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놀이
제주도 무속 신앙을 기반으로 하는 송가네 (NCP)
소금기에 살갗이 다 거칠어질 듯한 바닷가 마을 어귀에 어느 두 심방이 살았다.
나이가 많은 쪽은 이 일을 한 지 오래되어 찾는 사람도 많았다. 아침 일찍부터 점을 봐 달라는 손님은 물론 굿을 지내줄 수 있느냐는 연락도 꾸준히 왔다. 요즘은 많이 사라졌다 하나 어민들이 사는 마을은 여전히 계절에 따라 굿을 지냈다.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올 때는 배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영등굿을 올렸고 여름의 끝 무렵에는 장마의 습기와 곰팡이를 씻어내는 마불림제를 올렸다. 신에게 뜻을 비는 굿은 아무나 지낼 수 없어 그만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연륜 있는 심방이 ‘수심방’을 맡아야 했다. 나이가 많은 쪽은 이미 여러 차례 경험이 있었다.
나이가 어린 쪽은 아직 큰 신을 모시지 못했다. 그럴 만한 시간이 쌓이지 않았고 본인의 흥미도 얕았다. 네 뜻대로 하면 돼. 억지로 따라 할 거 없어. 그녀는 신어미의 말을 충실히 따랐다. 하여 큰 신보다 그것을 모시는 수비를, 나아가선 잡귀 잡신을 더 쫓아다녔다. 그쪽이 마음도 편하고 성미에 맞았다. 어느 날 나이가 많은 쪽은 조용히 일렀다. 급 낮은 신이라고 우습게 보지 말아. 마음 놓고 있다간 네가 다치지. 그 말에 어린 쪽은 대답했다. 괜찮아. 난 엄마가 아니니까. 두 사람은 신어미와 신딸인 동시에 친어미와 친딸이었다.
나이가 많은 쪽이 큰 굿을 주관하며 마을 사람들의 운을 빌 때 어린 쪽은 그 마무리를 맡았다. 길게 이어진 앞의 제례에 한풀 지친 사람들은 막걸리 한 잔씩 걸치며 마무리 굿을 보곤 했다. 큰 신은 이미 다녀간 뒤라 그 분위기는 엄중키보다는 한 편의 마당극에 가까웠고 마무리 굿에선 모두가 굿판에 참여할 수 있었다. 굿을 보고 있던 마을 사람을 극에 즉흥으로 끼워 넣은 적도 부지기수였다. 그것이 어린 쪽에게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놀이였으나 나이가 많은 쪽은 평생 그 놀이에 잘 낄 줄 몰랐다.
나이가 어린 쪽은 신어미의 성을 따르지 않았다. 그들이 나고 자란 바다에서 심방은 으레 부모의 힘을 물려받은 세습직으로 여겨졌으므로 그녀가 이전 성씨를 유지하는 것은 퍽 이례적이었다. 왜 지금이라도 신어미의 성으로 바꾸지 않는지 사람들이 종종 물으면 그녀는 ‘글쎄요, 그럼 오빠가 섭섭해할 거 같아서요.’ 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오빠가 있다는 말은 소문으로만 돌았을 뿐 그 모습을 봤다는 사람이 좀처럼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그녀가 혹 신의 말을 돌려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가령 오빠가 이미 길을 떠난 망자라거나.
어린 쪽은 굳이 진실을 바로잡아 주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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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력으로 7월 31일이 되는 날 어린 쪽은, 송아라는 제 방에 앉아 장지문 바깥을 내다보며 생각했다. 오빠가 또 욕심을 부리는 모양이라고.
