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결함에는 이름이 없다
며칠 전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옛날에 같은 아파트 살았던 부부동반 계모임인지를 나왔는데 다들 나이가 나이인지라 자식들 연애하는 얘기 결혼하는 얘기뿐이라며, 이 인간들은 왜 대화 주제가 거기서 벗어나질 않느냐는 토로와 너는 왜 그런 쪽으로는 아예 소식이 없냐는 염려가 묘하게 섞인 내용이었다. 나는 내게 이 얘기를 하는 사람이 엄마라는 게 놀라웠다. 우리 집에서 대체로 결혼 잔소리를 하는 건 아빠였고 엄마는 저 누리고 싶은 자유를 다 누리고 사는 딸을 응원해주는 입장이었던데다, 엄마 스스로도 겸연쩍게 인정했다시피 그녀는 행복한 결혼 생활이 어떤 것인지 내게 보여준 적이 그다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의 전화를 받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듣기 싫다거나 난감하다거나 하는 감정도 아니고. 엄마 무성애가 뭔지 알아? 같은 비현실적인 질문도 아니고. 나는 몇 주째 설거지를 미루다 오늘에야 발견한 설거지 대야에 생겨 있던 가느다란 거미줄을 떠올렸다.
설거지는 하는데 10분도 안 걸린다. 빨래는 버튼만 누르면 세탁기가 알아서 돌린다. 청소도 간단하게 하면 10분 내외로 할 수 있다. 한데 나는 왜 그 과정이 남들보다 조금 더 어렵게 느껴질까. 그렇다고 나한테 ADHD나 우울증, 조울증, 양극성 장애와 같은 뚜렷한 병명이 있는 건 아니다. 내가 갖고 있는 건 적응장애라는 타이틀인데 상담 선생님은 이걸 등교거부증이라고 설명해 줬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은 처음에는 학교 가는 걸 거부할 수 있다. 그러나 거부하고 울먹이는 기간은 통상 2주 내로 끝난다. 그 기간이 6개월 이상 지속되면 ‘등교거부증’으로 분류하고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로 간주한다. 요컨대 적응장애란 ‘남들도 힘들다고 느끼긴 하지만 그 정도로 힘겨워하지는 않는 스트레스 상황에 좀 더 크게 반응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렇게 애매모호할 수가.
나는 일 년 정도 상담을 받고 이제 일상생활이 가능한 선까진 회복돼서 일차 종료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건 이 힘듦의 어느 부분은 미처 해결하지 못했던 나의 어린 시절, 학창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기인하지만 나머지는 그냥 타고난 기질이라는 거다. 나는 남들보다 좀 더 우울하고 좀 더 쉽게 무기력해진다. 남들은 나보다 좀 더 쉽게 결정을 내리고 다음 스텝으로 넘어간다. 성격 차이라는 말은 때로 참 공허하다. ‘저는 학교에 잘 못 오는 성격이에요’라고 말해서 뭘 어쩐단 말인가? 어쨌든 어린이는 학교에 와야 한다. 성격 차이라는 말은 등교거부증을 겪는 어린이의 고통을 설명하지도 못하고, 그 어린이를 어떻게든 학교 시스템에 편입시켜야 하는 어른에게도 별로 좋은 가이드가 되지 못한다. 지금의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내가 겪는 이 결핍, 무능력, 결함은 어디 가서 내밀 만한 것이 못 된다. 왜냐면 나는 약물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중증이 아닐 뿐더러 여기에 굳이 적응장애라는 정신병리학적 이름을 붙여서 - 사회에서 정신적 고통의 근거로 거의 유일하게 인정받는 ‘의학’의 권위를 빌려서 - 이것이 내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호소하고 나를 고통에 앓는 사람으로 셀프 홍보함으로써 문제를 타개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 길의 미래를 나는 이미 안다. 누가누가 더 많이 고통받는 사람인지 가리기 위해 SNS에 모여 고통듀스 101을 하고 있겠지. 퀴어의 문제를 얘기할 때 나는 무성애 스펙트럼에 발 걸친 사람으로서 무성애가 뭔지 계속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성애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또는 무성애의 이름을 오용하는 사람들에게 계속계속 얘기하다 보면 인식이 넓어지고 가시화가 된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설명해서 납득시키기란 쉽지 않다. 그건 꼭 논리력의 문제만은 아니다. 내가 납득시켜야 하는 사람은 너무 많은데 이 오해는 나에게만 중요한 것이고 그들에겐 중요한 것이 아니므로 그들은 내 설명을 듣고 금세 잊는다. 듣고 또 잊는다. 오해는 내게만 치명적이고 설명은 언제나 나의 몫이다 나는 늘 내 고통을 설명해야 한다. 심지어 그들이 알아야만 하는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 그중에 내 것은 아마도 후순위다. 세상엔 진짜로 심각하게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많다.
