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 회고
이사, 내 집 마련의 꿈
정치적인 사건들 빼고 나 개인에게 가장 컸던 일은 역시 이사. 행여나 전세 자금 못 돌려받을까봐 전전긍긍하던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결과적으론 아무 문제 없이 끝났지만 이 마음고생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1분기에는 내 집 마련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다. 나는 언제까지 집을 옮겨다녀야 할까. 이미 정든 나머지 도저히 팔 수 없는 책은 늘어만 가는데 이 책을 모두 보관해둘 수 있는 나만의 집은 언제 가질 수 있고 어디에 가져야 하는 걸까. 일은 언제까지 해야 하지? 너무 갑갑하다. 커리어는 벌써 10년차를 앞두고 있고 회사에선 내게 관리자 롤을 기대하는데 나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나. 회사에 고용되지 않고도 내가 나 하나 밥 먹여 살릴 능력이 있나? 그런 생각들…
사회에 대한 불안과 회사에 대한 불안, 주거 불안까지 겹쳐서 작년 말부터 올해 초는 정말 제정신 붙들고 있기가 어려웠는데 다행히 많은 것들이 지나갔다. 헌재에서 인용 결정 안 났으면 지금 이런 글 쓸 정신도 없었겠지… 참고로 내 집 마련의 꿈에서 파생된 1분기의 두 가지 목표(투자 도전/언어 공부)는 썩 성공적이지 못했다. 스픽은 첫 달만 출석률 80%을 채우고 다음 달에 바로 해지했으며 영어로 읽으려고 샀던 원서 책도 절반쯤 읽고 그쳤다. 투자는 딥시크와 트럼프를 예상하지 못했던 탓인데… 그래도 손실이 크게 나진 않았다.
운동 - 달리기
마라톤 좀 한다는 사람들에게 10km 70분은 그리 괄목할 성과가 아니지만 나는 내가 이번에 10km 완주를 못할 줄 알았다. 재작년에 10km 마라톤을 뛰었을 땐 이번보다 훨씬 준비가 많이 된 상태였고 그럼에도 70분이 쉬운 목표가 아니었는데, 이번에는 겨울에 날씨가 너무 추워서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연습을 못했고 대회 나가기 사흘 전까지 45분도 안정적으로 뛸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번엔 회사 사람들과 함께 나가는 마라톤이었다. 다들 목표했던 시간에 완주해서 들어오는데 나만 80분 제한 시간 넘겨서 이송 차량 타고 들어오면 마음이 너무 힘들 거 같았다.
다행히 ‘막상 실전이 닥치면 도망갈 곳이 없어서 기록이 좋아지는’ 현상은 이번 마라톤에서도 일어났고, 평상시였으면 절대 못 뛰었을 페이스로 들어왔다. 마라톤 끝나고는 같이 뛴 사람들과 막걸리 마시면서 회식했다. 그날 막걸리가 아주 맛있었다.
운동 - 수영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고, 사흘 전 수업에서 드디어 킥판도 헬퍼도 없이 자유형에 성공했다. 아직은 많이 불안하다. 달리기에서도 ‘30분을 안 쉬고 뛰는데 한번 성공했다’와 ‘30분을 안 쉬고 뛸 줄 안다’와 ‘30분을 안 쉬고 뛰는 게 어렵지 않다’는 전부 다른 층위인 것처럼, 수영에서 나는 ‘자유형을 하는데 한번 성공했다’ 단계다. 하지만 그게 어디야. 물에 몸을 담그는 일은 즐겁다. 좀 더 자주 다니고 싶은데.
어글리어스
나는 어글리어스 구독을 받으면 내 식생활 전반의 비건 농도가 올라갈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특정 요일 특정 기간에 아주 급진적인 비건을 하고 나머지 생활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아무래도 샐러드 채소 위주로 받다보니 유통기한이 3일 이내일 때가 많아서 오래 쟁여두고 먹기가 힘든 탓이다. 그래도 집에서 요리해 먹을 땐 웬만해선 비건으로 차리는데 평일엔 회사에서 밥 먹을 때가 훨씬 많으니까. 그렇다고 평일에도 집에서 밥을 먹자니 회사식당 덕분에 아껴지는 식비가 너무 크다. 무엇보다 생리 기간에 시켜먹는 배달 음식은 아직 비건으로 건너갈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먹고 싶은 걸 못 먹는다는 기분은 둘째치고 그 시기에 밥 제대로 안 먹었다가 119 불러본 경험이 2-3회를 넘어가서, 아마 이건 아주아주 신중하게 도전할듯.
덕질
- 이미 블로그에도 여러 번 썼지만 마차살을 아주 재밌게 읽고 있다.
- 『서브컬처 연구 온리전』 행사를 다녀왔다.
- 『문송안함』 카페를 다녀왔다. 공식은 아니고 팬들이 개최한 비공식 카페. 『문송안함』의 주인공은 클레이오지만 개인적으로는 프란을 참 좋아했던지라 프란의 굿즈나 일러스트가 있길 기대했는데 아쉽게도 찾을 수 없었고, 홍대는 이제 정말 큰 마음 먹고 가야 하는 곳이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거기까지 가기 너무 힘들더라.
- 정말 좋아했던 판타지 웹툰 『저무는 해 시린 눈』이 완결이 났다. 약 두 달 뒤에 외전으로 찾아온다고 하셨는데, 그 전까지 『저무는 해 시린 눈』의 감상 겸 주접 글을 한번은 쓰고 싶다. 이런 사랑은 색바래기 전에 기록을 남겨야 한다.
강단과 소신 팟캐스트
최근에 우연히 듣기 시작한 팟캐스트. 『Ep 45. 창작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편과 『Ep 43. 디지털 세상에서 주인으로 살아남는 법』을 듣고 이건 나를 위한 방송이라는 생각이 들어 구독하기 시작했다. 두 명의 독립 창작자 강단과 소신이 나누는 대화의 주제도 좋고 두 사람이 들려주는 생각도 흥미롭지만 그것만으로는 강소팟에 매료된 이유가 다 설명되지 않는다. 아마 내 최근 관심사 - 아마추어 창작, 대형 플랫폼을 쓰지 않는 블로그 만들기 - 와도 엮인 부분일 거라, 이것도 나중에 시간 들여 정리해보고 싶다. 나는 왜 강소팟에 매료됐는가.
다 쓰고 나니 별로 길지도 않은데 이거 쓰는 걸 보름이나 미뤘어요 제가..