무리하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그녀는 혀를 끌끌 차며 요즈음 어머니의 침착한 표정을 떠올렸다. 끊이지 않는 장맛비를 멀게 바라보는 눈. 마을 사람들 전체의 풍운을 비는 사람도 제 아들의 신변 앞에선 염려를 다 숨기지 못했다. 마음 놓고 있다간 네가 다친다고 하는 그 말은, 아마 누구보다 아들에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같은 어미 아래 났어도 오빠는 그녀와 달랐다. 제례에 쓰는 기메는 곧잘 만들었고 큰 굿이 있을 땐 집에 돌아와 북을 두드리는 소미 노릇도 종종 했으나 거기까지였다. 나도 너처럼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사람들도 도와주고. 나중엔 엄마 일도 도와드리고. 오빠는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저를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 공동체를 보며 조금 소외감을 느끼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딸이 저를 이어받은 것도 내켜 하지 않아 했던 어머니는 큰 책임이 따르는 이 일을 굳이 아들까지 시킬 필요 없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녀는 그녀대로 잘 됐다고 여겼다. 한 자리를 계속 지키는 일에 오빠는 걸맞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쯤 하면 좋았을 텐데 하필이면 그의 끈기와 기억력이 너무 좋았다.
아직 그녀도 어렸을 무렵, 나이는 고작 세 살 차지만 그 삼 년의 짬을 도통 무시할 수 없었던 시절 남매는 종종 거래를 했다. 오빠는 그녀가 궁금해하는 것들을 몰래 일러주었다. 어른들이 늘 쉬쉬하는 마을의 뒷소문부터 그가 애용하던 어느 비밀 기지의 위치까지. 그녀는 그 대가로 오빠의 점을 봐 주었다. 멋도 몰라서 벌인 짓이었다. 심방이 제 업을 가벼이 여겨선 안 된다는 걸, 엄마가 제 가족의 점사를 직접 보지 않는 게 큰오빠를 잃은 뒤부터라는 걸 그때는 몰랐기에.
다시는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고 잔뜩 혼이 난 후에도 오빠는 제게 들은 내용을 무엇 하나 잊지 않았다. 역마살이 강해 한 자리에 오래 머물진 못할 팔자. 그렇다고 매사 불운이 따르냐 하면 그렇진 않고. 제 눈으로 보지는 못하면서 이끄는 힘은 이상할 정도로 강하고.
‘그럼 나한테 붙는 게 나쁜 귀신이야?’
‘귀신한테 그런 게 어딨어. 걔네는 그런 거 없어. 좋은지 나쁜지는 오빠가 결정하는 거야.’
근데 귀신은 원래 산 사람 사정 고려해 가면서 붙지 않으니까, 그게 위험한 거지.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오빠한테 부담이 갈 수 있으니까. 오빠는 그래도 타고난 게 워낙 강골이라 여럿 붙어도 잘 버티긴 할 텐데 혹시 모르니까 년에 한 번은 액막이굿 하면 좋고. 그럼. 나도 있고 엄마도 있잖아. 왜, 오빠 전에 교통사고 났던 거 생각하면 더.
그 말들은 다, 제가 성년도 되기 전에 멋도 모르고 주워섬긴 것이었다. 그도 제 체질이 어떤지는 알고 살아야 할 테니까. 오빠가 제 팔자를 훗날 이런 식으로 써먹을 줄 알았다면 생각을 달리했을 텐데. 덕분에 그녀는 이맘때가 되면 영 어머니를 볼 낯이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어. 결국 이것도 본인이 택한 일인걸.’
욕심 적당히 부리고 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송아라는 혀를 끌끌 차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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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데려가 줘.
여기 정말 별로야. 덥고 습하고 죽겠어. 나도 네가 가는 곳으로 데려가 줘. 너는 할 수 있잖아. 네가 있으면 우리도 버틸 수 있을 텐데. 태섭은 그것을 묵묵히 보듬어 안았다. 있잖아. 나도 너처럼 뛰고 싶어. 너 진짜 멋있어 보여. 근데 나 다리가 너무 아파. 네가 업어주면 안 돼? 이런 건 하면 안 되는 부탁이야? 태섭은 그것도 손을 잡고 끌었다. 명확한 언어가 들리는 것도 눈빛이 보이는 것도 아니었지만 제가 무언갈 또 이끌었고 또 데려가고 있음은, 굳이 아라가 건네준 무구 없이도 알 수 있었다. 아이든 어른이든 그는 가리지 않았다.
