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리폼드

개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장벽 앞에서 우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걸까. 역사의 한 족적이 될 수 있을 거란 헛된 믿음을 가지고 나를 불살라야 하는 것일까. 개개인의 작은 실천이 모여 큰 변화를 이룰 수 있을 거라는 말은 가끔 너무 무력하게 느껴진다. 이젠 그런 도덕 교과서 같은 구절을 나이브하게 믿을 만큼의 순수함이 남아있지 않다.

‘평생 하나님께 귀의하여 금욕적인 삶을 살아온 신부’는 20세기 문학 작품에나 등장한다. 그런 캐릭터는 2019년 현재에는 어울리지 않고,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지도 않는다. 종교에 적을 두면 속세와 멀어져 소음 없는 청명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믿음은 그러고 싶다는 희망에 가깝다. 그래서 이 작품의 시작은 진부하고 끝은 더더욱 강렬하다.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피하기는 커녕 외면조차 못하게 성큼성큼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우리가 구원을 바랄 수 있는 것은 개인과 사랑 뿐이다. 사랑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말하면 퍽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구원은 잔혹하고 불안하다.

퍼펙트 블루

곤 사토시 감독 애니메이션을 드디어 봤다. 연출이 정말 어마무시하다. 꿈과 망상과 현실을 아주 기묘하게 섞어놓아서, 이 중 무엇을 꿈으로 판단하고 무엇을 현실로 판단하냐에 따라서 결말에 대한 해석도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는 작품. 19금 관람가라 예상은 했지만 성적인 장면, 유혈 신이 많고, 강간에 대한 묘사가 꽤 디테일하게 나오는 건 좀 힘들었다. 그렇지만 그걸 다 감당하고 볼 가치가 있었고, 감독의 다른 작품도 찾아볼 예정. 여담이지만 이 작품을 리뷰하면서 ‘여자 아이돌이 겪은 충격적…’ 따위의 제목을 붙여 조회수를 올리려는 개수작을 많이 봤는데 강간씬보다 더 기분 나빴다.

하마구치 류스케 특별전 - 아사코, 파도 3부작, 열정, 해피 아워

아사코가 너무 좋아서 이 특별전을 손꼽아 기다렸고, 시간 되는 대로 챙겨봤지만 여전히 내가 이 감독 영화의 어떤 면에 끌리는지 설명하기가 어렵다. 파도 3부작은 사실 너무 조용하게 진행돼서 졸음을 참기 어려웠지만.. 지진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다큐멘터리라는 설명을 읽고 내가 예상했던 이미지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작품이었다. 힘든 일을 겪은 모두가 동일한 강도의, 동일한 형태의 감정을 겪지 않는다는 걸 새삼 생각했다. 항상 생각하는 지점인데도 영상으로 접하면 또 색다르다. 열정은 다듬어지지 않은 아사코 같은 영화였다. 아사코가 아주 간결하게 절제된 서사와 클라이막스를 보여주는데 반해 어딘가 거친 구석이 남아있는 영화였다. 줄거리도 꽤나 막장이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등장인물들이 영화라는 허구에만 속하는 것 같지가 않다. 현실과 허구 사이의 제3세계에 표류하는 듯한.. 역시 내겐 이 불가사의한 매력을 설명할 언어가 없다. 해피 아워는 그 불가사의함의 절정이었다. 상영시간이 5시간이 넘어서 중간에 인터미션이 있는 영화를 처음 감상해 봤는데, 졸리거나 지루한 순간이 없었다. 시간 감각을 잊게 만들 만한 박진감 넘치는 서사는 단 한 순간도 없는데, 노세가 자신의 소설을 20분간 하염없이 낭독하는 장면에서도 긴장이 끊이지 않는다. 싸게 술 마실 수 있다고 좋아하기만 했던 ‘해피 아워’라는 단어를 이렇게 오래 깊게 생각해 본 것도 처음이었다.

파리의 딜릴리

원래도 미셸 오슬로 감독의 색감을 좋아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아주르와 아스마르를 보면서 어찌나 황홀했던지. 그래서 이 감독의 작품을 영화관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에 기쁨의 댄스를 추었다 (?)

