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발저 - 산책자
호저: 나 근사하지 않아? 말 좀 해봐!
황새: 오래전부터 널 사랑해왔어.
호저: 그런 거라면 할 말이 없어 . 나를 사랑한다는 자들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아. 사랑은 무모한 짓이야. 뻔뻔하기까지 해! 그런 경솔한 자들과 얽히는 건 싫어. 잘 알아둬. 너는 내 가시를 사랑하는 거잖아.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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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황폐하고 낡은 집에서 삽니다. 폐허나 다름없는 수준이지요. 하지만 그래서 행복합니다. 가난한 사람둘과 초라한 집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니까요. 당신 입장에서는 이런 말들을 이해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을 충분히 압니다. 하지만 나 주변에는 방임과 방탕과 모순이 특정 분량과 무게만큼 꼭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숨쉬기가 고통스럽습니다. 만약 고상하고 훌륭하고 우아해져야 한다면, 삶은 고통 그 자체로 변합니다. 세련됨은 나의 적입니다. 우아하게 절을 해야 하는 무모한 상황에 얽혀들어가느니 차라리 사흘 동안 굶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스스로 참고 견뎌야 했던 불의에 대해 그는 한 번도 복수하지 않았지만, 그것으로 이미 충분한 복수가 이루어졌다. 말하자면 자신의 바람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를 다루었던 사람들을 그냥 놓아버렸는데, 그 말은 한없이 많은 불쾌한 경험들을 떠올리지 않는 일에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신기한 작가였다. 어디선가 “플롯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평을 봤는데, 그 표현에 매우 동의한다. 우리가 학창 시절에 배웠던 기승전결 시스템과 전혀 맞지 않는 작품들. 이게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일기인지 알 수 없는, 어떠한 형식에도 얽매이지 않는 작가라는 인상을 받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다 읽고 나면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다”라는 감상이 남는다. 기욤 뮈소의 로맨스 소설도 다 읽고 나면 “역시 기욤 뮈소 다웠다” 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로베르트 발저의 단편들은 아무리 읽어도 “로베르트 발저 다운” 무언가를 정의할 수가 없었다. 어느 글에서는 황새와 호저의 알 듯 말 듯한 사랑 이야기를 하다가도, 어느 글에선 풍경을 너무나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우화를 쓰기도 하고.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읽은 작품은 “세상의 끝” 이라는 단편이었는데, 굉장히 단순하고 익살스러운 결말이지만 의외로 생각할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였다.
소설가나 시인이 아닌 “작가”라는 호칭이 오롯이 어울리는 사람. 그런 감상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