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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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보면서 마지막 화에서 결국 울었다. (울만한 스토리는 전혀 아니었는데 감성이 벅차올라서…) 내 마음 속 명작 베스트5에서 빠지지 않는 작품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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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행하는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캐릭터 장사로 수익을 내기 때문에 “남성들에게 잘 어필할 수 있는 여자 캐릭터”나 “여성들에게 잘 어필할 수 있는 남자 캐릭터”가 많다. 그런 캐릭터가 꼭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모든 만화에 그런 캐릭터만 나오면 누가 누군지도 잘 모르겠고. 지나치게 인위적인 귀여움이나 섹시함은 가끔 숨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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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너와 나』의 캐릭터들은 정말 색채가 옅다.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미묘한 시기를 잘 살려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연애나 성적인 것들에 대해 환상을 잔뜩 갖고 있는 걸 보면 영락 없는 어린애들 같다가도, 연애나 짝사랑 혹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불쑥 성장하여 어른을 같은 높이에서 대하는 모습은 놀랍기 그지없다. 그냥저냥 개그만 이어가는 일상물일줄 알고 봤는데 생각보다 로맨스와 성장을 착실히 다루고 있다. 학생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가감없이 편견없이 깨끗하게 그려냈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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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캐릭터들이 꽤 어른스럽다. 고등학생이지만 비교적 보수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는 슌과, 그런 슌을 놀리면서도 너무 비웃지 않는 친구들의 모습도 그렇고 여자친구를 상대로 야한 생각을 하지만 그로 인해 여자친구에게 미움받거나 상처를 주게 되는 걸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후유키도 그렇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이런 남자 캐릭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듯한데, 『너와 나』는 정말 별 거 아니라는 듯이 학생들 사이에서 실제로 있을 법한 이야기를 그려냈다. 슌이 진로 희망서를 적어내면서 앞으로의 미래를 고민하는 한편 지금의 이 친구들과 앞으로도 같이 있을 수 있을 지를 걱정하는 장면도 그런 의미에서 정말 마음에 들었다. 지금의 친구들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고, 아무 생각없이 즐겁고 행복했던 시기가 끝나간다는 걸 받아들이고 성장해나가는 모습이 애틋해서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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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에서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끝났지만 원작 만화책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이후에 대해서도 꽤 묘사가 되어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어쩐지 당분간은 3학년이 된 이후의 스토리를 아껴두고 싶다. 왜일까 생각해보면, 이렇게 지나가버리는 청춘의 반짝임이 너무 아쉬워서 인 것 같다. 내가 2기 마지막 화에서 결국 울고 말았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내 이야기도 아닌데 내가 지나온 시절과 겹쳐봐서 그런지 만화가 이 다음으로 나아가 버리는 게 너무 아쉽다. 정작 만화 속의 캐릭터들은 시간에 따른 변화를 잘 받아들이고 성장해가는데 보는 내가 아쉬워서 이렇게 애간장이 탄다. 좀 더 오랫동안, 캐릭터들과 함께, 아무 생각 없이 있을 수 있는 시절을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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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서 혼자 캡처를 얼마나 해댔는지 iCloud 사진 앱이 너와 나 스샷으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