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독서 일지1
도서관에서 빌린 두 권의 책을 조금씩 읽었습니다.
- 조효원 <다음 책>, 문학과지성사
- 하스미 시게히코 <제국의 음모>, 문학과지성사
조효원 <다음 책>, 문학과지성사
최근에 칼 슈미트의 <대화극>이라는 책을 샀습니다. 26년 1월 신간이고 아직 읽어보기 전이라 내용을 모르는데요. 책 예쁘네~ 하고 휘휘 보다가 문득 이런 걸 번역하는 사람은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궁금해서 알라딘에 검색을 해봤습니다. 독어독문학과로 학사 석사 박사까지 따고 지금은 문학평론가/번역가로 활동한다고 나오더라구요. 그렇구나. 그리고 이분이 2014년에 직접 쓴 책이 검색 결과에 나오길래 호기심으로 빌려봤습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보는 것’, ‘보게 하는 것’, ‘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보는 것’은 말 그대로 우리가 하염없이 보는 것, 우리에게 재미와 도파민을 선사하는 것들입니다. 드라마, 야구, 올림픽 중계, 뉴스, 유튜브와 OTT, 매일매일 먹어치우는데 도무지 줄어들지 않는 컨텐츠. 반면 ‘보게 하는 것’은 우리가 문학을 읽었던 시간입니다. 무엇을 보게 하느냐? ‘보는 것’의 헛됨을 보게 합니다. 유튜브 숏츠는 다 보고 나면 얼마나 공허하던가요. 하지만 우리는 문학 사랑이 그다지 깊지 않은 미숙하고 어린 자식이라 문학의 깊은 뜻을 자주 까먹습니다. 마지막으로 ‘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은, 문학의 유언입니다. 관짝에 누워 있는 문학이 우리에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무엇을 보지 않을 수 없는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사람은 살면서 평생 무언가를 보는데, 그렇게 ‘보는 것’과 보는 행위 그 자체를 ‘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 재미에 대한 완고한 저항, 재미 없는 고통을 우리는 문학으로부터 물려받았습니다.
내용을 요약하기 어려워서 그냥 프롤로그 네 페이지 정도의 내용을 한 문단으로 써 봤고.. 알라딘에서 책 정보를 찾아보면서도 아리송했는데 절반 정도 읽고 나니 책소개를 왜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써놨는지 알 거 같습니다. 에세이로 홍보하자니 문장 생김새가 너무나 문예비평의 그것이고, 비평서 a.k.a 대중 학술서로 홍보하자니 그 정도로 뚜렷한 주제가 있진 않고 또 단상을 늘어놓는 방식은 꽤나 에세이 같습니다. 뭐라고 홍보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어요. 하지만 관짝에 누워 있는 문학의 장례식장에 추모객으로 오고 싶은 사람이라면 재밌게 읽을 책 같고, 저는 일단 정말 재밌었습니다.
하스미 시게히코 <제국의 음모>, 문학과지성사
칼 슈미트의 <대화극>을 사면서 문학과지성사의 채석장 시리즈 전권을 한번 훑어봤는데 그중 신기한 이름이 눈에 띄었습니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저한테 영화평론가로 각인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제국의 음모\>라니, 저는 당연히 스타워즈 얘기일줄 알았어요. 그런데 책 소개에 프랑스 제2제국 이야기라고 써 있어서 두 눈을 의심했습니다. 영화평론가가 그런 책을 왜 써..? 알고 보니 이분이 한국에선 영화평론가로 알려졌지만 문학 교수이기도 해서, 원래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고 프랑스 유학도 다녀왔고 프랑스 철학 사상도 많이 전파했다고 하더라구요. 신기해서 빌려봤습니다.대화극>
이 책은 주제가 정말 특이합니다. 먼저 프랑스 제2제국이란? 나폴레옹 3세가 세워서 20년 정도 유지된 전제정 국가입니다. 나폴레옹 3세는 원래 공화정 체제에서 대통령으로 있다가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어라? 익숙한 시나리오) 황제가 된 케이스인데 이 사람에게 드 모르니라는 이복형이 있습니다. 드 모르니는 나폴레옹 1세의 핏줄이긴 하나 사생아여서 가문 바깥에서 키워졌고 보나파트르 가문이 숙청 당할 때도 비껴나간 덕에 사교계에서 잘 나가는 멋쟁이 귀족1로 남았는데, 이복동생인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에 꽤 중요한 역할을 해서 공신으로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이 사건을 다루는 가장 유명한 책으로는 카를 마르크스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 있구요. 읽어봤다는 건 아니지만.
그럼 <제국의 음모>가 프랑스 제2제국의 쿠데타를 다루는 역사책이냐? 아닙니다. 이 책은 이복형 드 모르니가 쓴 두 개의 글을 함께 읽어보는 책입니다. 첫 번째 글은 쿠데타를 시민들에게 알리는 목적으로 작성된 포고문이구요. 두 번째 글은 멋쟁이 귀족 드 모르니가 취미 삼아 가명으로 썼던 오페레타 <슈플뢰리 씨, 오늘 밤 집에 있습니다>의 극본입니다. 이쯤 되면 도대체 그걸 왜 읽어봐야 되는데???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드는데 저도 아직 이 의문을 해소할 만큼 읽진 못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포고문 파트를 이제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들뢰즈의 시뮬라크르를 끌어와서 좀 당황했어요. 이게 그런 개념까지 가져와서 읽어야 할 만큼 의미 있는 텍스트란 말야? 왜 이 주제에 이렇게까지 꽂혀 계신지 썰을 좀 풀어주는 게 더 의미 있을 거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며 책을 덮었습니다.
책 읽고 쓰는 주절주절이 이렇게나 재밌다. 책 얘기 길게 할 수 있는 장이 생겨서 기쁩니다. 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