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2일차 - 하이델베르크 당일치기
0.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구경
이번 여행의 궁극적 목적은 마차살에 나왔던 독일 스팟들 둘러보기이기 때문에 프랑크푸르트에선 사실 별다른 계획이 없었다. 다만 비행기 내리자마자 뉘른베르크로 이동하기보단 하루 쉬어가는 게 좋겠다 생각했고, 마침 프랑크푸르트에서 하이델베르크가 당일치기로 들르기 나쁘지 않다는 정보를 얻어 DB 앱에서 미리 기차편을 찾아뒀었다. 올때 갈때 모두 regional train 만 탔기 때문에 도이칠란드 티켓으로 커버되는 범위이기도 했고.
기차 타기 전엔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서점 구경을 했다. 어젯밤엔 바로 숙소 체크인하느라 제대로 못 봤는데 서점 규모가 생각보다 크다. 이거 내가 환상을 갖고 보는 건지 실제로 독일 사람들의 독서량이 한국보다 훨 높은 건지 모르겠다. 잡지와 종이신문도 종류별로 꽂혀 있다.
1. 하이델베르크 사전조사
사실 이걸 사전조사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다. 전날 밤에 리디에서 전자책 결제해서 다운받은 다음 프랑크푸르트에서 하이델베르크 이동하는 기차 안에서 다 읽었다. 살림지식총서 시리즈 중 한 권이고, 이 시리즈를 아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모든 책이 문고본 판형으로 굉장히 얇게 나오는데 두께에 비해 내용은 제법 알차다.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와 더불어 특정 주제에 대해서 개요만 훑고 싶을 때 참고하기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인터넷 창에 하이델베르크를 검색하는 것만으로는 마주치기 어려운 정보를 많이 알 수 있는데, 예를 들면
하이델베르크는 ‘Heidel(하이델)’과 ‘Berg(베르크)’라는 두 단어로 이루어진 합성어이다. ‘베르크’는 ‘산’이라는 뜻으로서 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오토 1세의 아들 루트비히 켈하이머(1174~1231)는 슈타우펜 가에 충성을 맹세하고 라인 지역의 팔쯔 백작령을 추가로 봉토로 받게 되었다. 이리하여 비텔스바흐 가문은 바이에른과 팔쯔를 모두 통치하였다.
- 베르크(berg)는 산이라는 뜻이다. 기초 독일어를 3강까지 듣고 왔지만 나는 몰랐다. 갑자기 뉘른베르크와 밤베르크가 굉장히 정겹게 느껴지는 정보다. 동양인 귀에나 그럴 듯하게 들리지 다 산동네라는 뜻이었던 것.
- 12~13세기엔 하이델베르크도 비텔스바흐 통치령이었다. 이게 왜 중요한 정보냐구요? 마차살의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가 비텔스바흐 가문의 바이에른 왕세자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웹소설을 좋아했을 뿐인데 멀리멀리 탐색한 끝에 하이델베르크의 12세기 역사까지 맞닥뜨리고 있으니 신기하지 않을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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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1855~1977)은 1911~1917년 사이에 하이델베르크에 살았다. 이 시기에 『유토피아의 정신 Geist der Utopie』을 썼다. 루카치를 설득하여 하이델베르크로 오도록 한 것도 그였다.
이건 하이델베르크와 크게 관련은 없지만 올해 독서에서 두 번이나 만났던 에른스트 블로흐의 이름을 세 번째 마주쳐서 반가운 마음에 메모. 이 정도 만났으면 운명이라 블로흐도 한 번 읽어보려고 알라딘에 이름을 검색했지만 국내에 나와 있는 책이 거의 없었다. 이것 참.
