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려라 유포니엄’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유포니엄은 의외로 스포츠 장르와 비슷하게, 강하고 명랑한 스토리와 뚜렷한 색채를 썼던 반면 이번 극장판은 하늘하늘하고 옅은 색채로 매우 여리고 감성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 누군가에게나 한 번 쯤은 있었던 경험이지 않을까? 이 사람만 옆에 있어준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좋다 싶을 정도의 격한 애정. 그래서 영원히 이 사람과 함께 있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놓아줘야 하는 순간. 그게 그 사람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는 ‘멋진 이별’의 타이밍.

  • 노조미와 미조레의 관계는 언뜻 보기엔 매우 일방적이다. 미조레는 지나칠 정도로 노조미에게 집착하지만 노조미에겐 그저 여러 친구 중 한 명일 뿐인. 그래서 본인들은 물론 관객들도 노조미를 파랑새로, 미조레를 리즈로 생각하게 된다. 파랑새를 지나치게 아껴서 놓아주지 못하는 리즈.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서 미조레가 실은 노조미에게 맞추느라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미조레를 파랑새로 노조미를 새를 가둬두는 리즈로 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리즈였고 누군가에겐 파랑새였을 것이다.

  • 미조레는 파랑새의 심정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사실은 떠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좋아하는 리즈가 ‘떠나야 한다’고 얘기하니까, 리즈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결국엔 떠나요” 그렇지만 난 파랑새가 그렇게 수동적인 캐릭터로 보이지는 않았다. 중간중간에 드넓은 하늘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파랑새의 표정을 보면, 말로 옮기지 않았을 뿐 미지에 대한 동경이 한 줌 정도는 있지 않았을까. 원래 불안함과 두근거림은 한 끝 차이니까. 나는 앞으로 미조레가 어떻게 살아갈 지가 정말 기대된다.

  • 연출과 음악의 적절한 사용에서 한없이 감탄했다. 사실 클래식 음악이나 연주 장면은 본편인 ‘울려라 유포니엄’에서 훨씬 더 많이나옴에도 불구하고 그 사용법이나 클라이막스 신에서의 연출은 극장판이 더 극적이고 멋졌다.

  • 공휴일에 조조로 볼 가치가 있었다. 지를까 말까 조금 망설이다가 방금 아마존 재팬에서 블루레이 예약 구매를 했다.



사족. 블루레이를 다시 보고 인터뷰도 찾아보면서 느낀 점인데, 노조미와 미조레의 관계는 그렇게 일방적이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엔 노조미에 대한 미조레의 집착이 강하고 노조미는 그걸 눈치조차 못 챈 것 같지만 사실 노조미 역시 알고 있다. 미조레가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하지만 구태여 ‘난 네 생각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냐’ 라고 말하진 않는다. 누군가에게 내가 특별한 존재라는 건 기분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조레를 이용하고 있다고까진 말할 수 없어도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 입장도 아니라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둘 중 덜 힘든 것은 미조레다. 누군가에게 헌신적인 애정을 쏟고 있지만 보답받지는 못하며 그걸 주위의 모두가 알고 있다. 게다가 미조레는 본인의 분야에 특출난 재능이 있다. 사교성이 매우 부족하지만 모두가 미조레를 안타까워하고, 편이 되어 주고 싶어한다. 틀을 박차고 아름답게 날아가는 주인공이다. 극중극인 ‘리즈와 파랑새’에서도 포커스는 파랑새에 맞춰져 있다. 리즈는 멋지게 날아가는 파랑새를 배웅해 줄 뿐이다. 노조미와 리즈는 멋진 주인공의 자리에 앉지도 못했고 그닥 좋은 소리도 듣지 못했으며 극이 끝나면 퇴장하는 캐릭터에 불과하다.

처음 봤을 땐 미조레에게 집중해서 봤었다. 미조레가 훨씬 더 극적인 변화를 겪고 있고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니까. 하지만 다시 보다 보니, 미조레 뒤에서 주인공도 되지 못하고 시원하게 울지도 못하고 끝까지 플룻으로는 칭찬을 받지도 못한 채 퇴장하는 노조미가 너무 안타꺼워서.. 노조미의 서사에 계속 집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