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프릴의 딸
-
SNS 이벤트에서 당첨되어 시사회에서 봤다. 고마워요 FILO, 고마워요 아트나인!
-
처음 봤을 땐 별 감흥이 없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 줄거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발레리아는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통해 아이를 가졌지만 아직 아이를 키우기에 너무나 미성숙하고, 그런 발레리아를 도와주기 위해 엄마인 에이프릴이 찾아온다. 그러나 에이프릴은 딸의 남자친구와 아이를 하나하나 뺏으며 (!) 욕망을 드러낸다는 이야기. 이렇게 표현하면 이게 무슨 사랑과 전쟁에도 안 나올 막장 스토리인가 싶지만, 의외로 나에게 있어 간단하지는 않은 영화였다.
-
에이프릴은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이루지 못한 인물이다. 이미 진작에 이혼했고, 전 남편은 자기보다 한-참 어린 여자와 결혼해 그 사이에 아이도 있다. 딸 발레리아와 손녀를 위해 돈을 빌리러 전 남편을 찾아가지만 그는 에이프릴을 매몰차게 거절한다. 창문을 활짝 드러내고 새 가족과 너무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전 남편이 거실 커튼을 하나하나 치며 에이프릴을 내쫓는 장면을 보면 보고 있는 나마저 무력한 기분이 든다. 한편 딸 발레리아는 철 없는 아이의 전형이다. 영화 초반에 발레리아는 언니 클라라와 단둘이 살고 있는데, 클라라의 입장은 신경도 안 쓰는듯 남자친구 마테오를 집에 데려와 성관계를 즐긴다. 어찌나 방음이 안 되는지,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클라라에게 둘의 신음소리는 실시간 스테레오 사운드로 전달된다. 관객은 이 상황의 민망함에 웃음을 참을 수가 없는데 언니 클라라는 묵묵히 요리를 하고 성관계를 막 끝낸 둘에게 식사를 차려준다.
-
발레리아와 마테오는 고집을 부려 아이를 낳지만, 둘 다 전혀 부모로서의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일단 발레리아는 자신의 임신 사실을 엄마가 알면 혼날까봐 배가 한참 불러올 때까지 언니에게 입단속을 시켰다. 무려 새 생명이 태어나는데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는 게 싫어서 알리지도 않고 준비도 하지 않았다는 점, 또 남자친구인 마테오 역시 아이를 낳아 잘 기르겠다는 말만 할 뿐 거기에 무엇이 필요한지는 전혀 모른다는 점에서 둘은 너무나 미숙하다. 그래서 엄마인 에이프릴의 도움은 매우 큰 역할을 차지한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아기를 챙기고 돌보는 역할은 에이프릴이 도맡고, 발레리아와 마테오는 아기와 함께 아름다운 가족의 풍경만을 연출하는 일이 잦아진다.
-
에이프릴은 돌연 ‘너희가 아직 아기를 키우기에 너무나 미숙해서 아이는 내가 입양 보냈다’고 통보한다. 여기서 발레리아와 마테오의 반응은 달라진다. 발레리아는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가출해서 엄마를 고소하기 위해 변호사를 찾아 나서지만, 마테오는 상대적으로 침착하다. 그는 매우 슬퍼하지만 결국은 아이가 없는 현실과 그 덕에 얻게 된 것들에 순응한다. 결국 발레리아가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에 모성이 크게 작용하는 것일까? 여하튼 발레리아가 가출로 집을 비운 사이 에이프릴은 마테오에게 ‘이건 발레리아에겐 비밀이다. 비밀만 지킨다면 아이를 보여주겠다’며 유혹한다. 유혹에 넘어간 마테오는 에이프릴을 따라나서고, 둘은 아이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 다음 근처 호텔에서 하루 묵게 된다. 그리고 둘은 호텔에서 관계를 가진다.