2. 기차 탑승 후기
여행 오기 전에 유튜브에서 독일 브이로그 영상을 몇 개 찾아봤더니 숏츠 탭에서도 한동안 독일 관련 밈이 나왔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독일은 기차가 제 시간에 오지 않는다는 거였다. 뭐 어느 정도길래 밈까지 있나 살짝 걱정했었는데 웬걸. 독일 DB 기차 앱은 세상 친절했다. 내가 타고 싶은 열차의 일정을 북마크해 둘 수 있는데 북마크를 걸어두면 출발 15분 전과 도착 15분 전에 각각 한 번씩 앱 푸시를 쏴 준다. 기차가 지연되면 지연 시간 정보를 포함해서, 플랫폼이 변경되면 그 정보도 포함해서 앱 푸시가 또 온다. 아니 이렇게 친절하게 알려주는데 지연 몇 분 되는 게 뭐가 문제람. 나중에 포르투갈 여행기 쓸 때 더 상세하게 쓰겠지만 제 시간에 뭐가 안 오기론 포르투갈 쪽이 아득하게 한 수 위였다. 내 생각엔 독일 사람들이 자국에 대한 기준이 높은 거다. ‘우린 이 정도 선진국인데’ 라는 베이스가 깔려 있는 상태에서 사고를 하는 게 틀림없다. 이자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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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안에서 트위터를 하는데 트위터에 GDPR 어떻게 적용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서 너무 신기했다. 유저가 직접 sensitive content 로 지정해서 올린 사진이 아니어도 아동 유해로 적용된 것들이 있던데 정확한 기준은 모르겠다. 대뜸 트친한테 가서 ‘저 지금 독일인데 선생님이 올린 사진이 독일에서 아동 유해로 뜨는데 이거 무슨 사진인지 알려주시면 안 돼요? 제가 보려면 나이 인증 해야 되는데 귀찮아요’ 할 수는 없으니까⋯. 참고로 나이 인증은 어떻게 시키나 봤는데 신분증과 셀카를 요구하더라. 독한 것들. 역시 독일이다. GDPR 적용 국가 중에서도 가장 규정이 빡세서 실무자를 귀찮게 하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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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안에서 지도를 보는 내내 너무 신기했다. 내가 다름슈타트를 지났다니. Diet of Worms 의 보름스가 바로 옆이라니. 나는 독일에서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 많다…
3.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학생식당.
도착하자마자 밥부터 먹으러 갔다. 역시 남의 대학교 학식이 제일 맛있다. 원하는 음식 이것저것 담으면 무게만큼 값을 치르는 방식이고 현금 계산만 가능하다. 외부인은 학생 요금 두 배를 내고 먹어야 하지만 단언컨대 독일에서 먹은 것 중 손꼽게 맛있었다. 일단 야채를 양껏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 얼마나 좋은 곳인지.
학생식당인 만큼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자리를 잡기가 꽤 어렵고 사진 찍기도 거의 불가능하다. 어떻게 찍어도 사람밖에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옆에 유인물 펴놓고 밥 먹으면서 공부하는 학생들 구경이 을마나 재밌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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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엔 학생식당만 있는 게 아니라 학생감옥도(!) 있다. 말썽 부리는 학생을 가둬두는데 사용됐던 곳이라는데, 사실 지금은 별 거 없고 ‘과거에 그런 게 있었다’ 정도의 흔적만 남아 있다. 그래서 보고도 별다른 감상은 없었다. 무엇보다,
당시에 왜 대학생 감옥이 필요했는가 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당시 대학생 입학 연령이 13세 내지 14세로 낮았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을 보고 나니 학생감옥에 대한 할말이 없어졌다. 우린 그걸 대학생이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어요⋯.
4. 하이델베르크 성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성까지는 걸어갈 수 있다. 무슨 티켓을 끊으면 케이블카 비슷한 거 타고 한번에 올라갈 수 있다고는 하던데 귀찮아서 알아보진 않았다. 근데 가는 길이 좀 가파르긴 하더라 ㅎㅎ 급할 건 없으니 천천히 구경하면서 올라갔다. 가이드 투어는 패스하고 티켓만 끊어서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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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내부에 독일 약학 박물관이라는 게 있다. 전날 밤 벼락치기로 찾아본 하이델베르크 관련 정보 중에 가장 나의 흥미를 끌었던 것인데 (철학자의 길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고 실제로도 다녀오지 않았다) DnD 플레이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 이런 중세 및 근세 의학 컨텐츠는 재밌게 써먹을 곳이 많기 때문이다. 어차피 판타지 중세 세계관이긴 하지만 진짜 중세가 어땠는지를 알고 판타지 중세를 만드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엔 차이가 있으니까. 그리고 다 떠나서 그냥 재밌잖아⋯. 그래서 성 도착하자마자 여길 제일 먼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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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의 약품, 약장, 진열장 등이 보존되어 있다. 몇몇 허브 정도는 직접 만져볼 수 있도록 내부 체험존도 있다. 하지만 저는 저 아스피린이 갖고 싶은데 저것도 판매하시면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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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도 옛날엔 비텔스바흐 통치령이었다는 사실과, 『마차살』에 등장하는 비텔스바흐 가문이 약학 마법에 특화되어 있다는 설정을 떠올리면 하이델베르크의 약학 얘기를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실제로 영어 설명문 곳곳에서 Wittelsbach 를 만날 수 있다. 약국을 가리키는 표준이 생기기 전까진 저마다 짓고 싶은 대로 - 지역명이나 신화의 아이콘, 동물 이름 등으로 - 약국 이름을 지었고 특히 프로이센 영향이 강한 곳에선 독수리, 비텔스바흐 영향이 강한 곳에선 사자를 약국명으로 많이 썼다는 설명을 보고선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사자약국이라니 귀엽다⋯.
