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와 환상의 그림갈
요즘 이런 류의 이세계 장르가 유행이란 말을 들었었지만 막상 실제로 접하니 매우 어리둥절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다른 세계로 와있다는 것부터 시작하는데, 아무도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려는 의지가 없다. 원래의 세계가 어땠는지 기억도 안 나고 관심도 없고, 과거는 중요치 않으니 지금 이 세계에서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말을 반복한다. 그렇게 전개할거면 그냥 처음부터 판타지 장르로 시작하면 되지 “다른 세계로 와버렸다”는 설정이 왜 필요한 거지. 내가 너무 늙은이라 요즘 흐름을 못 따라가나. 특히 마나토를 보면서 저건 분명 뒤가 구릴거야 나중에 반전 요소로 써먹힐거야 라고 예상했으나 허무하게 리타이어 하고 떡밥도 제대로 풀리지 않는 부분에서 할 말을 잃었다. 전하고자 하는 바가 있는 미디어 라기보다는, 팀 꾸려서 몹 잡는 게임 캐릭터들의 일상을 영상으로 만들었을 뿐이란 느낌이 남았다.
그래서 재미가 없었냐 하면 그건 아니다. 궁수 검사 도적 마법사 성직자 다 모여서 고블린이랑 싸우는데 재미가 왜 없을까.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라는 미디어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이런 장르가 요즘 유행이라고 하니까 더더욱 안타깝다. 이미 다른 만화에서 열댓번은 본 듯한, 인기가 보증된 캐릭터성과 좋은 작화만으로도 애니메이션은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나온 적 없는 이야기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해보려는 시도 역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