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우주의 꿈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이후 지난 2-3년간 많은 사람들이 트위터를 떠났다. 차세대 트위터는 어디가 될 것인가는 그때부터 뜨거운 감자였다. 현재까지는 Threads/Bluesky/Mastodon이 그래도 유력 후보인데 아직은 이 중 어디도 압도적이진 않다. 일론 머스크가 새 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이젠 정말로 여길 떠날 때라고, ‘그래서 다음 집은 어디랬지?’를 다들 수군거리지만 나를 팔로우하고 내가 팔로우하는 모든 사람이 한날한시에 한곳으로 옮겨가면 모를까 오랜 시간 써 왔던 SNS를 떠나기란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플랫폼을 옮긴들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그러다 보니 ‘내가 여기 원주민이고 일론 머스크 쟤가 나중에 들어온 사람인데 왜 내가 나가야 해’ 하는 반감도 종종 터져 나온다.
이런 문제는 트위터에서만 터져 나오는 게 아니다. 불과 몇 달 전 포스타입에도 비슷한 흐름이 있었다. 포스타입은 2025년 현재를 기준으로 국내에서 2차 창작물이 가장 활발하게 올라오는 플랫폼인데, 얼마 전 검색을 통한 포스트 판매에 30%의 발견 수수료를 매기겠다는 정책이 발표되며 많은 사람들이 포스타입을 ‘접겠다’고 선언했다. 이후로 유저층이 얼마나 빠져나갔는지 구체적인 수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타이피나 알라딘에서 운영하는 투비컨티뉴드 같은 대체 서비스에 새 계정을 생성한 사람은 심심찮게 볼 수 있었고, 포스타입에서도 해당 공지를 여러 번 수정하는 등 유저들의 반응을 신경 쓰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었다.
나는 사람들이 포스타입에 실망했다, 유저 귀한 줄 모른다, 우린 서비스를 옮기면 그만이다 등의 주장을 할 때 조금 지친다고 생각했다. 옮기면 그만이라니. 언제까지? 이건 마치 전세 계약 만료될 때마다 이사 걱정을 해야 하는 세입자가 아닌가⋯. 그럼 내 집 마련은 대체 언제 할 수 있는 걸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플랫폼이 재정난으로 서비스를 종료한 경우, 플랫폼의 개정된 약관에 내가 동의할 수 없는 경우, 너무 많은 걸 기억하는 플랫폼으로부터 그만 잊혀지고 싶은 경우 - 나는 수많은 내 또래가 싸이월드에서 이 감정을 느꼈으리라고 생각한다 - 등 정말 다양한 순간이 이미 있어 왔는데 우리는 왜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또 다시 플랫폼-부동산에서 새 집을 물색하고 있는지.
이 고민을 지난 일 년간 하며 내가 관심 가졌던 키워드는 두 가지다. 하나는 Small Web. 테크 업계에서는 Small Web이라고 부르지만 예술 쪽에서는 핸드메이드 웹이라고 부른다는 말을 트위터에서 봤는데 아무튼 결은 같다. 우리 모두 기업 자본에 기반한 서비스에 기대지 말고 자기만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연결되자는 것이다. 내가 요즘 만들고 있는 개인 블로그도 연결점을 찾자면 Small Web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원래도 코드 짜는 게 직업이었는지라 웹페이지를 만드는 자체는 비교적 수월하게 했지만 그런 배경이 없었다면 아마 나루나 Mataroa Blog나 Bear Blog 같은 미니 플랫폼에서 시작한 다음, 거기서 조금씩 외부 의존도를 낮춰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두 번째 키워드가 오늘의 주제인데, 바로 Fediverse, 공식 한글명으로는 ‘연합우주’다.
Fediverse?
The Verge의 설명에 따르면 Fediverse란 Interconnected social platform ecosystem based on protocol called AcitivityPub
, 번역하자면 ActivityPub 이라는 프로토콜을 통해 상호 연결된 SNS 플랫폼의 연합
이다. 이 설명만 봐선 뭐가 어쨌다는 건지 좀 알 수 없는데, 간단히 말해 Fediverse를 통해 사람들이 꿈꾸는 건 이런 것이다. 내가 인스타그램을 쓸 때 내 인스타 피드에서 친구의 트위터 게시글을 볼 수 있고 상호작용도 할 수 있는 것. 타 플랫폼에서 나를 팔로우할 수도 있고 나 또한 마찬가지이며, 내가 인스타그램을 탈퇴하고 타 플랫폼으로 옮겨가고 싶을 때 내 게시글과 팔로워를 모두 그대로 데려갈 수 있는 것. RSS 피드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RSS 피드처럼 동작하는 SNS 세계를 상상하면 된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싶지만 Fediverse는 이론적인 개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현재도 일부 구축되어 있는 생태계다. 대표 주자로는 Threads와 Mastodon, 그리고 Misky를 비롯한 수많은 소규모 SNS 플랫폼이 이미 그 안에 자리를 잡고 있다. 나도 Fediverse에 처음 발을 들인 건 Hackers’ Pub이라는 개발자용 SNS를 통해서였고, 이후에 Mastodon에도 계정을 만들어 보긴 했지만 어딜 가나 큰 틀은 비슷하다. Fediverse에 속하는 SNS는 기본적으로 플랫폼 단위가 아니라 인스턴스 단위로 계정이 생성된다. 플랫폼이 모든 유저들의 계정 정보를 갖고 있고 모든 시스템을 통제할 수 있으며 신규 회원 가입이 완료되면 즉시 플랫폼이 제공한 하나의 타임라인에 진입할 수 있던 기존의 SNS와 달리, Fediverse는 타임라인이 인스턴스별로 나누어져 있고 플랫폼의 접근 권한은 다소 제한적이다.
