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왜 이렇게 귀여우신지.

  • 작품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늘 궁금했었다. 연기를 지시하는 감독, 영화의 배경이 되는 무대를 디자인하는 미술팀, 대사를 쓰는 각본가, 영화의 OST를 연출하는 음향 감독 등등. 이 사람들이 작품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해서 기초 작업을 꼼꼼히 해둬야 배우들/성우들이 마음껏 연기를 펼칠 수 있는 단단한 토대가 되고, 거기서부터 좋은 작품이 탄생하는 거니까. 그래서 ‘서포트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영화 음악에서 거장으로 불리는 사람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했다.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고 살까. 작업은 어떻게 진행할까 등등. 이 다큐멘터리를 보자고 결심한 계기도 이거였다.

  • 사카모토 류이치라는 인물에 대해 흥미를 갖고 보러 갔음에도 불구하고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등장인물도 사카모토 류이치 단 한 명 뿐이고, 2시간 내내 진지한 분위기로 이 분이 말하는 모습, 피아노 치는 모습, 일하는 모습 등등 밖에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재미와는 거리가 멀다. 코엑스 더 부티크 관에서 맥주 한 잔 마시면서 봤는데 한 잔 더 마셨으면 졸 뻔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옅은 감상이 남는다. 할아버지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나이도 들었고 암 투병까지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고 일에 열중하는 노장의 모습은 멋있는 걸 넘어서 품위가 있다. 이 분의 일상은 모든 것이 음악이다. 예전에 봤던 영화에 대한 감상, 숲에서 들리는 소리, 비 오는 날 들리는 소리 등이 모두 음악으로 이어진다. 빗소리를 더 깊게 담고 싶어서 직접 양동이를 뒤집어 쓰고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할아버지 참 귀여우시네 싶다가도, 이 정도로 음악에 둘러쌓여진 삶이란 어떤 걸까 하는 감탄도 남게 된다. 쇼와 겐로쿠 라쿠고 심중의 주인공 할아버지가 생각나는 부분이기도 했다.

  • 피아노로 작곡하는 장면이 왜 이렇게 고독하게 느껴질까. 이 분 분명 결혼도 했고, 다큐멘터리엔 나오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과의 교류도 있을 터인데 피아노 앞에 앉아 소리를 체크해가며 오선지에 음표를 그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이지 고독하다. 외롭거나 쓸쓸하단 느낌은 아닌데, 아무도 없는 세상에서 혼자 피아노에 맞서 싸우는 전사처럼 보인다고나 할까. 음악은 자유라고 누가 그랬더라. 하지만 자유는 이렇게나 고독하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말은 이런 걸 가리키는 거겠지.

  • 다큐멘터리에 나온 원전 반대 시위를 보고 좀 놀랐다. 일본 사람들도 이렇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구나. 일본은 꽤나 사회에 순응하며 산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하긴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직접 겪은 사람들이 있는데, 아무 논란 없이 넘어가는 게 너무 이상한 거긴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