내 순서는 오지 않을 것이다. 내 순서가 언젠간 와야 한다고 믿느냐? 솔직히 그것도 잘 모르겠다.
‘저는 고통스럽습니다 이런 저를 봐주세요’ 화법이 진절머리가 난다. 나는 그냥 좀 무기력할 뿐이다. PMS 기간이 겹치면 더 극심하게 무기력해진다. 무기력할 땐 하루종일 잠을 잔다. 밥도 안 먹고 물도 안 마시고 겨울잠 자는 동물처럼 종일 처박혀 잔다. 배고프면 배달 음식 시켜먹는다. 그렇게 집에 내리 3일쯤 있으면 괜찮아진다. 이때의 나는 그 어떤 친애하는 사람이 나를 걱정하고 챙겨주려 해도 소용이 없다. 어떤 감정도 들지 않는다. 냉정해져서 그렇게 되는 게 아니다. 내 생명을 유지하는 거 외에 다른 어떤 곳에도 신경을 기울일 힘이 남아 있지 않다. 누가 나를 발로 차고 뚜드려 패도 가만히 있을 거 같다 반항하는 것도 너무 귀찮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건 어릴 적 겪었던 어떤 폭력의 흔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순간 스치지만 원래 정신병이나 퀴어라는 게 그렇다. 진실로 선천적으로 타고난 건지 어떤 경험으로 인해 생긴 기질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현재 내가 이러한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이 모든 무기력을 ‘귀찮다’는 말로 표현하는데 이는 남들이 사용하는 ‘귀찮다’와 의미가 같지 않으므로 사람들은 종종 내 말에 어리둥절해 한다. 하지만 이걸 ‘고통스럽다’로 표현했다간 고통의 원인과 내가 나를 고통스럽다고 여기는 근거를 물어보는 사람이 산더미처럼 나올 테니 앞으로도 계속 귀찮다고 말할 것이다.
내 마지막 연애에서 나는 남자친구가 너 오늘 너무 이상하다고 넋이 나간 사람 같다고, 무서우니까 제발 오늘은 같이 있자고 다른 거 안하겠다고 무릎 꿇고 비는데도 나 자신의 무기력에 압도당해 대답조차 않고 문을 닫고 나온 적도 있었다. 지금의 나라고 그때와 다른 사람인가 하면 아마 그렇지 않다.
상담이 일차 종료에서 끝난 건 그 때문이다. 타인과 아주 친밀한 관계가 생기면 2차 상담 받으러 다시 오라고 하셨는데 그게 벌써 4년 전이다. 나이 서른 먹고 섹스에 대해 또 지난한 대화를 해야 할 가능성, 내가 상처 받고 서로가 상처 받을 가능성이 겁나는 게 아니고, 설명이 많이 필요한 취향을 드러내기가 겁나는 게 아니고, 나의 비인간성을 확인하게 될 결말이 겁난다. 사랑하는 사람이고 나발이고 이제 그만 기절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될 나. 지금 당장 얘를 떼어놓고 혼자가 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뭐든 할 수 있을 잔인한 내가 벌써 눈에 선하다. 이 중 어디까지가 나의 타고난 성질머리고 어디부터가 병명으로 설명 가능한 영역인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런 스트레스 상황에 - 남들은 그게 왜 스트레스 상황인지 꾸준히 내게 ‘설명’을 요구할 바로 그 순간에 - 내가 느끼는 감정은 공포라는 거다. 나는 누가 나한테 같이 노래방을 가자고만 해도 턱 끝까지 물이 차올랐다. 노래방을 왜 싫어하느냐는 질문을 들으면 좀 울고 싶었다. 병명을 주렁주렁 달고 사는 친구들이 몹시도 그리웠다.
그래도 다행히 거미줄에 벌레는 붙어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