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a 마차살 일기.

어쩌다가 또 웹소설에 코가 꿰여서 스크린샷을 열심히 찍고 있는데 이쯤 되면 아카이브를 모으는 게 좋을 거 같아 쓰는 메모글.

작품의 제목은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이지만 트위터에서 돌았던 말마따나 이 소설에서 주인공 개인의 생존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건 초기 독자를 유인해 오기 위한 장르적 장치에 불과하고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었던 전개 - 주인공이 집안에서 겪는 쟁투나 작위를 물려받기 위한 권력 싸움 - 은 어느 순간부터 아예 자취를 감춘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로 제대로 치닫는 건 약 490화 이후부터인데,

이게 작품 전체의 캐치프레이즈가 아닌가 싶다. “존중받아 마땅한 자와 그래서는 안 되는 자의 구분이 있”는 세상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심지어 그 구분이 “군중 심리에 의해” “자의적”으로 “정의의 겁을 쓰는” 채 만들어진다는 게 얼마나 문제적인지 말하고 싶어서. 나는 이게 더할 나위 없이 시의적절한 표현이고 지금 시기에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마차살』의 세계관은 일종의 사고실험에 가깝다. 만약 우리가 아는 역사에서 A 요소가 빠지고 대신 B 요소가 삽입됐다면, 그래도 여전히 C 라는 문제와 D 라는 정점이 탄생했을까? 작가는 이걸 확인해 보기 위해 19세기 독일을 배경으로 고른 다음 니체의 존재(A)를 제거하고 마법(B)을 추가했다.

신의 죽음을 선포했던 니체가 등장하지 않았으니 이곳의 개신교와 천주교는 그 영향을 받지 않았다. 종교는 여전히 강세다. 마법이라는 게 등장하자 교황청은 마법이 신의 은총이라고 주장했고 오로지 성경 구절만을 마법의 도구로 쓸 수 있게 규정했다. 따라서 파우스트를 인용해 마법을 쓰는 사람은 이단 심문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마법은 인류의 생산에도 관여한다. 이곳에는 신인류와 구인류가 존재하고, 구인류는 여전히 성별 관념을 지닌 채 번식 활동으로 아이를 낳지만 신인류는 무성으로 살며 아이는 필요한 경우 마법 화학식으로 찍어낸다. 당연히 가족과 부모의 개념도 다르다.

하지만 이 희한한 대체역사 세계관에서, 이렇게까지 현대와 갈라졌는데도 ‘극단에 닿은 다원주의’는 잔혹할 정도로 그대로다. 뜻이 맞는 사람들은 뭉치고 고립되어 내부에서 그들은 모두 같아진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이미 LCL 용액으로 다 보여준 거 아니었나)

주인공이 살던 시대는 계속된다. 여전히 C 는 존재한다.

이 소설의 배경은 19세기 독일이므로 아직 1차 세계대전은 발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대전을 피해가지 못할 것 같은 전조는 여기저기서 풍겨온다. 그것조차 C 에 포함된다. 사람들은 재난 상황 앞에서 당연하다는듯 민족주의를 내세우고 자국민과 외국인, 평민과 귀족, 구인류와 신인류, 마법사와 비마법사 등 각종 구분을 기반으로 나 아닌 타자를 비인간화시킨다. 이미 이 시기의 대중에게서 나치의 향기를 감지할 수 있다.

독자들의 세계관(21세기 한국)도 살아봤고 『마차살』의 세계관(마법은 있고 니체는 없는 19세기 독일)도 책 빙의로 살아보게 된 주인공은 이 원치 않았던 교차점을 고통스러워한다. 하지만 조건이 달라졌음에도 시대를 이렇게 이끈 군중을 탓하지는 않다. 양쪽 세계관 모두에서 그는 남을 원망하는데 실패한다.

한때 상담센터 가서 ‘저는 남한테 화를 잘 못 내겠어요 그렇게 되지가 않아요..’ 를 토로해본 사람으로서 이 문단은 진짜 힘들었다. 나를 상처 입히는 사람의 심정을 나는 어느 정도 이해한다. 상처 입고 마는 구도 자체를 바꿀 수 없다면 차라리 그 사람의 동기라도 이해하게 되는 쪽이 내 고통을 덜어주기 때문에 나는 열심히 수용했다. 이해할 구석이 누구나 하나쯤은 있다. 그걸 반복하다보면, 어디에도 분노를 터뜨리지 못하고 끝까지 관조하는 사람이 된다. ‘그러고도 사람이야?’는 누구보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질문이다.

