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아침

날씨 얘기를 꼼꼼하게 쓰지 않았는데 사실 다니는 내내 날씨 운이 별로 좋지 않았다. 도착한 날부터 계속 비가 내렸다 그쳤고 4일차에는 거의 하루종일 쏟아졌다. 기온도 한국보다 한참 낮아서 목도리 없이는 절대 버틸 수 없는 겨울 칼바람이 불었다. 밖에 나가면 아예 롱패딩으로 무장한 사람도 있었다. 여행 계획을 처음 짤 때부터 독일 기온이 한국보다 낮길래 생각보다 추운가보다 했는데, 주변에서 ‘아닌데? 지금 딱 유럽 여행 다니기 좋은 날씨일 텐데?’ 하던 말에 속아넘어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들 모두에게 꿀밤 한 대씩만 먹이고 싶었다. 제발 한 대만 때리게 해주세요⋯.

그리고 나를 슬프게 했던 프레첼. 그나저나 독일은 카드를 꽂아서 결제하는 방식보다 갖다대서 결제하는 방식을 월등히 많이 쓰는 거 같았다. 이날 벌써 단말기에 카드 꽂은 다음 혼자 어리둥절해하기를 3회 이상 달성했다.

1. 밤베르크 이동

드디어 본격적인 마차살 탐방 시작이다. Jesus calls us—!

뉘른베르크 역에서 밤베르크 역까지는 일반 열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표를 따로 예매할 필요는 없지만 기차가 한 시간에 한 번 꼴로 있기 때문에 몇 시 기차를 타서 몇 시에 돌아올 건지 정도는 미리 정해놓고 갔는데, 실제로는 계획했던 것보다 더 빨리 돌아왔다. 바깥 구경을 하며 돌아다니기엔 날이 추웠고 애초에 밤베르크는 시가지가 작아서 빠르게 돌면 반나절 안에 모두 돌아볼 수 있다. 하루종일 밤베르크에 있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밤베르크 역에서 시가지로 가는 길. 도보로 30분 정도 걸렸던 거 같다.

2. 밤베르크 구 시청사

다리 위의 시청. 강 위의 시청사. 비슷한 표현으로 『마차살』에서 수 차례 언급된 곳이다. 501~530화 즈음에 걸쳐 등장하는 거대한 사건의 시작점이 되는 장소기도 해서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꼭 와보고 싶었다. 소설은 19세기 배경이라 그냥 밤베르크 시청사라고 언급하지만 현재 기준으로 구 시청사인 이 건물은 밤베르크 시가지의 입구이기도 한데,

정말로 강 위의 시청사였다! 다리 위의 시청이란 말을 소설에서 읽을 땐 그게 무슨 의미인지 상상이 잘 안 갔는데 정말로 강을 건너는 다리 위에 시청 건물이 있었다! 지금 사진으로 다시 봐도 신기하다. 밤베르크 주교가 시청 건설을 위한 토지를 시민들에게 내어주지 않아서 시민들이 직접 레그니츠 강에 말뚝을 박아 인공 섬을 만든 결과물이라고. 지금은 종교와 아무 관련 없는 평범한 랜드마크다. 저 멀리 페리가 몇 대 보이는데 페리를 타고 강을 유람하는 투어 상품도 있는 것 같았다. 날이 추워서인지 이용하는 사람은 볼 수 없었지만.

구 시청사 내부는 현재 리모델링 중이라 아쉽게도 관람이 불가능했다. 대신 내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도자기 중 일부를 밤베르크 대성당 바로 옆에 있는 뉴 레지던스에서 볼 수 있다는듯. 순식간에 없어져버린 컨텐츠에 조금 충격을 받았지만(이거 보려고 왔는데!) 마차살 독자로서는 내부를 볼 수 없는 게 오히려 상상을 자극하는 방향이기도 해서 ‘리모델링은 핑계고 사실은 저 안에서 무슨 일이..!’ 하고 혼자 즐거운 상상극장을 펼쳤다. 사람이 뭘 좋아하면 이렇게 가지가지 방법으로 놀 수 있다.

