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3일차 - 뉘른베르크 첫날
0. 뉘른베르크 이동
프랑크푸르트에서 뉘른베르크로 이동하는 날. 이날은 ICE 기차를 미리 예매했다. 도이칠란드 티켓으로는 regional train, 완행열차만 무제한으로 탈 수 있고 ICE 는 고속열차라 해당사항이 없기 때문에 ICE를 타면 돈이 따블로 나가는데 왜 그랬느냐, 프랑크푸르트에서 뉘른베르크를 한방에 가는 완행열차가 없고 환승 두 번에 도합 네 시간이 걸리는 루트가 최적이라고 DB 앱이 알려줬기 때문이다. 기차를 네 시간 탄다? 그건 할 수 있다. 환승을 두 번 한다? 아 쉽지 않은데⋯.
캐리어도 끌고 다녀야 하고, 기차가 지하철만큼 자주 다니는 것도 아니고, 지연 가능성과 길 헤매다 환승 실패할 가능성, 독일의 다양한 교통수단을 체험해 보고 싶은 마음 등등을 종합해 결국 요 구간만 ICE 기차를 예매했다. 완행열차와 달리 지정 좌석을 고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고오급 열차라 그런지 2등석으로 예매했는데도 승무원이 돌아다니며 커피 한잔 필요한지도 친절하게 물어봐준다. 확실히 ‘서비스’가 제공된다는 느낌이 있었다. 일찍 예매할수록 더 저렴하게 티켓을 끊을 수 있다는데 나는 애초에 계획된 여행을 온 게 아니어서 내가 저렴하게 끊은 건지 비싸게 끊은 건지 알아보지도 않았다. RB 열차와 RMV 버스에 이어 ICE 기차까지 타게 되어 그저 기분이 좋았다. 대중교통 안에서 독서하는 걸 좋아해서 책도 열심히 읽었다.
루터가 이런 정치적 배경을 꿰뚫어 본 것 같지는 않다. 또한 교회의 자본주의적 행태를 몰아내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자신이 모시는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를 위해 증오하는 경쟁자 알브레히트를 공격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다. 그가 원한 것은 교회가 백지 수표를 퍼뜨림으로써 모든 사제직을 불필요한 존재로 만들게 하지 않는 것이었다.
루터가 로마 교회의 권위에 의구심을 제기한 것은 옳았지만, 스스로 기독교적 진리라 여긴 자신의 말로 그 권위를 대체한 것은 그릇되었다. 중세의 거의 모든 지혜로운 철학자들은 성경을 자구 그대로가 아니라 진지하게만 받아들이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루터는 지식인들 스스로 오래전에 퇴치했다고 믿은 바로 그런 자구 그대로의 성경 해석(오직 성경 말씀으로)을 고집했다.
루터는 신학적 토론을 여러 가지 점에서 중세로 되돌려 놓았다. 그의 폭력적이고 순진한 경건성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섬세하고 이지적인 영성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다. 물론 정치적 비호를 제외하면 바로 그런 면 덕분에 루터가 그렇게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거의 독일어로만 발표된 그의 글들은 명료하고 단순했다. 그의 <복음적> 신앙은 성경 자구를 신봉하는 새로운 근본주의였다. 그의 대중 영합적 민족주의도 불안에 떠는 사람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농민 봉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 왔지만, 1524년부터 1526년까지의 농민 전쟁은 그 어떤 폭동보다 치열했다. 그런데 농민들이 남부 독일 곳곳에서 영주들의 군대에 패배할 조짐을 보이자 루터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자유에 대한 언급은 더 이상 온데간데없고, 농민들을 <살인적인 강도 같은 도당>이라고 부르며 <미친개는 때려죽여야 하듯> 그들도 <은밀하게든 공개적으로든 모조리 박살내고 목 조르고 찔러 버릴 것>을 요구했다.