이 인스턴스가 또 익숙치 않은 개념이라 많은 사람들에게 진입 장벽이 되는데 플랫폼 안에 조금 더 작은 단위의 마을이 있다고 생각하면 쉽다. 계정 생성은 일종의 전입 신고다. 우리가 전입 신고를 할 때 집 주소를 OO시라고만 말해선 아무것도 진행할 수 없고 OO시 OO군 무슨무슨 단지라고 반드시 써야 하는 것처럼, 내가 속해 있을 마을을 골라야 그 안에 전입 신고를 하듯이 계정을 생성할 수 있다. 이렇게 한번 계정을 만들면 기본적으로는 같은 마을에 속한 사람들의 글이 피드에 보인다. 이것을 ‘로컬 타임라인’이라고 부른다. 한편 Fediverse에 속해 있는 모든 마을의 글을 한번에 볼 수 있는 - 호기심에 눌러보면 온갖 외국 소식을 다 만나게 되는 - 공간이 있는데 여기를 Federated timeline, ‘연합 타임라인’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앞에서 설명했듯 Fediverse에서는 우리 마을은 물론 다른 마을의 사람도 얼마든지 팔로우하고 교류할 수 있는데, 이렇게 내가 팔로우한 사람의 게시글만 모아서 보여주는 곳을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로 ‘홈 타임라인’이라고 부른다.
가입하고 싶은 인스턴스가 없다면 내가 직접 만드는 것도 가능하고 - 과정이 쉽진 않지만 중요한 건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이다 - 속해 있던 인스턴스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계정 이전 기능을 쓸 수도 있기 때문에 기존의 시스템보다는 플랫폼 의존도가 훨씬 낮아진 셈이다. 물론 의존도가 낮다는 건, 바로 그 의존도를 통해 돈을 벌고자 하는 자본주의 플랫폼에는 좋은 소식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기존에 사용하던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이 ActivityPub을 구현해 Fediverse 안으로 들어와 줄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기성 플랫폼을 떠나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그대로다. 다만 거기서 나만의 무너지지 않는 작은 집 짓기
로 가닥을 잡은 게 Small Web이라면, 이사 비용을 낮추고 언제든 이사할 수 있는 시스템 만들기
로 가닥을 잡은 게 Fediverse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나도 아직 이런저런 인스턴스에 계정을 만들어 본 정도고 감상을 말할 수준이 아니지만, 이런 개념이 등장해서 이미 적용되고 있는 자체가 새롭게 느껴져서 글을 남겨 보았다. 실제로 얼마나 보편적으로 자리 잡을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지만⋯.
Reference
- 입문자를 위해 추천하는 Mastodon의 지역별 인스턴스 목록.
- 여러 SNS 플랫폼에 동시에 글을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 Typefully. Fediverse와는 무관하지만 내가 만약 SNS로 퍼스널 브랜딩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툴도 고려해 봤을 것이다. 어쨌든 여러 개에 발을 걸치고 쓰면 하나에 대한 의존도는 낮아지는 거 아닐까?
- Fediverse에 개발자로서 관심이 있다면, 한국 연합우주 개발자 모임이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굳이 집을 지어야 하는 것일까?
사실은 이 생각이 매번 듭니다. 그냥 SNS 자체를 접으면 되는 문제 아닌가? 꼭 이걸 이렇게 복잡한 형태로까지 해야겠어? 그리고 내면의 내가 시무룩하게 대답합니다. 이거 안하면 나 친구 없는 거 너도 알잖아⋯. 이젠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 자아와 함께 살아온 삶이 없이 산 삶보다 길고 저는 이것들 없이 사는 방법을 솔직히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SNS를 끊고 보다 더 건강한 삶으로 나아간 걸 압니다. 하지만 그게 모두에게 정답이 될 수는 없음을 저는 왜 자꾸 설득하고 싶어질까요? 어쨌든 세상엔 저 같은 사람도 있는 법입니다. 폭력적이고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 인터넷이 아니고선 한때 숨 쉴 구멍이 없었던 사람. 자기와 같은 관심사 같은 주제로 떠들어 줄 친구를 인터넷이 아니면 만나기 힘든 사람. 이유가 뭐든 외로움으로 말라 죽어가는 사람⋯. 저는 심지어 사람들이 디씨/일베 같은 혐오 커뮤니티를 욕할 때도 거기밖에 속해 있을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연민을 느낍니다. 소속감을 느끼고 싶은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미래로 나아가는 감각이 정말 희박해진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물론 그 정도로 혐오의 소굴 밑바닥까지 전락해 버린 건 그 사람들 책임이지만, 그들에게 가장 처음 가장 쉽게 주어진 선택지가 무엇이었는지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모든 사람이 매번 뇌에 힘 주고 최선의 결정만 내리면서 사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이런 문제에 여전히 천착해 있고, 이 말을 하지 않고선 해야 할 말을 다 하지 않았다고 느끼는 게 아직도 나를 결정짓는 요소란 걸 이 글을 쓰며 절실히 느껴서 마음이 다소 복잡했다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