여름엔 유독 더 많이, 강하게 달라붙었다. 물에 빠져 죽은 수살귀, 억울한 죽음을 맞은 영산, 장애를 갖고 태어나 생이 고단했던 기바리와 꼽추, 하지만 꼭 대단한 사연이 있지 않아도 태섭에게 무어라 말을 건네고 싶어 하는 존재는 많았다. 그들은 바라는 게 있었고 기대하는 게 있었고, 때로는 순수하게 마음을 보태고 싶어 했으며 때로는 그저 같이 놀고 싶어 했다. 때로는 제 처지에 질질 끌려다니기도 했다. 벗어나지 못할 그늘에서 하염없이 울며.
태섭은 딱히 겁을 먹진 않았다. 그에게도 지난날의 경험이 있었다. 저를 해치려고 달라붙는 게 아니었고 나쁜 마음으로 부르는 게 아니었고 어지간히 강력한 한(恨)이 아니어선 별 영향을 주지도 못했다. 이름 모를 것들을 작정해서 끌고 다닌 지도 벌써 몇 해째라 그는 익숙했다. 제가 다치지 않을 선을 볼 줄 알게 된 이후로는 가능한 한 모두를 끌어안았다. 동생과 어머니처럼 뚜렷하게 알진 못해도 어렴풋하게 전해오는 그들의 간절함, 희망을 만나 벅찬 동시에 제가 이미 귀신인 걸 알아 슬픈 마음을, 조금도 가엽게 여기지 않았다면 그 또한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단지 그 이유만으로 움직이진 않았다.
송태섭은 안다. 그는 아라처럼, 어머니처럼 볼 순 없었다.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큰 신을 마주할 그릇도 못 되었고 산 사람이 꼭 필요로 하는 말을 제때 들려주는 조언자도 될 수 없었다. 두 여자는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넓고 깊은 바다처럼 수면 아래로 가라앉히며, 마치 오랫동안 환기되지 않았던 방의 창문을 열듯 시원스레 모든 일을 끝내곤 했다. 반면 태섭은 그러지 못했다. 그는 늘 지금 살아가는 제 생이 가장 뜨겁고 절실했다. 꼴사납다고는 생각해도 도무지 물 흐르듯 흘려보내지지 않았다.
그는 타협해서 무리에 속하기보다는 혼자 되기를 택했고, 제게 닥치는 일을 묵묵히 받아들이기보단 성을 냈으며, 해낼 수 있을 거 같아서가 아니라 물러날 곳이 없어서 버텼다. 대단한 이름을 거머쥔 건 아니었다. 그저 전국 곳곳을 돌며 사람들의 사진을 찍었고 시기가 맞으면 농어촌의 굿판에 찾아가 사라져가는 전승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직도 가을 수확제가 열릴 때면 인근 마을 전체를 한 바퀴 돌며 굿판 쇼핑을 하는 할머니들이 있었다. 가면 밥도 주고 마무리 굿에선 재미지게 놀 수도 있고. 태섭은 때로 할머니들을 태워 나르는 운전기사 노릇을 했으며 거기서 닿은 인연으로 또 다른 마을을 찾기도 했다.
도시를 가든 지방을 가든 그의 등 뒤로는 늘 수많은 잡귀 잡신이 새롭게 따라붙었다. 생이 너무도 고단했던 이.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 끝없이 흘러나오는 태섭의 짙은 생기에 홀린 듯이 달라붙은 욕심 많은 신까지. 타지에서 만나는 무당들은 종종 별 희한한 놈 다 보겠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걸 왜 안 떼고 줄줄이 달고 다닌대. 태섭은 늘 웃으며 대답했다. 더 잘 보내줄 방법을 알아서요. 걱정하지 마세요.
태섭은 운전석에 앉아 비포장도로의 흙먼지와 바닷가의 소금기가 고스란히 밴 차 문을 당겨 닫았다. 조수석엔 어르신들이 챙겨준 여름 사과 한 박스와 제 카메라 가방이 굴러다녔고 바닥 어딘가엔 주유소 휴지도 있을 터였다. 모습도 이름도 모를 것들을 제 품으로 얼마나 끌어왔는지 어깨가 다 무겁다는 착각이 들었다. 아니, 실제로 두통이 좀 있는 거 같기도 하고.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번 여름은 정말로 수확이 좋았기에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럼 다녀올게.”
