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와 헤어질 결심
미루고 미루던 트위터 백업을 드디어 시작했다.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한지 어느덧 3년, 많은 사람들이 트위터를 떠나갔고 또 많은 사람들이 차마 떠나지 못했지만 나는 트위터를 계속 하느냐 마느냐와 별개로 모종의 정리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어디로 갈지 목적지를 정하려면 내가 현재 서 있는 곳을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한 법이다. 이 SNS가 나에게 대체 뭐였는지. 앞으로는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기록을 남기고 싶은지. 요즘은 그에 대해 단편적인 생각을 계속 한다.
남들은 특정 플랫폼에 종속되는 걸 나만큼 두려워하는 거 같지는 않다. 나는 내가 쓴 기록의 CRUD 권한이 완벽하게 내게 있지 않은 상황이 불편해서 견딜 수 없다. 직업 환경상 유독 그런 사람이 주변에 많은 걸 수도 있지만 내 주변 상당수가 iCloud 나 Google Drive 프리미엄 구독을 하고 몇 백 기가바이트 또는 테라바이트 단위의 데이터를 쓰는데, 나는 그 큰 용량이 필요하지 않은 건 둘째치고 어느 날 플랫폼에 문제가 생겨 테라바이트 단위의 데이터 이사를 하게 될 가능성을 상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물론 사람들은 외장 하드를 사면 그만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게 마치 평생 다 풀지 못할 짐을 이고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iCloud 에서 ‘저장 공간이 가득 찼습니다’ 알림이 울리면 주말 내내 사진 정리를 해서 기본 용량 5기가바이트 이내로 맞추는 사람이다. 폴더를 만들고 분류하는 작업을 꽤 좋아하고, 네이버 블로그나 포스타입에 발행했던 글도 시시때때로 고치고 카테고리를 옮겨서 다시 분류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나만의 분류 체계에도 애착을 가진다. 내 데이터를 내가 직접 관리하고 언제든 이사갈 수 있게 상시 컴팩트한 사이즈를 유지하는 건 내게 있어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내 트윗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없고 한꺼번에 분류할 수도 삭제할 수도 없는 지금의 트위터는 나에게 지극한 스트레스를 준다. (현재 트위터에서 내 트윗을 일괄 삭제하는 방법은 윈도우 기반으로 누가 만들어 둔 봇을 쓰는 것뿐인데, 나는 윈도우 유저가 아닐 뿐더러 최근 트위터 정책상 API 호출이 한꺼번에 많이 발생하면 계정이 막히는 경우도 있어서 여러모로 조심스럽다.)
불행 중 다행으로 트위터는 아카이브 다운로드 기능을 지원한다. 다운로드를 신청하면 약 24시간에서 48시간 뒤에 아카이브 파일을 보내 주는데, 이쯤에서 내가 2020년부터 지금까지 아주 열성적으로 트위터를 써 온 유저라는 사실을 말해둬야 할 거 같다. 지난주에 다운받은 아카이브 파일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내가 쓴 트윗의 개수는 약 2만 5천개, 그 트윗들의 정보가 JSON 형태로 들어있는 tweets.js
파일의 라인 수는 무려 150만에 달하고 용량도 55MB나 된다. 텍스트로만 구성된 파일의 용량이 55MB 라니 나도 숫자를 보면서 믿어지지가 않는다. 문제는 또 있다. 지난 며칠간 2020년 1월부터 4월까지의 트윗을 겨우 다 읽고 주제별로 정리했는데, 이럴 수가. 내 옛날 트윗 다시 읽으니까 너무 재밌다⋯⋯.
독서나 영화 감상, 공들여 쓴 트윗만 남기고 전부 지우려고 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생각이 반전된다. SNS 플랫폼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기록을 권장한다. 기록으로 나를 증명하라고 끊임없이 종용하고, 특히 미디어가 첨부된 기록을 더 높게 쳐주는데 이는 결국 내 기록이 플랫폼의 자원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공들여 쓴 트윗은 하나같이 이미지가 붙어 있었다. 읽고 있던 책의 페이지를 찍은 사진, 최근에 구매한 책 목록을 찍은 사진 같은 것. 사실 책의 제목이나 문구를 그대로 텍스트로 써서 올리는 쪽이 이미지로 올릴 때보다 압도적으로 용량은 작고 정보량은 동일할 텐데, SNS가 우리한테 서버비를 걷는 것도 아니고 ‘넌 그런 거 몰라도 돼’의 태도로 미디어 업로드를 계속 권장하니 나는 기꺼이 나 자신의 현재를 증명하고픈 욕구에 순응해 사진을 찍어 왔다. 정작 그 사진 중에 의미 있게 남길 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전부 텍스트로 대체 가능했고 실은 아무 사진도 없던 트윗들이 오히려 그 시기의 나를 더 생생하게 대변했다. 책 페이지를 전부 사진으로 찍어뒀더니 막상 내용을 찾고 싶을 땐 검색이 안 돼서 더 불편했던 것도 아이러니다.
어떤 기록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 아무튼 그 고민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