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10일차 - 리스본 첫째날
0. 아침
이날은 날씨가 정말 대단했다. 뉘른베르크 있을 때만 해도 옷을 쓸데없이 많이 챙겨 왔다고 생각했다. 뉘른베르크 최고 기온이 9도인데 나는 캐리어에 혹시 모른다고 코트도 챙겨갔으니까. 한데 오늘 리스본의 최고 기온은 20도다. 어라, 반팔을 가져와도 됐겠는데.
1. 페소아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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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페소아 이야기를 해야 할 거 같다.
페르난도 페소아라는 작가가 있다.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시인으로, 페소아 자신이 쓴 글도 물론 유명하지만 『오르페우』라는 잡지를 창간해 모더니즘 문학을 포르투갈에 들여오고 『아기아』 같은 잡지로 포르투갈 문학의 부흥을 꾀했던, 여러모로 포르투갈 문학사에서 비중이 큰 사람이다. 페소아가 한국에 처음 소개된 건 아마도 1994년 전예원 세계문학선 시리즈로 나온 송필환 번역의 『양치는 목동』일 텐데 그걸로 페소아를 접한 사람은 지금은 드물 테고 현재 한국 독자가 가장 접하기 쉬운 작품은 『불안의 책』이다. 이 책은 2014년 봄날의책에서 나온 배수아 번역의 『불안의 서』가 있고 2015년에 문학동네에서 나온 오진영 번역의 『불안의 책』이 있는데 배수아 번역을 팬처럼 좋아하는 분이 꽤 많다. 어느 기점부터 페소아가 인기를 좀 타더니 문학동네에서 10주년 리커버 특별판이 나오기도 했었다.
여기까지 쓰면 내가 페소아를 잘 알고 애정하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사실 지금부터가 미묘해지는 지점이다. 그는 나의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는 한치의 의심 없는 최애 작가, 거의 신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으나 20대 중반을 지나면서 온도가 슬 식더니 30이 넘어간 지금은 좋아하는 작가 목록에도 잘 올리지 않는 사람이 됐다. 어쩌다 그런 변화가 생겼나 하면,
- 일단 나이를 먹으면서 허무주의에 맞서는 언어의 향연, 이명을 활용한 자아 탐구에 관심이 다소 사그러들었고
- 주제 사라마구의 『히카르두 헤이스가 죽은 해』를 읽으며 페소아를 다시 본 게 컸다. 주제 사라마구도 포르투갈 출신 작가고 저 책은 아예 페소아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인데, 바로 옆 동네는 지금 스페인 내전으로 혁명과 공화주의 난리 부르스가 나있는 와중에 자기는 아름다운 언어를 찾아 시를 쓰고 자아 탐방을 하고 귀족다움과 군주제를 사랑하는 페소아를 보니 좀⋯ 깨더라. 그가 군주제를 옹호했다는 걸 전에도 모르진 않았으나 막연히 옛날 사람이라 그랬겠거니 생각하다가 찬물을 확 맞은 느낌이었다. 그 직전에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은 덕분에 스페인 내전이 어떤 건지 조금은 알아서 더 그랬다. 나 같은 독자보다 훨씬 페소아에게 문화적으로 가까울 작가의 눈에 페소아가 이렇게 보이는 건가? 이게 포르투갈 사람이 생각하는 페소아? 아니 애초에 조지 오웰이랑 동시대였다고? 제임스 우드의 『소설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서는 아예 이 『히카르두 헤이스가 죽은 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페소아)는 이렇게 시작하는 시를 쓴다. ‘우리는 아무 가치가 없다. 우리는 부질없다 할 것도 없다.’ 다른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빈손으로 걸으라. 세상의 모습에 만족하는 자는 현명하므로.’ 그렇지만 이 소설은 세상의 모습이 끔찍할 때 그 세상의 모습에 만족하는 것은 어딘지 좀 죄스러운 구석이 있는 일일지 모른다고 암시한다. - 한가지 이유가 더 있다. 페소아에게 처음 입덕하게 된 계기가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였는데 몇 년 전 이 저자의 신간 『언어의 무게』를 읽고 눈물나게 실망했다. 진짜 너무너무너무 실망해서 지금도 탄식을 금할 길이 없다. 내가 기대한 건 『리스본행 야간열차』 이후로 십여년이 지난 만큼 깊어지고 새로워진 시선이었지 정확히 그 시절에 머물러 같은 얘기를 무한정 길게 쓰는 집념이 아니었다. 지금 장난해? 페소아는 이미 지나간 인물이래도 아저씨는 거기서 졸업하셨어야지 어떻게 2020년대에 이런 유럽 부르주아 판타지의 정수 같은 책을?