그는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가볍게 인사했다. 별다른 대화는 오가지 않았고 잠깐의 웃음 끝에 그는 그대로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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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불림제는 음력으로 7월 14일 또는 15일에 열렸다. 태섭은 매년 이르면 제 생일, 늦어도 그 시기에 맞춰 집에 돌아왔다. 여름을 지나 보내는 마지막 보름달을 함께 보기 위해.
태섭이 어젯밤 아슬아슬하게 도착했을 때 어머니와 아라는 이미 제사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날이 밝자 마을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늘진 명당 자리를 찾아 앉기 시작했고 굿 준비를 돕는 소미들은 메와 술, 과일과 시루떡 등을 본향당으로 끊임없이 날랐다. 태섭은 꼭두새벽부터 제장 주위에 걸어둘 기메를 만들었다. 이제는 기껏해야 일 년에 하루 하는 일인데도 어릴 때 곧잘 하던 느낌이 남아 있는지 마치 어제 한 듯 익숙해 층층이 접어 칼로 모양을 내는 손길엔 망설임이 없었다.
화려한 문양의 새하얀 종이들이 나뭇가지와 빨랫줄에 걸려 곳곳에서 나부꼈다. 제단을 향해 네 번 절하고, 북과 장구와 꽹과리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어머니는 무가를 부르며 초감제를 시작했다. 섬 이곳저곳에 흩어져 살고 있다는 큰 신들을 한데 불러 모으는 의식이었다. 어느 집의 어떤 심방이 무엇을 왜 청하고자 하는지 고하고 이 집의 문을 열어 신을 맞아들이는 일이었다. 혹시나 못 들으셨을까 다시 청하고, 오시는 길을 닦고, 자리에 나가 마중하며 부디 우리의 염원을 들어달라 비는 긴 제청 앞에서 태섭은 잠시 말을 잊었고 동시에 인기척 없이 다가온 송아라를 눈치챌 수 있었다.
‘안 바빠?’
‘준비가 일찍 끝나서 할 게 많진 않네. 오빤 뭐해.’
‘그냥. 간만이잖아.’
‘할 거 없음 오빠도 좀 쉬어. 금방 끝날 것도 아닌데. 그리고 오빠가 달고 있는 걔네는 이거 봐서 좋을 것도 없어.’
저거 봐. 할머니들도 떡 드시면서 보는구만.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태섭과 눈이 딱 마주친 건넛집 여든 넘은 해녀 할머니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떡을 왕 물어 삼키셨고 태섭은 낮게 터지는 웃음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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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가 지내는 마무리 굿을 육지에선 뒷전이라 불렀고 이곳에선 도진이라 불렀다. 사람을 도울 만한 힘은 없어 큰 신을 모시는 굿에는 초대받지 못하는 하급 수비들부터 이때가 아니면 대접받을 기회가 없는 잡신들까지. 오랜 신앙에 따르면 오로지 집에서 죽은 사람만이 그 집의 조상신이 될 수 있었다. 병원에서 죽든 요양원에서 죽든, 집이 아니라면 그것은 길바닥에서 죽은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 모두가 객사로 불렸으며 객사한 이들은 조상신이 되지 못한 탓에 귀신이 되어서도 제집의 제삿밥을 먹지 못하고 늘 배곯은 상태로 돌아다녔다. 그들을 유일하게 받아주고 먹여주고 놀아주는 곳이 바로 마무리 굿, 도진이었다.
삼 년 간의 소미 생활을 마치고 어엿한 심방이 된 송아라가 저는 계속 도진만 지내고 싶다고 했을 때, 그게 제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설명했을 때 송태섭은 문득 떠난 형을 생각했다. 그렇구나. 누군가는 그렇게 떠도는구나. 이름도 모습도 알려지지 못한 채 환대도 받지 못한 채. 송아라는 싱겁게 웃으며 말했다. 이쪽이 더 재밌을 거 같지 않아? 난 딱히 내가 엄마 일을 물려받았다고 생각 안 해. 그런 부담 안 가져. 나는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거야.
