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했던 것보단 좀 삼삼했다.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캐릭터 구성. 초반엔 서브 캐릭터들도 라카의 하이바네 생활을 도와주는 등 나름의 역할과 비중이 있었는데, 중반부 넘어서선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인데?!” 라는 대사밖에 치질 못한다. 라카가 방황할 땐 레키가 도와주고 레키가 방황할 땐 라카가 도와주는데, 나머지 애들은 이 둘의 성장 스토리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메인 주인공 외의 캐릭터들에게 정성을 좀 더 들였더라면 좋았을 텐데.

따뜻한 분위기의 작품이라는 말을 듣고 봤는데 왜 내 눈엔 하나도 따뜻해 보이지가 않을까. 나는 작품을 보는 내내 숨겨진 흑막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설명되지 않은 의문은 잔뜩 쌓여있는데 캐릭터 중 그 누구도 이걸 제대로 파헤치지 않는다. 똑같이 벽이라는 설정을 가져다 쓰는 ‘진격의 거인’과는 아주 대조적인걸.

  1. 그래서 하이바네는 어떤 존재이고 까마귀는 어떤 존재인지
  2. 왜 벽에 닿으면 다치는지, 벽 너머엔 무엇이 있는지
  3. 하이바네 연맹은 언제부터 존재한 단체인지
  4. 와시 / 토가 등의 시스템은 언제 처음 만들어진 것인지
  5. 하이바네 연맹이 정말 하이바네를 보호하기 위한 단체가 맞는지
  6. 하이바네가 태어나는 고치는 무슨 물질로 구성되어 있는지 (너무 궁금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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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참 좋은 애니메이션이다. 좋게 생각하면 시청자의 감상을 존중하는 것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무책임한 걸지도. 이건 내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메세지를 전하기에 애니메이션은 별로 좋은 플랫폼이 아니다. 애니메이션은 이미지와 음성을 직접 제공하기 때문에 세계관을 구체적으로 만들어서 몰입시킬 수는 있어도, 추상적인 메세지나 해석의 여지를 제공하기엔 텍스트가 최고 아닌지. 물론 가끔 둘 다 해내는 명작들 (에반게리온!) 이 있긴 하지만.

제목이 왜 하이바네가 아니고 ‘하이바네 연맹’일까. 내가 본 이 애니메이션의 내용은 아이들의 성장기 + 지켜보는 어른들 인데. 지켜보는 어른의 시선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기 때문에 ‘하이바네 연맹’인가? 그래도 작품의 주인공은 아이들인데..? 구체적인 떡밥이 너무 없어서 내가 맞게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