여하튼 페소아를 대하는 지금 나의 태도는 결코 긍정적이라 할 수 없다. 근데도 왜 리스본을 갔느냐. 그건 뭐.. 시간 널널하게 유럽 온 김에 학창 시절의 꿈 정도는 해치우고 가도 괜찮지 않을까 해서? 리스본에 더 이상 내 최애 작가는 없지만 10대의 내 추억은 남아 있으니까? 그런 느낌? 그래서 페소아의 집, Casa Fernando Pessoa 앞에 도착했을 때도 두근거리기보다는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아저씨 보려고 여까지 왔어. 아저씨 보러 사우스 코리아에서 비행기 타고 오는 사람 있을 거라고 살아생전 생각은 해보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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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사진. 영어 설명에 있는 reading the lines of the hand 가 설마 내가 생각한 그게 맞나 싶어 한번 더 검색해 보고 한참 웃었다. 아저씨 정말 어릴 때부터 미신적인 거 좋아하셨구나. 19세기에 손금 보기 가이드북이 영어로 나와 있었다는 것도 웃겼다. 혹시 그것도 책이 남아 있다면 정말 읽어보고 싶었다. 두 번째 사진. 페소아는 그의 문학만큼이나 이명(heteronym)이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유명한데 솔직히 트위터 많이 하는 서브컬처 덕후에게 이 이명 개념을 내밀면 ‘어 저 이거 알아요! 자캐놀이!’ 하는 감상밖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은 이 캐릭터 놀이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애인에게 사과할 일이 있을 때조차 자기가 창작한 인물 이름으로 ‘내가 당신 남자친구랑 좀 친한데 내가 보기에도 그건 남자친구가 잘못한 거 같아’ 같은 편지를 보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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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소아의 초상화. 이 그림 자체가 많이 알려져서 페소아 책의 표지로도 종종 쓰였다. 그림 속에 오르페우가 있는 건 이날 처음 알았다. 그리고 이명 관련 설명을 다시 접하고 조금 놀랐다. 몇십 개 되는 이름들 전부 다 이명으로 인정해 주는 게 아니야? 생년월일과 국적 정돈 설정되어 있어야 의미있는 자캐로 본단 말야? 그런 기준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그렇구나. 이명으로 인정되는 건 알베르토 카에이로, 히카르두 헤이스, 그리고 알바루 드 캄푸스 셋뿐이었다.
근데 전시가 전반적으로 조금 웃겼다. 페소아가 여자친구와 주고받은 선물, 어릴 때 밥 먹던 스푼까지 전시해 놓았더라. 학생 때 성적표, 회사 세우고 나서 만든 비즈니스 카드(그러나 회사는 1년 뒤에 망했다), 특허 신청했던 서류(그러나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코카콜라 슬로건 응모한 거(그러나 실제로 쓰이진 못했다)를 차례차례 보며 이 기념관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조금 생각해 보게 됐다. 한 사람의 인생을 낱낱이 긁어 모았다는 느낌이 드는 게 꼭 좋은 기분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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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언어의 페소아 번역서. 한국어 책으로는 『양치는 목동』이 있었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아니면 한국에서도 판본을 찾아보기 어려운 책이므로 몇 장 읽어봤다. 알베르토 카에이로가 알베르또 까에이로, 페소아가 뻬소아라고 표기되어 있는 게 다분히 옛날 책의 느낌이 났다.
그래서 기념관 총평 : 페소아는 정말 지나간 사랑이고 이젠 더는 그가 흥미롭지 않다는 사실만 재확인했다. 한국 돌아가면 책 처분해야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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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ow - Specialty Coffee & Friends. 숙소에서 기념관 가는 길에 느낌 좋은 카페가 있어서 가게 이름을 기억해 뒀다가 나오는 길에 들렀다. 무려 아아를 팔았다. 짜식 근본있군⋯. 하지만 난 카푸치노를 마셨다. 바나나 케익이 꽤 맛있었고, 그냥 이런 카페에 죽치고 앉아서 책이나 읽다가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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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기온이 20도라고 했지 비가 안 온다고는 하지 않았다. 이날도 마치 나를 놀리듯 비가 쏟아졌다.