Box for collecting plants 가 따로 있다니 이것도 정말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 수많은 판타지 작품에 등장하는 ‘약초꾼’은 정말로 존재했던 직업인 거야. 등에 저 가방 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풀 줍는 캐릭터를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꼭 DnD 할 때 써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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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품 샵에서 산 물건들. Notfallschokolade 가 뭔가 해서 찾아보니 emergency chocolate 이라는 뜻이었다. 정말 웃기다고 생각했다. emergency chocolate 을 뜻하는 단어가 왜 있는 거지⋯. 하지만 실제로 emergency 에 잘 쓰긴 했다. 배가 고파서 참을 수 없었다. 그 외에도 빨간 액체가 들어 있는 주사기 모양 볼펜을 같이 샀는데, 뭐만 하면 피 뽑고 피 주입해서 사람 치료하는데 쓰는 웹소설을 보고 있는지라 이 웃긴 물건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약학 박물관 컨셉에 맞는 기념품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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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성에는 유명한 술통이 있다. 절대 사진 한 장으로 다 전달할 수 없는 크기로, 보고 나면 ‘우와 정말 크다’가 아니라 ‘대체 이걸 무슨 정신으로 만드셨나요?’ 하는 감상이 먼저 떠오를 정도다. 술통과 그 역사에 대해선 앞에서 읽은 책에서도 언급을 하는데,
큰 술통 맞은편 오른쪽에는 조그마한 페르케오(Perkeo) 조각상이 있다. 페르케오는 하이델베르크 성에 있는 선제후 칼 필립의 시대에 살았다고 하는 술이 아주 강한 궁중의 익살꾼이었다. “한 잔 더 하실래요?”라는 질문에 그는 항상 “Perche no?”라고 이태리 말로 대답했다고 한다. 이것을 우리말로 옮기면 “왜 아니겠어요?” 혹은 “물론이지요”라는 뜻이다.
『하이델베르크 청춘의 샘물이여』라는 민요에도 페르케오가 언급된다. 전설에 의하면 페르케오의 사망원인이 와인을 마시는 대신에 물을 한 잔 마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술꾼 캐릭터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 아저씨 조각상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혼자 한참 웃다가 손 흔들어 주고 나왔다. Perche no? 와인 대신 물을 잘못 마셔서 돌아가시다니 잊지 않고 꼭 반면교사로 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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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성 전망과 귀여운 해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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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하이델베르크 성 자체보다는 정원이 진짜 멋졌다. 예전에는 팔쯔 정원(Hortus Palatus), 오늘날엔 고성 정원(Schlossgarten)으로 불린다는 곳인데 바람 불면서 은행잎 쏟아내리는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강아지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최고 부러웠다. 이건 사실 독일 다니는 내내 들었던 감상이다. 무슨 성 내부 입장하겠다고 관광객들 아등바등거리고 있을 때 성 외곽으로 유유히 조깅하는 사람들이 제일 멋있었다. 나도.. 나도 다음엔 운동복 챙겨올 거야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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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지 잘 모르는 시인이자 소설가의 비석도 찍어봤다. 양지바른 곳에 계시더라구요. 그리고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다시 시가지로 내려오는 계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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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열심히 돌아다니는데 아랍st 쌍둥이 형제가 나한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ughh⋯ you guys picked a wrong photographer.
5. 카를 테오도르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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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구글맵엔 그냥 ‘구 다리’라고 써 있다. 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관광 명소고, 마침 하이델베르크 역으로 돌아갈 때 찍고 갈 수 있을 거 같아서 끼워넣었는데,
하이델베르크 시민들은 선제후 칼 테오도르가 이 다리를 건축해준 것에 감사하여 그 다리 위에 칼 테오도르 동상을 세웠다.(1788) 동상을 세운 진짜 목적은 칼 테오도르가 선제후궁을 다시 하이델베르크로 옮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설명을 읽고 나면 고즈넉한 풍경에 취했다가도 정신이 드는 것이다. “아 우리가 니 동상까지 세워주는데 복귀 안할 거냐? 안할 거냐고~~ 여기 지금 상권 다 죽은 거 안 보이냐고~~”
6. 다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근처에 되너 케밥집이 정말 많다. 프랑크푸르트와 하이델베르크를 기준으로, 주변에 음식점을 검색하면 나오는 건 온통 아시안 푸드와 사라바나 바반과 되너 케밥집이다. 물론 한국에 돌아온 지금은 그 케밥이라도 많이 먹을 걸 그랬다고 살짝 후회 중이다. 하여간 추억이 미화되는 속도는 빠르고 그리움은 오래 간다.