3. 밤베르크 대성당 (1)

왜 1이라는 제목이 붙었느냐. 대성당 입장이 오후 1시부터 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아침 10시 반에 왔기 때문이다. 구글 지도는 분명 아침 9시부터 입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는데 토요일이라 오전 미사가 있었던 거 같다. 사실 난 종교색이 이렇게 짙은 웹소설을 770화까지 읽으면서도 ‘미사’가 정확히 무엇인지, 교회와 성당은 시스템이 어떻게 다른 건지 잘 알지 못한다. 아무튼 내가 아는 건 여행 목적으로 교회나 성당을 방문했을 때 관광객이 입장 불가능한 시간대가 있다는 것뿐이다. 오후 한 시까지 할 거 정말 없던데⋯ 배가 그렇게 고프진 않았지만 무료 입장 하나님의 은혜 성당이 선택지에서 사라지고 나니 갈 곳도 없어져서 일단 식당에 들어갔다.

4.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식당

밤베르크에선 아예 식당을 찾아보지도 않았다. 그저 비와 추위를 피할 만한, 마침 사람들도 적절히 앉아 있고 웨이터가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식당에 들어갔을 뿐이다. 근데 왜 어제 봤던 것과 같은 메뉴판을 주는 걸까요? 정말이지 이 지역에 여행을 와서 프랑코니안을 먹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어딜 가도 프랑코니안 고기와 감자 그리고 자우어크라우트가 메뉴판을 지배한다. 그리고 독일 사람들 불친절하다는 것도 순 거짓말이다. 나 밥 먹을 때마다 입맛에 맞냐고 꼭 물어보고 가던데⋯ 혹시 내가 너무 슬픈 표정으로 밥을 먹었나?

5. Schlenkerla, Rauchbierbrauerei

원래는 이 순서로 다닐 생각이 아니었는데, 밥은 다 먹었고 아직 오후 한 시는 멀었고 갈곳은 없고 이건 어쩔 수 없다 싶어서 북마크해 뒀던 맥주집에 갔다 ㅋㅋㅋㅋㅋ 밤베르크의 명물 라우흐비어, Rotbier, 영어로는 Red beer 또는 Smoke beer, 우리말로는 훈연 맥주다. 이곳은 테이크아웃 가격과 앉아서 마시는 가격이 다른데, 밖은 비가 쏟아지는데다 이곳 슐렌케를라 양조장은 원래도 라우흐비어로 유명한 곳이라 자리는 당연히 만석이었다. 따라서 나도 테이크아웃으로 시켰고 원칙적으로 테이크아웃 손님은 가게 안에서 마시면 안 되지만 이날은 약간 유도리 있게 봐주셨다. 나 말고도 가게 안에 어정쩡하게 서서 마시는 손님이 꽤 있었다. 아니 우산의 유무는 둘째치고 이 추위에 맥주 500ml 를 에스프레소처럼 원샷하고 갈 순 없잖아요⋯.

독일 음식은 정말 넌덜머리가 날 지경이었지만 이날 마신 맥주는, 밤베르크에서 뉘른베르크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이미 조금 그리워하고 있었다. 한 모금 마시자마자 즉시 맛있다고 느꼈던 건 아니다. 나는 맛을 섬세하게 느끼는 편이 아니고 훈연 맥주에선 내가 맥주를 마시며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냄새가 났다. 꼬릿한 것이 굉장히 호불호가 갈릴 거 같다는 게 첫인상이었고, 날씨와 절망감(그래 사실 구 시청사 내부 못 본 거 좀 뼈아팠어)에 살짝 주저앉은 정신, 오늘 날씨 정말 구리다고 대화 나눌 동행도 없고 혼자 맥주 500ml 테이크아웃을 애매하게 서서 마시는 상황에 맥주의 맛까지 즐기기는 어려웠다. 사실 독일 여행 간다고 하면 맥주 많이 마시고 오라는 말을 많이들 하지만 이게 판매되는 최소 단위가 500ml 에, 따뜻해서 술술 넘어가는 스프 같은 종류도 아니고, 아무튼 1인 여행객에겐 이래저래 한계가 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벌써 ‘한 잔 더 마실 걸!’ 생각이 들었던 걸 보면 맛은 있었다. 누구랑 같이 마실 수 있었음 더 좋았을 텐데.