코메르시우 광장, 아우구스타 개선문 등 페소아 문학에서 익히 봤던 지명이 내 눈앞에 펼쳐진 게 신기하긴 했다. 페소아는 심지어 리스본 안내서도 쓴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페소아의 리스본』으로 출간됐는데 혹시나 싶어 유럽 오기 전에 집에서 다시 펼쳐봤지만 역시 여행 가이드로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글은 페소아가 젊은 시절 ‘니들 자꾸 영국만 짱이라고 하는데 포르투갈도 짱이야! 우리나라에 멋있는 게 얼마나 많은 줄 알아?’의 마음으로 쓴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여행자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 페소아를 좋아했던 시기에도 그 책은 좀 뜨뜻미지근한 표정으로 읽었었다. 아저씨 여행 가이드 이렇게 쓰면 재미없어요. 하지만 그 재미없는 가이드에서도 몇 번이고 스쳐지났던 지역을 마침내 내 눈으로 본 건 좀 감회가 새로웠달지.
2. Livraria Bertrand - Chi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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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으로 유명한 베트르랑 서점에 왔다. 페소아와 무관하게 이런 수식어를 단 서점에는 오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며칠 전 뉘른베르크에서 봤던 Korn und Berg 가 1531년에 문을 열어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라고 했는데, 베르트랑 서점은 1732년에 문을 열었다. Korn und Berg 가 이백년이나 앞서지 않아요? 알고 보니 베르트랑 서점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으로 부르는 건 기네스북 기록에 근거한 건데 이 기록은 서점의 운영이 몇 년간 중단된 적은 없는지를 포함한다고 한다. Korn und Berg 는 2차대전 때 서점이 한번 무너졌다가 재건했기 때문에 후보에서 제외된 듯했다. 비슷하게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을 인터넷에 검색하면 H. 바이헤 서점이 많이 나오는데 이것도 같은 이유로 보인다.
서점은 꽤 잘 꾸며져 있었다. 어떻게? 관광객 유치의 목적에 충실하게. 나쁜 의미가 아니라 정말로, 이 서점의 손님은 99%가 외국인 관광객일 수밖에 없고 그들을 맞이하는 게 이곳의 역할이기도 하다는 걸 서점이 잘 알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점 선정 TOP 10 도서 목록에서 페소아 영역본이 네 권쯤 차지하고 다양한 언어가 공존하는 나라답게 영어/스페인어/이탈리아어/프랑스어 서가가 따로 나뉘어져 있다. 그렇다고 서점이 바글바글 도떼기 시장 같느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았다. 내부에 작은 카페도 있고, 서점 규모 대비 직원도 많이 상주하고 있어서 뭐 물어보기도 편하고, 평일엔 아예 서점 가이드 투어도 운영하는 듯했다. 외국인 여행객에게 이런 경험을 줄 수 있는 서점이라니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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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과 터널로 방이 이어져 있는 다소 독특한 구조. 한국의 서점처럼 팬시류도 팔고 당연히 포르투갈 관광 기념품도 판다. 방문 기념으로 주제 사라마구의 『리스본 쟁탈전』 영역본을 한 권 샀다. 책을 사면 표제지에 베르트랑 서점의 스탬프를 찍어준다.
3. A Brasilei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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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 최초의 카페이자 페소아를 포함해 각종 문학가와 예술가가 사랑했던 곳으로 유명한 A Brasileira. 페소아 이제 안 좋아한다고 암만 얘기해도 결국 내가 아는 리스본의 명소는 페소아 영향권에서 벗어나질 않는다. 비도 오고 잠깐 앉고 싶어서 에스프레소 한 잔과 나타를 주문했다. 그 유명한 포르투갈식 에그 타르트 나타. 하지만 오기 전에도 짐작했듯이 에그 타르트는 에그 타르트의 맛이 났다. 아니 맛은 있었다. 맛이 없었다는 게 아니고 원래도 에그 타르트는 좋아한다. 근데 에그 타르트가 맛있으면 그냥 맛있는 에그 타르트의 맛이 나는 거 아냐? 더 나아갈 수 있는 맛이랄 게 있나? 구글 맵 리뷰를 찾아보니 어떤 사람은 나타로 가장 유명한 벨렝보다도 브라질리아의 나타가 더 맛있었다고 했고 솔직히 그건 나도 동의하는 바였는데 어쨌든 에그 타르트의 맛있음에서 벗어나진 않았다.