딜릴리는 최고다! 내게 만약 딸이 있다면 그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최고의 동화는 바로 이 ‘파리의 딜릴리’가 아닐까 생각했다. 실제로 엔딩 크레딧에서 ‘스탭들은 자신의 딸을 생각하며 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하는 문구가 나오기도 하고. 사실 벨 에포크 시대를 다룬다고 해서 서사는 그렇게까지 기대를 안 했는데 의외로 정치적인 이슈도 잘 다루고 있었다. (여기서 잘 다룬다는 말은, 꼼꼼하고 첨예하게 다룬다는 의미가 아니라 작품에 잘 어우러지게 담아냈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어린이 주인공을 내세울 때 이 캐릭터를 어른과 동일하게 대해도 문제가 되고, 또 너무 지나치게 순진하게 -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한 얼굴로만 - 대해도 문제가 되는데 그 중간의 무게 중심을 잘 잡았다는 느낌. 유혈이 낭자하는 심각한 영화 위주로 보다가 간만에 이런 아름다운 동화를 봐서 심신이 정화되는 것도 있었고.

서스페리아

이건 지뢰다 지뢰야.. 나는 이 영화를 끝까지 다 보지 못하고 중간에 나왔다. 전례 없는 29금 공포 영화라는 홍보 문구에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도전했지만 장렬히 실패했다. 절반 조금 넘게 보고 나왔는데, 그 절반 마저도 고개 숙이고 장면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린 시간이 길었다. 또 줄거리 자체는 굉장히 뻔해서 (단서도 다 흘리고 시작하고) 나머지 절반을 꾸역꾸역 보면서 내 멘탈을 더 희생시키느니 맛난 거나 먹는 게 여러모로 좋겠다 싶었다. 이 진입장벽을 무릅쓰고까지 봐야 할 만큼 대단한 명작인지도 모르겠고. 색감이 예쁜 건 인정한다 이거에요. 하지만 보는 내내 이 말이 입 안에서 맴돈다. ‘충격적인 게 곧 예술은 아닌데..’

기생충

이전까지의 봉준호 감독 작품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이전엔 방향이 확실한 서사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 진범을 찾자 (살인의 추억), 괴물이 나타내서 딸을 데려갔다 -> 딸을 되찾자 (괴물), 내 아들이 살인사건 범인으로 몰리고 있다 -> 진범을 찾자 (마더), 열차 뒷칸 너무 힘들다 -> 앞으로 가자 (설국열차).

그런데 기생충은 그렇지가 않다. 등장인물들은 뚜렷한 목적이 없고 계획도 없다. 무계획이 곧 계획이라는 말을 대사로 직접 할 정도다. 그간 봉준호 감독 영화에서 많이 등장했던, 한국스러운 악착스러움을 보여주는 캐릭터도 없다. 달리고 달리다가 달리려는 의지 자체를 상실한 듯한 캐릭터들이 러닝타임 내내 표류한다.

그간 봉감독의 영화는 초반에 무언가를 (딸이나 진실 등을) 잃어버리는 걸로 시작해서, 잃어버린 걸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스토리가 많았던 것에 비해 이 영화는 상실하고 끝이 난다. 이전과 전혀 다른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어 낸 걸 두고 ‘제 2의 데뷔작’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이게 굳이 봉준호 월드에 필요한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흥미롭게 봤다. 안 깔끔한 영화는 또 그 나름의 매력이 있는 거 아니겠어.

미드소마

누가 자기 고향에서 열리는 로컬 축제에 놀러가자고 하면 절대 따라가지 말아야 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ㅋㅋㅋ

주인공 가족의 죽음에 뭔가 반전이 있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면서 봤는데 결국 스토리 자체는 아주 평이한, 공포 영화의 정석이었다. 이래서 잘 모르는 곳은 가면 안돼. 특히 연인이랑은 절대. 사실 스토리 자체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아서, 생각 스위치를 끄고 오로지 사운드와 비주얼에 집중해서 보면 될 것 같다.

그간 공포 영화가 어두컴컴한 배경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미지의 공포를 보여줬다면 이 작품은 아주 환하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새하얀 옷을 입고 있고 배경이 되는 곳은 백야로 해가 지지 않는 스웨덴이다. 하얀색과 햇살과 어우러지는 공포라니. 그리고 중간에 기묘한 연출들을 많이 하는데 (카메라가 갑자기 거꾸로 회전한다던지, 풍경을 일부러 어그러뜨린다던지) 이게 영화 전체에 불어넣는 분위기도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사운드! 장면과 전혀 맞지 않는 카메라 볼륨이 주는 긴장감도 좋았다.

중간중간에 유혈 장면이 있긴 하지만 (역시나 다 지나갈 때까지 고개를 숙여야 하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꽤 상쾌한 공포였다. 신기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