대중이 그를 아주 쉽게 비난하고 다음 날엔 태도가 바뀌어 다시 추앙하는 이유를 주인공은 놀라울 정도로 잘 안다. 그것은 “사고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고 남의 말에 호도되어 듣고 보니 옳다 그르다 할 줄 아는 것을 자기 사고로 오인하기 때문이며 가장 결정적으로는 사고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이 꽤 날카롭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주인공이 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독백하는 말인 동시에 작가가 독자들에게 하는 말이고 독자들은 ‘맞아요 요즘 그런 사람들 많죠…’ 하고 남일처럼 얘기할 게 아니라 저 군중 속에 속해 있는 자신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의 말에 호도되기 정말 쉬운 세상이지. 타자에게 제 진의를 전하기 위한 주인공의 시도는 거의 대부분 실패로 돌아간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주인공이 ‘아 이쯤에서 포기하고 싶은데’ 하고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을 때, 그를 다시 인간의 영역으로 돌아오게 만든 동력이 눈부시게 나아가는 친구의 삶을 계속 지켜보고 싶어서 <- 라는 점이 참 좋았던 것이고⋯.

문득 『어바등(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생각을 했다. 주인공이 어떤 힘을 갖고 있고 그 힘 때문에 사이비 종교 집단의 강제 메시아가 된다는 틀에서 두 작품은 닮았다. 근데 어바등이 선의의 순환이었다면 여긴 익명 대중 악의의 순환에 가깝다. 주인공의 성질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는데 오로지 신문이 그를 어떻게 다루느냐, 여론몰이를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군중의 뜻은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다. 그들은 주인공을 “진창에 처박았다가 십자가에 매달든지 경배하든지” 하며, 동시에 이 모든 평가는 애초에 너의 행동과 성질에서 기반했으니 너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이 정도로 환호를 받았으면 너도 뭔가 보여줘야지. 이 정도로 비난을 받았으면 너도 사과를 하든 네 무죄를 입증하든 해야지. 그 모든 요구가 폭력적이고 진절머리 난다는 걸 작가는 하염없이 얘기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처음으로 판타지 장르 웹소설에 등장하는 ‘상태창’이 끔찍하다는 생각을 했다. 『데못죽(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에서 상태창이 최종 보스로 등장했을 땐 그냥 크툴루적 재미 요소로 즐겼는데 『마차살』의 상태창은 마치 ‘너는 영원히 대중의 호감도에 신경 쓰고 살아야 하고 거기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거 같다. 신문 기사로 인해 자기 평판이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질 때 그 현상을 굳이 눈앞에 있는 ‘상태창’으로 지켜봐야 하는 이유가 대체 뭐란 말인가? 아직 SNS 는커녕 라디오 기술조차 등장하지 않은 19세기 독일이건만 왜 주인공 혼자 사이버 불링을 맛봐야 하는지⋯.

그래서 이 모습을 옆에서 쭉 지켜봐 온 레오의 말이 더욱 울림이 컸다. 끝없는 고행을 통해 결국 종교적 성인이 탄생할 수도 있겠지. 그런 성인이 만인을 연민하며 세상을 보살필 수도 있겠지. 따라서 그 성인의 탄생을 저지한다는 건 어쩌면 만인에 대한 불의일지도 모른다. 주인공은 적어도 한 시대의 우상, 혹은 정말로 종교적 메시아가 되기 위해 태어난 인물일지도 모른다. 『마차살』의 세계관에서 종교는 아직 거스를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사람들의 삶을 지배한다. 여기에 불응한다는 건 어마어마한 저항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불의가 있었어. 내가 막을 수도 있는 불의가.” 다른 무엇보다 그 하나의 불의를 막고 싶다는 선언이 정말⋯.

아무튼. 『마차살』은 재밌는 소설이다. 근데 오락적인 재미냐고 하면 그렇진 않고. 극적 긴장을 줬다가 풀었다가 독자를 웃겼다가 울리는 그런 줄다리기가 유려하진 않다. 그걸 목표로 하는 것 같지도 않다. 독자를 작품에 참여시킬 의지도 별로 없어보이고 다만 하고 싶은 말이 명확할 뿐이다. ‘쉽고 직관적인 언어의 득세를 막자.’ 근데 그 말을 1200페이지 논픽션 종이책으로 쓰면 아무도 안 들을 게 뻔하니까 웹소설 포맷을 고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오로지 청자를 획득하기 위해. 그래서 나머지 스토리와 성경 해석, 당황스러울 정도로 떠먹여주는 진득한 우정은 전부 부차적인 요소로 느껴지기도 한다.

어제는 문득 읽으면서 이 소설이 약간 유화 같다는 생각을 했다. 딱 필요한 선, 필요한 색채와 구도만 써서 깔끔하게 나아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한 문장만 써 줘도 될 거 같은 곳에 문장을 계속계속 입힌다⋯. 이렇게 열심히 말 안하면 자기 생각이 제대로 안 전해질까봐 참 걱정이라는마냥. 그래서 『마차살』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무렵엔 이 뚱뚱한 서술들의 의미를 도대체 이해할 수 없어서 위키까지 만들어가며 읽었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그러라고 만들어진 텍스트가 아니였다.


여기까지 썼는데 아직 다 소진하지 못한 스크린샷 20장쯤 더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