6. 밤베르크 대성당 (2)

드디어 대망의 밤베르크 대성당 입장.

번쩍번쩍 화려한 성모 마리아 상. 밑에 쓰여 있는 Heilige Maria bittefüruns 는 ‘성모 마리아 님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라는 뜻이라고 구글 번역기가 알려줬다. 미술 양식은 잘 모르지만 정말 아름다운 조각상이었다. 성당 한 구석엔 밤베르크의 대주교를 지낸 사람들의 명단이 남아 있었는데 마차살에선 밤베르크 대주교가 꽤 중요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명단을 열심히 보게 됐다. 어디 보자 19세기 후반이면..

관광객은 출입 불가능했던 지하 예배당. 1층 공간에서 이곳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못 들어간다고 하니까 괜히 더 들어가보고 싶고 저 안에서 무슨 은밀한 대화가 이뤄졌을 것만 같고 그랬다. 대성당이라는 역사 깊은 건물에 와서 이런 상상만 해서 죄송하지만 제가 읽는 소설에서 이곳의 이미지가 좀 그렇습니다..

사실 훈연 맥주 한 잔 풀로 때리고 왔더니 성당에 만연한 이 훈연향이 기도초에서 나는 건지 나한테서 나는 건지 좀 헷갈렸다. 실제로 나를 포함한 사람들한테서 나는 거였을 수도 있는 게, 밤베르크 여행객의 절대 다수는 맥주를 마시기 위해 온 사람이다. 뉘른베르크와는 그 점이 조금 달랐다. 뉘른베르크는 중세 유적이나 소시지, 진저브레드 등도 물론 있지만 무엇보다 ‘뉘른베르크 전당대회’와 ‘뉘른베르크 재판’ 등 나치와 연관이 깊은 것으로 유명한 도시다. 그래서인지 뉘른베르크에서 만난 관광객은 대부분 학교 차원에서 견학을 온 학생들, 가이드를 동반한 단체 관광객, 그리고 가족 단위 여행객이 많았다. 반면 밤베르크? 유아 청소년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아름다운 구 시청사 앞에 머무는 것도 잠깐이며 모두가 훈연 맥주 집 앞에 모여 있다 ㅋㅋㅋㅋ 다들 맥주 마시러 온 김에 대성당도 잠깐 보고 구 시청사도 보면서 짧은 관광을 즐기는 느낌.

성당 입구 게시판에 붙어 있던 팜플렛. 이게 2025년판 Jesus calls us—! 인지 진짜 건전한 모임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았다. 이런 모임에 실제로 가면 무엇을 하는 걸까? 독일어는 한 마디도 할 줄 모르지만 30분짜리 설교라면 저도 그 자리에 있어보고 싶습니다. 혹시 청강 가능한지..

7. 밤베르크의 광장

사진은 대성당 앞 광장 Domplatz. 이날 대성당 구경을 끝내고는 밤베르크의 크고 작은 광장들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Jesus calls us—! 의 설교가 밤베르크의 광장에서 이루어졌다는 단 한 줄짜리 서술 때문이었는데, 사실 이게 정확히 어느 광장을 가리키는 건지는 좀 모호하다. 광장이 독일어로는 platz, 그런데 무슨무슨 platz 라고 이름 붙은 곳은 이 동네에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에는 Domplatz 가 있고 팜플렛의 설교 모임 장소도 Marienplatz 였다. ‘멀지 않은 곳에 밤베르크 대성당과 강 위의 시청사가 있다’는 부연 설명을 토대로 추측하려 해도 밤베르크는 시가지 규모가 작기 때문에 전부 도보 이동이 가능하다. 어디를 생각해도 멀지 않게 느껴졌다.

