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게임
-
좌익 우익 소리가 나올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잔향의 테러는 우익 비판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미지근했어.
-
정치적인 색깔이 아주 짙은 애니메이션이었다. 쇼와 시대 (정확히는 1940년대) 배경으로 펼쳐지는 스파이 추리물인데, 당시 군국주의와 파시즘으로 미쳐 돌아가던 일본 육군 및 정부에 대한 비판이 정말 대놓고 드러난다. 소설이 원작인데, 원작 소설엔 야스쿠니 신사나 덴노에 대한 비판도 들어가 있던 걸 애니메이션에선 “그건 차마 못 넣어..” 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뺀 거라고.
-
모든 에피소드가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더블 크로스』편의 주인공 오다기리는 유독 공감이 가는 캐릭터였다. 국가에 대한 세뇌된 충성심이나 알량한 충의 따위를 배제하고 자신의 판단력으로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낸다는 D기관의 신념은 멋있지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국민들에게 국가에 대한 최소한의 애국심을 심어놓지 않으면 국가라는 체제가 유지될 수가 없다. 그리고 정말 그들에게 충성심이나 애국심이 단 한 점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왜 일본의 스파이로 일하고 있는가. 지금 속해 있는 나라가 일본일 뿐 어느날 영국에서 너 우리나라 스파이 하라고 꼬드기면 이중 스파이도 될 수 있는 걸까? 애니메이션에서의 묘사를 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던데. 하지만 그들은 딱히 스파이로서의 미학이나 허세에 얽매여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조커 게임』편에서 사쿠마 중위의 대사에 따르면 그들은 애국심이나 하다못해 돈 때문도 아니라 ‘나라면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으로 스파이 활동을 하고 있다. 그건 대체 어떤 영역인 걸까?
-
이미 비판 수위가 꽤 높은데도 “그래도 덴노 얘기는 함부로 할 수 없어서” 장면을 삭제했다는 이야기를 보고 덴노 개념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봤다. 말만 천황이지 아무 권력도 없고 철저한 허수아비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이나 매체에서 함부로 다루지도 못하는 덴노. 일본의 어느 우익 정치인은 야당의 다른 정치인과 언쟁을 벌이다가 별 생각 없이 “덴노도 전쟁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라고 지극히 당연한 말을 했다가 살해 위협을 받았었다고 한다. 본인이 원래 우익 성향의 정치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우익 단체에게 위협을 받은 것이다. 권력은 없지만 황실이긴 하고, 황실이긴 하지만 책임은 없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
일본의 문화는 참 개성 있고 멋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건 그들이 남들과의 교류를 꺼리고 폐쇄적으로 살아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는 일본어도 J-ROCK도 재패니메이션도 다 좋아해서 언젠가 일본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줄곧 생각하고 있었지만 일본에서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은 지금처럼 외부인으로서 덕질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 않을까. 우리나라처럼 사람들이 아침 밥먹은 이야기마냥 대통령을 욕하는 나라에서 살다가 유명무실한 황실에 대해 함부로 말도 못 꺼내는 나라에 가면 나는 과연 잘 살 수 있을까.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