사실 나타의 맛보다는 테라스석의 비바람이 좀 더 기억에 남는다. 음. 유럽 영화의 등장인물이 된 거 같았다. 이 비에 테라스석에서 커피를 먹네..
3-1.
트램 기다리는 중에 만난 폭우. 이때는 정말 모든 생각이 비바람에 쓸려나가는 것만 같았다.
유럽 여행에서 1차 위기가 뉘른베르크 둘째날이었다면 2차 위기가 이날이었다. 아. 날씨가 정말 지랄맞아. 이제 어지간히 비 오는 걸론 우산 꺼내지도 않게 됐다. 내가 유럽에 갖고 간 우산은 두루두루 가볍게 쓸 수 있는 우양산이었기 때문에 이런 폭풍을 견딜 깜냥이 못 됐다. 뒤집어져서 날아가려는 걸 이미 여러 번 붙잡았고, 하지만 저 순간엔 누구보다 간절하게 기도했다. 제발 이번 한번만 도와줘 버텨줘.. 한편 어떤 차들은 이 좁은 길목에서 어찌나 쌩쌩 달려대는지 - 자기들은 지붕 있다 이거지 - 최대한 벽에 가까이 붙어섰는데도 가끔 위험한 물살이 튀었다. 어디서 캐리비안 베이를 연출하고 있어 나 신발 여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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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 놓고 그저 비내리는 풍경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4. 트램 탑승
리스본에 대한 복합적인 인상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첫째, 대중교통이 제시간에 오지 않는다. 구글 맵에서 안내한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트램이 오지 않아서 나뿐만 아니라 같은 정류장에 서 있던 외국인들 모두가 ‘너 혹시 뭐 알아?’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둘째, 리스본의 낭만을 상징하는 트램은 조금 더 멀리서 봐야 낭만이 생기는 거 같다. 비에 쫄딱 젖은 사람들을 차곡차곡 스택으로 실어 나르느라 이날 차체에선 바닷가 냄새가 물씬 풍겼다. 거대한 염장 통조림 안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기사님 운전이 다소 거칠다. 우당탕탕. 두두두두구구구구.
5. 리스본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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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의 인상 셋. 독일과는 확실히 다르다. 어떤 점이 다르냐면 비가 내리자 즉시 우산 파는 잡상인이 등장했다. 그들을 내쫓거나 관리하는 권위자가 어디에서도 뛰쳐나오지 않았다. 인상 넷. 대성당 입장이 무료가 아니다. 이럴 수가. 하나님의 은혜는 어디로 갔죠?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도시. 그게 첫날 리스본에서 얻은 감상이었다. 브라질리아 카페에서도 그랬다. 테라스석에 천막 지붕이 있어도 비가 계속 들이닥치는데 사람들 끼꼬도 안하고 커피 마시고 와인 마시는 걸 보면서, 대성당 천장에서 물이 새는데 사람들 아랑곳 안하고 다니는 걸 보면서 이들은 관광에 너무 전투적이고 나는 여행 막바지에 조금 지쳐 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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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서 나온 뒤 잠깐 동네 구경.
6. 파두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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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에서 파두(포르투갈 전통 음악) 박물관으로 가는 길을 검색했더니 이 계단을 따라 멀리멀리 내려가라고 알려줬다. 농담이지? 하지만 농담이 아니었다. 이날 구글 지도에서 처음 보는 표현을 많이 맞닥뜨렸다. 급좌회전이 뭘까 했는데 40미터 앞으로 가보니 정말 급좌회전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길이 나왔다. 역시 바닷가.