독일 여행을 처음 구상할 때는 비텐베르크에도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주인공 햄릿과 그의 친구 호레이쇼가 비텐베르크 대학에 함께 수학했다는 사실이 둘의 재회 장면에서 한몫을 하기 때문이다. 비텐베르크 대학은 마르틴 루터가 교수로 있었던 곳이자 당대 종교 개혁의 중심지였고, 그곳에서 햄릿과 호레이쇼가 만났다는 점은 두 인물의 가치관에 대한 단서가 되어 극 전반에 유의미하게 작용한다. 『햄릿』을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름이었으나⋯ 기차 안에서 철학사 책의 마르틴 루터 파트를 읽으면서 꿈과 환상이 싹 사라졌다. 이거 순 미친놈 아녀. 정작 종교 개혁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었던지라 뭔가 부패했던 교회 권력에 일침을 놓았다는 인상만 갖고 있었는데 이게 웬 미친 근본주의자인지.
0-1.
날씨는 내내 비왔다 그쳤다를 반복했다. 날씨 운은 좀 없었던 편. 그리고 확실히 사람들 키가 크더라. 대도시 처음 와본 시골쥐처럼 굴고 싶지 않은데 자꾸 본능적으로 그들을 올려다보게 된다. ‘우와 크당’.
0-2.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대중교통 안에서 구글맵을 켜 보고 신기해 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거라고 믿는다. 어쨌건 뉘른베르크부터는 바이에른 주에 속하기 때문에 내가 바이에른에 가고 있다는 벅참을 숨길 수 없었다. 이미 내 안에서 바이에른 = 마차살의 지역이라서⋯. 근데 이 인상은 나중에 좀 바뀌긴 했다.
1. 숙소 도착
Leonardo Royal Hotel Nürnberg. 숙소 사진을 한 장도 찍지 않았다는 사실이 경악스럽다. 정말 이런 거 안 해 본 티가 난다. 그렇지만 여행 기간동안 묵은 숙소 중에 가장 만족스러웠다. 숙소 도착하자마자 룸 컨디션이 너무 좋아서 가격을 다시 확인해 봤을 정도였는데, 그 전날 있었던 토요코인과 가격차가 1.5배인걸 알고 나니 감동이 약간 식긴 했다. 심지어 토요코인은 조식 포함이고 이 호텔은 조식 불포함인데⋯. 하지만 행복했죠? 방 완전 넓었죠? 추가 요금 없이 얼리 체크인도 해 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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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는 확실히 도시 느낌이 다르다. 건물들 생긴 것부터 중세의 무언가가 남아 있다. 붉은 벽돌의 건물들은 다시 봐도 가슴이 뛴다.
2. 프랑코니안 음식
Bratwurst Röslein. 음식 드리븐 여행은 잘 안하는 편인데 이날은 먹어보고 싶은 메뉴가 있었다. 실제로 먹었고 그날은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라고 생각했지만, 여행을 다 마치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아니 많이 다르다. 약간은 후회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땐 아직 독일 음식이라는 게 얼마나 거기서 거기이고 질리기 쉬우며 굳이 찾아가서 먹지 않아도 뉘른베르크 같은 곳을 3일이나 있으면 한번은 이쪽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시간 들여 걸음할 필요도 없다는 걸 몰랐다. 아~ 그땐 몰랐지.
프랑코니안 음식이란 무엇인가. 프랑켄 지방의 음식을 프랑코니안이라고 부른다. 현재의 바이에른 주 북부에 해당하는 뉘른베르크, 밤베르크, 뷔르츠부르크 등등이 프랑켄 지방에 속하는데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바이에른에 속한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아서 아직 고유의 문화가 많이 남아 있다. 기념품 샵을 가도 바이에른 기념품은 거의 팔지 않고 음식점을 가도 Bavaria 보다는 Frankonian 을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프랑코니안 맥주, 프랑코니안 요리 등등. 물론 그것이 아주 기깔나게 특색 있느냐 하면 여행객 기준으로 그렇지는 않다. 내가 먹어보고 싶어했고 실제로 이날 점심으로 먹은 게 Schäufele 라는 메뉴인데, 한국에도 잘 알려진 슈바인학센이 돼지 무릎 부위를 쓰는 바이에른 음식이라면 쇼우팔레는 학센과 조리법이 거의 똑같지만 돼지 어깨 부위를 쓰는 프랑켄 음식이다. 중요한 건 이거다. 조리법이 똑같다. 그러니 사실 맛도 똑같다. 단지 겉보기가 조금 다르고 메뉴명이 다르고 Frankonian 타이틀이 붙어있을 뿐이다. 물론 지역 향토 음식에 도전하면서 내가 기대했던 만큼 색다르지 않다고 실망할 순 없다. 어쨌든 먹어본 것에 의의가 있다. 문제는 내가 독일에서 9일을, 그것도 바이에른 주에만 일주일을 머물렀다는 것이다.