그러나 이날 저녁은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아시안 푸드 먹었다. 코코넛 커리 저 자식이 날 먼저 냄새로 유혹했어요.
7. 틈틈이 독서 기록
혼자 다니는 여행이라 책을 읽지 않으면 남는 시간에 정말 할 게 없었다.
플로티노스에게 <일자>는 무언가 우주적으로 객관적인 것이었고, 거기서 지성을 통해 흘러나오는 영혼만이 정신적이었다. 반면에 쿠자누스의 <일자>는 영적인 추구의 목표로서 모든 개인 속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내재하는 것이었다. 륄과 마찬가지로 그는 이 인식 과정을 인간 스스로를 신격화하는 기회로 이용했다. 무한함과 절대적인 것이 우 c jt리 자신 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외부 세계의 일부가 아니라 우리의 내밀한 내면세계에 있다.일자>일자>
망자의 바람에 따라 심장은 고향으로 보내져 쿠에스에 묻혔다고 하니 말이다. 그게 맞다면 참으로 함축적인 의사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이탈리아 땅은 그에게 영원히 이질적인 곳으로 느껴졌다는 뜻일 테니까.
중세철학을 초고속으로 스킵하고 쿠자누스로 넘어왔다. 결국 『마차살』을 제대로 읽기 위한 철학사 탐방이니 모든 페이지를 같은 무게로 읽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쿠자누스는 『마차살』에서 칸케르라는 인물의 베이스가 되는 철학자인데, 칸트 이후의 철학자만 더듬더듬 아는 나 같은 사람들에겐 생소한 이름이지만 그의 시대(근세)에선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납작하게 설명하자면 그는 신을 우주적이고 외부적인 존재로 두는 대신 ‘인간은 신성을 타고났고 신적인 것은 밖에서 찾을 필요 없이 이미 우리 자신 속에 있다’는 주장을 했다. 이는 역사적으로 전자보다는 진보한 주장인데, 신적인 것이 밖에 있지 않다고 하면 교회를 가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관념이 흔들리고 이게 곧 교회 권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다만 『마차살』의 칸케르는 이 철학을 어떻게 쓰냐면,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웬 사이비 종교 집단의 메시아로 추앙받고 있는 주인공이 자기는 그딴 거 아니고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고 주장하자 ‘사람은 원래 신성을 타고났다. 너는 아직 네 안의 신성을 깨닫지 못했을 뿐 메시아가 맞다’고 반박하는 데 쓴다. 아 너무 머리가 아파요⋯.
작중 칸케르와 또다른 등장인물 나르케의 관계는 아직 단서만 있고 밝혀진 게 없지만(780화 기준) 쿠자누스가 이탈리아를 평생 이질적인 곳으로 느꼈다는 이런 설명 왠지 열성 독자의 마음을 충족시킨다. 쿠자누스도 평생 교회 고위직으로 살았던데⋯.
그는 통치 행위를 순수하게 수단의 측면에서만 관찰했다. 새로운 접근법이었다. 그는 냉철한 율리오 2세와 노회하기 짝이 없는 체사레 보르자를 현실 정치의 인상적인 표본으로 생각했다. 물론 그렇다고 두 사람을 이상으로까지 삼지는 않았지만, 그들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낸 건 사실이다. 이 권력의 곡예사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항상 적들에게서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자기 시대에서 길을 찾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어떤 근본을 찾아 나서는데, 그것이 지나쳐 근본주의에 빠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와 관련해서 사람들이 가장 자주 찾는 도피처는 종교나 민족주의다. 그런 면에서는 500년 전도 오늘날과 상황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온다.
마키아밸리에 대한 설명. “어떤 상황에서도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항상 적들에게서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는 것” 이것도 참 차살 화자에게 걸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작중에서도 마키아밸리의 『군주론』 언급이 있다. 물론 차살 화자는 게임과 승부를 좋아하는 것이지 스스로 권력을 추구한다고 서술하지는 않지만, 승부사 기질이란 본질적으로 권력자 기질과 같은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기다 보면⋯ 권력자가 되겠죠? 너는 타고나길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본투비 아이콘.
그리고 자기 시대에서 길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 근본주의, 종교나 민족주의로 빠지는 경향이 있다는 건 2025년의 대한민국에도 『마차살』의 19세기에도 똑같이 통하는 말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