밤베르크에서 가장 크고 잘 알려진 광장은 Maximiliansplatz, 막시밀리안 광장이지만 내 생각에 정확하게 여길 염두에 두고 쓰였다면 작가님이 더 분명하게 언급했을 거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독자로서의 나는 대-광장, 그러니까 왕의 이름이 붙은 크고 멋있는 광장이 아니라 좀 미니멀하고 사람 사는 느낌이 폴폴 나고 음쓰 냄새도 좀 나고 옆집에서 소시지 굽던 아저씨도 옳소 옳소 하고 튀어나올 수 있는 광장에서 사이비 전도 쇼가 이루어지는 쪽이 더 재밌게 느껴졌기 때문에 ‘혹시 여기였을까?’ 하는 즐거움으로 전혀 관광지가 아닌 작은 광장들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아무튼 나는 즐거웠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딱 하나 남는 아쉬움이 있다면 ‘오후 1시에 작열하는 태양빛’은 조금도 구경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거까지 맞아떨어졌으면 정말 웃겼을 텐데⋯.

밤베르크 역으로 돌아가던 길에 다시 만난 레그니츠 강. 실은 옆에 있는 할슈타트도 가보고 싶었는데 (소설 상으론 거기가 설교의 첫 시작점이기 때문) 가는 교통편은 둘째치고 ‘할슈타트는 정말,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듣고 깔끔하게 넘겼다.

8. 뉘른베르크 나치 기록 보관소

기차를 타고 다시 뉘른베르크 역으로 돌아와 숙소에서 잠깐 쉬고 트램으로 이동했다. 트램 번호는 기억나지 않지만 종점에서 내리기 때문에 사람들 우르르 내릴 때 같이 내리면 된다. 안 타본 대중교통 타 보는 거 좋아하므로 오늘의 여행 +1점.

이곳은 2021년부터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가 2026년에 재개관 예정으로 현재는 전시 일부만 볼 수 있다. 이것도 도착해서야 알았기 때문에 잠깐 서러울 뻔했지만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고 온 건 나고, 무엇보다 2021년부터 리모델링 중이었다면 선택의 여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므로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전시 일부라고 실망하기엔 구성이 꽤 알찼다. 다음날 갔던 전범재판 기념관보다 좀 더 천천히 시간 들여 볼 수 있어서 좋았다.

It was no coincidence that the Franconian Gauleiter was officially allowed to style himself as the Franconian Leader. Franconia was of crucial geographical and political importance to the rise of the Nazi party. 전시공간 소개글의 첫 문장을 읽으면서, 이곳을 알면 알수록 Franconian 이라는 단어가 점점 불미스럽게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이곳의 오랜 지역 정체성이고 자부심이지만 바로 그랬기 때문에 나치에게도 자부심이 됐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Streicher in Nuremberg and Hitler in Munich 는 또 왜 이렇게 도원결의마냥 라임이 쫙쫙 맞게 읽혀서 여행 온 사람을 당혹스럽게 할까요. 내가 바이에른에 기대한 건 루카스와 레오의 발자취 쫓기였는데 실제로 가장 자세히 보게 되는 건 히틀러의 흔적이라니 마음이 조금 힘들었다. 『마차살』에서 뉘른베르크를 반파시킨 것은? 레오의 고유 능력. 실제로 뉘른베르크를 반파시킨 것은? 양차대전.

그 시절에 인기 있었던 나치 상품들. 그러니까 그들에게도 포토카드가 있고 굿즈가 있었던 것이다. ‘연필 세트 탐나는데 혹시’ 하는 호기심이 아주 잠깐 고개를 들었지만 그럴 리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므로 불온한 질문은 조용히 삼켰다. 하지만 동시에 기록 보관소는 공익적 목적이니까 유료로 운영해도 되지만 Merchandise 판매는 감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그 인식이 어딘가 모호하게도 느껴졌다. 그렇다면 이런 곳에선 얼만큼 수익 창출을 해도 되는 걸까요? 내가 이곳 직원이라면 사소한 업무적 결정을 내릴 때마다 양가적인 감정이 들 거 같았다.

그리고 기록 보관소 바로 옆에 위치한, 영원히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을 나치 전당대회장.