뉘른베르크는 소시지가 유명하다. 이 레스토랑의 대표 메뉴도 소시지고, 우리나라가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팔듯이 이 동네는 밤에 야시장을 나가면 포장마차에서 소시지를 판다. 그렇지만 소시지라고 제가 안 먹어봤겠습니까? 맛있어요, 맛있는데⋯. 쇼우팔레를 시켜도 옆에 나오는 건 크뇌델(Knödel)과 자우어크라우트고 소시지를 시켜도 자우어크라우트가 나오고 고기가 질려서 생선 메뉴를 시키면 생선과 크뇌델과 자우어크라우트가 나온다. 이게 맞아? 내가 뭔가 잘못된 주문을 하고 있는 것인가? 뮌헨에 가도 이 현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사랑하는 마차살의 바이에른인들은 정말 매 끼니를 이렇게 먹고 있는 것인가? 매일매일 고기와 크뇌델과 자우어크라우트를? 심지어 독일은 빵도 맛이 없다. 호텔 조식 뷔페에서 새 빵에 도전할 때마다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딱딱하고 맛없다. 이다음날 뉘른베르크 중앙역 상가에서 용기내어 프레첼도 한번 사먹었는데 눈물이 날 거 같았다. 짜고 딱딱하고 맛없다. 심지어 그 짜고 딱딱한 빵 사이에 똑같이 짠 소시지를 끼워서 판다. 나중엔 식당가를 한번 돌아다니기만 해도 혀에서 짠맛이 느껴져서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쓰다 보니 또 말이 길어졌다. 다시 독일에 갈 일이 있다면 로컬 체험을 위한 객기따위 부리지 않고 되너 케밥과 아시안 식당과 비건 푸드를 많이 찾아먹을 것이다. 뉘른베르크 소시지는 맛있긴 했다만.
3. Fembo-Haus 시립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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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dtmuseum im Fembo-Haus. 박물관 사진을 열심히 찍은들 한국 돌아가서 다시 보진 않을 거 같아서 많이는 안 남겼는데, 건물 외관으로 짐작했던 것보다는 훨씬 알차고 볼 게 많았다. 휘휘 둘러보고 나오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두 시간 넘게 걸렸다. 중세 시대에 큰 역할을 했던 도시답게 갑옷의 변천사도 볼 수 있고 (입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면.. 너무 미친 사람 같을까요..) 지금까지도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수공예품 역시 종류별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사진은 jingle bell makers 라는 설명을 보고 신기해서 찍었다. 일단 저 물건의 지칭 명사가 jingle bell 일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해보지 않았고 그걸 제작하는 사람의 존재를 생각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아까 기차 안에서 내가 바이에른에 가고 있다고 설레어 한 게 약간 미안하게 느껴졌다. 이곳은 중세 시대까지만 해도 신성 로마 제국에서 자치권을 보장받는 free imperial city 였고 시민들 역시 그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다는 흔적이 박물관 곳곳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막판에 잘 안 풀려서 바이에른에 흡수되었을 뿐 이 지역 사람들은 뉘른베르크가 바이에른의 그저 그런 도시1로 취급되는 것에 격분하기도 했다는 설명을 보고 숙연해졌다. 아니 어쩐지 칼같이 Frankonian 이라고 써놓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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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위 그림은 King Gustavus Adolphus 가 1632년 뉘른베르크에 방문했을 때의 모습을 1884년에 Paul Ritter 라는 건축화가가 담은 건데, 박물관에 전시된 원본 밑에 ‘바이에른에 속한 도시로 여겨지는 것에 분개한 시민들이 옛 영광을 떠올렸던 증거로 보인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아니.. 그.. 죄송합니다..
3-1.
