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 좋았다. 올해 최고의 영화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 그런데 이 영화가 왜 좋았는 지를 말로 설명하기는 좀 어렵다. 굳이 분석해서 꼽아보자면 소리를 사용하는 방식이 좋았다. 이 영화엔 배경음악은 거의 없지만 소리는 많이 등장한다. 박스 나르는 소리, 기계 움직이는 소리 등등. 영화 마지막에서 주인공들은 기계 소리가 꼭 파도 소리처럼 들리지 않냐며 이야기를 나누지만 나는 이 영화의 모든 소리가 마치 파도 소리 같았다. 아무 것도 없는 바다에, 보는 사람에 따라 황폐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시원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 해변가에 주기적으로 밀려오는 조용한 소음. 기계가 움직이면 소리가 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난 이 작품의 감독님이 이런 소리들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 영화가 사용하는 이미지도 좋았다. 이 영화는 스토리 흐름도 그렇고 연출도 그렇고 매우 정적이라, 한 편의 영상을 보고 있다기 보다는 여러 장의 사진이 걸려 있는 전시회에 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그 사진이 하나하나 다 마음에 와닿는 기분이랄까. 특히 주인공이 소매와 옷깃을 매만지는 장면은 이상하게 인상적이었다. 뱅크신인 것 같던데 영화에서 이런 연출을 쓰는 건 처음 보기도 했고, 어쩐지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 장면이 영화를 점점 더 정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줄거리는 별 다른 게 없다. 주인공들 간의 대화도 별로 없고, 사건이 많이 벌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보고 있으면 그렇게 고독할 수가 없다. 내가 요즘 좀 외롭게 살아서 괜히 더 이입해서 보는 걸수도 있지만, 난 이 영화에 나오는 대형마트가 우리가 사는 세상 그 자체 같았다. 스쳐 지나가면서 친해지는 사람도 있고 마음에 드는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서로와 깊게 엮이지 않는다. 어마무시한 문신이 있어도 과거에 대해서 물어보진 않고, 남편이 아주 나쁜 사람이라더라 하는 소문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먼저 괜찮냐고 물어보거나 깊게 다가가지는 않는다. 물론 그게 배려지. 사적인 건 함부로 물어보면 안 되긴 하는데… 그래서 결국 서로가 서로를 건드리지 않은 결과 영화의 결말처럼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쓸쓸했다.

  • 남은 사람은 잘 살아야지, 하는 말도 쓸쓸하다. 사실 ‘남은 사람은 잘 살아야지’ 라는 사람은 그렇게까지 슬프지 않은 사람들끼리 할 수 있는 말이다. 정말 슬픈 사람은 슬픔 그 자체에 함몰되어 있어서 거기서 빠져나가는 게 어떤 감각인지도 모르는데, 조금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잖니..’ 하면서 꺼내오는 말이다. 그게 잘못됐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지만, 그래도 듣기에 쓸쓸한 말인 건 사실이다. 거기다 그 이후에 주인공이 승진하는 장면까지 보면.. 내 삶도 결국 저런 건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 두 번 보면 안 그래도 황폐한 내 마음이 더 황폐해질 것 같은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