기록 보관소에서 걸어나오던 길. 10월 말은 이미 동절기 시즌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관광지가 오후 4-5시 즈음 문을 닫는다. 아직 해도 안 졌는데 또 여기서 쫓아내시면 저는 갈곳이 없는데요 싶어도 나와야 한다. 얄궂게도 바로 옆에 위치한 호수와 산책길이 무척 아름다웠다. 혼자 걸어다니며 오리 구경도 열심히 했다. 내일은 크게 할 것도 없는데 오후엔 그냥 커피 한 잔 사들고 이 공원 산책이나 다시 올까, 어쩌면 그게 무계획 유럽 여행의 묘미인지도 몰라, 같은 생각을 하며 걸어가던 찰나,

이 건물을 만났다. 어? 건물 멋있다. 뉘른베르크에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있구나. 그렇지 나 사실 여행 루트 짤 때 오스트리아 가서 빈 필하모닉 공연을 봐도 좋을 거 같다 생각했었지. 뮌헨 필하모닉도 찾아봤었어. 근데 뉘른베르크는 생각을 못했네. 혹시 내일도 공연이 있나? 아직 자리가 있나? 엄청 비싸거나 하진 않나? 내가 알 만한 프로그램을 하나? 근데 이거라도 보러 가지 않으면 내일은 정말로 할 일이 없어. 아 모르겠다! 가자! 48유로? 좀 비싼데? 그치만 가자!

라는 결정을 즉석에서 내렸고 그다음날 공연을 봤다. 참고로 이 이야기의 완성은 정작 저 건물이 공연장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저 안에도 자체 뮤직홀이 있긴 한데 주요 용도는 경영진의 사무 공간이라고.

9. 숙소로 돌아오기

원래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서점에 가보는 걸 좋아해서 저녁에 Thalia를 들렀다. 책이 꽂혀있는 것만으로도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반갑긴 했지만 크게 인상적이진 않았다. 우리나라의 교보문고 같은 느낌. 사실 비텔스바흐 가문에 대한 책이 있다면 설령 독일어여도 기념으로 한 권 사 오고픈 마음이 있었는데 찾지 못했고, 서점 직원에게 물어볼까도 했지만 이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외국인 관광객이 교보문고에 가서 혹시 여기 안동 권씨 가문에 대한 책은 없나요 제가 개인적인 사유로 그 가문에 관심이 있는데 뭐라도 있으면.. 하고 묻는 것과 동일한 상황이란 것을 떠올리고 비텔스바흐의 ㅂ도 꺼내지 않았다. 얻는 것은 수치심뿐일 확률 1280%⋯.

날은 춥고 체력은 떨어지는데 도저히 저녁을 먹으러 갈 용기가 나지 않아서 로렌츠 교회 앞을 하염없이 서성이다가 사람들이 줄을 길게길게 서 있는 쿠키 가게를 발견했다. 줄이 줄어드는 속도가 굉장히 느린데도, 비가 계속 오는데도 우산도 없이 꿋꿋하게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나도 긴 줄 끝에 서서 4개짜리 박스를 샀다. 쿠키는 정말 맛있었다. 달아서 도저히 한번에 하나 이상을 먹을 순 없었지만 그 당도 안에서 낼 수 있는 최고의 맛을 냈다고 느꼈다. 물론 지금 와서 보면 좀 어이가 없긴 하다. 그냥 아시안 식당을 갔으면 되는데 (되너 케밥 먹어! 먹으라고!) 차라리 고통을 기억하고 싶지 어떻게 온 유럽 여행인데 여기까지 와서 아시안을 먹긴 싫다는 그 알량한 고집을 버리지 못해서 이 사단이 난 것이다. 그러니까 먹어야 되는 저녁밥은 안 먹고 비 맞아가며 사온 쿠키 박스를 칼로리 메이트처럼 들고 다니지. 물론 아시안 음식을 먹었다고 성공했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서도⋯.

밥이 맛없는 나라여서 다들 그렇게 철학을 열심히 했던 걸까? 라는 생각을 이 날만 세 번 정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