Wicklein - Die Lebküchnerei. 박물관 구경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회사 팀원들 줄 기념품으로 진저브레드를 샀다. 정식 명칭은 Lebkuchen, 레브쿠헨 또는 렙쿠헨으로 발음하는 거 같은데 13세기 프랑켄 지방의 수도사들이 처음 만들기 시작한 크리스마스 쿠키 어쩌구라는 설명을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니까 이름만 브레드고 사실은 쿠키다. 특히 뉘른베르크의 진저브레드가 유명해서 문화 유산으로 지정도 되어 있다고 한다. 내가 들른 곳은 아예 레브쿠헨을 만들기 시작한지 400년된 레브쿠헨 전문점이라고 써 있어서 그렇군⋯ 하고 한 박스를 사 왔다. 하나 먹어봤는데 맛은 괜찮았다. 입이 쩍 갈라질 정도의 단맛은 아니지만 다 먹고 나면 물이 땡기는 게 약간 슈톨렌 같은 느낌. 레브쿠헨만 들어 있는 기본 패키지는 물론이요 어린이에게 선물하기 좋게 오르골이나 퍼즐이 함께 포장된 패키지도 있어서 가게는 인산인해였다. 레브쿠헨 외에 다른 쿠키 세트도 이것저것 있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낱개 포장으로도 팔기 때문에 하나 사서 맛만 볼 수도 있다. 그치만 그 동네에 기념품으로 살 만한 거 정말 없기 때문에 뭔가 구매가 필요하다면 레브쿠헨 사는 게⋯.
4. 성 로렌츠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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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에서 가볼 만한 종교적 건축물은 성 제발트 교회와 성 로렌츠 교회 두 군데. 시가지 자체가 별로 넓지 않기 때문에 성 로렌츠 교회 앞은 앞으로도 계~속 오게 된다. 시가지 통과하는 버스를 타도 Lorenzkirche 앞에서 내리고 지하철을 타도 Lorenzkirche 역에서 내린다. 물론 볼 때마다 반갑다. 무료입장 되고 얼마든지 머물러도 되는 건축물은 이 추위에 안 반가울 수가 없지⋯ 하루만 더 머물렀으면 아마 하나님 믿었을걸?
5. 게르만 국립박물관
박물관도 다녀왔고 교회도 다녀왔는데 하루를 마무리하기엔 뭔가 부족해서 그 자리에서 검색해 새로운 박물관을 갔다. 박물관 직원 분은 내게 아주 친절하게 알려줬다. 우리 한 시간 뒤에 문 닫는데 정말 괜찮겠어? 여기 볼 거 정말 많아. 너 절대 한 시간 안에 다 못 볼 건데 그래도 괜찮겠어? 하지만 난 괜찮다고 말했고 한 시간동안 미친 속도로 박물관을 돌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카페를 갈 걸 그랬다. 국립박물관이 별로였어서가 아니다. 박물관은 정말, 정말 넓었고 정말 볼 게 많았고 직원 말대로 한 시간으론 어림도 없었다. 하루종일 게르만 국립박물관만 돌아도 컨텐츠가 될 거 같았다. 다만 그만큼 입장료도 비쌌고, 시립 박물관처럼 특정 테마를 다루는 게 아니라 모~든 시대의 모~든 것을 모아놓은 방대한 규모의 박물관이어서, 이렇게 즉석으로 결정해서 올 건 아니었다는 생각이 떠나진 않았다. 내 생각엔 이날 날씨가 너무 추워서 제정신 붙잡는데 실패했던 거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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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것 1. 정말 많은 십자고상을 보았다. 너무 많은 십자고상이 박물관에 시대별 트렌드별로 빼곡하게 걸려 있어서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심지어 전시 설명엔 당연히 독일어와 영어만 병기되어 있어서 영어 설명에 써 있는 crucifix 를 검색해 보고서야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형상을 ‘십자고상’이라고 부른다는, 한국어로도 상당히 낯선 단어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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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것 2. 이동권 보장이 잘 된 걸 넘어 안내 문구가 이렇게나 친절하다니. 박물관의 전시품 못지 않게 이 팻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여기는 박물관 건물도 멋지다. 사진에 잘 담기진 않았지만.. 굳이 내부로 들어가지 않아도 박물관 외관 구경만으로도 재밌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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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건 고기와 빵과 빵에 끼운 고기 빵에 안 끼운 고기 구경에 질린 나머지 중앙역 상가에서 사온 콜드랩과 야채주스..
사진에서도 느껴지는 급속도로 지쳐버린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