큰오빠는 진작 떠났겠지. 우리 어릴 때, 아무것도 모를 때 엄마가 직접 굿하셨겠지. 가끔 그 풍경을 상상하거든. 엄마는 더 이상 도진을 직접 안 지내시니까. 힘들었을까? 이 굿에 찾아오는 귀신 중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근데 나는, 언젠가 겪게 될 일이라면 차라리 그 자리에 있고 싶은 거 같아. 내 손으로 보내주는 게 나아. 그게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도진에 찾아오는 잡귀들은 예의 있게 들어와서 밥 먹고 곱게 인사하고 나가는 게 아냐. 쫄쫄 굶었는데 그럴 여유가 어딨어. 게걸스럽게 들어와서 괜히 하소연하고 못난 소리하다가, 때로는 우리한테 성을 내기도 해. 억울하게 죽은 귀신도 있지만 그냥 제 팔자 제가 꼰 귀신도 있고. 우리도 무슨 대단한 대접하는 게 아니라, 큰 신께 바치고 남은 음식 이거라도 먹으라고 주면서 잠깐 장단 맞춰주는 거에 가까워. 당신들 힘들었던 거 알겠으니까, 춤 한 번 신나게 추시고 네, 인제 그만 가세요, 하고 판 깔아드리는 거지.
보잘것없긴 해도 난 그게 좋더라고. 새벽녘의 송아라는 그런 말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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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이렇게 생일 넘겨서 올 거야? 생일 축하 정돈 집에서 같이 해도 좋잖아.”
“미안. 다니다 보니 이렇게 됐네.”
인적 드문 곳을 찾아 그늘진 구석으로 그를 데려온 송아라의 손에는 어제 태섭이 가져온 여름 사과 한 알이 들려 있었다. 톡 날아오는 그것을 가볍게 건네받은 태섭은 잠깐 제 손을 닦더니 이내 사과를 두 쪽으로 갈라 하나를 도로 송아라의 손에 돌려주었다.
“생일 축하는 누가 해 줬는데. 설마 혼자 보낸 건 아니지?”
“어련히 알아서 했을까 봐.”
“할머니들한테 축하받았단 소리 하기만 해.”
“아, 진짜 아냐. 나 요즘 같이 다니는 사람 있어.”
같이 다닌다고 해 봐야 별거 아니지만. 내가 하는 일이 재밌어 보인다나⋯. 거창한 건 아닌데 지금은 그래. 태섭은 어물쩍 말을 흐렸고 송아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사과를 덥석 베어 물었다.
“그럼 이참에 같이 오지 왜 혼자 와. 어차피 오빠랑 다녔으면 굿판 익숙한 사람일 거 아냐.”
“으, 어색해서 어떻게 그래. 엄마 내심 기대하실 텐데.”
“기대를 충족시켜 주면 되지 뭐가 문제래?”
“⋯너 뭘 알고 하는 소리야?”
“나? 내가 뭘?”
아니다. 됐다. 태섭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으며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이제 그는 여동생의 농담과 진담도 구분하기 힘들었다. 반면 송아라는 어떤 웃음을 감추지 않는다. 하여간, 평생 신을 담을 그릇은 되지 못할 제 오빠.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지만 또 사소한 일에도 웃는 송태섭. 큰오빠는 진작 떠났겠지, 하고 제 속마음을 털어놓은 밤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더니 어느 날 그녀에게 장문의 문자를 남겼던 사람.
오빠, 다시 생각해 봐. 꼭 걔네를 하나하나 데려와야겠어? 내가 혹시 모르니까 년에 한 번씩 액막이 굿하러 오랬지, 굿으로 해결할 수 있는 만큼 다 끌고 오랬냐구. 쉽게 생각하지 마. 오빠한텐 한순간의 동정이겠지만 귀신들한테는 그게 자기 생이었어. 그리고 내가 얘기했지. 그런 잡신들은 오빠한테 고마워할 정신도 없다고.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는데. 나도 나지만 엄마가 보면 뭐라고 생각하겠어. 오빠가 아직도 큰오빠 일로 죄책감 느끼고 있나 신경 쓰실 거 아냐.
그러지 마. 오빠까지 무게 지고 살 필요 없어. 일부러 더 모질게 몰아붙인 그 말에 선선하게 웃으며, 그런 거 아니라고 말했던 사람.