-
내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은 마테오의 심정이었다. 아이를 보여주겠다는 말에 혹해서 에이프릴을 따라갔고 엉겁결에 숙소를 한 방을 쓰게 된 것까지는 어떻게든 이해를 했는데, 장모가 자기 위에 올라타서 성관계를 시도하는데 그걸 아득하게 바라보는 저 표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아이를 보러 오는 데에 분명 어떤 대가가 필요할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고, 이제 그게 무엇인지 깨달아서 치르는 것 뿐인가? 하지만 만약 에이프릴이 우위에 서있어서 어쩔 수 없이 굴복한 것이라면 그 다음 액션이 있어야 했다. 너희 엄마가 몹시 미친 사람 같으니 조심해서 아이를 탈환해야 한다고 발레리아와 의논을 하던지, 발레리아가 현재 가출 상태라 의논이 불가능하다면 혼자서라도 아이를 데리고 달아난다던지. 마테오에겐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수없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밀려오는 사건을 받아들이기만 할 뿐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행동을 취하지는 않는다.
-
마테오와 에이프릴은 본격적으로 가족놀이를 시작한다. 에이프릴에겐 돈이 있었다. 그녀는 널찍한 새 집을 구해 마테오와 아기와 함께 살고, 아기를 위한 방도 아주 예쁘게 꾸민다. 마치 에이프릴이 젊은 시절 원했을 듯한, 그리고 마테오가 아기를 낳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으레 ‘이런 가족 생활을 할 수 있겠지’ 하고 기대했을 듯한 아기방. 어디 그뿐인가, 에이프릴은 마테오를 위해 간지나고 멋진 오토바이도 사준다. 오토바이를 타고 행복해하는 마테오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어떻게 저렇게 철이 없을까 생각하다고도, 마테오가 원했던 결혼 생활의 모든 부분을 에이프릴이 충족시켜주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새하얗고 넓은 집, 귀엽고 아기자기한 아기방, 히스테리를 부리기는 커녕 여유를 갖고 그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여자, 평화롭고 행복한 생활.
-
영화가 진행되면서 마침내 발레리아도 자신의 엄마가 대단히 정신 나간 사람임을 알게 된다. 엄마가 자신의 남편과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행복한 가족 행세를 하고 있는 걸 발견한 발레리아는 미친듯이 엄마의 차를 쫓아가고, 에이프릴은 ‘네가 말했지! 네가 말한 거잖아!’ 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조수석에 탄 마테오를 추궁하다 차에서 쫓아버린다. 그리고 아기만을 차에 태우고 한참을 달린 에이프릴은, 놀랍게도 어느 식당에 아기마저 버리고 홀로 도망친다. 그간 아기와 가족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였던 에이프릴이 그 아기마저 버리는 장면은 꽤 충격적이었다. 결국 에이프릴은 정확히 무엇을 욕망했던 걸까. 에이프릴이 느낀 욕망은 모성에 포함되는 감정일까, 아니면 완전히 별개의 것일까?
-
발레리아는 아이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진 못했지만 아이를 다시 찾아오는데는 엄청나게 집착한다. 에이프릴은 처음엔 완성된 어른 같았지만 아기 그 자체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데 집착했고 그마저도 책임감은 없었다. 마테오는 휘둘리고 받아들일뿐 자신의 욕망이랄 게 없었다. 영화 내내 존재감이 희미하지만 끊임없이 등장하는 클라라는 차분하지만 자신의 욕망(식욕) 앞에서는 무력했다. 이 안에서 모성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우리는 이미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통해 모성이 자연적이고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시기와 상황에 의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걸 보았다. 이 영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근본을 묻는다. 모성 역시 하나의 집착과 욕망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모성이 반드시 책임감을 수반한다는 손쉬운 가정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혹시 모성이란 건 각자의 욕망을 향해 달려나가기 위한 원동력을 제공할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은 아닐까. 에이프릴과 발레리아, 마테오와 클라라로 나눠서 비교하자면 그런 생각도 든다.
-
영화 내내 클라라의 캐릭터가 의문이었다. 이 인물은 영화의 줄거리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줄곧 ‘다녀왔어?’ ‘어디 가?’ 등등을 물을 뿐 다른 인물에게 영향을 끼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클라라가 메인으로 등장하는 순간은 딱 두 번 뿐이다. 병원에서 비만 진단을 받을 때, 에이프릴에게 ‘좀 그만 먹으라’고 타박을 들을 때. 대체 이런 캐릭터가 왜 필요했을까, 하는 이야기를 꺼냈더니 함께 영화를 본 친구가 ‘어쩌면 너 나 우리 아닐까’ 라고 대답했다. 묘하게 납득이 갈 것 같은 의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