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우진이 좋아도 도저히 커버되지 않는 영역이 있구나…

  •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미성숙한 고등학생들의 성장 스토리를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 락 음악이 폭발하는 음악 장르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던 건지, 애틋한 로맨스를 하고 싶었던 건지. 셋 다 해보겠다는 욕심이 있었던 것 같은데, 결국 어느 쪽에도 제대로 무게를 싣지 못하고 애니메이션이 끝나버렸다.

  • 주인공 니노의 캐릭터가 너무 극단적이다. 니노는 어렸을 적 친하게 지내다가 느닷없이 이사를 가버렸던 친구 모모에게 미련이 남아있다. 모모를 좋아했는데 고백을 하지 못했었고, 모모를 만나기 위해 음악을 계속해 왔다는 것까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나중에 재회했을 때 모모가 예전과 다르게 차갑게 대하자 중심을 잃고 음악을 포기해 버리며, 모모가 자신의 음악에 조금이라도 반응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다시 음악을 시작한다. 애니메이션 내내 이게 반복된다. 이 정도면 의존도가 심각한 거 아닌지? 만약 니노가 어렸을 적 가정에 문제가 있어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컸고, 그 와중에 유일하게 니노의 편이 되어준 게 모모였다던지 좀 더 극적인 설정이 들어갔다면 그러려니 했을 수도 있겠는데 그것도 아니고. 오히려 가정에 문제가 있었던 모모 쪽이 더 건강한 멘탈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어장 관리를 자꾸 해대서 그렇지.

  • 게다가 니노는 자꾸 도망치기만 한다. 유즈가 풀죽어 있는 자신을 달래주느라 무리하다가 영구적인 장애를 갖게 됐다는 걸 알자, 니노는 이를 부담스럽게 여기고 “밴드를 그만둬야겠다” 라고 해버린다. 유즈가 고백을 했을 때도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자기를 희생해 가면서 까지 북돋아주고 격려해준 사람을 앞에 두고 고작 하는 게 도망이라니 여자 주인공 멘탈이 왜 이렇게 쿠크다스인지. 게다가 니노가 음악을 그만두고 도망가려고 할 때마다 유즈는 또다시 자기 자신을 희생시킨다. 부담 가질 필요 없다고 니노를 격려하거나, 고백이 거짓말이었다고 둘러대거나.. 그래서 애니메이션을 끝까지 봐도 유즈의 캐릭터에 대한 안타까움이 전혀 해소되지 않는다.

  • 두 남자 주인공의 위치가 전혀 동등하지 않다. 삼각 관계를 형성했으면 경쟁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이 서로 동등하게 다퉈야 재미가 생긴다. 그런데 유즈는 니노에게 남자로 비치기는 커녕 제대로 된 영향조차 미치지 못한다. 니노가 음악을 다시 시작할 때, 망설일 때, 그만둘 때 유즈는 늘 옆에서 니노를 북돋아주지만 니노에게 결정적인 계기를 주는 것은 언제나 모모다. 니노에게 있어 유즈는 같이 음악을 하는 어렸을 적 친구일 뿐 로맨스 관계에 전-혀 들어와 있지 않다. 이럴 거면 차라리 빨리 리타이어 하는 쪽이 나아…

  • 촌스럽다. 순정만화 잡지 ‘밍크’에 15년 전쯤 실렸을 법한 만화라는 인상을 받았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남자 주인공 둘이서 “이제 그 목소리는 내 거야” 라며 여자 주인공에 대해 마음대로 얘기하고 있는 건지. 그리고 이게 무슨 이능력 배틀물도 아니고, 여자 주인공이 뭐만 하면 ‘폭주’해서 이걸 다른 조연들이 ‘진정’시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좀.. 연출이 제대로 못 받쳐주니까 그저 오글거리게만 느껴진다.

  • 음악 장르 애니메이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연주 장면에서 참 미묘해진다. 작중에서 천재로 불리는 두 남자 주인공(이자 작곡가)들이 니노의 목소리를 엄청나게 탐낸다는 설정인데 이 설정을 시청자들에게 납득시킬 만한 목소리/가창력이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야미 사오리 씨는 목소리가 정말 좋고, 노래도 잘하시는 편이고, 또 ‘굉장히 특이한 음색’이라는 니노의 설정에 맞춰 열심히 연기하셨다는 것도 충분히 느껴지지만, 그래서 좋은 결과가 나왔냐고 하면 글쎄요….

  • 완전히 여담이지만, 모모 역의 성우 우치야마 코우키와 유즈 역의 성우 야마시타 다이키가 지금 히로아카에서 각각 시가라키 토무라, 미도리야 이즈쿠를 연기하고 있다는 걸 떠올려 보면 좀 의미심장하다. 로맨스 싸움에선 완전히 모모 쪽의 승리였는데, 히어로 액션에선 누가 승리할지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