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여태 본 애니메이션 중 가장 선정적이고 잔인했다. 사실 물리적으로 사지가 뜯기고 찢어지는 건 정신적으로 극한에 몰리는 것보단 훨씬 더 보기 편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는데 이 작품의 선정성은 좀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굉장히 유쾌하게 봤지만, 남한테 함부로 추천해 주지는 못할 듯.

  • 우리의 시선으로 그들을 평가하기. 모든 것이 입장과 시선의 차이에 불과하다는 이야기가 꽤 많이 들어가있다. 우선 평범한 사람이 데빌맨으로 변하는 계기는 본인의 욕망인데, 도덕적인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강한 욕망이기만 하면 데빌맨이 될 수 있다. 그게 사람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일 수도 있고 자기보다 앞서 가는 사람을 질투하는 마음도 될 수 있기 때문에 데빌맨은 작품 안에서 악한 존재를 상징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데빌맨을 비난하고 배척해도 함부로 공격하기는 커녕 누구보다도 사람들을 지키는 데 앞장서는 걸 보면 이게 더욱 확실해진다.

  • 근데 그렇다고 데빌맨이 선한 존재냐 하면 그것도 좀 묘하다. 마지막에 결국 아키라가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긴 하지만, 데빌맨의 모체가 된 데빌들은 사람을 잡아먹는 존재이며 데빌맨을 “자신들 품으로 돌아와야 하는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데빌맨이 갑자기 데빌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는데 인간의 입장에서 데빌맨을 어떻게 백 퍼센트 신뢰할 수 있을까?

  • 거기다 데빌도 무조건적으로 나쁜 놈들이라고 하긴 힘들다. 그들도 분명히 감정을 느끼며, 사랑을 하고 욕망을 가지며, 사랑하는 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까지도 보여준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인간적인’ 면모는 다 가지고 있다.

  • 선악도 그렇지만, 데빌맨은 작중에서 강자이면서 약자인 묘한 지점을 걷고 있다. 사람은 절대 낼 수 없는 속도로 달릴 수도 있고 마음만 먹으면 사람 모가지 정돈 얼마든지 썰어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 분명히 강자인데, 그들이 원하는 건 사람 위의 강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소수자로서 외면받고 배척받는” 약자로서의 위치도 갖게 된다.

  • 소수자 이야기. “아내에게 용기를 내서 데빌맨이라고 고백했어요” 라는 이야기가 지나가는 걸 보면서 소수자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 어떤 소수자도 절대적인 의미의 소수는 될 수 없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약자라고 해도 그 사람을 “약자로만” 대하는 것은 잘못 되었다. 또 “오히려 약자임을 핑계 삼아서 이것저것 이득을 보고 있잖아!” 라고 공격하는 것도 잘못됐다. 그 사람을 한 명의 사람으로서만 대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우리는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 9화에서 미코가 마지막에 “인간다움이란 뭐야? 정의로움이란 뭔데?” 라고 외쳤지만 사람들은 전혀 들어주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인간다움과 정의로움이 무엇인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인간과는 다른 외형을 하고 있는 미코를 지금 당장 죽이는 것에만 몰두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간답지 않고 정의롭지 못한 것은 바로 인간들이다. 아키라는 “너희 악마 때문에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모두 잃었다”고 표현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 대부분은 인간의 손에 죽었다.

  • 꽤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번 재탕해서 보기에는 수위가 정말 너무 높아서.. 블루레이 박스를 과연 살 수 있을 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