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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

Nov 23, 2025

매일매일 메모앱에 쓰던 일기가 멈춘지 두 달이 지났다
그동안 무엇을 하였느냐 : 독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발더게를 했고
태평하고 태만한 휴가를 보내다 보니 어느덧 방학이 끝나 새 회사에 출근
출근한지 이제 일주일 지났고 내일이 2주차

금요일 짜이바에서 친구가 상반기에 하던 생각들은 요즘 어떻게 되어가냐고 물었다
자본주의 로그아웃을 치열하게 고민하던 상반기는 어디 가고 하반기는 생뚱맞게 이직으로 바빴으니 나도 사실 영문을 모르겠다 심지어 그 이직은 겉보기로는 초록색 대기업에서 노란색 대기업으로 옮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주의와는 하나도 멀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한텐 필요한 결정이었다
왜 필요한 결정이었냐고 물으면 묻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매번 말이 달라지고 그 모든 대답이 부분적으로 진실인 동시에 총체적인 진실은 아니지만 총체적인 진실은 나도 아직 모른다 아무튼 필요한 결정이었다는 본능적 판단만 있다
내가 이번 이직에서 얻은 가장 큰 성과는 이거다. 1. 내가 이직이라는 걸 할 수 있는 인간임을 알았고 2. 이 정도 큰 결정을 내릴 때는 주변에서 뭔 말을 하든 별로 소용이 없고 결국 내 본능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음을 알았다. 심지어 내 딴엔 이게 현명한 결정 같아서 내린 것도 아니다 현명하지는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나에겐 이 결정이 필요해서 내린 거다 그 차이를 알아줄 사람이 있을까

되돌아보면 회사를 학교처럼 다녔다
너무 연약한 고백처럼 느껴진다 내가 아직도 학교 같은 곳을 필요로 한다는 게
아직도 삶이 카이스트 기숙사처럼 굴러갔으면 좋겠고 이 모든 게 하나의 마을로 내가 필요로 하는 모두가 하나의 공동체 안에 있었으면 좋겠고 이제 그런 시절은 갔다는 걸 알면서도 안다고 말만 할 뿐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던
그래서 주말에도 회사 건물을 서성이고 휴가 중일때도 밥을 거기서 먹었던 게 아닌가
물론 편해서 그런 것도 맞다 주말에도 회사만 가면 나를 위한 허먼밀러와 아이맥과 무제한 커피와 바디프렌드 마사지 의자가 준비되어 있는데 그걸 이용 안 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카페 가면 시끄럽고 비싸기만 한데 책 읽으러 회사 갈 수도 있지! 휴가 기간인데 밥 주면 회사 갈 수도 있지 밥 해먹기 귀찮은데! 하지만 단지 편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평생 그렇게 살고 싶은.. 회사가 내 삶의 울타리가 되고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이 나의 가족이 되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지 그래요 사실 네이버웹툰은 저에게 집이었습니다 어쩌다 회사를 그런 위치로까지 올려버려서 작년부터 지금껏 이런 개고생을 한 걸까요?
근데 이게 변명을 하자면요 한번 그런 삶을 살아보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건 옆 동네 얘기지만 수원시 삼성구라는 말이 우스갯소리처럼 돕니다 삼성이 밥도 주고 기숙사도 주고 생활 전반을 다 챙겨주는데 그 안에서 똑같은 삼성 사람이랑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어린이집도 삼성 연계로 다니고 대학 등록금도 삼성이 대주고 이게 얼마나 편한데요 진짜 방바닥이 뜨끈뜨끈해서 사람이 녹는다니까 온돌을 이래 데워놨는데 무슨 수로 빠져나옴
부등호의 문법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예를 들면 ‘작은 회사보단 큰 회사가 낫잖아’ ‘박봉보다는 돈 잘 버는 게 낫잖아’ 같은 거. 그건 그렇지 외의 대답을 하자니 뭔가 변명이 궁색한데 그건 그렇지 라고 말해버리는 순간 비슷한 류의 부등호 명제가 뒤에 줄줄이 따라붙어 최종 결론은 역시 서울 짱 자본주의 최고로 나 버릴 거 같은 느낌이 든단 말입니다 아 근데 그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거든.. 그럼 이걸 어디부터 부정을 해야 하느냐 부등호의 문법 자체를 부정해야 하는 것이다. 일단 현재 나의 전략은 침묵이다. 카카오픽코마보다 네이버웹툰이 더 잘 나가는데 왜 이리로 이직했어요? 침묵. 전에 있던 회사보다 옮긴 회사가 더 성장하기 좋은 곳 같애? 침묵. 그래도 이직했으니까 좋겠다 여긴 여전히 답 없어 ㅋㅋ. 침묵. 이제 네이버웹툰 벗어났으니까 불매 운동 얘기 들어도 편하게 반응할 수 있겠다 그죠! 침묵.

올해는 일단 옮긴 회사에 잘 적응하는 것만이 목표다 다른 것엔 아직 생각이 닿지 않는다.. 내년에 하고 싶은 건 많다 수영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 하고 싶고 요리를 좀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다 사실 요리 교실을 진지하게 찾아본 적 있는데 이게 동네가 동네라 그런지 내가 키워드를 잘못 검색한 건지 요리 자격증 따는 입시학원과 원데이클래스만 있고 그 중간이 없다 어쩌면 본가에 자주 내려가서 엄마한테 가르쳐달라고 하는 게 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가 어찌 지옥을 제 발로 걸어들어가느냐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어서 패스. 뭐 정 안 되면 유튜브에 없는 게 없는 세상이니 혼자서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집 부엌이 좁아서 문제지.. 다 까먹어가는 일본어도 다시 공부하고 싶다 유럽 가기 전에 패기롭게 JPT 책까지 샀는데 아직 펼쳐보지 않았다 독일어도 공부해보고 싶다 비록 아무짝에 쓸모는 없지만.. 하지만 그 쓸모없음이 매력적인 것이다 오늘 읽었던 소설에 ‘배움의 과잉’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는데 소설 줄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 단어가 유독 오래 뇌리에 남았다 ‘배움의 과잉’ 그건 어쩐지 내 삶이 목표하는 지점 같다 누가 나에게 꿈을 말하라면 세상 쓸모 없는 것들을 계속계속 배우는 사람이고 싶다고 말할 것이다 거주지를 고르라면 제일 먼저 도서관 접근성이 좋은 곳이어야 한다고 말하겠지 실제로 도서관을 갈 여유가 있느냐와 별개로 그건 저한테 풍수지리 같은 거라서요 사람이 책 근처에 살아야 숨 쉬기가 편하고 기운이 좋고 그렇답니다

일단은 이번주를 살아낼 것이다. 그다음에 뭘 해야 할지는 천천히 알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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