‘아라야. 나 그 귀신들 동정해서, 꼭 안타깝게만 생각해서 데려오는 거 아냐.’
‘⋯⋯.’
‘난 네가 굿하는 걸 보잖아. 즐거워 보여. 어르신들도 즐기시지만 무엇보다 네가 즐기는 게 보여. 너 그 굿을 재밌다고 생각하잖아. 좀 성가시긴 해도 재밌는 것들과 놀고 있다고.’
나도 똑같아. 날 따라오고 말을 거는 것들이, 마냥 가엽고 안쓰럽기만 하지 않아. 애틋해. 재밌어.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 무엇이든 애정을, 호기심을 가져주는 거니까. 명확하게 보이고 들리진 않지만 어렴풋한 감정 정도는 전해지니까. 그게 귀하게 느껴져. 아주 혼자는 아니라는 생각에 때로 위안도 돼. 그리고 다행히 나는 그것들을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체질을 타고났잖아.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사명감 같은 것도 아냐. 그야 처음엔 형 생각도 했지만, 지금도 생각이야 하지만⋯ 적어도 그 일로 내가 힘들진 않아. 하지만 힘들지 않게 됐다고 해서 그 일이 영원히 끝난 것도 아니지. 아라 너도 그렇잖아. 예의도 뭣도 모르는 그 귀신들을, 네 손으로 직접 풀어 먹이는 데서 해방감을 느끼잖아. 이건 어쩌면 우리한테 필요한 일이야. 설명하긴 어렵지만.
오래 하지 않을게. 무리하지도 않을 거고. 엄마한테도 내가 똑같이 설명할 거야. 하지만 지금은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어. 네가 그랬듯, 나도⋯.
그 말에 송아라는 지워지지 않을 어떤 예감, 이것이 언젠간 벌어질 일이었다는 애달픈 깨달음, 그럼에도 한 줄기 바닷바람 같은 안도를 남몰래 느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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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불림제와 같이 큰 굿은 지내는데 하루 종일 걸렸다. 제례를 여는 초감제로 시작해 마을신께 마을의 안녕을 비는 본향듦, 참가자들의 일 년 운수를 점치는 산받음, 마을 전체의 액막이를 하는 액막음 등 거쳐야 할 제차도 많았고 그 모든 굿은 마을의 다른 심방들이 번갈아 가며 진행했다. 아라의 순서는 해가 질 때쯤에야 돌아왔고 무더운 여름날 내내 밖에 있느라 지친 사람들은 대부분 도진이 시작되기도 전에 돌아갔다. 남은 사람들은 그리 성급하게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뿐이었다.
도진은 그리 중요한 제차로 여겨지지 않았다. 지켜보는 사람에게도 굿을 노는 심방에게도 대단한 격식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또 어떤 우스꽝스러운 마당극을 보게 될지 기대하는 마을 할머니들의 눈에는 장난기가 서려 있었고 마침내 무복을 입고 기메를 들고 굿판 한 가운데에 선 송아라의 눈에도 역시, 감출 수 없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오늘은 또 누구를 놀리고 누구를 가여워할 것인가. 이때만을 기다려 온 저 문밖의 잡귀들도. 오빠가 전국을 돌며 데려왔을, 이렇게 표현해도 괜찮다면 오빠의 친구들도.
해 줄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그러나 그녀도 오빠도 일방적으로 베푸는 입장이 아니었다. 오빠는 그들 덕분에 홀로 다니는 생활이 외롭지 않았고 거기서 또 새로운 마음을,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갔다.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어둑어둑 앞도 잘 보이지 않고 구경꾼도 죄 산만하게 구는 지금 이 순간이 송아라는 정말로 제 것 같았다. 남들의 눈은 아무래도 좋다. 제가 주인공이 아니어도 좋다. 여기에 더 이상 주인공은 남아 있지 않다. 남은 것은 그저 한 판의 놀이.
어느덧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이 여름의 마지막 보름달 아래에서 송아라는 새하얀 종이가 나부끼는 무구를 높이 들었고 태섭은 그 움직임에 맞춰 함께 북채를 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여름놀이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