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바에 왜 타는가? 신지는 계속 물었다. 처음엔 아빠가 타라고 하니까 탔다. 자기밖에 탈 수 없는 거고 자기가 안 타면 아야나미가 더 힘들어질 뿐이니까 그저 남들이 시키는 대로 탔다. 미사토는 “그런 어중간한 마음으로 탈 거면 차라리 가라”고 했고 그래서 신지는 갔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확실한 이유를 찾고 돌아온 건 아니고 그냥 “이건 아닌데…?”라는 마음 정도로 돌아왔다. 아야나미를 구했다. 아야나미가 웃어줬다. 이름은 잘 기억 안나는 전쟁광 친구도 하나 만났고 포스 칠드런도 만났다. 가늘지만 에바와 자신을 이어주는 끈이 하나 생겼다. 아스카를 만났다. 아스카는 에바를 타는 이유가 확실했다. 아니, 자기가 에바를 타는 이유를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아스카는 생각했다. “외계인이 쳐들어오니까” 남이 나를 때리려고 하는데 그걸 막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지? 듣고 나면 맞는 말이다 싶다. 논리적이다. 하지만 신지의 마음에 와닿지는 않는다. 신지는 몇 번이고 되묻는다. 너는 에바에 왜 타냐고. 에바에 왜 타냐는 질문은 마치 왜 삶을 살아가고 있냐는 말처럼 들린다. 왜 그 길을 택했어? 왜 그걸 목표로 해? 삶의 모든 분야에 쓸 수 있을 거 같은 질문이다. 주인공은 계속 에바에 왜 타냐고 묻지만 결국 그 친구들도 마음에 꼭 맞는 답을 주지 못했다. 신지는 답을 찾지 못했지만 애니메이션이 끝날 때까지 에바에 계속 탔다. 에바에 왜 타는지는 계속 고민해야 한다. 고민하지 않으면 가장 초기의 신지처럼 ‘중앙에 넣고 스위치를…’ 이라는 말밖에 반복할 수 없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막장인데 이상하게 공감 간다고 느꼈다. 분명히 막장스럽지만 그 막장스러운 부분을 약하게나마 나도 갖고 있다.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도리어 상대를 푹푹 찔러대는 잔인함을 나도 갖고 있다. 강한 마음으로 자립하지 못하고 상대에게 기대기만 하여 사이좋게 지옥을 나눠갖는 내가 내 마음 속 어딘가에 있다. 남들은 태어날 적부터 갖고 있는 감각을 혼자 미친 듯이 어색해하는 내가 있다.

  • 인류보완계획은 옳은가? 사람들은 모두 약하고 불완전하니까 그 사람들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 ‘인류 발전’인가? 원래 하나였던 것이 나누어진게 우리라면 다시 합쳐지는 게 옳은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나를 ‘나’라고 느끼는가? 만약 몸 속에 두 명의 인격이 있어서 둘이 번갈아서 밖으로 나왔다면 나는 둘 다 ‘나’라고 느꼈을까? 인류보완계획이 완성되었었을 때 신지는 이미 다른 사람들을 알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하나가 된 인류 안에서도 자신의 인격을 느낀 게 아닐까? 만약 기억이 전부 리셋된 채로 하나가 됐다면 그래도 그 사람들은 각각을 타인으로 느꼈을까? 내 안에서도 생각이 수없이 바뀌는데 고작 생각이 안 맞고 취향이 안 맞는 정도로 남이라고 생각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