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렛 에버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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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그런 남성향 로맨스일 거라는 편견을 갖고 봤던 ‘4월은 너의 거짓말’이 꽤 괜찮았기 때문에, 넷플릭스의 안목을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하고 이 만화를 봤다. 하지만 그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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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여러 면에서 부실하다. 우선 주인공이 변해가는 과정. 편지 대필 일을 하면서 만나게 된 여러 엑스트라의 사연 > 이 사연을 통해 바이올렛도 감정을 깨닫고 성장한다는 포맷을 매 화 옴니버스 형식처럼 쓰고 있는데, 엑스트라의 슬픈 사연과 바이올렛의 성장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한다. 주인공 바이올렛은 한때 살상용 무기에 가까운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엑스트라의 사연은 모두 안타깝고 애절하지만 안드로이드가 감정을 깨닫고 사람으로 성장하는 발판으로 삼기엔 어딘가 부족하다. 매 화 보면서 엑스트라가 우는 건 이해가 가는데 바이올렛은 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걸까, 이 정도에 눈물 흘릴 수 있는 정도의 감수성이었다면 한참 전에 깨달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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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바이올렛과 길베르트 소령의 로맨스에 대한 설명. 바이올렛이 길베르트 소령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을 유일하게 도구처럼 대하지 않았던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게 로맨스로 이어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스리슬쩍 넘어간다. 길베르트 소령이 바이올렛에 대해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어렸을 때부터 키웠으니 정도 들었을 테고 자의든 타의든 바이올렛을 전쟁의 도구로 쓰고 있다는 점에서 연민, 죄책감 등의 감정도 있었겠지만 그게 어떻게 로맨스로 이어졌는 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잘생긴 남자 캐릭터와 예쁜 여자 캐릭터가 애틋한 분위기만 잡는다고 해서 로맨스가 되지는 않는다. 뭔가 사소하게라도 납득할 만한 근거를 줘야지. 둘이 전쟁터에서 어떤 유대 관계를 갖고 있었는지 좀 더 자세하게 보여주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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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살상용 무기로 자란 주인공이 인간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면서 살인의 무게에 대해서는 그다지 다루지 않는다. 주인공은 자신이 여태 죽였던 사람들에 대해선 별다른 고찰을 하지 않는다. 중간에 ‘내가 과연 살 자격이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는 에피소드가 있긴 하지만, 그 고민을 시작한 근본적인 이유는 죽은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길베르트 소령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 때문이고 “너처럼 사람을 죽이던 애가 이제 와서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주는 편지 대필을 한다고?” 라는 지적을 받는 장면도 있지만, 주인공은 이 질문에 대해 상처를 받고 고민은 할 지언정 제대로 된 대답은 내리지 않는다. 대신 옆에 있던 엑스트라들이 “바이올렛은 아주 훌륭한 편지를 써요!” “그녀의 편지 덕분에 사람들의 마음이 전달되고 있어요!” 등등의 대사를 외치며 옹호해준다. 글쎄.. 그걸 물은 게 아닐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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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화 퀄리티가 진짜 훌륭하긴 한데, 오히려 작화가 너무 훌륭해서 다른 부분의 단점들이 그만큼 뚜렷하게 돋보인다는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