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라이브러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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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시간 200분은 좀 힘들긴 했다. 도서관의 역할과 미래라는, 내가 정말 좋아하고 관심있어 하는 주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세 시간 경과했을 때 쯤 시계를 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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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라고 해도 감독의 주장이나 주고자 하는 메세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도 있을 텐데 이 영화는 그런 게 일절 없다. 나레이션은 고사하고 스탭들의 목소리나 모습이 담기거나 인터뷰이가 직접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하는 장면이 200분 내내 단 한 컷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제작진의 존재감을 거의 느낄 수 없다. 마치 고화질로 편집된 CCTV 영상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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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고 긴 200분짜리 영상은, 뉴욕 공립 도서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를 보여준다. 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 논의하고, 직원들에게 논의된 내용을 설명하고,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고, 사서는 열심히 자료의 위치와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반납된 책들은 모두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색인별로 분류되며, 꽉 채워진 책 박스를 트럭에 실어 나르는 사람들이 있다. 현대에 이르러 단순한 책 보관소를 넘어 교류의 장으로 변모한 도서관은 학생들을 위한 각종 방과후 수업과 어르신들을 위한 취미 교실, 무료로 볼 수 있는 공연과 강연, 구직자들을 위한 잡 페어 등의 행사로 쉴 틈이 없다. 그리고 관광객들은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느라 여념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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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다큐멘터리의 200분은 길고 지루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내용의 흥미로움을 제쳐두더라도, 한 장소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일하고 움직이는 지를 이렇게 시간을 들여 보는 일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우리는 금방 지루해하고 지겨워하고 빨리 새로운 걸 보고 싶어한다. 이젠 유투브에서 10분짜리 영상을 보면서도 10분을 다 보는 게 아니라 1분씩 점프해가며 중요한 장면만 보고 다음 영상으로 넘겨버린다. 그런데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감독이 영상으로 남긴 1분 1초를 우리는 눈으로 담을 수 밖에 없다. 그건 요즘 같은 세상에 고리타분함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극장이라는 공간만이 가지는 미덕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200분을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신선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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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우리나라와 비교를 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왜 저렇게 해 볼 수 없을까. 왜 우리나라에선 도서관이 지역 사회의 교류의 장으로 쓰이는 게 아니라 무료로 갈 수 있는 독서실처럼 쓰일까. 난 내가 찾는 책이 도서관에 있는 걸 거의 본 적이 없다. 지역 도서관엔 문학 책이, 그것도 요즘 사람들에게 인기 있을 법한 소설들이 꽤 많이 꽂혀 있다. 물론 대중들이 원하는 책들을 구비하는 것도 필요하긴 하지만 더 가치있는 책을 찾아 소장하는 것도 도서관이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이지 않나. 이 도서관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여기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걸까? 예산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많겠지 생각하면서도 도서관에 대한 애정이 강한 사람으로서 안타깝다는 마음도 감출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