사실 파두 박물관 안에서는 사진을 한 장도 찍지 않았다. 핸드폰을 그냥 보조배터리에 연결한 채로 짐 보관함에 넣어버렸다. 파두에 대한 설명을 찍어간다고 내가 나중에 볼까? 싶었다. 파두에 관심이 있어서 온 건 맞지만. 박물관 전시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살라자르 독재 시기에 시민들의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해 파두, 축구, 종교를 적극 장려했다는 설명이 슬펐고 유명한 옛 파두 가수들의 영상, 지금 파두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말하는 ‘파두란 무엇인가’에 대한 인터뷰를 많이 틀어줘서 재밌었다. 노래를 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외국인은 이해 못할 수 있다, 파두 특유의 정서가 있다, 가수가 자기 소울을 담아 부르는 게 중요하다 파두를 배우는 학교 같은 건 있을 수 없다 등등의 멘트를 들으며 ‘정답! 트로트!’ 하는 대답이 자꾸 떠올랐다. 그리고 ‘외국인은 이해 못할 수 있다’는 말이 정확한 사실적시인지 아니면 이해 못할 어떤 고유의 영역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마지막엔 기념품 샵에서 파두 CD를 한 장 샀다. 예전에 『히카르두 헤이스가 죽은 해』를 읽으며 혹시 파두라도 들으면 이 두꺼운 포르투갈 책이 좀 잘 읽힐까 싶어 이것저것 찾아 들었던 게 기억났다. 몇 개의 추천 음반이 있어 추천 음반은 그 자리에서 청음해 볼 수 있었는데 다 들어본 끝에 Gaspar Varela 라는 사람의 앨범을 골라 갔더니 직원 분이 웃으며 자기도 그 앨범을 좋아한다고,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아티스트라고 했다. 그런 말은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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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의 인상 다섯. 음식이 맛있는 대신 점심과 저녁 사이 브레이크 타임을 길게 갖는 식당이 많다. 파두 박물관은 6시에 문을 닫았는데 가고 싶어서 찾아둔 식당은 7시부터 저녁 타임 시작이어서 비는 한 시간동안 하릴없이 메인 거리와 해변가를 돌아다녔다. 거기서 탄생한 인상 여섯, 호객 행위가 미쳤다. 눈도 마주치지 않았는데 대뜸 나타난 웨이터가 hello ma’am hello beautiful family! 하면서 메뉴판을 내민다. 거리 양옆으론 돗자리 펴놓고 명품백 가품과 축구 티셔츠를 파는 판매상이 줄지어 있다. 뭘까 이 익숙한 바이브.
여전히 날씨는 지랄맞았다. 비는 샤워기 수압 수준과 미스트 사이를 왔다갔다하고 내 우양산은 그 속에서 용케 고장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날씨에 동네 어린이들은 신난다고 빗속에서 백덤블링을 했다. 전혀 과장이 아니고 진짜로 비가 쏟아지는 길바닥에서 백덤블링하는 어린이를 보았다. 역시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도시.
7. Martinho da Arc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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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기 위해 방문한 식당. 또 머쓱하게도 페소아가 즐겨 찾았던 곳이다. 이곳은 아예 페소아로 유명해진 곳이라 가게 메뉴판에 페소아 사진이 붙어 있다. 저도 온 김에 실속은 차리고 가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분위기가 조금 묘했다. 7시 정각에 들어갔기 때문에 손님이 나밖에 없는 건 그러려니 했는데, 웨이터가 너무나 친절하게 빵과 치즈를 가져다 주었다. 어디서 왔냐고 묻고 페소아를 아냐고 묻고 포르투갈에 와서 뭘 먹어봤냐고 묻더니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내 앞에 빵과 치즈가 놓여 있었다. 대화에 정신이 팔려 아무 생각없이 집어먹고 나서야 이게 무료가 아닐 거 같다는 감이 왔다.
점심도 안 먹었고 배가 고픈 상태였어서 빵은 뭐.. 괜찮았는데, 치즈가 정말 맛이 없었다. 그리고 옆 테이블에 비닐랩 씌워둔 채로 방치되어 있던 걸 내게 내주는 모습을 분명히 봤다. 근데 나중에 영수증을 확인하니 치즈를 7유로나 받아먹었다. 7유로면 거의 만원이다. 미친 거 아냐? 하지만 난 이미 지쳐 있었고 영어로 싸울 깜냥도 없었다. 정말 슬픈 건 30분쯤 뒤 여럿이서 앉은 유러피안 손님들 테이블에는 치즈를 내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웨이터는 내가 행여나 치즈를 걸고 넘어질까 우려했는지 시종일관 나에게 미친 듯이 친절했다. 자기도 한국어 할 줄 안다며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도 보여주고.. 생선 살도 하나하나 다 발라주고.. 요청하지 않은 친절이 두 배는 더 슬프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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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으로 시킨 생선은 맛있었고 디저트도 괜찮았지만, 계산서를 받고 솔직히 숙소 돌아가서 눈물이 약간 글썽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유럽 대륙에 금가루를 뿌리고 있나. 치즈 개맛없다고 같이 욕해줄 친구만 있었어도 이렇게 서럽지 않았을 텐데. 이게 다 페소아 때문 같고..
이렇게 페소아를 싫어할 이유가 또 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