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의 에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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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케자와 아키라가 메인 주인공이긴 하지만, 절대 잊혀져선 안 되는 우리 서브주인공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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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인원이 신기한 휴대폰을 부여 받아서 일을 수행하고 있고, 서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는 점이 만화 ‘미래일기’와 비슷했다. 그런데 ‘미래일기’는 몇 살 되지도 않은 애들이 휴대폰에 뜨는 정보를 통해서 어떻게든 상대방의 일기를 뺏으려고 난리인데, 여기선 남의 핸드폰을 뺏어서 대신 쓰거나 죽이거나 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SF지만 이런 부분에선 현실적인듯. 만화 안에서 죽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게 상당히 이질적으로 다가왔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는 내내 손에서 긴장을 놓을 수 없다는 게 충격이었다. (연출팀에게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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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일기와 또다른 점은, 신기한 휴대폰을 부여하는 주체다. 미래일기에선 어쨌거나 신이 존재해서 신으로부터 특별한 휴대폰을 부여받은 것이지만 동쪽의 에덴에서는 휴대폰을 부여한 Mr.Outside도 ‘인간’이다. 돈이 아주 많은 권력자라서 세레손들의 터무니없는 요청을 들어줄 여유가 있을 뿐, 그도 완벽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 세레손 게임도 말이 좋아 사회를 바꾸는 시스템이지 실은 Mr.Outside가 벌이는 한 판의 놀이에 불과하다. 무엇이 옳은 행동이고 무엇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훌륭한 자질인지, 사회를 훌륭하게 바꾼 사람에게 돌아가야 할 보상과 그러지 못한 사람에게 돌아가야 할 징벌은 무엇인지 등등을 모두 이 아저씨가 멋대로 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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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의 주인공 타키자와 아키라가 반기를 든다. ‘대체 이 괴상한 게임을 진행시키고 있는 사람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한 대 먹여주고 싶다’는 게 타키자와가 초지일관 유지하는 목표다. 재밌는 건, 한 대 먹여주고 싶다는 감정 외에 타키자와가 가진 가치관이 엄청나게 뚜렷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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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Outside가 선발한 각 세레손들은 나름의 정의를 가지고 있다. 악질의 성범죄를 저지른 남자만 찾아내서 성기를 잘라내는 언니도 있고, 노인들을 위한 병원을 짓는 병원장도 있고, 일본은 이대로는 안 되니까 적당히 다시 시작하자며 곳곳에 미사일을 쏴 버리는 아저씨도 있다. 어느 것 하나 100% 잘못된 건 없지만, 분명 잘못된 부분이 하나 이상은 존재하는데도 모두 자신의 정의에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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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타키자와의 가치관은 가볍다. 처음엔 뭘 해야 할 지 몰라서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었고, 그 다음엔 니트족을 떼거지로 모아다가 해외로 도피시켰다. 기억을 잃은 이후에도 한없이 가볍고 유연하게 돌아다니다가, 여주인공 사키가 면접에서 모욕을 당하고 우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방향을 정하게 된다. 또한 다른 세레손이 어떤 무시무시한 정의를 펼치고 있어도 편견 없이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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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행동력은 강하다.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되면, 실행하는 건 두려워하지 않는다. 타키자와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무리 세레손의 휴대폰이 있다고 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 있고, 미래는 누구에게나 불확실한데도 타키자와는 절대 망설이지 않는다. 구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구하고, 위로해야 할 사람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 위로하며, 자신이 가야 할 곳이 있다고 생각되면 망설임 없이 오토바이를 탄다. 하멜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이렇게 멋진 캐릭터인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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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아직 일본처럼 니트족이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만화에서 말하는 니트족의 정신이라는 게 무엇인지는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니트족이 ‘니트족’으로 불리게 된 게 절대 그들만의 책임일 수는 없다. 그리고 사키가 면접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해서 그게 면접관에게 모욕을 당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겪는 취업난, 성차별, 인간성의 상실 등은 결국 기성 세대와 기득권이 밟아온 발자국과 함께 생겨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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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우리가 기성 세대와 기득권층에게 엄청난 반항을 해서 다 갈아엎는 게 좋은 거냐 하면 그건 아니다. 세레손 게임이 알려주듯이 세상을 바꾸는 데에는 권력이 필요하고, 또 막상 권력이 주어졌을 때 그것을 올바르게 쓸 줄 아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나는 동쪽의 에덴이 ‘소시민이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반란’을 보여주고 있다고 느꼈다. 타키자와는 크게 가진 건 없어도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행동력으로 돌진했고, 서브 주인공들은 프로그램 ‘에덴’을 통해서 니트족의 힘을 보여줬다. 비록 큰 태풍은 일으키지 못하더라도, 잔잔하면서도 꾸준히, 망설이지 않고 행동하는 것. 그게 이 애니메이션이 젊은 층에게 전하고 싶은 메세지라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