용했던 것이다.

나 자신이 뼛속까지 톰보이라서 이 문단 전체가 너무 아팠다. 남자애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고 싶어서, 저 역할을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최선을 다해 증명했는데, 결과적으론 철저한 동등을 인정받지도 못하고 언제쯤 ‘성인 여성’을 보여줄 거냐는 질타에나 시달리던 지난 세월…….

어렸을 땐 내가 화장이나 헤어스타일에 관심 없는 게 ‘애가 좀 둔하고 무던하다’는, 비록 부정적일지언정 나의 고유한 개성으로 인정받았는데 성인이 되어서도 관심이 없으니 ‘넌 대체 언제까지 그 꼴로 살려고 하냐’는 평을 듣게 돼서 참.. 거지같구요… 암튼 너무 내 얘기라 읽으면서 화가 나 ㅡㅡ

이처럼 1980년대에 ‘보이시한’ 소녀는 ‘남자가 되고 싶은 건방진 소녀’라기보다는 ‘남자를 모르는 건전한 소녀’에 가까웠다. 당대 여성 가수들의 성별규범 위반은 ‘성인 여성’과 ‘성인 남성’ 간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것이 아니라, ‘소년’과 ‘소녀’ 간의 경계를 가로질렀다. 이는 ‘성별규범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되는 일을 유예하는 것’이라고 해석됨으로써 오히려 건전하게 여겨졌다.

그래 맞아!!! 톰보이의 ‘보이시’함을 고유 개성으로 보는 게 아니라 기성세대 입맛의 ‘건전한 학생’ 프레임에 끼워맞춰 보는 거 그거 너무 싫어 으아악

2020-09-01

내가 하나의 작품을 이룩하는 게 작가가 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나 준엄한 각오에서가 아니라, 순전히 중년으로 접어든 여자의 일종의 허기증에서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 글쓰기란 내 또래 중년 여인들이 흔히 빠져드는 화투 치기, 춤추기, 관광여행하고 무엇이 다른가.

60년대에만 해도 ‘남녀가 제도상으론 평등해야 하지만 자연이 부여한 본질적인 불평등과 차이는 어쩔 수 없다’는 의견을 드러내던 박완서 작가가 80년대엔 시각을 바꿔 ‘해방으로서의 여성문학’을 사유할 수 있었던 건 ‘고급문화’와 ‘저급문화’를 망라한 온갖 문화를 섭렵하며 관심사를 갱신해온 결과!

그렇다면 ‘생물학적(?) 여성이 쓴 생물학적(?) 여성의 신자유주의적 성공서사’로서 ‘여성서사’의 정의를 확정해 규범화하려는 교조적인 의지가 득세하는 오늘날, 과연 여성이 축적해 온 읽기와 쓰기의 역능은 충분히 복잡하게 고려되고 있을까.

2020-09-02

이 분석에 따르면 ‘두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이라는 삼각관계 구도는 여성을 이성애적 욕망의 대상으로 둔 남성 관의 경쟁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남성들의 호모소셜한 욕망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되게 신기한 이야긴데 납득이 잘 안 된다 🧐 레비스트로스 공부하면 이해할 수 있나요

2020-12-22 9월까지 읽다가 접어뒀던 책을 다시 펼쳤다. 그리고 이 책은 어느 페이지든 다 멋져. ‘한국적 신파’ 랍시고 맨날 눈물바람으로 어머니 찾는 영화 너무 숨막히잖아요.. 죄의식을 느끼는 것으로 책임을 다한 것처럼 굴고 말야

확실히 막장드라마의 출현은 여성시청자들이 더 이상 신파에 붙들려 있지 않다는 신호이다. 주어진 환경과 부당하게 겪는 고통에 대해 무력하기만 한 여성캐릭터에게 연민을 느끼기는커녕 그 상태를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데에 대한 암묵적 동의이다.

한국적 신파가 남성젠더의 내면이 보편성으로 가공된 결과라면, 막장드라마는 여성젠더의 현실을 다분히 키치적인 감각으로 전달하는 판타지이다.

이거.. 로판 장르의 웹소설 중에도 유독 고귀한 가문의 예쁨받는 딸로 환생하는 스토리가 많은 게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걸..

즉 재화인 여성은 남성들끼리 서로 나눠 가짐으로써 가부장체제는 ‘우리 남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어 내고, 여기에서 왜곡된 전선이 등장한다.

구조 자체를 문제 삼지 못하고 배타적인 방어선을 만들어서 엉뚱한 사람들을 적이랍시고 때리는 건 꼭 남성들만 하는 것도 아니지..

그리하여 한국정치는 한국영화와 흡사하게도, 여성들은 매혹시키는 정치적 서사로서 브로맨스를 선택한다. (…) ‘원팀 정치’에서 배제된 여성들을 정치의 적극적인 소비자로 호명하는 것. 이는 여성을 정치적 주체에서는 배제하되, 그 이야기의 소비자로 소환해 내는 묘기를 선보인다.

2020-12-22 드디어 이 챕터에 들어왔다. BL의 역사를 알아보는 시간 되겠습니다. 사실 난 야오이가 山無し、落ち無し、意味無し 의 줄임말인줄도 이 장 펼치고 처음 알았다. 나 중학생 때까지도 진짜 보편적인 단어였는데 왜 야오이라고 부르는지는 한번도 생각 안해봤네 ㅋㅋㅋㅋ

여성 중심 서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BL은 근절/폐기 되어야 하는가? (…) 약 60년 전 일본 여성들이 BL 문화를 만든 이유, 그리고 30년 전 한국 여성들이 이를 열렬하게 받아들여 여성 중심의 팬 문화를 만들어 온 역사의 의의는 왜 망각되고 있는가?

2020-12-23

개인적 수준에서의 성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스트페미니즘의 분위기에서, 여성들에게 ‘아름다움’은 단지 미학적 인식의 문제인것만이 아니라, 실용적 목적으로 추구되는 ‘성취 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 이 같은 과정은 외모의 아름다움을 일종의 달성해야 할 ‘목표’로 자리하게 한다.

여성의 얼굴은 이제 ‘비포’에서 ‘애프터’사이의 무수한 과정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 되었다. 아름다움은 ‘본래적인’ 여성적 특질이기보다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된다.

이젠 아름다움 마저도 노오력으로 성취해야 하는 목표가 됐다. 그걸 위해 노오력하지 않으면 게으른 게 되고…

저는 개그우먼 이영자 씨의 ‘이영자’라는 이름이 예명인줄 몰랐어요… 하긴 1975년 국산 영화를 내가 접하긴 좀 힘들지. 그래도 이름이 너무 찰떡이라 자연스레 받아들였는데 ‘영자의 전성시대’라는 영화에서 따온 거구나 🤔

여성주의자로 정체화하고 있지 않은 여성 예능인의 행보를 여성주의의 틀로 분석하는 일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자신을 특별히 여성주의자 라고 선언/분류하지 않은 누군가가 (스스로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가부장제의 틀에서 저벅저벅 걸어 나와 ‘자기다운’ 삶을 사는 모습을 보는 것. 그 행보에서 여성/주의의 가능성과 다양성을 타진해보는 일은 멋지지 않은가? 특히 그녀가 카리스마 있으면서도 다정다감한 언행으로 미디어 시장에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